3. 카미노 은의 길

Sevilla에서 Santiago Compostella까지 1,047km

by 천영길





3. 카미노 은의 길(Via de la Plata. Camino Silver Way)


나는 2022년 9월 이베리아 반도의 스페인 세비야(Seviila)에서 출발하여 1,007km 를 걸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걸어가는 네 번째 순례길 도보 여행을 시작했다.


2019년 나의 세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 프랑스 생장 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여 레온에서 포르투갈 포르투로 이동하여 해안길을 따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걷기)을 끝내고 돌아오자 그해 겨울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되었다.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전염병은 세계를 한순간에 공포로 몰아 넣었다. 나의 네 번째 순례길 걷기는 그런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어 오다 2022년 한동안 퍼붓던 여름 무더위가 지나갈 즈음 가을에 다시 시작되었다.


하루에 25km씩 걸어 약 40일 동안 걸어 도착한다는 은의 길(Via de la Plata. Silver Way)을 염두에 두고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 그동안 은의 길 가이드북은 아마존을 통해 직구하고 카미노 카페에서 구간별 거리와 숙박 시설 정보를 수집하여 일정을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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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첫날 나는 스페인의 남서부, 안달루시아 지방에 있는 은의 길의 출발지 세비아(Sevilla)로 날아갔다. 이곳에서 다음 날부터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 도보 여행이 시작되었다.


카미노 실버웨이, '은의 길'의 역사를 보면 고대 로마제국의 히스파니아 속주 시절 주요 도시였던 에메리타 아우구스타와 살만티카, 아스투리카 아우구스타를 잇는 로마 가도에서 기원했다. 세비아에서 출발하여 사모라(Zamora) 이후 그랑하 데 모레루엘라(Granja de Moreruela)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라지며 하나는 아스토르가(Astroga)로 향하여 카미노 프랑세스에 합류하는 길, 또 하나는 사나브리아(Sanabria) 산악지대와 온천 휴양지인 갈리시아 오우렌세(Ourense)를 지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사나브리아 길(Camino Sanabres)을 걸어야 했다.


파생된 루트로는 안달루시아주 알메리아, 그라나다, 코르도바를 지나 메리다에서 합류하는 모사라베 길(Camino Mozárabe), 항구도시 카디스(Cádiz)에서 세비야까지 구간을 더 걷는 아우구스타 길(Via Augusta) 등이 있다.

기원이 고대 로마의 군사·무역로인 만큼 역사가 깊고 유적등의 볼거리도 많다. 순례길의 시작점인 세비야는 말할 것도 없고, 메리다는 로마 극장, 수도교, 디아나 신전 등 유적이 유명하다. 또한 살라망카 대학교로 알려진 살라망카, 로마 성벽과 가우디 주교궁이 있는 아스토르가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야고보 사도에 관한 그리스도교 전승도 사도의 선교활동이 이 로마 가도를 따라 이루어졌다고 증언하고 있다. 역사가 오랜 길인 만큼 스페인 N630 국도가 이 은의 길을 따라 나 있어 순례 도중에 큰 도로를 자주 만날 수 있으므로 보행 중 차가 지나가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나무위키에서 퍼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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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를 탐하며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오느라 나의 무디어진 몸과 나약해진 정신을 회복할 결심으로 '은의 길' 을 걷기 위해 바르셀로나를 출발하여 그라나다(Granada)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제 세비야(Sevilla)에 도착했다. 젊은 순례자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트리아나 백페커스(Triana Bagpackers) 호스텔에 도착하여 배낭을 풀고 프론트에서 순례자 여권(Credencial Pass Port)을 구입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을 위해 웅장하고 화려한 세비야 대성당을 방문하기 위해 숙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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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달루시아 지방의 대도시 세비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고딕 양식의 세비야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de la Sede)이 있으며 세계 10번째 규모의 대성당인 이곳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묻혀있는 곳이다. 대성당은 스페인 지방이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지배받고 있던 시절 페르난도 3세가 세비야를 탈환한 직후, 무어 양식으로 지어진 옛 이슬람 모스크는 곧바로 성당으로 그 용도가 전환되었고 모스크의 내부는 성당의 용도에 맞게 제단이 설치되고 기독교 성물들이 모셔지는 등 크게 고딕 양식으로 리모델링이 시작되어 지금에 이르렀고 세비야의 또 다른 명소인 웅장한 에스파냐 광장은 시민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장소로 알려져있다. 대성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항상 단체 관광객들과 학생들이 많이 찾는 장소로 내가 도착했을때는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들어가고 있었으며 성당의 내부는 웅장하고 엄격한 느낌의 압도적인 분위기가 입구에서 제단까지 깔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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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을 나와 이제 에스파냐 광장을 찾아갔다. 세비야의 대표적 광장 에스파냐에는 넓은 호수를 두고 건물을 따라 길게 나 있는 회랑이 있었으며 공연 장소에는 두 명의 무희가 플라멩코 춤을 추고 있었다. 음악에 맞춰 열정적인 춤이 끝나자 구경꾼들이 너도 나도 앞에 놓인 모자에 동전을 던지며 즐거워했었다.




D+1 순례길 첫 도착지 기에나(Guillena)



카미노 카페에서 회원들이 언급한 은의 길에 대한 소회는 지루하고 걷기에 그다지 매력이 없다고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런 은의 길 걷기가 이제 막 시작되었다.


9월의 스페인 아침은 천천히 나타났다. 서머타임(summer time) 때문인지 아침 8시가 다 되어야 해가 떠올랐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러웠다. 무더운 날씨가 앞으로 한 달 이상은 지속될 거라는 기상 예보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른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서야 더위를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아침 6시에 호스텔을 빠져나왔다.


아직 어둠컴컴한 호스텔 골목을 빠져나와 잔뜩 긴장을 하며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넓은 길로 들어섰다. 거리의 희미한 가로등이 줄지어 비추고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갔다. 도로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자동차들이 속력을 내며 지나다니고 가끔 골목에서는 술에 취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담배를 피워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거치른 소행에 부딪힐까 봐 나는 순례길 상징인 노란 화살표를 단단히 확인을 하며 빠른 걸음으로 도시를 벗어나려 노력했다.


카미노 루트를 표시하는 노란 화실표는 전봇대와 담벼락, 가끔은 길바닥에도 금속으로 제조된 순례길 표식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으로 감사하며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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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출근하는 승객들을 태운 세비야의 대중교통 수단인 트램이 지나가고 있고 거리에는 시간이 갈수록 거리는 사람들과 자동차로 부산한 모습들이 나타났다. 카미노 루트는 이제 우측의 이사벨 2세 다리 입구를 지나 알폰소 13세 운하를 바라보며 걸어가도록 유도했다.


아침의 청량한 공기가 긴장을 계속해야 하는 나에게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도시는 외곽으로 빠져나갈수록 아직도 어둠에 묻혀있어서 긴장감은 여전했다. 그러나 나의 걸음은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내 앞에 나타나는 노란 화살표만 찾아보고 걷는 중이라 근처의 거리 모습은 자세히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다.


세비야 시내를 지나가는 운하를 따라 시민들을 위한 놀이터 광장이 여러 군데 있었다. 그곳을 지나가다 은의 길(Via de la Palta), 1,000km 표지석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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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를 출발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자동차가 뜸하게 지나가는 세비야 외곽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걸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고가 도로 아래 교각을 지나서 다시 회전교차로 옆 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세비야 외곽을 지나가는 과탈기비르(Guadalquivir) 강을 만나 돌로 건설된 다리를 건너갔다. 여기서 나는 자동차 도로를 걷지않고 다음 마을인 산티폰세(Santiponce)로 가는 강변 길로 들어섰다.


가이드북에서는 강변을 걷는 길과 또 하나의 자동차 갓길을 소개한다. 카미노 카페에 올라온 글에는 강변 길을 걸었던 던사람들의 글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자동차 길을 따라가면 가깝지만 위험하니 순례자의 정서상 조용하고 강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 길을 추천한다는 글이 소개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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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변을 지나가는 길은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라 걷기에 편했다.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은 길이라 헤드랜턴에서 비치는 불빛을 따라 걸어갔다. 강변에는 키가 작은 나무들과 높게 자란 풀들이 아침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으며 강물은 아직 아침을 기다리는 듯 조용했다.


한동안 이어지던 강변 길에 산티폰세(Santiponce) 방향을 가르키는 팻말이 나타났다. 이제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길을 찾아 들어섰을 때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에 낮선 광경이 나타났다. 자동차 도로가 지나는 높은 교각 아래에 자동차들이 모여있고 환한 헤드램프 불빛 아래 젊은이들이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며 노래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어둠으로 캄캄한데 빈 공간에서 남자와 여자들이 섞여서 술을 마시며 춤을 추며 지내는 듯했다. 젊은이들이 동네 불량배같아 걱정이 되었다. 나는 이곳을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만약 그들이 나에게 돈을 요구하거나 위해를 가하면 속절없이 당할것만 같아 순간적으로 맨붕 상태로 빠져드는듯 했다. 내 몸의 핏줄이 부풀어 오르는 듯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방향을 바꾸기위해 걸어온 길을 다시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했지만 이제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걸음을 멈춘자리에서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특히 외국인이라는 점과 어두운 시간에 만나는 그들은 나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혀 두려움에 빠지고 있었다. 아직 주변이 어두워서 그들은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지루한 시간이 흘러가며 나는 그대로 서서 멀리 보이는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고 그들은 꼼짝하지 않고 주차된 자동차에서 밝히는 강한 불빛 아래 음악을 크게 틀며 춤도 추며 마냥 한자리에서 머물고 있었다.


나는 별안간 마주친 이런 심각한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운명에 맡기고 가야 할 길을 지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나는 그들을 응시하면서 거의 가까운 곳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더 빠른 걸음으로 교각 아래 모여 있는 그들 옆을 지나가며 제발 아무런 반응이 없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앞을 응시하면서 어둠이 아직 남아 물체를 잘 분간할 수 없는 건너편 길로 재빠르게 걸어갔다. 이미 몸은 경직되었고 앞쪽만 똑바로 쳐다보고 숨을 죽이며 마라톤 선수처럼 뛰는 듯 걸어갔다.


그들을 벗어나 20미터 쯤 지났을 때 뒤에서 “세뇰” 하고 남성의 목소리가 공명이 되어 들려왔다. 그리고 또 한 명이 같이 나를 따라오는 듯 여러 개의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그들은 서로 무슨 말을 하며 계속 “세뇰”을 외치며 나를 불러 세우려 했다. 나는 빠르게 헤드랜턴을 끄고 잡히지 않으려고 정말 죽을힘을 다해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깨에 매달린 배낭이 거추장스럽게 느껴지며 제발 그들이 따라오길 포기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때 희미하게 비치는 공장 건물에서 개들이 사납게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필 개 짖는 소리 때문에 내 위치가 탄로 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는 저놈들이 돈을 달라고 하면 몇 푼이라도 건네줘야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거 같아 걸어가면서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어둔 300유로 지폐를 꺼내 200유로는 팔토시 안에 감추고 그들이 돈을 요구하면 100유로는 줄려고 호주머니에 다시 넣어 두었다.


그렇게 계속 나를 붙들기 위해 따라 오던 그놈들이 나를 포기했는지 부르는 소리가 끊어지고 발걸음 소리가 조용해졌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어슴프레하게 주변이 밝아지고 있었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앞가슴에 흥건한 땀을 닦으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나는 한바탕 전쟁을 치른 느낌으로 배낭에 걸어둔 물 파우치의 빨대를 입에 물고 연거푸 들이마시며 식도를 따라 내려가는 시원한 느낌의 맛을 강렬하게 느끼며 자리에서 그대로 한참동안 앉어있었다.


스페인 신문에는 가끔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이 강도를 만나 피해를 입은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덨다. 카미노의 첫날 내가 받은 큰 혼란은 나에게 큰 사건이었다.


길바닥에 앉아 제멋대로 자란 풀섭에서 피워 오른 풋풋한 풀 냄새를 맡았다. 이제야 사방으로 어둠이 가시고 아침의 고운 햇살이 살포시 들판 위로 내려앉아 변덕스럽게도 새로운 세상이 보이는 거 같았다.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는 길에는 여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무겁고 고요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나 가야 할 길을 찾아 나섰다. 길가에 지은지 오래된 집들이 보이고 또 조그만 공장들이 붙어있으며 이곳을 지나자 한동안 넓은 들판이 나타났다.


카미노 루트에는 멀리 고가도로에 세비야로 들어가는 자동차와 트럭들이 쏜살같이 달려가는 광경이 보였다. 그리고 곧 마을의 주택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자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회전교차로가 나왔으며 나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언덕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갔다. 왼쪽에 렙솔(Repsol) 주유소가 보여 화장실을 이용할 겸 매점에서 음료수를 사기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용량이 큰 시원한 콜라를 꺼내 2유로를 지불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탄산이 입안에서 보글거리는 느낌을 즐기며 반쯤 마시고 건강을 위해 나머지는 버렸다.


카미노의 첫날 우여곡절끝에 산티폰세(Santinponce)로 들어왔다. 이곳은 말끔한 주택들이 타운을 이루어 모여 있었으며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 바르의 야외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침 식사를 위해 카페콘레체 한잔을 마시며 좀 쉬었다 가고 싶었다. 커피와 어제 준비한 머핀, 사과를 꺼내 같이 먹었다.


이제 아홉시가 넘어가자 붉은 해가 점점 대지를 덥혀가고 있었고 나는 대체적으로 자동차가 지나가는 평탄한 길을 만나 좀 수월하게 걷고있었다. 가을의 밀밭 평원이 널찍하게 앞장서서 나타나고 또 다른 광활한 대지들이 내 앞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 숙소가 있는 기예나(Guillena) 마을까지는 13km를 걸어야 했다. 자동차가 자주 지나가는 갓길에 카미노 표시가 드문드문 나타났다. 얼마동안 이런 길을 가야 할지 모르지만 차도와 갓길을 번갈아 걸으며 앞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길을 옮겨 다녔다. 그런데 앞에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 부부를 앞질러 가려다 그들에게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그들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말하며 아침에 겪었던 위험했던 상황을 얘기하자 그들은 어제 호텔에서 이른 아침 강변길은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택시를 타고 산티폰세까지 와서 걷기 시작했다고 하며 다행이라고 위로를 했다.


카미노 루트는 산티폰세를 완전히 빠져나와 회전교차로를 돌아 우측으로 들어섰다. 마을에서 떨어진 이곳은 밀밭과 옥수수, 그리고 채소 농사를 주로 하는 지역이라 가을에는 땅을 갈아 엎어 놓아 흙더미들만 바라보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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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잡초가 무성한 넓고 황량한 지역을 지나 드디어 오늘 목적지 기에냐(Guillena)가 가까워 오면서 이제 자동차와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모습을 마주치기 시작했다.


가이드 북에는 기에냐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기에냐(Guillena)는 고대부터 로마와 아랍의 과거를 가진 마을이며 전통적 농업을 유지하고 있다. 강이 흐르고 Huelva와 Cala지역의 강둑은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며 사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고장이라고 적혀있다(나무위키 퍼옴).


기에나에 도착했을 때 마을 축제가 있다는 플래카드가 보이고 사람들이 시장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작고 오래된 건물 안에 있었다. 숙소 여주인에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물었더니 오늘이 이 지역 수호성인 축제라 모든 식당과 바는 문이 닫혔으니 전통 시장의 음식 코너에서 사 먹으라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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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마을 장터 모습이 궁금해 밖으로 나가 숙소 건물 뒤 장터로 갔다. 우리나라 시골 장터와 비슷한 분위기를 느꼈다. 시장의 각 구역마다 옷을 파는 가게, 기념품, 식사를 제공하는 임시 천막들이 보였고 마을 사람들은 흥이 나서 몰려다니며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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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을 차례대로 구경하다 닭고기 튀김을 팔고있는 천막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튀김 한 접시를 주문하고 맥주를 추가해서 한쪽 귀퉁이 비어 있는 테이블로 갔다. 테이블 건너편에 가족을 동반한 어른들과 어린아이들이 먼저 앉아 있었는데 엄마가 아들한테 화가 난 얼굴로 남자 아이를 심하게 야단치는 바람에 같은 테이블에서 치킨을 먹는 동안 나는 내내 유쾌하지 않아 서둘러서 밖으로 나와 버렸다.


숙소 주인은 밤에 멋진 축제를 하니까 꼭 구경하라고 했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이 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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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 마을 이름은 까스띠브랑코 데 로스 아로요(Castillblanco de los Arroyos)


아침부터 기온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축제는 밤새 진행되었고 새벽녘에도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알베르게 밖으로 나오자 도로에 주민들이 모여 축제를 이어가는 고적대를 앞세우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보도블록에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걸어가느라 갈길이 바쁜 나는 어쩔 수 없이 군중을 뚫고 지나가야 했다. 마침 같은 숙소에서 지낸 순례자들이 일렬로 헤드 랜턴을 켜고 군중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어서 나도 재빨리 그들 뒤를 따라 걷다 사람들 사이에서 빠져 나왔다.


기에냐를 벗어나 넓은 호밀밭이 있었던 들판으로 나왔다. 동이 터오르며 앞이 트인 들판을 만나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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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루트는 연중 기온이 높은 조건의 땅에서 잘자라는 올리브나무 농원을 지나갔다. 가끔 길에 헌팅 지역(hunting area)이라는 표지판이 나타나서 이곳에 무슨 동물이 있길래 사냥을 허락한 지역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올리브나무 농원이 끝나고 바위와 나무 숲과 거칠고 마른 풀이 길게 자라는 땅을 지나가며 진짜 사냥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 옆에 픽업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었고 사냥꾼들이 사납게 생긴 사냥개들을 데리고 있었다. 나는 약간 두려움에 걸음을 재촉하여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때 근처에서 "타타닥" 하고 총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사냥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더니 오른편 숲으로 사슴 한 마리가 사냥개 앞에서 요리조리 도망치는 모습이 보였다.


동물을 살생하는 행위를 네추럴파크에서 한다니 가슴이 먹먹해 옴을 느꼈다. 나는 사냥 지역을 빨리 벗어나고자 서둘러 걸었는데 내 앞에는 실망스럽게도 점점 오르막 길이 나타났다. 그런 너덜길에는 말라버린 흙먼지가 계속 날아올랐고 그곳에서 거의 2시간 이상을 거칠고 무딘 길을 걸어야 했다.


카미노 루트에는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무 숲이 시작되었다. 스페인의 유명한 이베리코 돼지가 참나무 숲에서 떨어지는 도토리를 먹고 자라 육질이 좋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을 지명이 매우 긴 까스티브랑코 데 로스 아로요(Castilblanco de los Arroyos) 뮤니시팔 숙소에 들어왔다. 호스피탈레노가 이곳도 기에나와 같은 마을 축제로 식당들이 문을 닫았으니 근처 수퍼마켓에서 먹을 것을 사와 주방에서 만들어 먹으라고 안내를 했다.


샤워를 끝내고 배가 고파 무엇이든지 먹기 위해 일단 구글 맵에서 영업 중인 바르를 검색해서 마을로 내려갔다. 손님들이 꽉 들어찬 바르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콜라밖에 없었다.


은의 길에서 처음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주인이 알려준 슈퍼마켓을 찾아갔다. 늦은 오후 푸른 하늘의 해는 아직 자취를 감추려는 기색이 없어보였다. 후덥지근한 날씨때문에 건물 그림자를 따라 한참을 걸어갔다. 마을은 정말 텅 비어있는 듯 조용했다. 수퍼마켓에는 아쉽게도 저녁을 만들어 먹을 만한 재료가 별로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으로 식사를 해결하기로 하고 계란 한 박스와 내일 먹을 간식으로 오렌지 주스, 사과, 납작 복숭아 그리고 덤으로 오레오 비스킷을 준비했다.


라면에 계란을 두 개 넣고 저녁 식사를 준비해서 옥상의 테이블로 나왔다. 이번 순례길 걷기를 준비할때 뜨거운 물만 준비하면 가능한 다섯 개의 컵라면 사리와 수프를 별도로 포장했고 비상용 음식으로 육포를 준비했다. 라면의 진한 국물 냄새가 벌써 입맛을 돋구고 있었다.


영어로 제작된 은의 길 가이드북을 들여다 보며 내일 카미노 루트를 체크했다. 알베르게에서 곧장 자동차 길을 따라 약 16킬로 정도를 걸어 내추럴 파크(Natural Park)가 나오면 공원안으로 들어가 나머지 거리를 걷게 되어 있었다. 갓길이 따로 없는 시골 아스팔트길을 4시간 이상 걸어가기 싫어서 나는 호스피탈레노에게 아침에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다. 택시를 타고 내추럴 파크까지 간 다음 '알마덴 데 라 프라타(Almaden de la Plata)를 지나 목적지인 'El Real de la Jara까지 걸을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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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 엘 레알 데 라 하라(El Real de la Jara)


뮤니시팔 알베르게는 시설도 깨끗하고 친절하며 기부금제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침에 어제 준비했던 빵을 꺼내 오렌지 주스와 함께 먹었더니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오렌지 주스 병은 용량이 커서 한번 먹고 나면 작은 플라스틱 병으로 옮겨 배낭 옆에 넣고 다녔다.


알베르게 앞에 어제 예약한 택시가 조금 늦게 도착했다. 택시가 예약 시간에 나타나지 않자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노가 전화를 해서 택시 기사에게 다그치는 표정이 미안했다. 택시는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하자 도로에 들어서고 길게 쭉 뻗어있는 자동차 도로를 엄청난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나에게 분풀이를 하는 것처럼.

도로에는 아침에 출근하는 자동차들이 빠르게 다가왔다 지나가고 이에 택시도 뒤질새라 속력을 내며 거침없이 달려갔다.


택시가 내추럴 파크 앞에 멈출때까지 나는 긴장을 해야 했다. 비용을 지불하고 내려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카미노 루트 표시는 내추럴파크(Parque Natural Sierra Norte) 정문에도 붙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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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문을 지나 직선으로 길이 있는 공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Almaden de la Plata'로 향하는 참나무 숲길을 향해 막연하게 걸어갔다.


이번 도보 여행은 마음을 비우고 침묵과 참선을 경험하듯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생각이었다. 그런 경험이 나에게는 온전한 여행이 될거라고 나는 다짐했었다.


'내추럴파크'. 자연공원인데 공원을 찾는 사람은 오직 순례자들과 사냥꾼들만 있는 것 같았다. 공원에는 단지 도토리 열매가 열리는 참나무과 나무가 무성할 정도로 숲을 이루고 있었으며 일정한 지역을 지정하여 울타리를 쳐놓고 공원이라 지칭한 거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공원은 삭막하고 건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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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의 자연공원들은 산림으로 우거진 숲속에 계곡도 있고 호수도 있었다. 또 공원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휴식 공간도 많이 있는데 이곳은 공원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삭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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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덤하고 건조한 불모지 같은 지역을 한참 지나가는데 이곳에도 '스포츠. 사냥 허가 지역'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그리고 얼마후에 근처에서 총소리가 들려와 나는 바짝 긴장을 하며 걸어가야 했고 혹시 조용한 숲 속에서 걸어가는 나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동물로 착각하여 사냥꾼들이 총을 쏘지 않을까 하고 걱정을 하며 걸어갔다. 숲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지는 않아 가까이에서 사람과 동물의 식별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앞에 보이는 가파른 경사길도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걸어 올라갔다. 그런데 정말 사냥꾼들이 갑자기 길에 나타나 하늘로 공포탄을 쏘는가 하면 다른 사냥꾼들과 무전기로 연락을 하면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다.


사냥을 허용한 지역에 카미노 루트가 조성되어 있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그들은 길에서 또 바위 위에서 긴 엽총을 들고 사냥개들이 뛰어 다니는 모습을 보며 즐거워 했다. 그들은 아마 나 같은 순례자들이 사냥 지역을 지나가는 것에 매우 귀찮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늘에서는 강한 햇살이 끊임없이 내려 머리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고 가슴에 차오른 땀은 갈 길을 무디게 만들었다. '부엔까미노' 앱을 들여다 보았더니 중간 조그만 마을 '알마덴 데라 프라타'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카미노 루트는 다시 고도를 천천히 높여가고 있었다. 'Almaden de la Plata' 방향으로 표시된 싸인을 보고 나는 마을의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우선 참치가 들어있는 샐러드에 토마토 수프로 점심을 먹고 다시 '엘 레알 데라 하라'로 출발했다.


'엘레알 데 라 하라(El Real de la Jara)' 가는 길도 처음부터 끝까지 도토리가 무수히 떨어져있는 참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특별한 풍경도 없는 무색한 길을 진짜 순례자가 되어 고행의 길을 걷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오후에야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엘레알 데 라 하라' 알베르게에 들어갔다.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가랑비를 만났다. 무척 시원했지만 빨랫줄에 널어둔 빨래가 젖기 전에 거둬들이느라 부리나케 마당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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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식당들은 저녁 8시가 되어야 영업을 시작한다. 다행히 '바르'는 열려 있지만 식사를 하기에는 먹을 만한 메뉴가 없었다. 그런데 마을 끝에 문이 열린 식당을 발견해서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메뉴에 오징어 튀김요리 깔라마리(Calamari)'가 있었다. 올리브 오일로 요리한 오징어는 약간 느끼했지만 콜라와 먹었더니 저녁 식사로 안성마춤이었다. .



D+4 모네스테리오(Monesterio) 가는 길



밤새 비가 많이 내려 마을 곳곳에 물 웅덩이가 많이 생겨났다. 알베르게를 나와 마을 중심 거리로 걸어가자 문이 열려있는 카페에 일하러 가는 인부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여기저기 모여 있었다


카페의 출입문 앞 원탁 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고 단골 메뉴인 카페콘레체와 진열장에 넣어둔 오믈렛을 주문 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두터운 오믈렛은 입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가고 커피와 매칭이 잘되어 훌륭한 아침 식사를 하고 일어났다.


비가 그친 마을의 거리에는 시원한 바람이 지나가면서 매우 상큼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받아 걸어가기에 너무 좋았다. 이층 주택들이 길을 따라 이어지다 거의 마을 끝자락에 있는 빵 만드는 공장을 발견했다. 사실 빵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나는 근처에 빵을 만드는 가게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냄새를 따라 찾아간 곳은 길죽한 바게트빵을 만드는 건물이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주인이 나를 보더니 웃으며 “빵” 하고 묻는다. 스페인어로 빵은 'Pan'이다. 길쭉한 바게트빵 한 개에 1유로를 받았다. 빵을 봉지에 넣어 나에게 건네주며 남자 주인은 나에게 웃음을 띄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려서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바게트빵은 배낭 제일 위에 얹어서 언제든지 꺼내 먹을 수 있게 두었다.


빵 공장을 지나 카미노 방향 표시가 있는 골목으로 가자 그곳에는 치즈를 만드는 공장 있었다. 마을에는 목초지가 많아 젖소를 기르는 목장이 에서 생산한 우유로 치즈를 만드는 공장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치즈 공장 골목 담벼락을 지나자 카미노 표식인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갑자기 가파른 경사를 만나 출발부터 힘이 들었다. 언덕을 올라가자 그곳에는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위치에 커다란 저택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비가 그친 하늘 아래 아담하게 자리한 마을 풍경을 바라보았다.


카미노 루트는 주택들을 지나고 다시 내리막 길로 이어졌다. 길을 따라 이끼낀 돌담이 이어지고 소나무 숲이 보였다. 또 숲이 우거진 나무 아래에는 오랫동안 쌓인 낙엽때문에 거름같은 토양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언덕을 내려가자 앞에 나타난 개천이 어제 내린 비로 건너가야 할 다리가 물에 잠겨 보이질 않았다. 나는 통로가 차단된 개천을 보고 그만 그 자리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혹시 개천을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아래쪽으로 조금 내려가 보았지만 모든 곳에 물이 세차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고 제자리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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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켜고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위해 GPS가 있는 '부엔까미노' 앱을 켰다. 'Monesterio' 가는 대체 길은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개천을 건너가는 방법을 포기하고 내려온 길을 따라 다시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을때 뒤에서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개천쪽에서 공사용 픽업 트럭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나는 급하게 구글 번역기를 열어 '다리에 물이 넘쳐 못 건너가니 나를 좀 개울 건너편으로 데려다 달라' 라고 작성하고 픽업 트럭이 다가올때까지 기다렸다. 트럭이 다가와서 나는 손을 들어 차를 세우고 운전석으로 가서 번역된 글을 보여주었다.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아있는 남자들이 외쳤다. "트럭에 타요". 하면서 손가락으로 뒤편의 화물칸을 가리켰다. 나는 배낭을 화물칸에 올려놓고 뛰어올라서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차를 돌리더니 물이 차올라 보이지 않는 다리를 건너 평평한 길에 나를 내려주었다. 그러면서 이 도로는 자동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길인데 아침에 목장 창고에 전기 공사를 하러 갔다 오는 길이라고 했다.


나는 남자들의 고마움에 답하려고 은행에서 신권으로 바꿔온 천 원 지폐 두 장을 기념이라고 하면서 그들에게 건넸다. 그들은 한국 돈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며 산티아고까지 잘 가라고 엄지 손을 들어보이며 돌아갔다. 나는 그들의 차량이 언덕으로 다시 올라갈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물이 넘쳐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을 포기한 순간, 천사처럼 나타나 나를 도와준 그들에게 나는 야고보 성인의 유해가 있는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갈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고 생각했다.


개천을 건너자 카미노 루트는 지금은 파괴된 오래전의 성곽을 바라보며 걸었다. 이때부터 상당히 경사가 높은 언덕을 오르며 숨이 차고 이마에 땀이 차오르는 길을 걸었다.


카미노는 이제 안달루시아주 경계선을 지나는 표지판을 지나 다시 내리막으로 나 있는 길을 걸어갔다. 다시 정말 지루할 만큼 계속 나타나는 참나무 숲과 흑돼지들을 방목하는 농원을 지나더니 이제는 철선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넓은 목장을 지나갔다. 목에 번호표를 달고 있는 등치가 큰 소들과 한쪽에서는 흰털이 뭉쳐서 헝클어진 양들이 옹기종기 모여 풀을 뜯고 있는 지역을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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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답답하고 지루한 길에서 문득 음악이 생각났다. 이어폰이 필요 없으니 핸드폰에 저장된 '멜론'을 열어 그동안 간추려서 저장해 둔 음악을 크게 틀고 걸어갔다. 그동안 걷기에 온 정신이 몰두해 있었던 시간 때문에 아마 잊힐 수 있었던 음악들이 나에게 다시 생명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나의 최애 곡 '한계령' 을 첫 음악으로 시작해서 전체 재생을 눌렀다.


'저 산은 내게 오지 마라, 오지 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여름날 산에 오를 때나 한적한 농촌 길을 걸을 때 즐겨 부르던 노래 '한계령'이다.


El Real de la Jara를 향해 출발한 지 3시간쯤 지났을 때 편의점과 주유소가 나타났다. 오아시스 같은 편의점에서 콜라를 마시며 땀을 식혀 보았다. 자동차 도로를 횡단하는 육교위에서 분주히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며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카미노는 계속 자동차 도로 옆을 따라 지나갔다. '모네스테리오(Monestrio)'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때 나는 상당히 지쳐있었다.


알베르게에는 4명의 순례자들이 있었다. 여성 호스피탈레노가 매우 친절하고 순례자들을 한사람씩 각각 1인실로 배정해 주어서 특급 대우를 받은 기분이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해결하러 밖으로 나가 식당이나 바르, 슈퍼마켓에 갔었지만 '시에스타' 시간을 철저히 지키느라 영업을 하는 곳이 없어서 일단 포기하고 돌아와 라면으로 허기를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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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5 푸엔테 데 칸토스(Fuente de Cantos). 두 번째 천사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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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날씨는 진하디 진한 푸른 하늘을 마주하며 시작되었다. 어제 저녁을 먹은 Leo호텔 식당 문이 열려있어서 커피와 빵을 먹으려고 들어갔다. 식사는 단순하지만 그래도 걷기위해 매일 빵과 과일은 섭취해야 했다.


카미노 루트의 시작은 전형적인 가을 농촌 풍경을 담으며 걸어가는 길로 사방이 노랗게 물들어있는 평원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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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들어있는 밀밭을 지나거나 올리브나무 농원들도 나왔다. 숲속에 잘 나있는 길, 가끔 조그만 호수를 만나고 오래전에 조성된 듯 공원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벤치도 있었다. 이곳에서 잘 익은 바나나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올리브나무 농원에는 예전부터 돌담을 쌓아 지금은 그 위에 이끼가 덥어버린 길을 지나갔다. 그리고 이전 마을처럼 소들을 방목하는 넓은 목장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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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동안 카미노에서는 순례자들을 아무도 만나지 못하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숲속으로 들어오니 통신도 잘 연결되지 않아 그냥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며 걸어가야 했다. 내 앞에서 보이는 순례길은 조금씩 좁아지면서 얼마전부터 카미노 방향 표식이 나타나지 않아 방향을 잘못 들었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오프라인 앱인 '맵스미'를 열어 루트를 확인했다. 나는 이미 정상적인 루트에서 상당히 떨어진 길로 잘못 들어온 사실을 알았다. 어느 갈림길에서 화살표를 확인하지 않고 지나친것이 탈이 난것이다.


아무도 만날 수 없는 숲속 길에서 이렇게 잘못 들어서면 무척 당황스럽고 두려움도 느꼈다. 그런데 그곳에서 숲 넘어 멀리 내다보이는 곳에 자동차가 가끔 지나다니고 있는 길이 보였다. 나는 일단 자동차 도로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서 그곳에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하고 좁은 길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자동차 소리가 들리고 SUV 자동차가 내가 있는 좁은 길로 흔들거리며 다가왔다. 자동차가 나타날 거라고 전혀 생각을 할 수가 없는데 일단 가까이오면 운전자에게 이곳을 빠져나가는 길을 물어보기 위해 기다리다 자동차를 세웠다. 그리고 운전석에 혼자 있는 남자에게 가장 간단한 영어로 이렇게 외쳤다.


“아이 엠 필그림”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하고 외쳤더니 그가 스페인어로 얘기를 했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했다. 남자는 손가락으로 내가 걸어온 방향을 가리키며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거 같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번역기를 열고 카미노 길을 잃어버렸는데 나를 좀 데려다 달라고 했다. 남자는 잠깐 망설이더니 10분 이상을 가야 한다며 일단 뒷자리에 타라고 손짓을 하였다. 나는 "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고 냉큼 뒷좌석의 문을 열고 올라탔다.


숲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양을 천사가 다시 나타나 본래의 길로 인도한다는 생각을 다시 했다. 그리고 나의 부주의하고 경솔함을 후회하며 갈림길이 나타나면 가야 할 방향을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했다.


남자는 내가 걸어온 울퉁불퉁한 길로 차를 몰고 가고 있었으며 나는 흔들리는 좌석에서 앞에 내다보이는 길을 응시하며 정차할 때까지 긴장하며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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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넓은 갈림길이 나타나자 노란 회살표가 건너편 커다란 바위에 표시되어 있고 그는 나를 내려주며 가야하는 카미노 루트를 손으로 가리켰다.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에게 또 천 원 지폐를 건네면서 한국 기념품이라 했다. 남자는 지폐를 받고 신기해서 굉장히 기뻐했다.


나는 이제 두 번이나 천사를 만나게 되었다. 카미노에서 길을 잃고 당황할 때 이렇게 불쑥 나타나 길을 알려주는 고마운 사람이 천사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번 순례길 걷기에 나서면서 내가 다니는 성당 신부님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말씀을 드렸다. 신부님이 축복해 주시면서 매일 안전하게 걸어서 산티아고에 잘 도착하도록 미사 때 기도하겠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나는 오늘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먼저 오늘 일어난 사실을 전하며 신부님께 감사의 문자를 보내드렸다.


그동안 프링스길, 북쪽길, 포르투갈길을 걸어 4대 순례길의 마지막인 은의 길은 나에게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참석하는 동호인 카페 '카미노' 에는 노령이지만 지금도 여러 해 동안 카미노를 다녀오시는 분들도 계신다. 나는 그분들을 만나면서 다리가 성할 때까지 걸어보겠다고 하신 말씀을 오래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나는 원래의 길로 돌아와 안정을 되찾고 한적한 농촌 마을을 지나가는 행운을 누리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889킬로가 남았다는 표지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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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지나가다 돼지들을 방목하여 키우는 농장을 지나갔다. 마침 주인이 픽업에 사료를 싣고 와서 사료 통에 몇 봉지씩 집어넣자 흩어져 있던 돼지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모이통으로 모였다. 참나무 아래에서 맘껏 걸어 다니며 도토리와 주인이 주는 곡물을 먹고 자라는 돼지들은 최고의 영양분을 섭취해서 튼튼하고 알찬 어미 돼지로 성장할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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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지내야 할 알베르게 'Hostal Vicenta'를 찾아왔다. 숙소는 오래된 건물이지만 마치 귀족이 살았던 집 느낌이 나는 고급스러운 건물로 하루를 지내면서 마음에 들었던 숙소였다.


카미노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저녁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Dia Supermarket에서 쌀(Arroz)과 스테이크용 소고기와 피클을 그리고 만찬을 위해 레드와인을 사왔다. 키친으로 들어가 쌀을 씻어 냄비에 밥을 안치고 후라이팬에 소고기를 구어 튜브 고추장을 꺼내 고기에 발라먹었다. 레드와인도 한잔하면서 진정한 카미노의 아름다운 저녁 만찬 시간을 보냈다. 사실 난 요리 솜씨가 없어서 식당을 주로 이용하는 편인데 유럽 순례자들은 파스타와 스파케티를 주방에서 잘 만들어 먹었다. 나는 쌀밥을 먹고 남은 잔밥은 아침에 끓여서 누룽지로 먹고 때때로 계란을 써니사이드해서 밥위에 얹어 먹을때 포만감이 최고였다. 계란은 한 꾸러미를 삶아 배낭에 넣고 걷다 중간에 쉴 때 두 개 정도를 물이나 주스와 함께 먹었다. 카미노의 즐거움 중 하나가 또 걷다가 힘들 때 쉬면서 배낭 맨 위 수납 포켓에 넣어둔 간식을 꺼내 먹는 즐거움은 어릴 때 소풍을 가서 먹는 느낌과 똑같았다.


D+6 자프라(Zafra) 가는 길


늦 여름의 더위 때문에 어제 Fuente de Cantos의 밤은 더디게 지나갔다. 낮에는 활활 타오르는 태양이 올리브 농원 사이로 힘겹게 걷고 있는 나의 얼굴과 볼에 뜨겁게 내려앉았다. 저녁시간이 되어야 기온이 내려가고 사람들은 이제야 다시 살아나는 거 같았다.


오늘은 9월 15일이다. 새벽에는 기온이 내려가 창틀 빈틈으로 찬바람이 심하게 들어오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 가을로 가는 길목이라 한낮의 열기는 힘차게 이베리아 반도에 여지없이 내려앉았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 위에서 오늘 카미노 루트를 점검했다. Zafra까지 걷는 동안 Calzadilla de los Barros 와 Puebla de Sancho Perez 를 지나 인구 18,000명의 도시 Zafra에 도착한다. 총 25km를 걷는 구간으로 오늘 일기 예보는 오후에 비소식이 들어 있었다.


며칠전부터 침대에서 머리와 얼굴 그리고 경직된 다리와 어깨 근육을 스트레칭을 하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렀다가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이 먹구름으로 덮여 있고 바람 때문에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제 밥을 먹고 남은 누릉지를 냄비에 넣고 끓였다. 반찬은 어제 사온 피클을 먹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으며 아침에 쌀밥 누룽지를 먹고 출발하니까 우선 속이 편하고 든든했다.


이른 아침이라 찬바람이 불어왔지만 빠른 시간에 더워질거라고 생각했다. 알베르게 'Hostal Vicenta 건물을 뒤로하고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와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의 갓길을 따라 걸어갔다.


도로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상쾌하고 발걸음도 빨랐다. 우선 스틱을 사용하지않고 한 손에 들고 걸어보니까 발걸음이 더 간편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를 출발하여 한 시간 반쯤 지나 깔사디아 데 로스바로스 마을로 들어갔다. 에스파냐 광장을 지나 상점들과 은행 그리고 약국이 보이고 도로를 따라 레스토랑이 몰려있었다. 깔사디아 데 로스바로스의 잘 정돈된 건물들을 지나 시골길을 30분쯤 걸어 카미노 루트는 왼쪽 큰 도로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무료한 순례길이 시작되었다. 프에브레 데 산초 페레즈(Pueble de Sancho Perez)에 도착할때까지 14킬로 구간은 은의 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참나무와 올리브 나무가 자주 보이는 지역을 지나 가야 했다. 가끔 경작을 하지 않아 그냥 버려둔 토지에는 억새들과 잡풀들이 사람 키 만큼 자라 대지를 덥고있었다.


평원을 지나는 무료한 길을 지나 3시간 반쯤 지났을때 다음 마을 프에브레 데 산초 페레즈에 들어섰다. 거리는 씨에스타(Siesta) 시간이 시작되었는지 조용했다. 한적한 거리를 지나가다 가이드북에 보았던 카페 아바디아(Abadia)에 들어갔다. 턱 수염을 기른 남자 주인이 손님들 틈에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하몽이 들어간 샌드위치와 콜라를 주문했다.


이곳에서 한시간쯤 걸으면 오늘 목적지 자프라(Zafra)에 도착한다. 인구가 2만 명이나 되는 도시 자프라에는 20개의 로마 유적들이 있으며 그중에서 1443년에 건립된 페리아공작의 궁전인 가장 이름난 Zafra 성(Castle)이 있지만 다녀올 수 없었다.



D+7 비야프랑카 데 로스 바로스(Villafranca de los Barros)



프라(Zafra)는 스페인 남서부 바다호스(Badajos) 주의 도시이자 자프라(Zafra) 코마르카(Río Bodión)의 주도라고 위키피디아에서 언급합니다.


자프라 시내의 거리를 노란 화살표를 찾아가며 걸어갔다. 어제 자프라에 들어오기전 프에브레 드 산초 페레즈 마을에 와인 농장 간판을 본적이 있었는데 자프라 도시를 빠져나가는 외곽의 회전 로터리를 가로질러 가자 포도 농원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의 포도나무 높이는 일반 포도나무 높이보다 현저히 낮아 특별했으며 아마 다른 품종으로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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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와인은 이제 한국에서도 관심과 인기가 높아져 마트나 와인샵에서도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카미노 루트는 생각보다 마을 규모가 꽤 큰 Los Santos de Maimona 마을을 지나갔다. 길 바닥이 네모난 돌을 사용하여 깔린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마을의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많은 동네 사람들이 카페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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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참지 셀러드를 주문하고 천정이 있는 테이블 밑에 앉았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카페에는 음식도 같이 팔고 있어서 주민들은 점심을 먹고 있는 중이라 상당히 북적거렸다. 허기를 달래느라 기다리던 셀러드가 바게트빵과 함께 나왔다.


카미노는 마을의 주택가를 벗어나자 잘 정돈된 올리브나무 농원들을 지나쳐 점차 참나무에서 열리는 도토리 열매를 먹고 자라는 이베리코 돼지 농장을 자주 지나갔다. 대단위 돼지 농장을 지날 때면 축사를 지키는 대형견들이 나를 향해 울타리에 걸쳐서 따라오며 사납게 짖어댔다. 나는 바짝 긴장을 하고 지나가야 했으며 때론 배낭 허리끈 주머니에 넣어둔 맹견퇴치기를 꺼내서 버튼을 눌러댔다. 그래도 대형개들은 자리에서 꼼짝도 않고 짖어 댔다. 대체적으로 돼지 농장의 규모는 넓은 구릉을 차지하고도 어찌나 큰지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나는 이런 길을 만날때마다 빨리 이곳을 지나갔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보채기 시작했다.


오후에 들어서면서 카미노 길에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걸음이 점점 빨라졌고 La Almazara 마을을 지나갈때 약간의 비가 뿌리기 시작했다. 아직 가느다란 빗줄기라서 우비를 꺼내 입을 정도는 아니라 오늘 목적지 Villafranca de los Barros 까지 1시간 반 정도를 그냥 걷기로 했다.


가느다란 빗줄기는 도시로 들어서자 멈추고 길을 따라 나지막한 주택과 건물들이 줄지어 이어졌다. 사립 알베르게 Extrenatura는 오래된 건물 느낌의 작은 창문과 베란다가 길밖으로 나와 있었다. 대문을 밀고 계단을 올라가 2층 리셉션으로 가자 젊은 남자 호스피탈레노가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그리고 집에 찾아온 손님을 정성껏 대하듯 차근차근하게 시설 이용을 위한 설명과 함께 침대를 지정해 주며 땀에 젖은 빨랫감을 플라스틱 바구니에 넣어 가져오면 자신이 세탁기에 돌려 건조한후에 다시 침대 옆에 두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나는 호스피탈레노가 순례자의 빨래를 손수 해결해준다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 간혹 웰컴 드링크를 건네는 호스피탈레노는 있어도 순례자들의 빨래를 직접 세탁기에 넣어서 처리해주는 경험은 처음이기 때문에 그에게 먼저 감사의 인사를 하고 샤워를 한 후 빨랫감 바구니를 리셉션 데스크 곁에 두고 침대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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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가을은 아침에 해가 늦게 솟아오르고 저녁에는 반대로 늦게야 사라졌다. 저녁 식사를 위해 8시에 마을의 레스토랑을 찾아 나섰다. 식당에 가면 무엇을 새롭게 먹어야 할 생각으로 메뉴 고르기에 항상 고민을 해본다. 결국 오늘은 파스타를 와인과 함께 주문했다.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내가 지낼 침대옆에는 잘 말린 빨래가 들어있는 바구니를 발견했다. 나는 젊은 호스피탈레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해야 했다.



D+8 또래메이아(Torremejia)



가이드북과 Buen Camino 앱은 또레메이아(Torremejia) 가는 길을 Villa franca 에서 시작해 우측으로 길게 지나가는 비포장 로마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루트는 중간에 마을이 없어서 27킬로를 하늘과 땅만 쳐다보고 걸어야 해서 나는 15킬로 지점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Almendralejo 마을을 경유하여 다시 북쪽으로 올라가는 루트를 선택했다. 가이드 북에서 제시한 로마길을 걸어가면 아마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하기 때문이다.


오늘도 포도송이들이 탐스럽게 달려있는 농원을 지나갔다. 포도나무 사이에 나있는 통로를 기준으로 포도나무 덩굴들이 나란히 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 통로 사이를 농기계들이 지나가며 포도송이를 따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카미노 앱에는 8킬로 지점에 'Arroyo de Bonhabal' 라는 지명이 있었는데 보지 못하고 지나쳤다. 마을의 이름이 적힌 표지판이 없으면 확인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은 예상했던 대로 무료한 길이라 '멜론' 을 열어 그동안 쌓아둔 음악을 하나씩 들어 보았다. 일본인 피아니스트 '유키쿠라모토' 리스트에 담겨있는 'Louis Lake' 와 '황혼' 그리고 '세느강의 정경'을 차례대로 들으며 걸어갔다.


농사를 짖지않아 방치해둔 들판을 걸어가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지역에는 소들을 방목하는 목장이 있었고 15킬로 지점에 이르자 Almendralejo로 향하는 사거리가 나왔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돌아 두 시간 정도 걸어가면 오늘 목적지 Torremejia가 나타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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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Villafranca를 출발해서 지금까지 쭉 뻗은 길에 이곳도 농사를 지을 여력이 없는지 풀 덮인 땅이나 흙을 갈아 업어둔 농지들이 계속 나타났다.


이곳에도 카미노 길에 '산티아고 가는 길(Santiago de Compostella)' 의 대형 입간판이 걸어오는 순례자들을 반기고 있었다.


'Almendralejo' 마을로 들어서자 몇 개의 상점들과 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마을의 중심에 자리하는 'Restaurante La Silera' 에서 점심 식사로 오늘의 메뉴인 메뉴델디아(Menu del dia)에 ‘Fish & Chips' 가 있었다. 내가 유럽에 오면 제일 좋아하는 메뉴라 너무 반가웠다. 대구 생선을 튀겨 감자칩과 함께 나온다. 그리고 콜라 한잔으로 개운하게 마무리를 한다.


'Torremejia' 는 작은 마을이다. 알베르게 'Rojo Plata Hostel' 은 소박한 건물과 침실을 제공하여 아늑한 하루밤을 지낼 수 있었다.



D+9 대도시 메리다(Merida)



어제 저녁 식사를 해결한 Bar 에서 아침으로 빵과 커피를 그리고 어제 마련한 말린 무화과 2개를 먹고 카미노를 시작했다. 오늘 목적지 Merida는 인구가 57,000명이나 되는 Badajoz 주에 있는 대도시이다. 로마시대 유적들이 많아 도심을 흐르는 과디아나강(Guadiana River)과 구도시에는 고대 로마 극장, 로마 미술관, 다이애나 사원. 무어인 사원 등이 있다고 했다.


작은 마을 Torremejia 를 바로 벗어나 한적한 시골 길로 들어섰다. 근처에는 메리다(Merida)로 연결되는 고속도로에 화물차와 승용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마을을 벗어나자 길가에 넓은 공동묘지가 나타났다. 출입문이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묘지들은 다양한 크기로 영정 사진, 시들어진 꽃들, 심지어 어느 묘지는 작은 집을 지어 고인의 무덤을 안치하고 있었고 이곳에도 자손들이 부의 위세를 보이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카미노 루트는 자동차 통행이 많지 않은 조용한 길로 들어섰다. 순례자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다가오는 방향으로 걷는다. 차량을 마주 보고 걸어야 위험을 피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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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을 강하게 내려 보내는 한낮에는 길을 걷는 동안에 내 안에서 훈기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작은 공장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지나서 다시 조용한 길을 걸어갔다. 카미노 루트는 고속도로와 기찻길이 교차하는 지역을 지나 Merida 방향으로 이어졌다.


이제 목적지 메리다까지는 2시간 정도를 더 걸어야 했지만 점차 주변 풍경이 한껏 달라져 대도시 근처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갑작스런 변화를 느꼈다.


오늘 걸어야 할 카미노는 'Merida' 까지 단지 15.4킬로 거리이다. 나는 아침에 가벼운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숙소를 떠나 직선으로 나있는 큰 도로를 따라 한 시간 반쯤 걸었다. 대체적으로 주변은 계속 올리브와 참나무가 산재한 지역으로 흙먼지가 날리는 길을 걸어야 했다.


이제 정오가 넘어갈때 나는 메리다의 외곽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은 오래전에 형성된 도시라 거리를 따라 세워진 건물들은 대부분 튼튼한 돌로 지은 건물들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으며 거리에는 많은 자동차들과 사람들, 수업이 끝난 학생들이 무리지어 걸어가고 있는 모습도 오랫만에 보는 모습이었다. 도시 사람들은 이전 시골 마을 사람들 보다 활력이 넘치고 한껏 밝은 표정들이었다.


나는 이제 도시의 중심 시내로 들어가는 로마 다리 근처를 향하는 길을 걸었다. 과디아나강이라 불리는 경치좋은 지역에 운좋게도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기 떄문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의 아름다운 강변 공원을 옆에 두고 공립 알베르게가 있었다. 알베르게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이른 시간이지만 몇몇 순례자들이 벌써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고 순례자 뿐만 아니라 젊은 관광객들도 지내는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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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호스피탈레노는 자원봉사자로 나의 순례자 여권을 보더니 어디서 출발했는지 물었다. "세비야"라고 했더니 여권 출발 지점 란에 착실하게 'Sevilla'라고 적어주며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출발지를 묻는다고 했다.


넓은 샤워장에서 시간의 여유를 누리며 빨래를 해서 건물 밖에 있는 빨랫줄에 걸었다, 강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때문에 빨래가 금방 마를 것 같았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 밖으로 나와 강변길을 따라 걸어갔다. 나는 근처에 있는 루시타니아(Lusitania) 다리를 건너갔다. 강폭이 넓어 여러게의 교각이 있고 강물은 넘실대며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를 산책하는 사람들과 자전거들, 많은 차량들이 지나가고 그곳에서 건너편에 있는 로마교 풍경도 보였다. 강변을 산책하며 로마교 근처로 걸어가 에스파냐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근처에 버거킹 간판이 보여 점심은 먹기 쉬운 햄버거 세트로 결정하고 안으로 들어가 키오스크앞에 섰다. 스크린에 여러 세트 메뉴가 나타나는 화면에서 일단 잘아는 소고기 패티가 두 개 들어 있는 와퍼 세트를 주문하고 롱사이즈 콜라도 주문했다. 한쪽 손에 햄버거를 들고 잘 넘어가도록 콜라를 계속 마셔댔다. 프렌치 프라이는 덤으로 먹으면서 배가 부르면 남겨야 했다.


나는 다시 강변으로 나와 공원 산책길을 걸었다. 노부부가 하얀 페인트 칠된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있었다. 서로 대화는 없지만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편안한 모습때문에 나는 그들이 부럽고 아름답고 행복해 보였다.


강변에는 또 엄마들이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있었고 가끔 연인들이 산책하며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도 정겨웠다. 주말이라 도시는 한껏 사람들로 분주해 보였다. 해가 점점 도시의 건물위로 떨어져 갈 즈음 강변을 따라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길에는 더위를 피해 강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아졌고 길가에 들어선 카페와 바르에는 비어 있는 테이블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더워서 더 이상 산책을 포기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 침대는 이미 순례자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순례길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어디에 있다 나타났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침실에 있는 순례자들의 연령대가 대부분 시니어로 보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자 순례자들 셋이 모여 큰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한 여자의 말에 두 여자가 크게 웃어 주변에 있던 순례자들이 모두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나는 우선 물 파우치에 새로 사온 생수를 부어 가득 채우고 배낭에 넣어 두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오랜만에 일찍 핸드폰을 켜고 카미노 카페에 들어가 은의 길 걷기에 대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매일 작성하려 노력하지만 가끔 저녁에 작성하다 졸음 때문에 다음 날로 미루고 만 경우도 있었다.


햇살이 비스듬히 참 문을 넘어 들어왔을 때 옆에 자리한 순례자가 인사를 했다. 어디에서 출발했는지 물어보며 자신은 독일에서 왔는데 지난 해에 세비야에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걸었고 내일부터 다시 산티아고를 목표로 걷겠다고 했다.


저녁 7시가 되어 밖으로 나와 강변의 넓은 공원으로 다시 내려갔다.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 공원의 카페테리아 야외 테이블은 손님들로 넘쳐나고 있었고 이제 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 가는 해가 도심의 빌딩 사이를 지나 강에 떨어지면서 강물도 윤슬이 되어 반짝거리며 너울거렸다.


나는 다시 식당들이 몰려있는 에스파냐 광장으로 걸어가며 구글 지도에서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주로 피자, 파스타, 스파게티와 해산물 요리점이 주로 검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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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교에서 광장 쪽으로 걸어가다 왼쪽 코너에 아주 격식 있고 근사한 인테리어의 'Wyco Restaurant'이 눈에 띄었다. 물론 가격은 비싸겠지만 오늘 저녁은 폼을 잡고 우아한 척해 보자는 생각으로 무겁게 느껴지는 육중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색 에이프런을 두른 여종업원이 인사를 하고 지나간 뒤 검은색 유니폼을 입은 남성 종업원이 다가왔다. 그는 비어 있는 테이블로 안내를 하며 메뉴판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VIP 손님 대접받는 느낌 때문에 음식도 좀 비싼 걸로 주문해야 하나 하고 메뉴판을 한 장씩 들여다보았다. 생선요리 메뉴에 적힌 대구구이와 가지조림, 망고 샤벳, 그리고 레드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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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 요리는 고기의 양은 적었지만 가지조림이 더해져 맛있었고 마지막 와인 잔을 들면서 나는 오랜만에 포만감을 느꼈다. 물론 가져온 계산서 위에 팁도 더 얹어놓고 나왔다. 알베르게로 걸어오면서 나는 순례자로서 너무 과한 저녁 식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D+10 알주센(Aljucen)



아침 일찍 일어나 강변에 있는 공원을 잠깐 다녀왔다.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 밤새 열이 식어서 선선한 공기가 머리를 맑게 해 주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카미노 표시가 있는 로마 다리를 지나며 아침 과디아나강의 물결이 흐르는 멋진 광경을 바라보며 걸어갔다. Merida 도심이 있는 지역으로 넘어가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어가며 도시를 감상했다.


카미노 루트는 이제 메리다의 외곽 지역을 벗어나자 자동차들이 한산한 언덕으로 들어섰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량들은 가끔 나타나서 빠른 속도로 내 옆을 휑하니 지나가며 탄산가스를 뿜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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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지막한 언덕을 올라가자 내 앞에 생각하지 못한 넓고 멋진 호수가 나타났다. 입구에 'Proserpina' 호수라고 적혀 있었다. 전망이 좋은 호숫가에는 저택들이 자리하고 있었고 호수를 따라 축조된 제방 위로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고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긴 의자에 앉아 낚싯대를 호수에 던져놓고 물고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호숫가 숲속에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었고 근처에는 캠핑하는 가족들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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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숫가를 지나가는 길이 끝나고 카미노 루트는 계속 북쪽으로 이어지며 조금 전의 아름다웠던 풍경들은 사라지고 다시 건조한 참나무 숲길이 이어졌다. 그동안 걸으면서 익숙해진 풍경들이 도시를 지나자 여기서 다시 나타났다. 참나무 숲 아래에 유난히 도토리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이베리코 돼지들은 참나무 숲을 이동하면서 도토리로 먹이를 채우며 살을 찌우고 있는 중이었다.


드넓은 구릉의 평원 같은 지역에 돼지 축사와 소를 방목하는 곳이 나타났다. 뚜렷한 특징이 없는 길에서 걸을때는 그저 음악을 듣는게 최선이었다.


오후 카미노 루트는 오랫동안 멀리 보이는 능선을 마주하고 걸어갔다. 기온이 최고로 올라 건조해지며 길에는 흙먼지가 바지를 타고 올라왔다. 내 앞에 턱하고 버티고 있던 능선에 올라가자 El Carrascalejo 마을의 하얀 집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마을을 지날 때 꽤 부지가 큰 저택의 담벼락에 등치가 꽤나 큰 개가 담장 위 철조망으로 올라와서 나를 향해 움직이며 크게 짖어 댔다.


길거리에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Aljucen 마을에 들어서자 초록잎을 띤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줄 지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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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를 찾아 주택들 사이를 걸어가다 바르가 보이는 곳에서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가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바르에 들어가자 주인 여자가 여기서 알베르게 접수를 하라고 알려주었다. 스탬프와 장부를 가지고 나와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12유로를 받으며 건물 뒤편에 있는 숙소로 안내를 했다. 바르와 레스토랑 그리고 숙소까지 운영하는 주인은 매우 바쁜 듯했다.


이층으로 올라가 땀에 젖은 옷들을 빨아 빨랫줄에 걸어놓고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문이 열려 있었다. 주인 여자가 나에게 “잉글리시” 하고 물어보고 '영어 메뉴'를 가져왔다.

오믈렛과 야채. 강아지콩. 당근, 햄이 들어있는 이색적인 샐러드를 주문했다.


스페인의 9월은 거의 밤 10시가 넘어야 약간 어둠이 찾아오는 거 같았다. 마을에 마트가 있는지 물었더니 동네 끝 부분에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마트 앞에 붙여 놓은 요일별 영업시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영업하고 다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영업한다. 또 토요일과 일요일은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만 영업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주말이라 오후 2시가 넘어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숙소로 돌아와야 했다.



D+11 알쿠에스카(Alcuescar)



알베르게의 침대가 너무 낡아서 불편하게 보냈다. 매트리스를 받쳐주는 철망이 등을 밀어내는 듯 닿아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7시에 알베르게 주인이 영업하는 바르에 갔더니 닫혀 있어서 문을 두드려보았지만 인기척이 없었다. 어제 저녁에 확인했을때 분명히 아침 7시에 오픈한다고 했는데 열리지 않아 근처 야외 테이블에 앉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몇 명의 일하러 가는 인부들이 오더니 문이 닫혀있음을 확인하고 주인에게 전화를 하자 조금후에 문이 열리고 주인이 밖으로 나왔다.


주인이 만들어준 카페콘레체와 바게트빵에 하몽이 들어간 보카디요를 먹었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러 양치질을 하고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다.


아침의 시골 공기는 참으로 상쾌하다 못해 청량하다. 길을 따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가면 부드럽고 보드라운 여인의 피부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나는 알베르게를 나설 때 늘 심호흡을 크게 몇 번씩 하며 걷는다. 이런 습관은 한국에서 미세먼지라는 문명이 낳은 나쁜 환경에 벗어난 지금이 나의 폐를 깨끗하게 하는 방법일 거라고 생각했다.


거의 2년간 코로나의 위력에 짓눌려 지내오다 이제 마스크를 벗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조금씩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전에 카미노를 다녀온 사람들은 코로나 펜데믹 공백기간에 예전의 순례길을 그리워하며 카미노 블루(Camino Blue)에 젖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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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날머리를 벗어나자 잘 닦여 있는 길에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갔다. 큰 도로를 만나 Aljucen 강을 건너자 이제 카미노를 걷는 사람도 자동차도 다니지 않는 텅 빈 길을 걸어갔다. 가끔 불쑥 나타난 자전거 라이더들이 지나가면서 격려차 “부엔카미노”를 연발하며 휙 지나갔다. 빨리 비켜달라는 신호이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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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루트는 높지는 않지만 산허리를 줄기차게 치고 올라갔다 내려가길 반복했다. 산길을 내려오자 '코르날보 내추럴파크(Cornalvo Natural Park)'라는 공원 안내판이 보이고 옆에는 '스포츠헌팅'이라고 적혀있는 안내판이 보였다. 사냥이 허용된 공원을 지나오면서 겪었던 총소리에 또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참나무가 무성한 숲을 지나는 길에 들어서자 근처에서 지프차를 세워놓고 사냥꾼들이 동료들과 무언가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긴장이 되어 조심스럽게 그들을 비켜가며 한 걸음씩 스틱을 땅에 내리치며 빠르게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에서는 흙 먼지가 푹푹 피워 올랐다. 이곳은 강우량이 적은 곳이라 주변은 여름내내 말라있었고 따라서 길에는 삐쭉하게 솟아 올라온 돌들이 많았다. 이곳을 지날 때는 고르지못한 돌때문에 신발 바닥에서 톡톡 튀어 오른 느낌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질 않았다.


바짝 말라버리고 거칠어진 참나무 숲에 한낮의 강한 햇살이 내려앉고 있어서 상당히 심심한 길이 되어 버렸다. 이때 적막한 공기가 흐르는 길에 총을 어깨에 걸치고 사냥개를 데리고 있는 서너 명의 사냥꾼들이 모여 있는 광경을 마주쳤다. 등치가 크고 사나워 보이는 개가 길을 지키고 있어서 나는 긴장을 하며 그들에게 순례자가 걷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키기 위해 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고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왜냐면 사냥꾼들이 내가 보이지 않는 곳에 걷고 있을 때 나를 동물로 오판해서 실수를 하면 나는 불행한 순간을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걷는 것도 힘든데 평온하게 걸어야 하는 길에서 사냥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불편한 상황을 만나는 게 정말 달갑지 않았다.


Alcuescar에 들어가는 길 근처에 7세기에 건축된 수도원과 성당으로 이용하던 산타루치아 델 트람파 성당이 있지만 갈 수는 없었다. Alcuescar 마을에 들어서자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 위에 식당부터 찾아갔다. 알베르게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많이 들락거리는 'Restaurant Marques Arroz y Brass'이라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은 손님들로 거의 꽉 차있었다.


번역기를 돌려 메뉴에 보이는 '오늘의 요리'를 가리키며 주문을 했다. 요리는 매우 훌륭했으며 적당히 구워 나온 고기 한덩어리와 빵 바구니가 나왔고 별도로 주문한 연어 샐러드가 나왔다. 얼음이 담긴 글라스에 시원한 콜라를 붓고 나서 고기를 썰어 한 덩어리를 먹으며 콜라로 개운함을 추가했다. 사실 오랜만에 나는 식사 후 포만감을 느꼈다.


알베르게는 식당에서 100미터쯤 떨어져 있는 종교 시설이었다. 예전에 수도원으로 운영했던 회색빛 석재 건물은 매우 튼튼해 보였고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복도를 지나 호스피탈레노가 근무하는 사무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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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피탈레노 자원봉사자가 스탬프를 찍어주면서 이곳은 생활이 어려운 노인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고 이 시설을 지은 분에 대한 글을 읽어보라고 팸플릿을 보여 주며 헌신과 봉사정신으로 그동안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을 했다. 내용은 이렇게 적혀있는데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이 시설을 편하게 이용하고 아무 탈없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갈망'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또 근처 성당에서 저녁 7시에 미사가 있고 8시에 식사를 할 거라고 했다. 2층으로 올라가 배정받은 방을 찾아갔더니 뜻밖에도 2인실 룸이었다.


일곱 시가 가까워오자 성당 출입문 앞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성당에는 신부님이 주재하지를 않아 순례자로 오신 독일 신부님이 미사를 대행하고 있었다. 저녁 미사가 끝나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이곳에 머무르는 순레자들이 모두 식당에 모여 식사를 했다. 메뉴는 매우 소박했다. 약간의 토마토 수프가 나오고 바게트빵, 와인이 놓였으며 메인으로 으깬 감자를 넣고 당근과 브로콜리, 치즈 등이 섞인 아마 전통 음식을 내놓은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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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2 알데아 델 카노(Aldea del Cano)



아침에 침실이 있늨 2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와 밖으로 나오니 나이가 많으신 호스피탈레노가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잘 가라고 배웅을 하고 있었다. 2012년 북쪽길을 걸을 때 묵었던 구에메스(Guemes) 알베르게 주인알폰소처럼 출발하는 순례자들에게 일일이 산티아고에 잘 도착하라고 격려해 주시던 생각이 났다.


작은 마을은 조용했으며 곧장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 나왔다. 마을을 뒤로하고 잘 포장된 외곽도로를 따라 걸었다. 알베르게를 출발한지 약 30분 정도 걸어갈 때 먼발치에 지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연두색 도이터 배낭의 독일 여성을 발견했다. 그녀는 몇 년 전에 세비아에서 출발했다 도중에 병이나 집으로 돌아갔다 이번에 다시 온 거라고 했다. 성격이 활달해서 숙소에 있을 때 여러 사람들에게 간식도 나누어 주면서 항상 환한 웃음이 이어지던 여성이었다. 키도 크고 걸음걸이도 빠른 그녀는 걸을 때는 대부분 혼자서 걷고있었다.


세비야를 시작점으로 출발하는 은의 길에는 길에서 사각형 석상의 마일스톤을 많이 보았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 보니 이 석상은 로마 통치 시대에 로마 병사들이 Astroga 까지 길을 만들고 거리를 알기 위해 1마일(1.6킬로)마다 로마자로 표기한 마일스톤을 세워놓은 유산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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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Aldea del Cano 라는 마을까지 15.1km를 걷기로 했다. 비교적 짧은 거리라서 걷는 내내 마음이 홀가분했다. 8km 정도 지날때 Casa de Don Antonio 마을이 나타났다. 작은 시골 마을은 대부분 하얀집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흰 색갈때문에 분위기는 밝고 깨끗하며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동네 거리를 지나가다 조그만 카페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커피 향이 진한 블랙커피를 들고 밖으로 나와 테이블에 앉았다. 배낭에 오랫동안 보관해둔 오레오 비스킷을 꺼냈다. 이렇게 조용한 마을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때문인지 마음이 홀가분해지고 있었다. 마을의 가로수가 오렌지 나무이며 가지마다 가득한 열매 때문인지 마을은 아주 넉넉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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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오랜만에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짙고 푸른 색깔의 하늘이 열러 있고 청량한 바람이 어느새 내 가슴을 헐고 안으로 확 밀려오는 거 같았다.


Aldea del Cano 마을까지는 시골의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자그마한 호수를 만났다. 이곳을 지나 아직 수거하지 않은 옥수수 들판을 지나 목적지 마을로 들어섰다.


오늘 지낼 알베르게는 식당을 겸하고 있어서 체크인을 하고 배낭에서 침낭을 꺼내 침대위에 깔아놓고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갔다. 오징어튀김이 들어있는 보카디오를 주문하고 빵과 콜라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건조한 땅을 걸어오느라 바지에 먼지가 많이 달라붙어 매일 바지를 툭툭털어 입어야 했다. 샤워를 하고 로비의 테이블에 나와 가이드 북을 펼치고 내일 걸어가는 코스를 들여다 보았다. 테이블 앞에 검게 그을리고 체구가 건장한 순례자 두 명이 하몽을 빵에 넣고 커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어디서 출발했느냐고 물었더니 폴란드 집에서 친구와 같이 출발해 세비야에 도착하여 은의 길을 걷는다고 했다. 내가 깜짝 놀라서 하루에 몇 킬로를 걷느냐고 물었더니 평균 40킬로를 걸으며 가끔 노지 숙박도 하고 알베르게에서 잘 때 샤워와 빨래를 한다고 했다. 내가 혹시 특수부대 출신이냐고 물었더니 호탕하게 웃으며 아니라고 했다. 그러면 노지 숙박을 할때 텐트 같은 것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비상용 은박지 텐트를 가지고 다닌다고 하면서 나에게 물건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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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순례자들은 다음 날 아침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목에서 다시 만났다. 출발이 나보다 늦었지만 헤드랜턴을 켜고 무척 빠른 걸음으로 내 옆을 지나가며 “부엔카미노” 로 인사를 했다.


저녁은 간단히 알베르게 주방에서 만들어 먹고 싶어서 마트에서 쌀을 사고 내일 먹을 간식을 사기위해 마트가 영업을 하는 7시 전에 다녀와야 했다. 건너편 동네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마트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구멍가게만 한 공간에 식료품과 일상용품을 같이 파는 마트였다. 생수를 사고 용량이 적은 쌀을 하나 샀다. 반찬으로 참치캔을 사고 간식으로 납작 복숭아, 사과 작은 것, 군것질로 무화과 말린 봉지를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쌀을 물에 씻어 냄비에 넣고 끓이고 한국에서 가져온 오뚜기 황태국 블록을 따로 끓여 밥을 말아 고추장과 함께 식사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침대에 누워있는데 덴마크에서 온 순례자가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출입문 앞에 마트 사장과 어린 아들이 나에게 돈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보여주며 슈퍼마켓에서 떨어져 있는 것을 아들이 주워서 보여주길래 당신이 흘린 것 같아 가져왔다고 말했다. 내가 가지고 다니는 비닐 돈주머니가 이 사람 손에 들려 있는 것이다. 마트에서 계산을 하고 호주머니에 집어넣은 줄로 알았는데 밖으로 떨어진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아들에게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고 감사 인사를 했다.

아들한테 감사 표시로 비닐 주머니에서 20유로를 꺼내 주었더니 너무 좋아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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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돌아가고 난 뒤에 나는 밖에 그대로 서 있었다. 알베르게 입구에는 거리를 비추는 희미한 가로등이 있었고 밤공기는 시원했다. 출입문 옆에 순례자들의 휴식을 위해 놓인 의자들이 있었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 때문에 사용하지 못한 긴 의자들이 나란히 비어 있었는데 나는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별들로 가득한 밤 하늘을 바라보았다.



D+13 카세레스(Caceres)



순례자들 모두 일찍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하고 떠날 채비를 하였다. 네덜란드에서 오신 부부와 독일 여성분이 함께 로비의 테이블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나는 어제 쌀밥을 하고 남은 누룽지를 물에 데워 먹었더니 우선 속이 개운했다. 그리고 주전자에 끓인 물을 머그컵에 한국 믹스 커피를 풀어 넣었더니 아주 달달하고 고향의 맛을 느끼는 듯 했다.


오늘은 자외선 차단제를 약간 두껍게 바르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아직 어두컴컴한 거리로 나와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골목을 지나갈 때 동네의 큰개들이 따라오며 짖어대 나는 서둘러서 그곳을 벗어났다.


카미노 루트는 희미한 가로등이 비추고 있는 마을의 시멘트 길을 지나 밭고랑 사이로 난 길에 들어섰다. 나는 이때 지나는 길의 풀섭에서 날아오는 풋풋한 풀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았다. 얼마간 길은 밭고랑 옆을 걸어가 큰 길이 있는 자동차 도로와 와연결되었다. 나는 좌우를 살펴보고 건너편에 보이는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면서 그곳으로 건너갔다. 시골 도로이지만 의외로 이른 아침에도 큰 컨테이너 트럭들이 굉음을 내고 다가와서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대도시인 레온이나 살라망카로 가는 길이 있나 생각했다.


아직은 어두운 하늘에 샛별들이 희미하게 생명을 다하듯 흔들거리고 있었고 멀리 산 능선 위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걸려있었다. 카미노는 도로를 벗어나 산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나있었다. 터벅터벅 아스팔트 도로 갓길을 오르다 일곱 시가 훨씬 넘어가자 이제야 멀리 지평선에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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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길 주변의 시야가 밝아지자 그곳에는 그동안 안줄곳 만났던 참나무 숲이 일정한 간격으로 조림되어 있는 지역을 지나갔다. 그러더니 다시 드넓은 목초지에 한가로운 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풀을 뜯고 있는 목장도 만났다. 그런데 이곳에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버려진 조그만 비행장 활주로가 나왔다. 나는 호기심에 길을 멈추고 여기저기 둘러보았는데 빈 격납고와 거의 퇴색된 활주로 선이 있는 비행장이었다.


넓은 들판길에서 네덜란드 부부가 앞서 걷고 있다 나하고 마주쳤다. 그들도 날씨가 너무 더운지 땀을 뻘뻘 흘리고 있으며 매우 지쳐 보였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에게 오늘 숙소가 이제 조금 지나면 Valesalor 라며 나에게 힘내라고 엄지 척을 해 보였다. 나는 22킬로 떨어진 Caceres가 목적지라서 조금 더 힘을 내야 했다.


카미노 길 근처에는 토호 세력들이 오래전에 사용했던 성들을 만나기도 했다. 숙소를 떠난 지 6시간쯤 지나 고즈넉한 마을 Valesalor의 에스파냐 광장에 들어섰다. 구글링을 해서 카페를 찾아갔다. 그리고 시원한 콜라를 두 번에 걸쳐서 다 마셨다. 이곳에서 머물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마을을 빠져나와 흙을 갈아 덥어놓은 농지를 따라 걸어갔다.


자그마한 호수가 나오고 오솔길이 지나가는 곳에 벤치가 있었다. 벤치에 앉아 물파우치의 꼭지를 입에 대고 물을 힘차게 빨아 마셨다.


이제 더위에 뜨거워진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를 덧 발랐다. 오후 2시가 넘어 Caceres 입구에 들어섰다. 한낮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이른 시간에 출발하지만 여지없이 더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알베르게를 찾아 마을 우측에 있는 도로를 걸어갔다. 더위에 지친 몸이 걸음을 느리게 하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마요르광장 근처 한쪽에 있었다. 광장에 있는 음식점 Los Arcos 레스토랑에는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모든 게 지쳐 있는 상태라서 우선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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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밖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참치 샐러드와 잘 구워진 소고기 요리가 큰 접시에 담겨 나왔다. 얼음이 들어있는 시원한 콜라에 고기가 녹아들 듯 목을 타고 넘어가며 올리브 기름에 적셔있는 샐러드는 음식들을 풍미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이 식당에 왜 고객들이 북적거렸는지 이제야 알 거 같았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체크인을 하고 호스피탈레노를 따라 3층 방으로 올라갔다. 힘이 빠져서 숨을 헐떡거리며 올라갔다. 호스피탈레노가 뒤를 돌아보며 빙긋이 웃음을 지어 보였는데 방으로 들어서자 열린 창밖으로 발코니가 나 있고 앞에 탁 트인 광장을 두고 높은 건물들이 보였다.



D+14 카사르 데 카세레스(Casar de Caceres)



어제 알베르게에서 자주 만났던 네덜란드 부부와 독일 여자분이 Embalse de Alcantra에 알베르게가 닫혀서 오늘은 11킬로 떨어진 Casar de Caceres 마을까지 걷고 내일 33킬로 떨어진 Canaveral까지 걷자고 했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카미노 루트는 San Francisco 광장에서 우측으로 향하고 그리고 오래된 도시의 담벼락을 따라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니 산타마리아 데 카세레스성당이 나왔다.


오늘 아침 날씨는 갑작스럽게 초가을 날씨처럼 시원한 바람이 볼에 와닿아 무척 부드러운 느낌을 받았다.

산티아고 광장을 지나 오래된 도시의 건물들이 줄지어 들어선 골목을 지나 한산한 시골길에 들어섰다. 카미노는 그렇게 이어지다 자동차들이 부지런히 오가는 고속도로 위의 다리를 건너갔다. 이제 야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나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오늘 최고 고도 500미터 지대를 넘어가려고 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힘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며 지나온 Caceres 마을을 바라보았다. 이제 푸르스름한 하늘에 불그스레한 해가 높게 떠오르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언덕에 올라오자 지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넓은 목초지가 펼쳐지고 그 가운데에 순례길이 있었다. 이런 직선의 길은 대지가 넓은 나라에서나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년전 남미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버스를 타고 땅끝마을 아르헨티나의 우수아이아(Ushuaia )로 가는 날 나는 장 시간 버스안에 있었다. 그때 멀리 산들이 지나가는 줄기 사이로 직선으로 나있는 도로위를 오랫동안 버스가 달리고 있었다. 도로 양쪽의 넙은 들판에는 황무지에 온통 가시덤풀과 거치른 돌과 바람에 쌓인 흙무덤. 세찬 바람에 말라버린 풀들이 휘청거리며 움직이고 있던 생각이 났다.


나는 이제 가야할 길이 많이 남아있어서 아무 생각도 하지않고 무작정 앞만 보고 걸어갔다. 그러나 너무 무료해서 핸드폰에 저장된 멜론을 켜고 즐겨듣는 음악을 골라 크게 틀어놓고 걸어갔다.


오늘 구간은 짧은 거리라서 정오가 되기 전에 이미 Casar de Caceres 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찻길을 따라 드문드문 오렌지나무들이 가로수를 대신하고 있고 길폭이 넓은 인도에는 마을 사람들이 편하게 쉴 수 있도록 벤치들을 자주 설치해 두었다.


알베르게 주소를 찾아 구글맵을 켜고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레스토랑 간판이 있는 건물에 사람들이 밖에서 꽤 북적거리는 광경이 보여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 오늘 목적지에 왔으니까 이곳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한잔하고 숙소에 가려고 했으나 마음이 바뀌어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로 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메뉴에 치킨윙 사진과 에스테야(Estella) 맥주가 눈에 띄었으나 나는 맥주를 싫어해서 치킨윙과 엔 살라다, 그리고 콜라를 주문하였다. 주인이 바게트빵과 얼음이 들어있는 콜라를 먼저 가져다주었다. 빵과 콜라는 역시 맛을 돋우는 매칭이 잘되는 음식이다. 물론 커피와 빵도 나에게는 잘 어울리는 맛의 조합인데 치킨윙은 감자튀김과 바구니에 담겨 나왔고 샐러드는 여러 가지 채소를 가득 채운 큰 접시를 가져다주었다.


알베르게 호스피탈레노는 길 건너 여행안내소에 있었다.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으며 내일 구간의 목적지인 Embalse de Alcantara에 알베르게가 폐쇄되어 있으니 힘들면 택시를 이용하라고 알려주었다.


알베르게에 순례자들이 속속 찾아오고 있었다. 오후 늦은 시간 침대에서 카미노 카페에 일기를 쓰다가 마을 근처 호수를 산책하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아직 햇살이 강한 마을 골목을 따라 상점들을 지나니 바로 근처에 호수가 보였다. 호수는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는데 흰색 페인트가 여기저기 뜯긴 벤치에 잠깐 앉아 잡풀이 우거진 호수를 바라보다 바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에 순례자들이 많아져서 침대가 모두 배정되었는지 예전에 Guillena를 지나며 만났던 순례자 커플은 다른 곳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순례자들이 꽉 들어찬 알베르게는 실내공간이 비좁아졌고 사람들은 바깥에 있는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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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 이제 햇살이 건너편 건물 위에서 사라지고 난 다음, 거리는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8시가 되어 밖으로 나왔다. 점심 식사를 했던 식당으로 가려고 알베르게 계단을 내려오니 독일 여성 순례자가 내일 Embalse de Alcantara 알베르게가 폐쇄되었다고 알려주며 택시를 같이 타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곳부터 걸어 Canaveral을 지나 Galisteo까지 걷는다고 했다. 나도 얼른 “오우케이”를 연발했더니 택시를 같이 타고 가면 비용도 절감하니 내일 아침 7시에 택시를 대기시켜 달라고 호스피탈레노에게 전달한다고 했다.


이곳 공립 알베르게는 비좁고 열악했다. 건물 입구에서 통로를 따라 3개로 나뉜 공간에 각각 2층 침대를 4개씩 배치하였고 특이하게 중간 방에 공용 화장실과 사워장이 있었다. 근처 침대에 머무르는 순례자는 밤새 이곳을 사용하기 위해 들락거리며 내는 소리 때문에 신경이 꽤나 거슬렸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근처 침대를 사용하는 여성순례자가 밤중에도 순례자들의 물 내리는 소리에 너무 괴로웠다고 호소를 했다.



D+15 갈리스테오(Galisteo)


어제 예약해 둔 택시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배낭을 챙기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나서 침낭과 배낭을 들고 아예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 앞 마당 벤치에는 벌써 순례자 몇 명이 나와서 빵이나 과일을 먹고 있었으며 독일 순례자는 머그잔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담아와서 마시고 있었다.


일곱 시 정각에 예약해 둔 택시가 나타났다. 기사는 독일 순례자 안나의 배낭과 내 배낭을 트렁크를 열고 차곡차곡 눕혀서 놓았다. 그리고 택시 기사는 약간의 어둠이 남은 골목을 재빨리 빠져나와 마을을 벗어나자 넓은 차도로 들어갔다. 그 시간에도 가끔 반대편에서 차량들이 해드램프를 켜며 순식간에 다가와서 지나갔다.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밤새 알베르게에서 피곤한 순례자들의 뒤척거림과 코 고는 소리, 낡은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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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우리가 카미노를 다시 시작할 Canaveral 마을 알베르게 앞에 내려주고 떠났다. 우리는 다음 마을 Grimaldo를 향해 갓길이 따로 없는 아스팔트 차도를 따라 경사진 오르막을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Repsol 주유소가 보여 안으로 들어가 커피 자판기에서 1유로짜리 카페 콘레체를 내려 받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오르막 길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카미노는 이제 오른쪽 숲길로 들어섰다. 이곳까지 올라오느라 온몸이 땀에 젖어 그늘진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고 있는데 아래쪽에서 키가 큰 순례자가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우리가 “올라”하고 인사를 하며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35킬로, Carcaboso까지 걷는다고 해서 내가 엄지를 치켜들며 “스트롱맨”이라고 했더니 자기가 이태리 노르딕 선수라서 별거 아니라며 웃어 보였다.


무성한 미루나무들이 꽉 채워져 있는 숲길로 들어갔다.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폭이 좁은 길이 나있어서 오히려 차분해지고 걸음도 느려졌다. 오랫동안 햇빛이 차단된 이끼낀 나무에서 나는 풀같은 냄새가 그냥 좋았다. 숲길을 빠져나오자 내 앞에 아주 넓은 광활한 염소를 방목하여 키우는 목장이 나타났다. 뿔이 큰 염소들은 사람을 보자 낯설었는지 일제히 다른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목장을 지나오자 두 갈래 길이 나왔다. 나무에 붙여 놓은 안내 표지판에는 우측으로 Grimaldo, 직진은 Galisteo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거리가 조금 짧은 Galisteo를 선택하고 입구에 있는 나무 대문을 열었다. 그러자 좁은 야산으로 길이 나있고 작은 계곡에 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카미노 앱이 보여주는 지도의 선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의 위치가 선 밖으로 나가 있는 상황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내가 서있는 장소는 GPS가 가리키는 선에서 약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근처에 따로있는 조그만 길을 발견하고 원래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GPS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었다. 그렇게 해서 카미노 루트에 들어선 나는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찻길을 따라 걸어갔다.


원래의 길을 잃었다가 정상적인 루트로 돌아오니 이제야 맘이 놓였다. 자동차들이 드문드문 지나가는 한적한 길을 가로수의 그림자를 따라 힘없이 걸어갔다. 그때 지명을 알 수 없는 한적한 마을이 나타나고 조그만 이 층 건물에 알베르게 겸 바가 있었다. 바 앞에는 앞서 걷고 있던 이태리 순례자가 배낭을 내려놓고 굳은 표정을 하고 있어서 “괜찮니” 하고 물었더니 발에 문제가 생겨서 걸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택시를 불러달라고 마을 사람에게 부탁했으며 다음 마을 Riolobos에 가서 쉬겠다고 했다. 독일 순례자가 그럼 우리도 택시를 타고 Riolobos에 가서 다시 걸을 테니까 동행하자고 했더니 그가 웃으며 비용도 줄일 겸 좋다고 승낙을 했다.


잠시후에 스코다 차량의 택시가 달려왔다. 아주 젊은 택시 기사는 최대한 속력을 내며 달린 듯 정말 순식간에 Riolobos 마을 입구의 카미노 길 표시판이 있는 건물 코너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이태리 젊은 순례자가 그냥 걸어보겠다고 하며 차에서 내렸다. 바위에 걸터앉아 양발을 벗더니 바늘로 물집을 터트린 부위를 보여주면서 조금 있다 따라 갈테니 먼저 가라고 하면서 손을 흔들어 보였다.


이곳부터는 도로에 자갈이 깔려 있는 경사길이 시작되는 곳이었다. 오르막이 점점 심해지면서 언덕을 거의 다 오르면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길이 연속되었다. 몇 번을 오르내리자 드디어 멀리 Galisteo 마을의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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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지도로 Galisteo 알베르게를 검색했더니 이제 2킬로쯤 떨어진 곳에 30분 정도 소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목적지가 가까워지면서 이제 걷기가 끝나간다는 생각에 힘이 나고 걸음이 빨라졌다.


마을을 지나가며 구글맵에서 표시하는 선을 따라 알베르게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갔다. 출입문 앞에 순례자들은 도착하면 호스피탈레노에게 전화를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호스피탈레노와 전화를 해서 우편함에서 키를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숙박료 15유로 가치가 있는 깨끗한 시설이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오늘은 햇볕이 너무 좋아 미뤄두었던 빨래를 하고 나서 산책을 하다 바에서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 마무리를 서둘렀다.


산책을 하러 나가기 전에 가이드북에 게시된 내일 도보 구간을 확인했다. 11킬로 떨어진 Carcaboso에 알베르게가 있고 다음 39킬로 떨어진 Aldeanueva del Camino에 가야 겨우 알베르게가 있었다. 하루 50킬로를 걸을 수 없어 Rome2 Rio 앱을 열어 여러 버스 노선을 확인했다. Carcaboso까지 도보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버스로 Placensia로 이동한 다음 Aldeanueva del Camino행 버스를 다시 옮겨 타고 가는 방법을 택했다.



D+16 알데아누에바 델 까미노(Aldeanueva del Camino)



오랜만에 숙면을 취한 밤이었다. 새벽에 눈이 저절로 떠져 누워있다가 6 시쯤 일어나 식당으로 가서 어제 사둔 머핀과 요구르트를 냉장고에서 꺼내 식사를 했다. 스페인에 오면 먹기가 수월한 빵을 준비해서 아침 식사와 간식으로 먹고 있다. 규모가 큰 대형 마트에 들리면 10개 이상 들어있는 머핀을 구해 길을 걷다가 쉴때 먹는다. 오늘은 출발 시간에 여유가 생겨 주방에 있는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서 한국에서 가져온 카누 커피를 2개 꺼내 머그컵에 털어놓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그때 커피의 고소하고 진한 냄새가 나를 순간적으로 행복하게 느껴졌다.


이제 출발할 시간이 되었다.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왔는데 마을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았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거리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있고 파르스름한 하늘에는 샛별들이 흐릿하게 남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마 출발을 하고 나면 불그스레한 여명을 산능선위로 보일것이다.


거리에는 이제 가을의 전형적인 황갈색 잎들이 떨어지며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가로수는 잘 정돈된 듯 꼿꼿하게 서있고 그 사이로 가로등이 졸고 있는 듯 희뿌레한 빛들을 아래로 비추고 있었다.


나는 헤드랜턴을 켜고 아직 어둠이 남아있는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지나갔다. 가끔 건너편 집 뜰에서 닭들이 아침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와 문득 이곳이 농촌 마을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또 이 마을에도 내가 걸어가며 내는 발자국과 스틱 소리에 집에 있는 큰 개들이 여기 저기 집 울타리 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큰소리로 짖어대고 있었다. 나는 처음 긴장했지만 이제 이런 상황에 익숙해져서 그들을 아예 무시하고 빨리 그곳을 빠져나갔다.


카미노 루트는 이내 Carcaboso 방향으로 나있는 자동차 도로에 올라섰다. 잘 뻗어있는 도로에 자동차들이 속력을 올리며 지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란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꺾이며 방향을 바꾸자 근처의 개울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주변의 어둠이 걷혀가면서 짙게 퍼진 파란 하늘은 해가 올라 오는 곳은 점차 붉은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아침 풍경에는 또 멀리 높은 산에 몇 대의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이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짐작했다. 이제 도로와 순례길에는 모든 생물체가 어둠에서 깨어나 활기를 찾아가는 모습이었다.


카미노 루트는 한동안 아스팔트 포장된 길을 지나갔다. 이런 길은 걷기에는 편하지만 피로가 빨리오게 된다. Aldehuala del Jerte를 지나고 나서 한 시간을 걸어 사람들이 부쩍 많아진 Carcaboso에 들어섰다. 이곳은 작은 도시가 아닌 듯 시내버스가 지나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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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보도블록이 놓인 인도를 따라 걸어갔다. 나는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는 여성에게 휴대폰에 지도를 열어 'Placensia' 검색해서 보여주며 "부수 스타시온(Bus Station)하고 물었더니 다짜고짜 “노 부스” 라고 말해서 다시 한번 "프라센시아 부스" 라고 물었으나 그녀는 신호가 바뀌면서 건너편으로 걸어가고 말았다. 나는 Placensia 가는 버스가 유럽 교통앱 'Rome2Rio' 를 이용해서 이곳에서 버스가 운행하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구글 맵을 열어 2km 정도 떨어져 있는 시외 버스터미널 위치를 확인하고 인도를 따라 걸어갔다. Carcaboso의 중심 거리로 가는 길에는 오래된 건물들과 상점들, 카페들에는 사람들이 꽤 많이 들락거려 이곳이 주변지역의 중심 마을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그렇게 주변 감사을 하며 시내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을때 정장을 입은 한 남자가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부스 스타시온, 프라센시아” 하고 그에게 휴대폰에서 보이는 지도를 보여줬더니 나에게 “카미노”하고 물었다. 나는 얼른 '씨" 하고 대답했더니 자기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건너편 길에 보이는 시내버스정류장을 가리키며 9시 20분에 Placensia행 버스가 도착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럼 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근처의 버스 정류장에서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어서 그에게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며 감사를 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 부스가 있는 곳으로 건너갔다.


프라센시아(Placensia)행 버스가 도착할때까지 아직 40분이나 남아있었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나는 배낭에 넣어둔 바나나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매일 일과처럼 서울 식구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전화를 했다. 카톡을 열어 페이스톡으로 아내를 만났다.

“집 걱정하지 말고 매일 잘 챙겨 먹고 나이도 많으니 무리하게 걷지 말고”

매일 남편에게 격려와 용기를 주는 아내가 고마웠다. 나는 전화를 끝내고 가족이 유일한 내 편이라고 생각하며 잠시동안 울컥거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오늘은 시간적 여유가 있어 하나뿐인 남동생에게도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들었다. 동생은 내가 순례길을 떠날때마다 여비 봉투를 주면서 "걸을 수 있을때 맘껏 다니세요" 하고 용기를 주었다.


그때 약간 경사진 도로를 따라 다가오는 노란 색깔의 작은 버스가 나타났다. 우리나라 마을버스 같은 작은 크기의 버스였다. 내가 배낭을 들고 버스 출입문에 서 있으니까 기사가 나에게 버스 뒤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버스 트렁크를 열어 배낭을 집어넣고 버스에 올라갔다. 앞 창문에 보이는 ‘Placensia’라고 쓰인 전광판이 달려있었다. 버스는 이후로 다른 버스정류장에서 승객을 태우고 Carcaboso를 빠져나갔다. 버스는 곧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회전교차로를 지나 둔탁한 소음과 속력을 내며 고갯길을 넘어갔다.


Carcaboso 를 빠져나오자 주변은 아주 넓은 밀밭이 있는 도로를 엔진 소리를 내며 거침없이 달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넓은 구릉을 이루고 있는 목초지가 나타나고 소를 키우는 목장의 축사가 보였다.


중간 경유지 Placensia는 인구가 4만 명이 넘는 큰 규모의 도시였다. 나는 이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목적지 Aldeanueva del Camin으로 이동해야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출발 시간을 확인하고 남은 시간 시내를 산책하기 위해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거리를 걸어갔다. 오랫만에 구경거리를 만난듯 호기심으로 쇼윈도어에 전시된 다양한 제품들을 구경하며 걸어갔다. 마침 과일 가게에서 말린 무화과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주인 남자가 친절하게도 한 봉지에 무화과를 가뜩 넣어주는 친절을 베풀어 주셨다. 나는 일정량을 덜어 비닐에 넗고 호주머니에 넣어두고 걸어가면서 꺼내 먹기 시작했다.


시내 중심에 있는 공원으로 가는 언덕길을 걸어갔다. 그곳에는 넓은 광장이 있고 근처에 오랜 세월를 보낸 거무스름하게 변한 성벽이 보였다. 광장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특히 단체로 여행을 하고 있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나는 광장에 있는 역사가 오래된듯한 건물의 카페테리아로 갔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잔과 케이크를 주문했다. 휴일을 만난 사람들이 넓은 광장에 무리를 지어 지나가고 있었다.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상당히 즐거운 듯 매우 큰 소리로 대화를 해서 야간 소란스럽기도 했다.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뜨거운 커피를 쵸코 케익 한조각과 같이 먹었다. 카페테리아 앞에 설치된 모든 테이블은 이미 빈좌석이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나는 출발 시간에 맞춰 올라왔던 길을 따라 다시 버스터미널로 돌아갔다. Aldeanueva del Camino 버스가 터미널 플랫폼에 나타났다. 버스 운전사는 승객들을 태우자마자 출발하였고 나는 내가 버스에서 내려야 할 마을 이름을 휴대폰을 열어 버스 기사에게 보여주고 가까이 갔을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버스는 곧 내가 오늘 지내야 할 알베르게가 있는 시골길의 마을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마을의 도로를 따라 걸어가자 자동차들이 도로를 따라 나란히 주차해있고 거리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질 않아 조용했다. 점심 시간이 지났지만 일단 정류장에서 보이는 식당으로 먼저 들어갔다. 식당에는 마을 사람들로 보이는 몇 그룹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시골 사람들은 점심때 또는 저녁에도 식당이나 바에 모여 가족들과 식사를 즐기는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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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뉴판을 달라고 해서 오믈렛과 샐러드 그리고 맥주를 주문했다. 그리고 주인이 먼저 갖져다 주는 잘게 토막을 낸 바게트빵을 버터에 발라 한조각을 먹었다.


주인장이 가져온 오믈렛에는 계란과 햄 또 채소로 당근이 많이 들어가 푸짐했다. 오믈렛을 포크로 한조각 짤라 먹기 시작했을때 식당 문을 열고 마을 사람들인 듯한 남자 3명과 여자 1명이 들어와 옆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동석자들과 와인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던 남자가 나에게 "제페니스" 하고 물었다.

내가 “노”, “아엠프람 코리아” 했더니 여자가 남편이 일본에서 공부했다고 말하면서 카미노를 걷는데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다. 이분들은 와인을 주문해서 글라스에 레몬주스를 섞어 마셨다. 내가 무슨 맛이냐고 했더니 직접 잔을 들고 오더니 나에게 거의 한잔을 따라주며 마셔보라고 권했다. 레몬을 섞은 와인은 독특하게도 시큰한 맛을 냈지만 상큼한 맛이 있어서 그런대로 마실만 해서 "긋" 하고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고 답례를 했다. 나는 천천히 여유를 즐기면서 가벼운 셀러드와 푸짐한 오믈렛을 먹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그 남자가 자리에 일어나서 나에게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자신을 찾아오라고 건물 이름을 알려주었다. 나는 주인에게 계산을 하고 알베르게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거리는 씨에스타 시간인지 지나가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자동차들만 지나다녀서 마치 텅빈 공동화된 마을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게 건물 앞에 도착했다. 호스피탈레노는 크리덴시알에 세요를 찍어주고 나에게 식료품을 파는 마트의 영업 시간을 알려주면서 지금 마트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일찍 구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침대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샤워를 끝내자마자 내일 간식을 사기위해 밖으로 나왔다. 도로를 따라 상점들이 있었으나 아직 오후 영업을 시작하기 전이었다. 도로에서 주택가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조그만 마트가 문이 열려있었다. 호스피탈레노 말대로 출입문에 영업시간은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와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라고 출입문에 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물건이 필요한 손님은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마트를 찾아와야 한다.



D+17 깔사다 데 베하르(Calzada de Bejar)



어제 저녁 식사를 할 때 미국 미시간주에서 오신 나이가 드신 여성분과 같은 테이블에 합석을 하게 되었다.

그는 그동안 걸었던 은의 길과 작년에 걸었던 프랑스 길에 대한 추억을 얘기해 주며 한국 사람들이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이 걷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오래전부터 등산과 트레킹을 즐기는 편인데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도 종교적 의미를 우선하기보다 장거리 해외 도보 여행에 대한 도전 의식과 성취감이 이유일 거 같다고 했다.


그는 중학교 역사 선생님으로 근무했었고 지금은 퇴직을 하고 여러 나라를 여행중이라고 했다. 그녀의 얘기는 밤 10시가 다 되어 끝이 났다. 이름은 물어보지 못했지만 그녀는 미국의 집에서 가까운 트레일을 자주 트레킹 한다고 했다.


그녀와 얘기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오자 불은 벌써 꺼져있고 피곤에 잠든 순례자들의 호흡소리와 코고는 소리만 들려왔다. 침실의 창문은 닫혀있어서 환기가 안되어 답답하고 순례자들에서 풍기는 시큼한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일어나서 근처의 창문을 조금 열어 놓고 침대로 돌아왔다. 창밖으로 초승달이 희미하게 창너머로 비치고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듯 풀벌레 소리가 쉼없이 들려왔다.


새벽에 왼쪽 팔목과 목이 가려워 침대에서 일어나 플래시를 켜고 비쳐보니 피부가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나는 베드버그(Bed Bug)에 물리지 않기위해 베드커버를 가능하면 새것으로 깔고 알베르게의 담요도 사용하지 않고 침낭을 사용하며 지냈다. 그런데 베드버그는 어둠을 타고 벽을 건너 다니는 습성을 갖고 있어 나는 피할 수가 없었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벌레 물릴때 바르는 물파스를 꺼내 여러번 물린 부위에 덧발랐다. 그러나 가려움은 지속되었고 잠을 잘 수가 없어서 혼자있을 수 있는 휴게실로 내려갔다. 거울에 비친 빨간 부위는 목 주위에 나란히 부어 올라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벌레나 모기로 부터 공격을 받으면 피부가 약해 여지없이 부어오르곤 했는데 그때마다 물파스를 바르면 빨리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었다.


휴게실의 소파에서 누워있다 침실로 돌아가서 침낭과 배낭을 들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냄비에 물을 끓이고 냉장고에 보관했던 빵과 치즈와 요구르트를 꺼내 아침 식사를 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 출발 준비가 되어 알베르게를 나와서 골목을 따라 걸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아주 조용했고 길을 따라 가로등에서 비치는 형광등 불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밝아 보였다. 오밀조밀한 골목길에 노란 화살표가 회갈색 건물에 잘 새겨져 있어서 마을을 빠져나가는 길을 쉽게 찾았다. 그리고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들어서 갓길을 걸어가다 회전교차로를 지나고 한번 더 교차로를 지나 이제 온전히 카미노 루트로 잘 들어갔다. 폭이 넓은 도로에 들어서자 건너편에 불빛이 환하게 비치는 주유소가 두 개나 보이고 대형 트럭들이 주유를 하고 있어 이곳이 트럭이나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카미노 루트는 도로를 건너가도록 되어있어서 양쪽을 둘러보았더니 오른쪽 도로에 대형트럭들이 달려오고 있어서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기다려야 했다. 트럭 기사들은 도로에서 사람들을 보면 경고의 수단으로 경적을 울려서 주의를 주기도 했었다.


나는 도로를 건너 조용한 아스팔트길로 들어섰다. 이곳은 대형 자동차들이 다니지않아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제 직선으로 길게 뻗은 오르막이 시작되었으며 경사를 따라 오름과 약간의 내림을 반복하며 고도를 올리고 있었다. 주변에 막힘이 없는 길을 걸어가니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산들바람 때문에 가을의 낭만스러운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간혹 정면에서 달려 내려오는 차를 안전하게 피하느라 도로를 벗어나 고랑 쪽으로 피해 있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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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길 위로 햇살이 확 퍼지면서 그동안 거칠고 둔탁했던 도로의 풍경이 이제 점차 바뀌기 시작했다. 멀리 높게 솟아 있는 산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걷고 있는데 근처 야산의 작은 계곡에서 물이 흐르며 내는 콸콸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걷기를 잠깐 중단하고 좀 쉬고 싶어서 부근에 있는 낮은 바위로 올라가 앉았다. 이제야 자연의 숨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곳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그러는 동안 청량한 가을 날씨와 함께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에 나는 힘을 얻고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첫 마을 바뇨 데 몬테마요르(Banos de Montemayor)에 들어서자 암브로스(Ambroz) 강을 두고 넓은 저수지가 가까이 있었다. 마을의 중심가로 들어가자 커다란 나무에 가린 레스토랑 겸 카페가 나타났다. 야외 테이블에는 먼저 도착한 미국 여성분과 폴란드에서 온 바람 같은 두 사나이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폴란드 강철부대원 같은 사나이들을 다시 만났다. 예전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폴란드 사나이들은 어제 45km를 걸었다며 거리 기록계를 내게 보여주었다. 다리가 괜찮은지 물었더니 문제가 생겨서 며칠간 조금씩 걷고 있으며 등산화를 벗고 샌들을 신고 걷는다고 했다. 대단한 집념을 갖고 멀리 폴란드에서부터 이곳까지 오랫동안 걸어왔으니 발에 탈이 날 수 밖에 없었을 거 같았다.


카페를 떠나 카미노는 마을의 주택들 사이로 난 언덕을 오르자 삼거리가 나오고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급한 오르막 경사 길로 들어가야 했다. 한낮의 햇살이 바싹 마른 아스팔트길에 내려앉고 있어서 땅에서 올라오는 훈기가 얼굴에 느껴졌다. 나는 거치른 호흡을 하며 언덕길을 아주 천천히 걸어야 했다. 이곳이 그동안 걸어왔던 엑스트레마드라(Extremadura) 주에서 카스텔라이레온 (Castile y León) 주로 넘어가는 경계구역이었다.


카미노 루트는 앞에 바라보이는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햇볕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고 노랗게 변해가는 나뭇잎들이 가을의 풍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숲속의 오솔길은 오랫동안 이끼낀 바위들과 고목나무들이 자주 보이고 가끔 길에 넘어져 있는 나무때문에 나는 그곳을 우회해서 지나갔다. 가끔, 숲길에서는 시원한 산들바람이 불어와 나는 얼굴에서 느끼는 행복함을 느끼고 말았다. 얼굴과 가슴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손수건으로 닦으면 더 시원함을 느끼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모자를 벗고 길옆의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기대었다. 물이 들어있는 파우치의 캡을 열어 목구멍이 시원하도록 몇번이고 마셔댔다.


오늘 지낼 알베르게는 해발 800미터의 산간지역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약간 허술한 건물의 집이었다.

이곳에 유일한 알베르게이며 호스피탈레노 여자에게 체크인을 하고 벽이 마주하는 안쪽 비어있는 침대로 갔다. 산간지역에 있는 알베르게라서 모든 시설들이 낙후해 보였다. 더군다나 알베르게 여주인은 마트의 위치를 물어보는 나에게 알베르게에서 직접 운영하는 식당에서 밥도 먹고 간식도 구입하고 커피도 마시라고 말해주었다.


샤워장에서 땀에 절은 몸을 씻고 밖으로 나와 마당에 설치된 세수조에서 빨래를 비누로 쓱쓱 밀어 대충 끝내고 줄에다 널어 두었다. 알베르게가 높은 지대에 있어서 바람이 잘 불어와 빨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말라버렸다. 이곳은 산간지역이라 와이파이는 없고 통신이 약해서 인터넷을 연결하기가 어려워 저녁 식사 시간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마을 산책을 하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늦은 오후가 되면서 기온이 많이 내려가는지 찬바람이 불었다. 윗옷을 하나 더 걸쳐 입고 마을 구경을 하러 밖으로 나갔다. 알베르게 앞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 마을의 조그만 성당의 첨탑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성당의 굳게 닫혀있는 출입문을 확인하고 돌아나와 마을의 중심지역인 광장으로 나왔다. 정말 이곳은 상점이나 바르가 보이질 않고 지나다니는 주민들도 만날 수 없었다. 호스피탈레노가 체크인시 말해준 레스토랑이 보였는데 마침 마을의 노인 부부가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을 때 알베르게에서 접수를 받던 주인 아주머니가 그곳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남편이 홀에서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주인 남자가 나에게 스페인어로 만든 메뉴판을 가져다 주고 돌아갔다. 다른 테이블에 벌써 여러 순례자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었다. 메뉴판에는 사진과 함께 요리 이름이 적혀있어서 선택하기에는 좋았다. 그런데 메뉴에 먹음직하게 보이는 병아리콩. 감자. 당근. 고기, 소시지가 들어간 스튜 요리 '코시도 마드릴레뇨{Cocido Madrileno)를 와인 한잔과 함께 주문했다.


남자 주인이 식사 주문을 받으면서 “자폰?” 하고 묻길래 “꼬레아”하고 크게 대답을 했더니 “수드(Sud)하고 다시 물어왔다. 내가 웃으며 "씨" 하고 대답해 주었다. 그러면서 올봄에 일본인 순례자가 식당에 와서 기념으로 일본 국기가 새겨진 휘장을 붙이고 갔다고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하얀 천위에 일본 국기가 그려진 휘장이 붙어 있었다. 나는 순례길에서 기념될 만한 일을 만났을 때 사용하려고 한국 지폐를 가져왔기 때문에 내일 아침에 한국돈을 기념으로 붙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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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식사를 끝내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길은 가로등이 있었지만 어두웠고 차갑게 불어대는 바람에 겉옷을 치켜세우고 종종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D+ 18 푸엔테 로블레 데 살바티에라(Fuenterroble de Salvatieera)로 내려가는 길



밤새 기온이 내려가 4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젯밤부터 찬바람이 불어서 난방이 없는 침실에도 냉기가 흘러 윗옷을 걸친 채로 침낭에 들어갔다. 그런데 새벽에 목이 가려워 벌떡 일어나 랜턴을 켜고 벼개를 들어 올리는 순간 벽에 까만 빈대가 붙어 있어서 휴지를 꺼내 눌러 죽인 다음 돌돌 말아 바닥에 버렸다. 어제 체크인 시 베드버그를 염려해 침대에 있던 허름한 담요도 윗 침대에 올려놓았는데 알베르게 베개를 사용한것이 원인이었다. 물린 부위에 다시 물파스를 몇 번 발랐더니 피부가 쓰려워 살갗이 따가웠다.


아침까지 렌턴을 약하게 켜놓고 침대에서 뒤척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나서 차라리 일찍 출발해야 겠다고 일어났다. 그리고 알베르게를 나오면서 새벽에 일어난 참상을 주인에게 알리기 위해 죽인 베드버그가 들어있는 휴지를 어제 체크인 할때 접수받던 테이블 위에 얹어놓고 나왔다. 주인이 휴지를 열어보고 침구류 소독을 자주해야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 했다. 그렇지만 알베르게 주인이 관심을 갖을 것이라고 기대는 할 수 없었다. 식당일이 본업이라 숙소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날씨가 추워져서 바람막이를 하나 더 입고 마스크를 쓰고 장갑을 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식당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순례자들이 와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어제 저녁식사 때 앉았던 테이블로 가서 일본 국기가 새겨진 휘장 위쪽으로 한국 지페 천 원짜리 신권 을 테이프로 단단히 붙이고 남자 주인을 불러 설명을 했다. 지폐 속의 인물은 '퇴계 이황' 선생으로 한국의 학자이며 높은 벼슬을 지내신 분이라고 설명했더니 느닷없이 부인하고 같이 기념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주인에게 한국이 일본을 앞서는 제품을 알려주었다. “삼성 휴대폰. 반도체”과 “엘지 티브이, 냉장고” 그리고 “현대자동차” 도 있다고 자신있게 설명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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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샌드위치와 커피로 아침 식사를 했다. 오늘도 까미노 루트는 산간지역이라 경사가 높은 지역을 지나가며 호흡이 거칠어지고 걸음을 늦추게 했다. 그러나 한적한 언덕을 올라 멀리 높은 산들의 웅장한 모습을 보면 이럴때 내가 이 길을 걷는 목적과 보람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 주었다.


이제 길을 걷기 시작하고 두 시간쯤 지나 Valverde de Valdelacasa라는 이름이 긴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 중앙에 순례자 상이 세워져 있었고 조금 더 걸어가자 바가 보여서 찾아갔다. 마침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미국 여성 순례자가 커피를 마시면서 쉬고 있었다. 우리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나는 콜라를 주문했다. 주인이 얼음 몇 개가 들어있는 유리잔과 캔 콜라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그리고 주인에게 세요를 찍어 달라고 순례자 여권을 내밀었다. 보기 좋게 찍힌 스탬프들이 나란히 차곡차곡 구석을 찾아가고 있었다. 곧이어 영국인 부부도 바에 들어왔다. 항상 밝은 얼굴과 인사성 밝은 두 분은 오늘도 같이 사진 찍기를 즐기고 있었다. 오늘 구간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지만 다음 마을에는 바가 없다고 알려주었다.


카미노 루트는 플라타너스 숲과 양들을 키우는 목장의 목초지를 지나갔다. 한 시간쯤 더 걸어 Valdelacasa라는 마을을 만났다. 마을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어도 일단 마을에 들어가면 우선 좋았다. 어쩌면 사람 구경을 할 수도 있고 인사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글맵을 열어보니 바를 나타내는 그림이 나왔지만 문을 열었을지도 궁금하고 순례길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그냥 패스하기로 했다. 길가에 있는 오래된 나무 벤치에서 어제 사둔 오렌지를 꺼내 먹었다. 그리고 오랫만에 배낭 사이드 포켓에 넣어둔 육포를 꺼내 봉지를 열어 한조각을 맛 보았다. 씹을수록 단 맛이 느껴졌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은 산길을 올라야 했다. 오늘도 숙소는 어제와 비슷한 높은 고도에 위치한 수도원에 있는 알베르게이다. 아침에 출발하여 여섯 시간 만에 Fuenterroble de Salvatierra에 도착했다. 사실 고도가 높다고 했지만 별로 느낄 수 없는 그냥 보통의 마을이었다.


알베르게 명칭은 ‘Albergue parroquial Santa María’이다. 예전에 수도원 건물이라고 가이드북에서 보았다. 천장이 꽤 높은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넓은 홀 가운데 길쭉한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여러 사람이 회합이나 식사를 할 수 있게 의자들이 촘촘히 놓여 있었다. 한쪽 벽에는 건물을 지은 성직자의 사진과 건립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올라” 하고 내가 호스피탈레노를 찾자 남자가 건너편 사무실에서 나오며 큰소리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테이블 위에 큰 밀빵과 오렌지 주스와 과일도 내주며 건물에 대한 배경 설명을 먼저하기 시작했다. 저녁 식사는 8시에 아침 식사는 7시에 이곳에서 한다고 설명하며 비용은 아침에 나갈 때 도네이션(Donation) 박스에 넣고 가라고 했다. 호스피탈레노가 스탬프를 찍어주며 7시에 마을 성당에 미사가 있으니 참석하려면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호스피탈레노가 지정해준 방으로 가서 침대에 침낭을 펼쳐놓고 샤워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어제 베드버그에 물린 빨간 자국위에 물파스를 열심ㅁ히 발랐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있다 답답해서 마을도 돌아볼 겸 간식을 사러 마을의 마트를 찾아갔다. 멀리서 조그마한 마트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더니 반갑게도 과일 상자에 들어있는 납작 복숭아를 발견했다. 그리고 혹시 말린 무화과를 팔면 사고 싶었지만 없었고 에비앙 1,5리터 한 병과 오레오 비스켓을 사고 숙소로 돌아왔다.


일곱 시 가까이에 순례자들이 미사에 참석하러 근처 성당 건물로 갔다. 성당은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사람들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분이 누군가에 전화를 하더니 문이 열리고 순례자들이 성당안으로 들어갔다. 아직 주위가 밝은 시간이라 성당 스테인그라스를 통해 빛이 안으로 들어왔다. 신자들이 좌석에 많이 앉아있었다. 그때 순례길을 같이 걸으시는 독일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러 제단으로 올라오셨다. 어제 산속 마을 알베르게 식당에서 원탁 테이블에 손님 몇 분과 같이 앉아 식사를 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아침에 식당에서도 주변 사람들과 활발하게 대화를 나누시며 웃음을 놓지 않으시는 그분이 신부님이란 사실을 늦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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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집전하시며 신부님은 외국인들을 위해 강론을 영어로 하시다 가끔 스페인어도 섞어가며 열성적으로 강론을 하셨다. 사실 나는 제의식에 따라 진행하는 절차는 알지만 스페인어로 진행하는 강론 내용은 잘 알아듣기에 힘들었다.


미사를 끝내고 알베르게로 돌아온 사람들이 건물 내 넓은 홀로 모였다. 홀에는 순례자들 외에 동네분들도 오셔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처음에 병아리 콩과 쵸리소가 들어있는 수프가 전달되었다.. 빵 바구니도 사람들 사이에 놓이고 와인을 담은 병이 군데군데 놓였다. 사람들은 와인을 즐겼고 주변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주로 순례길을 걸으며 겪은 생활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유일한 동양사람인 내게도 질문을 던졌다. 주로 순례자들이 궁금해하는 질문들로 어디서부터 순례길 걷기를 시작했는지 물어보았다. 그리고 어디까지 걷느냐? 산티아고 길은 몇 번을 걸었느냐? 질문을 했다.


메인으로 감자를 으깬 요리와 후식으로 이곳에서 직접 가꾼 자두와 포도가 나왔다. 그러더니 호스피탈레노가 위스키를 가져와서 여러 사람들에게 술을 건네는 바람에 사람들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식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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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9 산 페드로 데 로자도스(San Pedro de Rozados)



오늘 아침 기온은 6도까지 다시 뚝 떨어졌다. 고도가 아주 높은 지역이라 겨울이 더 빨라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제 모레쯤 고도가 낮아지는 지역으로 들어가면 날씨는 다시 회복하겠지만 추운 날씨는 싫었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아침 식사의 종류는 많았다. 잘 썰어 놓은 바게트빵과 따뜻하게 데워진 커피와 우유, 그리고 바나나와 사과, 비스킷까지 천천히 식사를 하고 아주 잘 익은 붉은 사과도 배낭에 넣어가지고 나왔다.


독일 신부님,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온 73세의 경보 선수 출신 부부는 먼저 떠났다. 아직 어둑한 골목길을 걸어 나와 큰길에 들어섰다. 가이드북에 오늘은 29킬로를 걷는 동안 한 개의 마을도 나타나질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어둠이 남아있는 길을 걸을 때는 카미노 루트 표시인 노란 화살표를 잘 보고 걸어야 했다. 그런데 이른 아침에 길을 걸을때는 주변이 캄캄해서 헤드 렌턴 불빛을 주로 길에 초점을 맞추고 걷느라 화살표를 놓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알베르게를 출발해서 줄곳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길 바닥을 보면서 무심코 걸어가다 'Casafranca' 라는 마을 팻말을 보고 순례길 표시를 찾았지만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부리나케 '부엔카미노' 앱을 켜서 현재 위치를 확인을 했더니 카미노 루트와 상당히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나는 이전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에 들어가지 않고 관성대로 도로의 폭이 넓은 왼쪽 방향으로 들어선 것이다. 그러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 원래의 루트를 들어갈까 고민하다 앱에서 표시되는 가까운 루트 방향으로 그냥 걸어가 다시 합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물론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로 가야했다.


앱에서 가리키는 커서를 따라가며 조그맣게 나있는 농로를 걸어갔다. 커서가 점점 까미노 루트에 다가서는 화면을 보며 한편으로 재미를 느끼며 걸어갔다. 때때로 농로에는 물웅덩이가 있어서 질펀한 길을 걸어야 했지만 희망을 찾아가는 색다른 느낌을 받으며 결국 원래의 까미노 루트에 들어섰다. 그리고 노란 화살표와 거리 표지석도 만났다. 오늘은 노란 화살표를 잘 보지 못해서 길을 잘못 들어간 일이 몇 번 생겼다.


바람은 차게 불었지만 어제 보다는 추위가 덜했으나 나는 패딩 조끼를 꺼내 입어야 했다. 카미노 루트는 넓은 밀밭이 지평선까지 연결되고 그곳에 구름에 가렸던 해가 조금씩 힘차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 풍경은 아주 웅장한 모습을 갖추고 검푸른 구름이 가려있는 지평선에서 쉼없이 올라왔다. 이제 어둠이 완전히 걷히면서 자연은 위대함을 보여주는 놀라운 풍경이 그곳에 있음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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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미노 루트는 방향을 틀어 이제 낮은 언덕의 야산을 지나갔다. 그곳에는 마치 시계 바늘처럼 천천히 돌고 있는 풍력 발전기들이 보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거친 돌무리들이 흩어져 있어서 걷기에 불편하고 속도를 넬 수 없는 지역을 계속 걸어갔다. 카미노는 마침내 풍력 발전기들이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근처까지 접근을 했다. 그것들은 자신의 의무를 다한 듯 느릿느릿 돌아가고 있었는데 나는 처음 마주하는 풍력 발전기를 가까이에서 보느라 걸음을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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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루하던 너덜길이 끝나고 이제 마른 흙으로 덥힌 푹신한 길을 지나갔다. 나는 이제 두 시간 이상 걸었으니 잠깐 쉬기위해 그늘진 나무 밑에 주저앉아 배낭을 등뒤에 두고 누워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눈을 감고 아무 생각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때 옆 떡갈나무에서 갈색잎들이 흔들리면서 시원한 바람이 지나갔다.


구글맵을 열어보니 오늘 목적지까지는 아직도 9킬로를 더 걸어야 했다. 이젠 발도 아프고 장딴지도 아파서 걷는 게 조금 힘들어졌다. 그러나 카미노 루트는 아스팔트 도로 옆에 따로 조성된 폭이 좁은 길을 걸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양쪽에 호밀 밭을 따라 걷다 이제는 경작을 하지않는 넓은 빈 농지를 바라보면서 걸어갔다. 그런데 걷고있는 도로에는 가로수가 전혀 없어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강한 햇빛을 그대로 안고 걸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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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스팔트에서 불어오는 더운 공기와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볕때문에 힘이 거의 빠져 걸음이 무디어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닳아진 아스팔트 길은 볼품이 없었으며 'San Pedre de Rozados' 표지판이 나타났을때 마을의 지붕들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금방이라도 도착할 것 같았던 마을은 쉽게 보여주질 않았다. 정작 마을은 마치 깊은 산속에 들어가 있는 듯 주소지 근처에 와서야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반갑기도 하고 밉기도 했었지만 알베르게 주소를 보고 찾아간 골목의 이층 집은 간판도 없었고 문을 두드려도 아무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하며 들어갔던 골목을 다시 나오다 입구의 2층 건물 테라스에서 밖을 내려다 보고 있는 여자분과 얼굴이 마주쳤다. 내가 손으로 조금 전 건물을 가리키며 알베르게가 맞는지 물었더니 맞다고 했다. 나는 다시 나오던 길을 다시 돌아가 건물의 출입구 옆 창문에 전화번호와 호텔과 식당을 안내하는 메시지가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레스토랑으로 가기로 했다.


나는 다시 골목을 나와 건너편의 호텔 간판이 있는 건물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서빙을 하고 있는 여자에게 알베르게를 갔는데 문이 잠겨 있다고 말하자 문은 잠겨 있지 않으니 밀고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주인은 알베르게 사용료 7유로를 지불하고 들어가도록 했다. 나는 식사를 하겠다고 했더니 3시가 넘어 안된다고 하며 음료수만 가능하다고 해서 시원한 콜라를 한잔 사서 마시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니 알베르게 시설이 상당히 열악하며 그냥 지낼것인지 고민을 했다. 침대 스프링이 내가 움직일 때마다 삐걱거렸고 하나뿐인 화장실 변기는 뚜껑이 없고 공동 샤워장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출입문 근처에 빨래 건조대를 두어 마르지가 않을거 같아 일순간에 불만이 고조되었다. 이곳에서 나가면 나는 얼마를 더 걸어야 새로운 숙소를 만날 것인지 고민을 했다. 나는 얼마안가 이런 열악한 환경도 내가 순례길을 걸으며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인은 이런 상황을 알고 있는지 알려주고 싶었지만 돈벌이가 더 좋은 호텔을 중시하겠지 생각하니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마트를 찾아갔다. ‘마트’ 라고 조그만 간판이 벽에 붙어있는 집 앞에서 망설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에는 살 물건이 없어서 단지 생수와 바나나 두 개를 사가지고 나왔다.


8시가 되기 전에 식당으로 갔다. 여자 주인이 바게트빵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테이블 위에 두면서 주문을 받았다. 나는 알베르게 주인이 운영하는 레스토랑 음식에 신뢰를 하기 힘들어 가장 간단한 참치 샐러드와 콜라를 주문했다.



D+ 20 대도시 살라망카(Salamanca)에 들어가다



오늘은 24킬로 떨어진 대도시 살라망카에 들어간다. 살라망카는 스페인 북서부 카스티아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서 마드리드와는 200여km 정도 떨어져 있고 도시 인구의 상당수가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다. 살라망카는 카스티야 레온(Castilla y Leon) 지방의 살라망카 주의 주도이며 이베리카 반도 북동쪽에 위치한 캄포 데 살라망카(Campo de Salamanca)에 위치해 있다. 스페인 국립 통계청(INE)에 의하면 148,000명이 거주하고 있고 카스티야 레온 지방에서 바이돌리드와 레온의 뒤를 이어 3번째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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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망카의 역사는 27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데 철기시대에 최초의 거주민들은 지금 살라망카의 San Vicente라는 곳에 정착했고 도시는 다양한 민족들에 의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현재 도시의 모습은 11세기 레온의 알폰소 6세의 사위인 라이문도 데 보르고냐(Raimundo de Borgoña)에 의해 시작되었다.


또한 이 도시는 교육으로 스페인 내에서 굉장히 유명한데 현재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이자 알폰소 9세에 의해 1218년에 설립된 살라망카 대학교가 있다. ( 나무위키에서 퍼옴)


순례자들은 이곳에 도착하면 대체적으로 이틀정도 쉬면서 재충전을 하고 다시 출발을 한다. 나는 독일인 부부가 추천한 호텔을 부킹닷컴을 통해 예약했는데 시내 중심 마요르광장에 있어서 구경 다니기가 좋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오늘은 어제부터 왼쪽 엄지발가락과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걸을 때마다 조금씩 통증이 있어 살라망카까지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알베르게 골목을 나와 큰길로 나오니 우측에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뒤편으로 가톨릭 성소가 있었고 조금 후에 다리를 절뚝거리고 걸어오는 젊은 독일 남자 순례자 2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뮌헨에서 친구와 같이 카세레스(Caseres)에서 부터 걸어왔는데 지금 한 명이 무릎이 아파 걷기를 포기하고 버스로 살라망카에 들어간다고 했다. 그들은 내 배낭에 관심을 보이더니 정류장 벤치에 둔 배낭을 들어보며 매우 무겁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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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살라망카와 이곳 마을을 왕복하는 셔틀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버스로 학생들이 살라망카로 통학을 하고 낮에는 마을사람들이 이용하는 버스였다. 7시 30분 출발 예정인 버스가 조금 늦게 나타나 손님들을 차례로 태우고 떠났다. 오랜만에 버스 의자에 기대어 편안하게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제 9월의 막바지에 접어들기 시작하며 살라망카로 가는 길에 보이는 산과 들은 조금씩 가을의 진한 적갈색 빛깔로 변하기 시작했다.


살라망카로 들어가는 도로는 출근하는 차량들로 붐비기 시작하여 자동차들이 길게 늘어서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버스가 시내로 진입하자 조금씩 높아지는 현대식 건물들을 보며 다시 도시의 분위기에 젖어들고 있었다. 길을 따라서 어떤 곳은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들이 단아하고 묵직하게 아직도 오랜 세월을 잘 견디고 있었고 시내 중심가로 들어가는 도로에는 점점 큰 건물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건물사이로 살라망카 대성당의 첨탑도 보이기 시작했다.


버스가 서서히 터미널로 들어가는 교차로에서 신호등에 멈춰 섰다. 오랜만에 만나는 도시의 활력이 나를 꿈 틀거리게 하고 있었다. 그동안 강제로 침묵이 진행되는 시골 카미노 길을 걸으며 닫혔던 가슴도 쉽게 터지며 곧 도시의 풍경을 맞이하며 즐거워 지는 듯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카페로 먼저 들어가 간단히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셨다. 사실 도시의 샌드위치와 커피 맛이 더 세련된 느낌이었다. 구글맵으로 숙소 위치를 검색해 3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아냈다. 카페를 나와 아주 시간이 많은 나는 시내 구경을 하면서 아주 천천히 걸어서 호텔을 찾아갔다.


숙소가 가까워지며 거리는 화려해지고 사람들로 채워져 가는 듯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건물 사이를 지나 마요르(Mayor) 광장으로 들어갔다. 넓은 사각형 광장을 가운데 두고 4면체 건물은 광장을 빙 둘러 차지하고 각 건물의 회랑을 따라 각종 상점들이 보도를 따라 있었다. 광장 마당에는 넘쳐나는 여행객 들로 붐비고 식당이나 카페에서 광장으로 연결된 캐노피 아래 테이블에는 음식과 주스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마요르 광장을 둘러싼 건물은 18세기에 지은 스페인 바로크 양식으로 3면은 상업 시설로 이용 중이고 남쪽 건물만 공공건물인 시청사 일부와 관광안내소로 운영 중이었다. 호텔은 동쪽 건물의 가게들 사이의 비좁은 계단을 올라가서 건물 2층에 있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호텔 여자 주인은 체크인 시간이 아니니 배낭을 맡기고 구경하고 오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마요르 광장으로 나가 천천히 건물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걸어보았다. 오후의 햇살이 한창 강하게 광장의 돌바닥을 달구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걸었지만 후끈 달아오른 돌바닥의 열기는 그대로 다가왔다. 화랑을 따라 나 있는 복도를 걸어가다 살라망카 대성당을 구글앱으로 검색했다.


750미터 떨어진 성당으로 가는 길 양쪽 다운 타운에는 유명 브랜드로 보이는 명품 상점들이 있었고 카페, 펍, 음식점들에는 젊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복잡한 거리를 나오니까 조금 떨어진 방향으로 성당의 높은 첨탑이 나타났다. 살라망카 성당에는 두 개의 대성당 건물이 있다. 하나는 12세기부터 13세기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과 아치형 천장으로 건축된 구성당과 다른 하나는 15세기에 세워진 고딕양식의 성모마리아 승천(de la Asunción de la Virgen) 대성당과 100개의 스테인글라스 창문에서 영롱한 빛이 성전 안으로 투영되는 신비함을 갖추고 있으며 고딕, 플라테레스크, 바로크 양식을 혼합한 건물로 스페인에서 가장 큰 대성당으로 높이가 92m인 종탑도 가장 높은 성당이었다.


성당 입구에는 마침 현지 중학생들이 단체로 미사를 드리러 왔는지 일렬로 줄을 지어 성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성당안으로 들어가 중간쯤 신자석에 앉았다. 성당의 제단 위로 높은 천장 돔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벽을 따라 미사실과 예수님의 14처 십자가의 길을 그린 성화들이 있었다.


나는 순례길을 걷느라 지친 정신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모처럼 예수님과 성모님을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는 성당에서 드리는 나의 기도가 매일 부족한 삶을 지탱하느라 지친 나에게 큰 안식을 베풀어 주시도록 하느님에게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살라망카 성당은 밖에서 또는 내부에서 보아도 웅장하고 커다란 예술적 의미를 갖추고 있었으며 오랜 세월을 신자들과 순례자들에게 무한한 안식을 제공하는 장소임이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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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마요르광장으로 왔다. 2성급 호텔 방은 좁지만 그래도 정갈해 보였고 창문밖으로 광장을 거니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오랜만에 혼자 지내는 호텔방은 무료한 느낌이 들었다. 문득 새벽에 걷기를 시작할 때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긴 팔 셔츠를 사야겠다고 생각되어 스포츠용품 쇼핑몰 ‘데카트론’에 가기로 했다. 먼저 구글맵으로 매장의 위치를 확인했더니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매장이 있었다.


나는 숙소를 나와 구글맵에서 확인한 버스정류장을 찾아갔다. 숙소에서 150미터쯤 떨어진 건물앞에 있는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를 기다렸다. 그곳에서 기다리는 동안 몇 대의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야 내가 기다리던 버스가 나타났다. 기사에게 차비로 2유로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다. 스페인에서 버스를 탈 때 운전사는 차비를 받고 종이 영수증을 꼭 발급해 주었다. 버스가 또르메스강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자 좌회전을 하고 근처의 정류장에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나는 구글맵을 열어 데카트론이 있는 방향으로 거의 3킬로를 걸어갔다. 보도에는 강렬하게 내리는 햇살로 뜨거웠으며 모자를 쓰고 걸어가는 내 머리 위로도 태양이 떨어지는 듯 뜨거움이 느껴졌다.


데카트론 가는 길은 근처에 큰 패션 쇼핑몰을 지나고 나서 대체적으로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갔다. 나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건물에 비치는 그림자를 따라 걸어갔는데 그곳에는 고급스럽고 깨끗하게 새로 지은 주택들이 많은 지역을 지나갔는데 마치 신흥 부촌인가 생각했다.


버스에서 내려 3킬로를 걷는 일이 이렇게 지루한지 다시 느껴지고 있었다. 걸음이 자꾸 더디게 느껴졌을때 마침내 차량들이 지나가는 회전교차로를 들어서고 전면에 데카트론 폴싸인과 창고형 건물이 나타났다. 데카트론 건물과 전자제품을 파는 ‘일렉트로닉스’ 쇼핑몰이 나란히 붙어있었다.


프랑스 아웃도어 브랜드 데카트론 내부는 매우 넓어 입구에서 매장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캠핑과 트레킹 용품들, 등산을 위한 옷과 신발, 양말들이 선반마다 꽉 들어차 있었고 자전거와 라이딩 용품들도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평소에도 등산이나 캠핑용품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데 이곳 데카트론 매장에서는 가격이 저렴해서 사고 싶은 물건이 많았다. 트레킹 용품 코너에서 소매가 긴 티셔츠를 골라 바구니에 넣고 근처의 매대로 옮겨가며 걸어가던 중 데카트론 유니폼을 입은 여성 종업원이 다가오다 나에게 “안녕하세요” 하고 한국말로 인사를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어떻게 한국말을 하세요?” 하고 물었더니 인천 송도 데카트론 매장에서 2년 동안 근무를 하며 한국말을 배웠다고 했다. 그녀는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중에 특히 김치 삼겹살과 소주가 제일 맛있었다고 했다. 그는 활력이 넘치는 서울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살라망카에서 가 볼 만한 곳을 몇 군데 설명해 주었다. 내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거냐고 묻자 자기 고향은 이곳이 아니고 '카나리아섬' 이라고 했다. 내가 몇 해 전에 한국 TVN 방송사가 그 섬에서 윤여정이라는 배우가 출연해 “윤식당” 이라는 프로그램을 촬영했다고 하자 자기는 육지에 나와 있어서 알지는 못하지만 아름다운 섬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카나리아는 자기에게 심심한 곳이라고 하길래 우리는 서로 보면서 웃고 말았다.


나는 데카트론에서 돌아와 오늘 저녁 식사에 대해 곰곰히 생각했다. 구글 지도앱을 열고 인근의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그러나 일단 밖으로 나가 거리를 걷다 괜찮은 레스토랑이 나오면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숙소를 나와 번화가 다운 타운으로 갔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마요르 광장 근처에는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틈에 끼어 좌우를 천천히 살피면서 걸어가다 골목에 있는 중국 뷔페식당을 발견하였다. 중국 음식은 우리에게 익숙하기 때문에 고민할 필요없이 식당으로 갔다. 몇 년 전 프랑스 길을 걸을 때도 대도시에 가면 중국 음식을 먹을 기회가 몇 번 있었고 짜장면과 짬뽕은 없지만 그래도 볶고 튀기고 낮 익은 음식들이 음식 코너에 준비되어 있어서 최고의 만족을 얻었다.


음식을 접시에 담기위해 근처 테이블을 지나가다 동양인 아주머니가 “많이 드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해서 나는 “여기 사세요?” 하고 물었다. 그분이 “여기 살라망카에 살아요” 해서 내가 “어떻게 이곳에 살게 되었어요?" 물었더니 “여기 공부하러 왔다가 눌러앉았어요” 라고 말씀을 하셔서 "살기는 괜찮으시고요?" 했더니 "살만해요" 하고 말씀하셨다.


내가 음식을 담아 자리로 돌아가다 건너편에 신부님과 수녀님이 많은 분들과 한국말로 대화를 하며 식사를 하고 계셔서 그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신부님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건넸더니 신부님이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내 인사를 반갑게 받아주었다. “어디에서 오신 건가요? “라고 물었더니 캐나다 토론토 한국 성당에서 신자들과 스페인 성지순례를 하러 왔다고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 대성당' 에 갔다 이곳으로 왔고 다음 목적지 '파티마' 성지에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나는 오랜만에 눈에 익은 볶음밥과 물김치, 새우튀김, 김밥도 먹었다.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 로마인들이 세운 강가의 로마교 다리를 구경하러 갔다. 아주 오래전에 돌을 활용해 만든 다리의 보도를 걸어 건너편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강변을 따라 조성된 공원을 걸어가다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살라망카 시내를 지나가는 또르메스(Tormes) 강은 잔잔한 물결이 흐르고 있었고 그 위를 물오리들이 유영을 하고 있었다. 요즘 스페인의 가을은 해가 늦게 떠오르고 늦게 저물어간다. 그래서 살라망카 강변에는 아직도 환한 대낮처럼 주변의 사물은 생동감이 있고 강물위에 햇살이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고 넘실대며 흘러가는 강물은 윤슬이 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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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원의 계단을 올라 강을 지나는 다리(Puente Romano de Salamanca)로 돌아왔다. 오래전에 석물(石物)로 건설된 튼튼한 다리를 건너가며 멀리 바라보이는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감상하였다. 다리 중간쯤에 밖으로 나가 있는 교각에서 흐르는 강물과 도시의 풍경을 몇 차례 사진에 담았다. 이때 히잡을 쓴 젊은 여성이 다가와 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여 나는 강을 배경으로 멀리 도시의 풍경까지 담아 몇 개의 각도로 사진을 찍어 주었다.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팔레스타인' 이라고 대답했다. 이스라엘과 오랫동안 분쟁 중인 팔레스타인 여성이 스페인을 여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어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종교적인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이나 이스라엘은 불행했으며 이들 국가에도 빨리 평화가 찾아오기를 기도하고 싶었다.



D+21 깔사다 데 발둔시엘(Calzada de Valdunciel)



오늘은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 그렇지만 일단 밖으로 나와 일찍 문을 연 빵 가게에 들러 샌드위치와 오렌지주스를 마시고 여유있게 출발했다. 카미노 루트가 넓은 마요르 광장을 가로질러 골목으로 빠져가고 있었다. 골목길 계단을 여러번 내려가 곧 자동차들이 줄을 지어 지나가는 도로에 나왔다, 그리고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곳에 나오자 내가 걸어가야 할 방향으로 일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도로가 보였다.


나는 앞만보고 걸어가며 주변에 괜찮은 카페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보도 블록에 세워진 지명 표지판에는 북쪽으로 향하는 사모라(Zamora)가 적혀있었다. 카미노 방향은 근처의 꽤 큰 아파트 단지와 산책하는 길이 있는 Vilarroel 거리를 지나 대형 마켓 까루프 근처를 지나갔다. 사모라 방향으로 회전교차로가 나와 우측의 아스팔드 길로 들어가 이제 살라망카를 거의 빠져나왔다.


살라망카를 빠져나오는데 자동차 통행이 많아 바짝 긴장하고 걷느라 이마에 땀이 맺혔다. 나는 살라망카에서 7킬로 지점의 Aldeaseca de la Armuna를 지나가다 인테리어가 멋진 카페에 들어갔다. 주인 여자에게 시원한 콜라를 주문하고 손수건을 꺼내 이마와 가슴에 젖은 땀을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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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나와 다시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이제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골목으로 카미노 루트는 안내를 했다. 잔뜩 찌뿌린 하늘에는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것 같았다. 아무튼 마음의 여유가 없는 상황을 피하기위해 현지 유심을 넣은 다른 휴대폰(평소 사용중인 휴대폰은 로밍을 했음)을 열어 한국 CBS 방송을 연결했다. 그리고 가끔 연결이 끊기기도 하지만 FM방송에서 진행하는 한동준의 FM 팝스에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걸어갔다. 진행자의 구수한 입담이 어느때보다 정겹게 느껴왔다.


알베르게를 나서 이제 3시간이 지나 Castellanos de Villiquera 마을로 들어갔다. 도로를 걸어갈때 길가의 주택 담 벽에 상당히 솜씨있고 다채로운 벽화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 아래에 QR코드가 있어서 그림을 설명해주는 친절도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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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비가 올 것을 대비해서 여기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더니 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의 바에 들어가서 얼음이 들어간 콜라를 주문했다. 예전에 한의사가 내 체질을 검사하고 찬 음식을 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지만 순례길에서 콜라는 나에게 더위를 식혀주는 유일한 음료수가 되었다.


바에서 나오자 드디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단 우비를 입지 않고 비가 좀 그치기를 기다려 보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빗줄기는 조금 전보다 굵어지기 시작했고 나는 기다림에 지쳐서 배낭에서 우비를 꺼냈다. 하늘에 몰려있는 잿빛 구름들이 멀리서 부터 빠르게 왔다 지나가면서 비가 그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밖으로 나와 밀밭을 지나가는 직선으로 나있는 길을 따라 되도록이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비가 내리는 길을 걸을때는 빗물이 얼굴에 부딪히는 것이 싫어 머리를 푹 수그리고 걸어갔다.


이제 멀리 낮은 집들의 지붕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의 목적지 Calzada de Valdunciel에 가까워질 무렵 비는 완전히 그치기 시작했다.


알베르게 출입문에는 순례자들이 도착하면 주인에게 전화를 해달라고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주인이 차를 타고 나타나서 문을 열고 2인용 침실을 지정하고 주방의 시설들을 설명하고 돌아갔다.


호스피탈레노가 오늘은 일요일이라 마트가 7시에 문을 닫고 식당은 3시까지 영업을 한다고 알려주며 저녁에 식사를 하려면 바에서 타파스나 샌드위치를 사 먹으라고 안내를 했다.


오늘은 주말이고 씨에스타 시간도 겹쳐서 곧장 마트를 찾아갔다. 내일 먹을 간식과 계란을 사와서 저녁 식사를 그동안 컵라면 사리를 보관했던 비닐 봉투를 열어 물을 끓이고 계란을 넣어 훌륭한 라면 요리를 준비했다.

밤에 누군가 말을 타고 마을을 왔다 갔다 하면서 나는 말굽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창을 열어젖히고 밖을 내다보았더니 부부와 아들이 각자 말을 타고 골목을 왔다 갔다 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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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22 몬타마르타(Montamarta)



요즘 며칠간 밤 기온이 많이 내려가 새벽에는 숙소의 실내 공기가 상당히 차가워져서 옷을 하나 더 껴입고 지내야 했다. 오늘은 도보 구간을 El cubo de Tierra del Vino 까지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곳에 있는 알베르게가 폐쇄되었다고 호스피탈레노가 알려주었다. 그러면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곳까지 13.7킬로를 더 걸어야 해서 나는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Zamora 에 내린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Montamarta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아침에 일찍 출발하는 Zamora 행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갔더니 오늘이 월요일이라 사모라로 통학하는 학생들이 버스를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곱 시에 버스가 마을을 출발하여 근처의 시골 마을들을 지나가며 정류장에서 유니폼을 입은 학생들을 버스에 태웠다. 버스는 속력을 내며 시골의 넓은 밀밭을 지나자 사모라 도시 근처의 카네도 강(Canedo)을 지나 이내 사모라( Zamora) 시내로 들어섰다.


사모라는 카스티야이레온 지방의 주인 사모라 주의 주도이며 인구는 66,293명으로 포르투갈과의 접경 지대 인근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모라 시내에는 도루강이 흐른다(위키백과 퍼옴) 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서자 또 다른 버스들이 출발 라인에서 어디론가 다시 떠나기 위해 여행객들을 태우고 있었고 나는 북적거리는 건물 밖으로 나와 '부엔카미노' 앱을 켜고 이제 걸어가야 할 카미노 루트를 확인했다. 오전 시간이라 자동차들과 많은 사람들이 거리르 지나갔다. 오랫만에 여러가지 물품을 팔고있는 상점의 윈도어 안에서 보이는 물건들을 구경하며 좀 천천히 걸어갔다. 카페에 들어가 잠깐 카페콘레체와 샌드위치를 먹기 위해 베이커리 카페라고 안내하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약간 늦은 아침을 먹고있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오늘은 얇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를 맛보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염분이 많이 들어간 햄이나 소시지를 피하는 편인데 진열장에 있는 식빵 사이에 계란후라이와 얇은 햄이 들어간 샌드위치가 너무 먹음직해서 선택했는데 그럭저럭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사모라 시내는 잘 정리되어 있는 건물들이 비슷한 높이를 이루고 있었고 거리도 대체적으로 깨끗한 편이었다. 북적거리던 거리를 지나가던 카미노는 갑자기 왼쪽으로 꺼이며 사모라 시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주택들이 드문드문 놓여있는 도로에 들어서자 얼마안가 멀리 지평선이 보이는 밀밭을 지나가는 길이 나타났다. 드넓은 밭에는 대형의 콤바인들이 계속 움직이며 밀을 수확하고 있었다. 기계가 지나간 자리는 머리를 깎은 것처럼 잘려나가는 밀의 줄기들이 여지없이 땅에 떨어져 그 뒤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드넓은 밀밭 평원을 지나가는 길에는 한그루의 가로수도 보이질 않았다. 바람도 불지 않고 그저 지평선만 바라보고 걸어야 했다. 나는 문득 음악을 들어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일단 '유키구라모토' 피아노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길에서는 음악을 크게 틀어도 상관이 없어서 좋았다. 나는 혼자 걷는 날이 길어질수록 마치 외딴곳에 버려진 느낌이 들기도 해서 침울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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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들녘을 지나가며 지루했던 길이 이제 끝나가고 아주 작은 마을 Montamarta 로 들어섰다. 마을은 초라해 보였지만 알베르게는 아주 훌륭한 시설과 깨끗하고 넓은 공간을 갖춘 2층 건물이었다. 내가 도착한 이후로 이곳에는 찾아오는 순례자는 한 명도 없었다. 주방에는 새로 들여놓은 것 같은 기구들이 많아서 활용을 할 생각으로 마트에 들러 스테이크용 고기와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와인을 한 병 사 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미소된장국 블록도 꺼내 끓은 물에 넣어 국물도 만들었다. 알베르게에서 직접 식사를 준비해서 먹으면 식당에서 사 먹을 때 보다 하루를 더 잘 보냈다는 만족감으로 자신이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D+23 그랑하 델 모레루엘라(Granja del Moreruela)



오늘은 은의 길을 시작한지 23일째 되는 날이다. 우유와 바게트빵, 그리고 바나나 한 개를 먹고 조금 여유 있게 8시가 되어 출발했다. 카미노 출발을 좀 늦추었더니 우선 주변이 밝아서 마음이 안정되었고 기온이 올라있어서 추위도 덜해서 좋았다. 출입문 앞에서 '부엔까미노' 앱을 열어 카미노 루트를 검색했더니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안내를 하고 '닌자' 앱을 켜니 호숫가를 따라가다 근처의 다리를 지나면 자동차 길과 합해지는 방향선이 나타났다. 나는 거리가 조금 짧은 자동차 길 갓길을 따라 걷는 루트를 선택했다.


알베르게를 출발하고 얼마안가 고속도로 근처를 지나가는 순례길을 한동안 걸어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오래전에는 물이 있었을 것 같은 작은 호수가 나왔지만 이제는 바닥이 말라 훤히 다 드려다보이고 잡초만 무성한 볼품없는 곳도 지나갔다. 이곳도 기후 온난화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안타가웠다.


카미노 루트에는 붉은 색을 띠는 야산에 오래전 폐쇄된 그래서 무너질듯한 성당을 보며 지나갔다. 그러나 앞에 나타나는 풍경은 너무 평화로웠지만 시간의 흐름을 비켜갈 수 없는 현실때문에 건물은 초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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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자동차 도로는 계속 나타났다. 12킬로 정도를 걸어가니 첫 마을 Fontanillas de Castro 가 나왔다. 마을에 있는 성당에 주민들이 여러 명 모여있었다. 근처를 지나가며 모여있는 주민들은 장례미사를 마치고 나와 영구차가 떠나기를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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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중심을 지나 Riego del Camino 마을로 향했다. 40분정도 걸려 도착한 이곳의 바는 문이 닫혀 있었고 아마 스페인 다른 지방에서 찾아온 순례자들 여러 명이 간식을 먹고 있었다. 나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길바닥에 앉아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육포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사실 육포는 순례길에서 오래 보관하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며 상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데 내가 북쪽길을 걸을때 알았던 말린 무화과도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해 카미노의 비상 식량으로 좋았다.


그때 독일에서 온 두 명의 젊은 순례자들을 다시 만났다. 이전에 만났을 때 한 명이 무릎이 아파서 고생하고 있었는데 무사히 이곳까지 잘 온 거 같았다. 그들은 내일 독일로 돌아간다고 했다.


오늘 알베르게 등록은 바에서 하고 숙소는 길 건너편에 있는 2층 건물로 가야 했다. 이곳은 지자체가 운영하는 알베르게라서 그런지 낡은 침대와 오랫동안 사용한 샤워기 등은 불편한 사항들이었다.


내일은 드디어 무료한 길이 끝나고 자연경관이 좋다는 Sanabres Way로 들어간다. 어떤 순례자들은 계속 북쪽으로 걸어 Astroga로 가서 프랑스길과 만나 산티아고로 들어가지만 나는 200킬로를 더 걸어 은의 길을 완주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D+24 타바라(Tabara)



아직 어둠이 깔린 길을 걷기위해 헤드랜턴을 켜고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따라 걸어가며 노란 화살표를 열심히 찾았다. 마을 끝에는 자갈들을 깔아 놓아 걷기에 매우 불편하게 느꼈으며 풀벌레들이 소리내어 날개를 떨고 있었다. 어디선가 새들이 높은 음조로 울기 시작했다.


구름이 옅게 걸친 푸르스름한 하늘에는 거의 생명을 다해 사그라들것 같은 작은 별들이 무수히 깔려있었고 공기는 매우 차가웠다. 손이 시려서 등산용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가렸다. 그리고 한 시간 정도를 정신없이 걸었더니 이제 몸에 열이 나고 주위는 환해졌다.


조금 전부터 시작된 너덜길을 내려와 한적한 도로에 들어서자 강이 만들어 낸 호수가 눈앞에 펼쳐졌다. 지금까지 만났던 풍경과는 다르게, 완연히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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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땅에 참나무와 올리브 나무 농원. 그리고 밀밭. 지평선으로 점철되었던 길은 끝나고 자연을 실감하는 초록빛 숲들이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Esla 강이 지나가는 오래된 석재 교각의 다리에서 잠시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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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호수를 지나가며 나는 이제 막 사나브레스 길(Sanabres Way)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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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화살표는 다리를 건너자 바로 왼쪽 강변으로 오솔길이 나있고 'Sanabres Way' 라고 안내 간판이 초입에 세워져있었다. 나는 사나브레스 길 인증 사진을 찍고 이제 산으로 향하는 언덕을 올라가서 호수처럼 넓은 에스라강을 다시 바라보았다. 진한 녹색의 강물에 햇살이 물 표면에 넓게 반사되어 퍼지며 빤짝거렸다. 나는 햇볕이 잘 내리쬐는 넓은 바위로 올라가 배낭을 내려놓고 따뜻한 햇살과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하늘을 바라보기위해 누어버렸다. 이런 순간이 내가 도보 여행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고 생각했다.


나는 매번 카미노 걷기에서 체험하는 자연의 신비함을 얻게 된 것에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하고 싶었다. 인간이 만들어 내거나 연출할 수 없는 자연의 위대함을 경험할 수 있어서 그렇다.


바위에서 내려와 다시 오솔길을 내려오다 오래전에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는 폐허된 흙벽돌집을 발견했다. 무슨 이유로 이런 곳에 흙으로 지은 집을 지어 살았을까 매우 궁금하기도 했는데 주변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었다.


산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조그만 마을을 보았다. 나는 그곳에서 내려와 찻길에 들어서서 아스팔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조금전에 바라보던 그 마을을 지나가며 정원과 화분들로 예쁘게 단장한 집들을 구경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몇 채의 주택을 지나가다 거의 끝에 있는 아담한 바르를 만났다. 나는 주저없이 안으로 들어가 마침 진열장위 넓은 접시에 팔고있는 오믈렛 한조각과 콜라를 주문했다. 주인이 햇볕이 내리는 바르의 밖에 있는 사각형 테이블로 음식을 가져왔다.


오늘의 목적지 Tabara로 출발했다. Tabara는 이곳에서 5킬로 떨어진 곳이라고 표지판이 나타났다. 정오가 넘어가자 아스팔트 길은 햇살에 달구어져 온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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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쉬어 갈 알베르게를 찾아왔다. 이곳에는 사나브레스 루트의 시작점을 출발해서 산티아고에 들어갈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구렛나루 수염을 기른 나이가 많은 호스피탈레노가 시원한 레몬주스를 내왔다. 그리고 저녁과 아침까지 제공할 수 있다며 예약을 요청했다.


숙소에 Coruna에서 왔다는 스페인 남자 친구들 3명이 내 옆 침대를 나란히 차지하고 있다 내가 배낭을 침대에 내려놓자 "올라"하고 정겨운 인사를 건네면서 친구들이라고 말했다.


저녁 식사를 신청한 순례자들이 8시에 식탁으로 모였다. 스페인, 프랑스, 벨기에 한국 사람들이 모여서 주인과 같이 식사를 했다. 식전주로 상그리아 그리고 메인으로 스페인 전통 음식 빠에야를 내오고 식후에는 전통주를 권해서 한잔씩 하고 저녁 만찬을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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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이제 10월로 들어선 지 사흘이 지났고 앞으로 보름은 더 걸어야 카미노의 도정은 끝난다. 스페인에 도착하여 세비야를 출발한지도 오늘이 한달이 되어 휴대폰 로밍기간 연장을 위해 통신사에 전화를 했다. 그리고 침실로 들어갔더니 순례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코를 골며 뒤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D+25 산타 마르타 데 마르타(Santa Marta de Tera)



어제 같은 숙소에서 지냈던 프랑스 순례자 Piet Maree는 달변가(達辯家)였다. 내가 숙소에 도착해서 침대에서 쉬고 있을 때 앞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 인구, 서울은 어떤 곳인지, 은퇴는 했는지, 내일 목적지를 영어로 물어오고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다. 프랑스인이면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삐에트 마리는 내가 산티아고 이후 여행 목적지로 프랑스 남부 여행을 할 거리고 얘기하자 신이 나서 니스(Nice)부터 주변의 도시들을 설명하며 멋있는 풍경을 감상하라고 강조했다. 삐에트 마리는 어제 저녁 식사 때도 종교. 미술. 여행에 대해 자신의 지식과 이해를 가감없이 스페인어와 영어로 대화를 이끌어 갔다.


이제 숙소를 나서야 할 시간이라 순례자들이 어제 모였던 식탁으로 와서 주인이 제공하는 오트밀과 우유, 그리고 바나나, 바게트와 버터, 치즈로 푸짐한 식사를 하고 출발했다.


알베르게를 나오자 시내로 쭉 뻗어있는 한적한 도로에 배낭을 매고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보였다. 아침 햇살은 시간이 갈수록 나에게는 따뜻하고 온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알베르게에서 바깥 날씨가 추울 걸로 예상해서 껴입었던 옷들을 하나씩 허물 벗듯이 벗어야 했다.


카미노 루트는 타바라 외곽을 벗어나고 이제 상당한 시간동안 언덕길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자 넓은 지역으로 들어가는 적막한 길목에 'Villanueva de las Peras' 방향의 표지판이 세어있고 주변은 지난 봄에 오랫동안 발생했던 산불때문에 주변은 화재를 겪은 나무 숲이 모두 검게 변해 참담하게 변해있었다. 불행하게도 대형 산불은 오랫동안 여러 지역으로 옮겨 붙어 넓은 지역의 많은 나무들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내가 걸어가는 지역의 숲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걷고있는 내내 화재의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뭄으로 스페인 남중부가 매일같이 불타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지만 이렇게 직접 현장을 보면서 너무 안타가운 생각이 들었다. 자연에 대한 재앙으로 지구는 나날이 파괴되고 있는데 인간들은 자신에게 직접 닥쳐온 불행이 아니면 너무 무관심하지 않나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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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화재 현장은 내가 걷고있는 동안 빠짐없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런데 참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땅에는 이베리코 흑돼지들의 먹이로 많이 이용한다는 타버린 도토리들이 참혹하게 널려있었다.


'Villanueva de las Preras' 마을로 들어섰다. 낮은 지붕의 주택들에 옹기종기 모여서 살아가는 농부들이 골목에서 나타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골목을 지나가다 돌연히 나타난 동네 바르를 만났다. 바르는 마을 사람들의 모임 장소이다. 이곳에는 생활에 필요한 물품도 팔고 술과 음료수, 안주와 빵 등 마을 사람들을 위해 기본적인 제품을 을팔고 있었다. 나는 타들어가는 목을 축이기 위해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콜라와 진열장에 보이는 토르티야를 주문했다.


이제 다시 마을을 빠져나오니 카미노 루트는 새로운 길로 안내를 했다. 상당히 길게 직선으로 뻗어있는 너덜길을 올라가야 했는데 길 바닥을 보면서 걸어가다 널찍한 구릉에 있는 포도농원을 지나갔다. 잠깐 언덕을 올라 갔더니 야산에 저장 시설로 보이는 장소가 나타났다. 나는 출입문 앞에서 작업 도구를 씻고 있는 남자를 보고 "올라" 하고 인사를 했다. 농부가 뒤를 돌아보며 "올라"하고 반응을 보여 휴대폰의 번역기를 사용해 이곳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가 반가운 표정으로 나를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출입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와인을 제조하는 지하 저장시설이 있었고 입구에 부피가 큰 플라스틱 통이 두 개있었다. 주인은 첫번째 통에는 포도를 수확해 물로 씻어 이곳에 넣고 한 달간 발효 과정을 거친 다음 찌거기를 걸러내 다른 프라스틱 통으로 옮겨 두 달간 발효를 시킨 다음 지하에 있는 오크통으로 옮겨서 장기간 숙성의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며 토굴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저장하고 있는 오크통들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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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즐거운지 무척 들뜬 기분으로 열심히 설명을 하였으며 토굴속에는 얌전한 오크통이 줄줄이 놓여 있었고 농부의 진심이 담긴 포도는 와인으로 잘 익어가고 있었다.


농부는 와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어찌나 실감나게 설명하는지 나는 조금이나마 와인의 제조과정을 알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농부는 토굴을 한바퀴 돌고 나와 국자를 가져오더니 발효중인 포도주 한잔을 건네며 맛을 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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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토굴 밖으로 나와 농부와 같이 셀카를 찍었다. 동양인과 찍은 사진은 생애 처음일거라고 설명했더니 그가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와이너리를 지나 다음 마을 산타마르타 데 테라로 향했다. 이제 오늘 카미노는 얼마안가 지자체가 운영하는 뮤니시펄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얼마전에 완전히 현대식 건물로 리모델링했다는 알베르게는 규모는 작지만 키친에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꺠끗한 시설과 도구가 잘 정돈되어 있어서 오랜만에 저녁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



D+26 빌라 데 파르폰(Villar de Farfon)



세비야를 떠난 이후 은의 길(Via de la Plata) 을 걸으며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 여건이 어제 숙소를 제외하고 다른 숙소들은 약간 열악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오늘 도착하는 빌라 데 파르폰 알베르게 마을에는 숙소외에 마트나 바가 없다는 정보를 받았다. 그래서 Calzadilla de Tera 마을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가야 한다고 전달 받았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마을은 아직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그래도 해드랜턴을 켜고 큰길로 나왔다. 까미노 루트는 곧 폭이 좁은 운하가 있고 키가 큰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모여있는 오솔길로 들어갔다.


그리고 오솔길 근처에 폭이 작은 강이 지나가며 제방을 쌓아놓은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강변에 있는 채석장을 지나면서 부터 폭이 꽤 넓어지고 넓은 강변에는 소풍을 나온 사람들이 모여있는 한적한 공원도 보였다.


이제 Calzadilla 마을의 슈퍼마켓을 찾아 내일 먹어야 할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납작 복숭아, 10개들이 머핀꾸러미. 내일 마실 생수를 사고 배낭에 넣어더니 무게가 확 늘어난 느낌이었다.


이 마을에서 이 킬로 떨어진 곳에 알베르게 겸 식당이 있다고 해서 구글 맵을 보며 찾아갔다. 식당은 아직 영업을 하지 않았고 나는 배낭 무게가 무거워져서 이곳에서 오늘 머무르고 갈까 하고 옆 통로에 있는 알베르게로 들어가 주인을 불렀더니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숙소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여 방으로 들어갔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듯 바닥이 끈적끈적하고 침대와 모포는 너무 낡아서 곰팡이 냄새가 났다. 나는 더 생각할 것 없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제 오늘 머무를 예정이던 알베르게에 먼저 전화를 해서 예약을 시도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한참 지난 후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영어가 꽤 능숙하게 들려서 숙박과 저녁 및 아침 식사까지 예약을 했다.


하루 저녁을 쉬어갈 숙소가 정해지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그러나 걸음이 빨라지며 호흡이 거칠어지고 1.5리터 생수가 들어간 배낭 무게는 걸어 갈수록 무거워지며 어깨를 눌려 아프기도 했었다.


숙소까지는 8킬로를 더 걸어야 했다. 까미노 루트는 점점 고도를 높여가더니 얼마안가 호수가 나타났고 그곳에는 높은 수문이 있는 댐이 보였다. 호수는 바람 때문에 물결이 출렁거리며 바다처럼 찰랑찰랑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길을 걸어가다 호수가에 자리하고 있었다. 경치가 띄어났고 외딴곳에 홀로 있는 단층주택에 숙소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했지만 그러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매우 궁금해 있었다.


입구에는 'Albergue Rehoboth' 'Ring the bell(종을 치세요)'라고 출입문 벽에 표시가 있어 지체없이 줄을 당겨 종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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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남자가 문을 열어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건물안으로 들어가자 우선 신발을 벗고 배낭에서 저녁에 필요한 물건을 담으라고 바구니를 주었다. 그러니까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먼지가 뭍은 신발과 배낭을 밖에두고 들어가라는 얘기였다.


주인이 거주하는 본채는 호수쪽으로 있고 순례자들은 별채에서 지내게 되어 있었다. 남자는 비용을 받고 크리덴시알에 스탬프를 찍어주며 저녁과 아침 식사 시간을 알려주고 들어갔다. 가이드북에 소개한 알베르게 주인은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부부가 운영한다고 했다. 로비를 지나 별채로 들어가 방문을 열어보니 하얀 베드커버로 덮인 침대가 나란히 놓여있었다.


저녁 식사 음식을 가져온 주인과 대화를 했다. Albergue Rehoboth 주인은 가족과 함께 이곳 한적한 호숫가 마을에 터를 잡고 거주하며 4월에서 10월까지 알베르게를 운영한다고 했다. 저녁식사로 병아리콩과 강낭콩, 파프리카, 월계수잎을 넣어 끓인 진한 수프를 내주었다. 이름은 Craig Waliace. 스코틀랜드가 조상의 나라이며 남아공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이름을 갖고 있는데 본인은 잠비아에서 태어나 사실 잠비아 사람이라고 에둘러 강조를 했다.



D+27 맘부이(Mombuey)



나는 숲속의 롯지같은 느낌으로 지난 밤을 보내면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천정이 낮은 룸에는 조그만 공간이라 침대가 3개만 놓여있고 화장실과 샤워실은 미니멀이라고 할만큼 공간이 좁았다. 그러나 모든 부분을 고급 자재를 사용해서 무척 깔끔한 느낌이 나도록 했는데 아주 편안한 밤을 보냈다.


주인이 거실 테이블에 아침 일찍 간단한 식사를 준비해놓았다. 갓구운 식빵과 쨈. 치즈. 텀블러에 담은 따뜻한 커피와 사과 접시였다. 오늘 아침은 어느 때 보다 훨씬 가벼운 걸음으로 출발했다. 카미노 구간이 좀 짧아서 8시에 출발해도 여유가 있었다. 밖으로 나와 알베르게 주변을 잠깐 산책하며 구경했다. 이제 10월의 가을은 완벽하게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산으로 둘러쌓인 호수의 아침은 물위로 부터 바람이 차겁게 불어왔다. 겨울이 금새 오려나 생각할만큼 산악지역의 초록 빛들은 이미 누렇고 불그스럽게 이미 변해가고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갈대 숲이 우거져있고 바람이 지나갈때마다 갈대와 키가 부쩍 자란 풀무리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 흔들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의 적당한 기온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진 것 같았다.


벌써 중간 마을 Rionegro del Puente로 들어갔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있는 강변 공원을 지나가다 갑자기 왼쪽 발목에 통증이 느껴지며 계속 걸을 수가 없어 앞에 보이는 벤치로 가서 주저않았다. 단단히 묶여있는 신발을 벗고 발목에 물파스를 먼저 바른 다음 안티프라민 젤을 여러 번 겹쳐 발라 주었다.


이곳에서 오래 지체할 수 없어 일단 마을로 들어가 약국을 찾아가기로 했다.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 발을 절뚝거리며 공원을 빠져나오다 지나가는 길바닥에 유로 동전들이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리를 굽혀 동전을 줍고 확인해보니 거의 3유로가 조금 넘어서 누군가 이곳에서 흘린거 같은데 어느 장소에 두어야 할까 고민이 되었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사람이 찾아간다는 확신이 없어 나는 이 돈이 하늘에서 나에게 선물로 준 돈이라고 생각했다. 발이 힘드니 커피 한잔하면서 쉬었다 가라고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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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맵을 열어 근처의 카페를 찾아보니 길건너 주택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카페가 있었다. 나는 불편한 다리를 절둑거리며 도로를 횡단하여 가파른 언덕에 있는 카페로 갔지만 영업시간 전이라 문이 닫혀있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 다시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를 건너 성당의 벤치로 걸어가 영업 시간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렇지만 지금 발 상태로 계속 걷기가 어려우니 차라리 택시를 타고 알베르게가 있는 Mombuey로 가서 바로 쉬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덕에 있는 주택을 내려와 길거리로 나왔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할 참이었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봐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도로에 내려가 다가오는 자동차를 무조건 세우고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 할 참이었다. 마침 내가 걸어온 방향에서 은색 SUV 차량이 달려왔다. 나는 당당하게 길쪽으로 접근하여 손을 들어 차를 세웠다. 그리고 휴대폰 번역기를 사용해 지금 발을 다쳐 걸을 수 없으니 택시를 불러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러자 남자는 나에게 Mombuey에 내려줄 테니 배낭을 뒷좌석에 두고 차에 타라고 했다. 나는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은 "무차스 그라시아스" 라고 우선 감사를 표하고 그의 자동차에 올라탔다. 자동차는 8킬로 떨어져 있는 Mombuey 마을에 나를 내려주고 떠났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 또 기념으로 그에게 우리 돈 천 원 지폐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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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는 마을의 중심가에서 약간 골목으로 들어가는 곳에 있었다. 순례자들이 찾아오기에 이른 시간이라 나는 조용한 방에서 침대에 앉아 발목에 파스를 붙히고 그대로 눕고 말았다. 이렇게 이층 침대 천정을 보고 있으니 오늘 아침부터 지나오며 만났던 풍경들이 새삼 생각이 났다.


나는 침대에서 한참 뜸을 들이다 갑자기 허기가 들어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발이 불편해서 걷기 쉽게 샌달을 신고 나와 걸어갔다. 오늘이 장날인지 알베르게 밖은 여러대 트럭들이 거리를 차지하고 다양한 옷들과 가정용품들, 그리고 먹거리 차량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곳이나 시장과 장날은 볼거리가 있어서 이곳 저곳 들러보다 식당에 들어가 샐러드로 점심 식사를 간단하게 했다. 그리고 산책을 위해 동네 골목을 지나다니며 산책을 했다. 마을 골목 여기저기 돌로 지어 올린 담장이 많았고 철 늦은 장미도 그 위에 걸쳐있었다. 그리고 주택가 골목에는 담벼락을 넘어온 사과나무와 무화과나무에서 떨어진 낙과들이 땅에 떨어져 널려있었다. 골목을 나와 큰 길로 나오자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 미용실 간판이 두 개나 보였는데 그 앞을 지나가다 안을 들여다 보니까 여자 미용사가 남자 머리를 깎고 있다 거울에 비친 나를 쳐다보고 밝게 웃어 보였다. 나는 당황해서 웃었지만 그곳을 빨리 빠져나왔다.


저녁 시간이 되어 프랑스에서 왔다는 젊은 순례자가 들어왔다. 건장한 체격에 반바지를 입고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배낭을 침대에 놓고 나갔다 밤늦게 들어오더니 바로 침대에 누워버렸다.



D+28 아스투리아노스(Asturianos)


아침에 일어나 어제 통증이 심했던 왼쪽 발목에 안티푸라민 젤을 다시 바르고 여러번 문질러 주었다. 그리고 가이드북을 열어 오늘 구간을 사전에 확인하고 발목에는 다시 파스를 넓게 붙이고 발목 보호대를 처음으로 착용했다. 어제 늦은 밤에 들어온 프랑스 젊은 순례자가 일어나 물병에 수돗물을 가득 채워 넣은 후에 배낭을 들고 간단히 목례를 하더니 먼저 나가버렸다. 그가 나가버리자 실내는 갑자기 텅 비어있는 공간이 되어 더 조용해졌다.


오늘 카미노는 우선 자동차 길을 따라 걸어가다 숲을 만나고 다시 시골의 차도를 만나 걸어야 했다. 알베르게를 나와 어제 저녁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으로 갔더니 마침 문이 열려있었다. 내가 평소 좋아하는 오믈렛이 진열장에 큰 접시에 담아있어서 한 조각을 주문했다. 대형 호텔의 아침 뷔페에서 쿡이 만들어주는 오믈렛과 다른 모양이다. 으깬 감자를 많이 넣어 계란과 함께 입안에서 씹히는 맛이 즐거웠다. 그리고 방금 로스터에서 내린 검붉은 커피 위에 우유를 뿌린 카페콘레체를 마시면서 우아한 아침 식사를 마쳤다.


이제 아침 공기가 선선해지면서 전형적인 가을 날씨로 변해가고 있었다. 카미노를 시작한지 두 시간이 지났을때 지만 발목이 아직은 약간의 통증이 남아있어 여전히 조심조심, 그리고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숲이 나타나고 햇볕을 가려주는 오솔길에 들어섰다. 이끼낀 나무들의 가지가 축 늘어져있고 향기나는 피톤치드 냄새도 느껴졌다. 나는 숲속에 나있는 길에서 뜻밖에도 회갈색의 토끼가 나타나 길을 건너 풀더미가 널려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그곳에 뿔을 달고 있는 황갈색 사슴 두 마리가 나를 응시하며 경계를 하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분명히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이라 동물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통로인거 같았다.


진한 초록색 소나무 침엽수와 키가 큰 유칼립투스들이 가득한 지역도 지나갔으며 가끔 벌목을 해서 키가 낮아진 나무사이로 파르스름한 하늘이 보이기도 하였다. 산길을 지나 도로를 따라 내려오다 주택들이 있는 마을을 만났다. 골목을 지나가다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내가 "올라"하고 인사를 했지만 할머니는 쳐다보고 엷은 미소만 보여 주었다. 마을이라기에 너무 작은 집들이 오랫동안 수리를 하지 않아 낡도 바래서 노인들이 생활하기에 어려움이 많을 거 같았다.


산길을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 이제 카미노는 San Salvador de Palazuelo 마을을 지나갔다. 그런데 마을을 빠져나오다 붉은 적색 벽돌 주택의 정원에서 떨어져있는 사과를 담고있는 여자분들을 만났다. 좀처럼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운 시골에서 그들은 매우 반가운 듯 손을 들어보였다. 아주 평화스러운 시골의 정취는 사람들과 가을 열매에서 더욱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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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목적지 Asturianos 마을로 들어왔다. 마을의 거리는 무척 조용했으며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길에 19세기에 건축된 누에스트라 세뇨라 아순시온 성당을 지나가다 공동묘지가 있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넓은 묘역에는 높고 낮은 비석들이 주인의 묘비명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지켜오고 있었다.



D+29 르케호데 사나브리아(Requejo de Sanabria)



은의 길의 종반으로 들어가는 사나브레스 구간으로 들어와 오늘은 'Sanabria' 라는 이름의 마을을 찾아가는 날이다. Asturianos를 출발하여 14킬로 떨어진 Puebla de Sanabria에 도착하면 그곳의 성을 구경하고 다시 12킬로 떨어진 오늘 목적지 Requejo de Sanabria로 간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같이 지냈던 상당히 점잖은 영국인 순례자 Mr.Justin과 여행에 대한 대화를 했다. 나이가 육십이라는 저스틴은 사업하느라 유럽 몇 나라밖에 여행을 못했는데 당신은 여행을 많이 했느지 물었다. 나는 직장에 있을때 해외 출장을 다녔고 은퇴후에도 여행을 했는데 약 50개 국가 정도는 될거라고 했다. 그가 한국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곧 아시아 여행을 할 때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다. 저스틴은 은퇴를 하고 처음으로 나선 여행으로 은의 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내가 프랑스길을 먼저 선택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더니 그곳은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 조용한 길을 걷고 싶어서 은의 길을 선택했으며 가이드북에서 제시한 구간들을 참고만 하고 매일 걷고 싶은 곳까지 그곳에서 쉬며 자신을 돌아본다고 했다.


오늘 카미노 루트를 살펴보니 대부분 산악지역을 약 27킬로는 지나가야 했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자동차 도로가 바로 나왔다. 그리고 3킬로 정도 걸어가자 어제 저스틴이 알려준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바를 만났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주인 남자가 접시에 샌드위치와 진하게 내린 검은색 커피를 가져왔다. 에스프레소는 아니지만 시골 카페에서 카페콘레체가 아닌 커피를 주문하면 에스프레소처럼 조그만 잔에 나온다.


카미노는 순례자들이 걷기 편한 흙길이라 걸음이 빨라지면서 한 시간 동안 4.5킬로를 걸을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도로에는 햇볕이 내려앉으며 조금씩 열기가 올라오는 듯 했다. 사나브레스 루트에 들어오면서 체감되는 가을은 조금씩 더 깊어지고 있었다.


Otero de Sanabres 마을에 들어갈때 도로를 따라 심어놓은 사과나무와 담벼락 밖으로 삐져나온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들이 길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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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마을 Triufe라는 지역을 지나갈때 골목에 있는 마을 회관같은 건물 입구에서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을 보게되어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나는 검은 정장 양복을 입고 앞 포켓에는 장미꽃을 꽂은 남자에게 무슨 행사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오늘 자기 결혼식이라 친척들과 근처 도시인 Puebla de Santabres로 차를 타고가서 결혼식을 올린다고 했다. 나는 신랑에게 축하 인사를 하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신랑에게 축의금으로 한국 돈 천 원 지폐 두장을 봉투에 담아 건넸더니 친척들에게 봉투를 들어보이며 너무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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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Puebla de Sanabria로 들어가는 넓은 도로의 경사진 길의 인도를 따라 걷고있을때 뒤에서 따라오던 저스틴이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도시는 마치 요새처럼 바위 절벽이 둘러쌓여있고 아래로는 는테라강(Rio Tera)흐르며 도심의 중심에는 높은 언덕을 따라 주택과 건물들이 형성되어 있었다.


성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은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 상점과 식당, 카페와 바도 여럿 보였다. 그곳의 여행자 안내소에 들어가 가볼만한곳 장소를 안내받고 팸플릿을 받아 나오다 나는 택시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저스틴은 오늘 이곳에서 지내고 내일 다시 걷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 떨어져 있는 마을 Casa Cenvino로 왔다. 알베르게 창밖으로 숲과 산을 바라몰 수 있었다.



D+ 30 루비안(Lubian)



오늘부터 주변은 완전히 산으로 둘러 쌓여있는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가이드북은 오늘 1350미터를 오르고 다시 내려가야 목적지 Lubian에 도달한다고 알려주었다.


어제 알베르게에 지내면서 나는 건물 밖으로 나있는 테라스에서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늦은 오후 시간까지 보냈다. 더군다나 알베르게 건물 옆에 레스토랑이 있었고 음식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 델 디야(Menu del Dia, 오늘의 메뉴)'가 있었는데 당연히 이것을 선택을 했는데 음식은 최상의 스테이크와 호박 수프였다. 언제 또 이런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


아침 8시가 넘어 출발을 했다. 서리가 내려 마을은 온통 하얗게 변하고 풀섭으로는 얼음의 결정체가 알알이 맺혀 반짝였다. 오늘도 한동안 숲길이 이어졌다. 카미노 루트를 가리키는 거리 표지판과 노란 화살표가 자주 나타났다. 이제 속도를 좀 내면서 걷기위해 스틱을 뒤로 밀면서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이런 동작이 걷기에는 더 수월한 느낌이 들었다.


마침내 숲길을 빠져나오와 주택들 사이로 자갈을 덥어놓은 길이 나왔다. 속보로 걷기 시작하자 너덜길이 나타나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도로의 가장자리를 걸어서 앞이 탁 트인 길로 나오자 옆에 고속도로가 있고 기찻길도 보였다. 모두가 산티아고 콤포스테라로 연결되어 가는 길이다.


카미노 루트는 다시 오르막 언덕으로 연결되더니 내려갔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한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힘겹게 걷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세 시간이 지나도 마을도 없고 순례자도 없어서 약간 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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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가 1200미터를 넘어가는 길에 오르자 멀리 어느 마을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고속도로 같은 넓은 길로 자동차들이 쏜살같이 내 달리는 풍경도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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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배낭 때문에 통증도 생겨났다. 그동안 한국에서 담아 온 육포는 간식으로 거의 먹었고 고추장과 블록 음식들, 정관장도 다 먹었지만 얼굴에 바르는 로션과 바셀린이 많이 남아있어서 무게를 줄이지 못하고 있다. 사실 몇번 버리고 싶었지만 아까워서 하나도 버릴 수가 없었다.


갈림길에 있는 거리 표지석을 보고 있을때 외국인 순례자가 옆에와서 길을 물었다. 내가 "아끼" 하고 스페인어로 길을 가리켰더니 웃으면서 지나갔다. 그가 바삐 걸어가는 모습을 뒤에서 보면서 나도 웃음이 나왔다.


언덕을 내려오다 처음 만나는 마을 Padimelo에서 바가 보여 좀 쉬었다 가기로 했다. 나는 얇게 썰어놓은 짭짤한 하몽을 씹으며 맥주로 입가심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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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를 나와서 비포장된 도로를 따라 걷다 계곡이 있는 돌계단을 내려갔다. 계곡은 거의 물이 흐르지 않고 있었으며 가시덤풀이 무성했다.


오늘 알베르게는 Lubian 마을 초입에 있었다. 문이 잠겨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서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 식사를 먼저 하기로 했다. 레스토랑은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와서 식사를 하고 있어서 나는 자리가 비어있는 한쪽 귀퉁이에서 소고기 필레를 주문하고 곁들일 콜라를 추가했다.


식사를 끝내고 알베르게로 돌아와 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했더니 "스페니쉬!. 잉글리시!" 하고 먼저 물어왔다. 내가 "잉글리시" 하고 대답을 하자 출입문은 항상 열려있으니 들어가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

"오케이" 하고 정말 열려있는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은 천정이 높아서 개방감이 있고 식당은 넓어서 식재료를 사다 요리를 해 먹을 수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자 4개의 침대가 나란히 있는 침실도 깨끗했다.



D+31 구디나(A Gudina)



오랜만에 편안한 밤을 보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배낭을 놓고 마트에 들러 1.5리터 생수를 사서 밤부터 내일까지 마실 물을 파우치에 채웠다.


오늘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리시아 지역으로 들어가는 날이다. 어제 사둔 바게트빵을 절반 잘라 배낭에 넣고 절반은 오렌지 주스와 요플레를 먹으며 아침 식사를 끝냈다. 커피는 까미노길에서 사 먹거나 가지고 다니는 까누(KANU)로 해결했다.


오늘도 출발한지 얼마 안 되어 숲이 있는 길이 나왔다. 숲이 깊어 마치 터널을 이루고 있었으며 키 큰나무들이 양쪽에 가지를 길게 뻗어 햇볕이 차단되고 약간 어두웠으나 시원하게 느껴졌다. 숲 터널 주변에서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숲길은 끝나고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서니 넓은 평지가 나왔고 그곳에 순례자용 벤치에 있었다. 공원에는 갈리시아 지역에 대한 안내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산티아고까지 246킬로미터, 그리고 해발 1250미터 정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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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천천히 계곡 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물이 빠르게 흐르는 고랑을 따라 계곡이 만들어진 산길을 내려오며 나는 사뭇 여유를 즐기며 걸었다.


처음 만나는 Villavilla 마을 바에서 늦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실 바에서는 식사를 하기에는 좀 허름해서 간단히 보카디요와 음료수를 주문했다.


이 지역은 고산지대를 지나가는 성난 바람 때문인지 대부분 키가 작은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멀리 Gudina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은 거리는 구글 맵에서 7킬로를 표시하고 있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1시간 30분 정도 더 걸어야 했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도로에 자동차의 통행량이 줄어들어 한결 조용하고 부담이 덜해서 걷기에 수월했다.


Gudina로 들어가는 거리의 상점들은 주말이라 그런지 대부분 문을 닫았다. 심지어 슈퍼마켓과 레스토랑도 문을 열려 있질 않아서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내 걸음은 먹는 문제로 상당히 무거웠다.


지자체가 운영하는 뮤니시팔 알베르게, 그러나 주방에는 오직 전자레인지만 있어서 음식을 만들지는 못했다. 또 침실은 3개가 있었는데 여성용 침실을 별개로 운영하였다.



D+32 깜뽀베쎄로스(Campobecerros)



어제 살펴본 일기 예보에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 표시가 있었는데 정말 두 시쯤부터 빗소리가 들렸다. 일어나서 창밖을 내다보니 가로등 불빛에 빗줄기가 날리고 있었으며 길바닥이 이미 흥건히 적셔있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도로에 떨어지는 아침, 무엇을 먹어야 할것 같아서 일곱 시쯤 알베르게 건너편 카페로 갔다. 카페에는 이른 시간에도 가족들과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 창가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하고 창밖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빗줄기가 창문을 타고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샌드위치를 들어 한쪽부터 먹기 시작했지만 입맛이 없어서 끝까지 먹지는 못했다.


비가 내리는 아침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잔을 양손으로 감싸고 건너편 가족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창밖으로 번개가 치는 광경이 보이고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는 것 같아 오늘은 걷고 싶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머리속에는 출발을 해야하지만 막상 일어나지 못하고 잠시 골똘하게 생각을 굴리고 있었다.


머그잔에 담긴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자 나는 결심을 했다. 오늘은 비를 핑계 대고 택시를 타고 깜포베쎄로스까지 가기로 결정하고 카페 여자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호출한 택시가 바 앞에서 경적을 울렸다. 나는 배낭을 벌써 매고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밖으로 나가 택시에 올라탔다. 택시 기사는 문을 닫자 가속 페달을 밟아 금방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안개까지 자욱해서 희미한 길을 택시 기사는 오랫동안 익숙한 길을 야무지게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비를 맞으며 우비를 쓰고 고개를 숙이며 걸어가고 있는 두 명의 순례자를 발견했다. 나는 갑자기 가슴이 찡하며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택시는 오른쪽에 낭떠러지가 있는 고갯길을 돌고 돌아 오르더니 험준한 산골 마을에 나를 내려 주었다. 깊은 산골에 모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목축업 또는 벌목업 아니면 사람들이 싫어서 멀리 떠나와 살고 있을까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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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는 아직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우비를 쓰고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펜시온'이 있고 같은 건물에 카페가 있어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리기로 했다. 주인 남자가 일찍 찾아온 순례자를 보더니 궁금해하면서도 웃음으로 맞아주었다. 나는 그에게 웃으며 비가 많이 와서 택시를 타고 왔다고 솔직한 변명을 해댔다.

우유가 들어가는 부드러운 카페콘레체를 주문하고 밖이 잘 보이는 창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나무로 만든 의자를 끌어내어 앉았다. 창밖에 있는 키가 큰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에 빗물이 송골송골 맺혀서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비 오는 날, 알베르게 침대 위에서 침낭 속으로 들어가 낮잠을 청했다. 아늑함이 최고로 상승했다.



D+33 알베르게리아(Albergueria)



비가 멈춘 Campobecerros의 아침은 사뭇 천상의 산간 마을에 와 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을의 골목을 따라있는 주택들은 벌써 난방을 하는지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풍경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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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귀를 나와 이제 해발 960미터의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밤새 머물던 안개가 산능선을 타고 천천히 움직이고 길에는 빗물을 머금고 있는 풀들이 길을 따라 나 있었다.


전망이 탁 트인 곳에 길에 오르자 멀리 산능선 위로 옅은 여명의 잔해가 벗겨지고 해가 올라오며 주홍색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하늘은 훌륭한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스팔트 포장된 길에는 순례길 표지석이 보이고 마주하는 초록빛으로 우거진 산림지역은 고도를 낮추어 가고 있었다. 이런 길에서 걷는 속도를 내고 싶지만 얼마 전 생겼던 발목 통증 경험으로 긴장을 해야 했다.


알베르게를 출발하고 14킬로쯤 걸어왔다. Laza라는 마을 안내판을 보고 들어갔다. 다행히 마을 중앙에 바가 있어서 들어갔다. 노인들이 모여서 주인과 대화를 나누다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고작 병맥주 한 병씩을 앞에 두고 무료한 낮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고 돌아간다.

메뉴에 오징어 튀김(깔라마리)이 있길래 프렌치프라이와 같이 주문을 했다. 맛은 그저 그랬지만 그래도 이런 산골 마을에서 먹는 오징어 튀김은 입맛을 돋우기에는 충분하였다.


점심을 먹고 한 시가 넘어 바를 나왔다, 카미노 루트는 점차 언덕을 오르기 시작하며 자동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그늘이 없는 도로를 걸어가야 했다. 시계의 고도계는 거의 1,000미터를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덥고 땀이 차올라 물 파우치 꼭지를 들어내 물을 빨아 당겼다.


마치 오전에는 천당으로 가는 길이고 오후에는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힘들게 느껴져 도로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마치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것처럼 늘어졌다가 스스로 눈을 감고 버텨보았다.


산중 마을 알베르게. 가이드북에서 소개된 알베르게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았다. 돌로 쌓아 올린 건물 입구에서 식당, 심지어 순례자들이 지내는 침실의 벽까지 온통 가리비로 가득했다. 호스피탈레노는 크리덴샬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가리비와 사인펜을 주면서 이름과 방문일을 적어 달라고 했다. 나의 이름이 쓰인 가리비를 다시 만날 수 없겠지만 나는 유쾌하게 적어서 호스피탈레노에게 건네며 잘 부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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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의 낡은 침대와 허름한 화장실, 그리고 추위가 기온이 내려간 새벽에는 정말 잠들기가 매우 어려웠다. 나는 침낭속에서 뒤척이며 통신이 잘 터지지않는 휴대폰을 들여다 보다 포기하고 말았다.



D+ 34 쑨케이라 데 암비(Xunqueira de Ambia)


오래되고 시설들이 낡아서 밤새 추위에 떨어야 했던 알베르게에서 새벽녘에 잠이 깨어 휴대폰으로 다시 한국 소식을 들여다보았다. 미국이 인플레를 잡겠다고 금리를 계속 올리니 한국도 따라 올려서 무역수지도 나빠지고 내수 경기가 나빠지고 있다고 많은 매체들이 기사를 내 보내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며칠 전에 사서 가지고 다니는 바케트와 사과 한 개로 해결했다. 잼을 가지고 다니고 싶지만 무게때문에 사질 못했다.


오늘은 여러 마을을 지나가는 날이다. 그동안 지루하게 걸었던 산길에 비하면 힘이 날 것 같았다. 두 시간쯤 걸었을 때 카페가 있는 마을로 들어갔다. 우선 카페콘레체와 머핀을 주문하고 야외 테이블로 나왔다. 조금 후에 우유가 가득 덥힌 커피와 머핀을 가져왔다. 이 시간쯤 마시는 커피와 빵은 최고였다.


갈리시아 마을들은 농작물과 먹을 음식을 오래전부터 집에 만들어 놓은 오레오를 아직도 사용하고 있어서 가끔 열린 오레오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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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시골을 걸어가며 나는 채소를 가꾸는 밭을 잘 보지 못했다. 채소를 조달하는 방법을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물어본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때마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오늘 묵고 갈 알베르게가 임시 폐쇄되어 마을 중심에 있는 사립 알베르게로 옮겨갔다. Casa Tomas라는 레스토랑을 겸하고 있어서 편리하고 1층 침대 4개로 구성된 침실이 무엇보다 아늑하고 좋았다.


침대를 배정받고 순례자 여권에 세요를 받았다. 그동안 스탬프가 찍혀있는 마을들을 하나씩 생각해 내려 애를 썼지만 완벽한 기억을 불러올 수는 없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빈 공간을 채우면 순례길 도보 여행도 끝을 맺을 것이다.



D+35 오렌세(Ourense)



깨끗하고 아담한 알베르게 1층 침대에서 진정한 순례자 대접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매우 홀가분했다.

어제부터 알베르게에는 순레자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었다. 목적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이제 프랑스길과 북쪽길 그리고 포르투갈에서 출발한 순례자들로 많이 북적거릴 것이다.


오늘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의 마지막 대도시 오렌세(Ourense)로 들어간다.

인구가 10만 명이 넘는 갈리시아 지방의 교통 요지이며 Miño 강이 흐르고 역사적인 유산과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하다. 특히 오렌세는 유명한 온천도시로, 고대 로마 시대부터 사용된 온천들이 있으며 대표적인 온천으로 Outariz 온천과 As Burgas 온천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었다. 역사적인 건축물로 오렌세 대성당(Ourense Cathedral)은 중요한 역사적 유산으로 알려져있다(위키피디아 퍼옴)


교통의 요지라서 사람들이 늘어나고 카페와 레스토랑, 공장 건물도 늘어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산중 마을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거침없이 산길을 따라 내려왔다. 처음 만나는 마을의 카페를 지나치고 다음 마을에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에 들어갔다. 토르띠아와 커피를 받아서 밖에 있는 테이블로 나왔다. 잘 다져진 감자와 계란이 들어간 토르띠야는 프랑스식 오믈렛이라고 하는데 커피와 조합이 잘 맞았다.


도시로 들어가는 까미노 루트는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열기와 메마른 도로에서 올라오는 냄새로 가득했다.

겨우 익숙해진 시골의 풋풋했던 냄새와 달리 약간은 무미 건조한 공기를 마시느라 도시로 들어가는 도로 갓길은 앞에서 다가오는 자동차에 조바심을 내야 했다.


그래도, 도시 생활에 익숙해있는 나에게는 오렌세로 들어가는 길에 가까워 올수록 내심 신이 난 듯 주변을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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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로 들어가는 까미노 루트는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열기와 메마른 도로에서 올라오는 냄새로 가득했다.

겨우 익숙해진 시골의 풋풋했던 냄새와 달리 약간은 무미 건조한 공기를 마시느라 도시로 들어가는 도로 갓길은 앞에서 다가오는 자동차에 조바심을 내야 했다. 그래도, 도시 생활에 익숙해있는 나에게는 오렌세로 들어가는 길에 가까워 올수록 내심 신이 난 듯 주변을 둘러보며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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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맵이 알려주는 알베르게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언덕으로 나있는 골목길을 몇 번이고 올라가자 나타났다. 갈리시아 주정부에서 운영한다는 알베르게는 깨끗하지만 화장실을 갈 때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했다.

호스피탈레노가 정해준 침대를 찾아가 침대 위에 걸터앉아 일기 예보 앱(weather.com)을 검색했다.

내일 오후부터 다시 비 예보가 며칠 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목적지까지 남은 사흘을 비를 맞고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오기 시작했다.


구글맵에서 알려준 까르푸를 찾아가 우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나 마실 생수를 사러 들어간 중국인 마트에서 주인이 근처에 우산을 파는 대형 마트가 있다고 주소를 알려주었다. 나는 방향을 바꾸어 Bazar Chino라는 곳으로 갔다. 물론 이곳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매장인데 우산 종류가 많아 선택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첫째, 작은 사이즈로 접혀야 배낭에 넣어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고 둘째, 중국산이 아닌 상품이어야 튼튼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중에서 회색천의 우산을 집어 들고 스페인에서 만든 상표 라벨을 확인했다.


이제 미뇨강위에 세워진 로마시대 다리를 구경하러 나섰다. 오랫동안 지탱해 온 돌로 만들어진 다리는 이제 다른 곳에 세워진 근사한 다리의 위용에 밀려 눈에 잘 띄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오렌세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웅장한 규모의 성당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가 우측으로 나있는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갔다. 모자를 벗고 경건한 마음으로 제대로 가는 우측 회랑사이로 나있는 통로를 따라가며 사도들의 조각상들과 예배실을 바라보며 정신을 집중했다. 나이가 드신 신부님이 신도들과 걸어가며 무엇인가 설명을 하고 계셨다. 하느님의 종이 되어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자신의 삶을 오직 신앙에 매진하시는 신부님과 수사님을 뵈올때마다 나는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제단의 뒤편에는 천사들과 성모님 상, 그리고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는 예수님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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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6 세아(Cea)



오렌세의 아침은 역시 바쁘게 움직였다.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적지로 움직이느라 번잡스러웠다. 더구나 버스와 자동차들이 줄줄이 선을 따라 가느라 느릿느릿 움직였다.

오늘은 오후부터 비 예보가 있어 가능한 한 빨리 걸어 Cea까지 걸어야 했다.


그런데 앱에서 보여지는 까미노 루트는 등고선이 매우 가파르다. 많은 오르막이 있다는 표시인데 정말 시내를 지나 오렌세의 외곽에 들어서자 주택들이 모여있는 길도 오르막이었다. 이마와 얼굴에 흐르는 땀이 손수건을 적셔가기 시작해서 길가 시멘트 바닥에 배낭을 내려놓고 쉬기로 했다.


그런데 카나리아에서 온 순례자가 무거운 지팡이를 들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 친구는 얼마 전에 길에서 만난 사람인데 등치도 크고 배낭에 가지고 다니는 물건도 많아 내가 왜 큰 배낭을 가지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서툰 영어로 숙소가 없으면 매트리스를 깔고 아무 데서나 자고 먹고를 하기위해 필요한 물건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또 어디서 왔느냐 물었더니 카나리아(스페인령 카나리아섬)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걸음이 매우 빨라 나에게 "올라!" 하고 그냥 지나갔다.


가파른 고개를 막 넘어오니 어제 머물렀던 오렌세 시내가 멀리 바라 보였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같았다.

나는 이제 다시 양팔을 벌려서도 서로 닿을 수 없는 참나무 숲을 걸어갔다. 드디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00km 표지석이 나타났으며 이제 거리가 계속 줄어드는 반가운 숫자를 만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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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전 알베르게의 같은 침실에서 만났던 '피터'가 뒤에 따라오며 "헬로"하고 영어로 나를 불렀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손을 들어 흔들며 빨리 오라고, 아니 반갑다고 "헬로!. 롱 타임 노씨(Long Time No See)" 하고 외쳤다.


그를 처음 만났던 알베르게에서 같이 지냈던 폴란드 순례자가 그에게 왜 은의 길을 걷느냐는 질문에 피터가 설명했던 기억이 생각났다. 그는 은의 길을 걸어야 하는 아픔을 갖고 있다고 얘기를 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암스테르담에서 스페인 세비야로 여행을 떠나 며칠간 호텔에 머물며 지내다 아내의 지병이었던 심장병이 발작되어 금년 5월 2일 그녀를 먼저 떠나보냈다고 했다. 금년 예순두 살의 피터는 아내의 주검을 안고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로 모든 일상생활이 멈춘 듯 했다고 했다. 몇 달을 아내의 생각으로 거의 두문 불출하던 피터는 아내와 여행을 했던 추억을 살려내고 그녀를 추모하는 방법으로 순례길을 걷는 중이라고 했다.


피터는 말을 하면서도 굉장히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슬픔에서 빨리 벗어나려는 듯 보였다. 그날 나는 그에게 "아엠 쏘리"라고 위로를 전했다. 피터는 보통 순례자들처럼 가벼운 바지가 아닌 갈색 면바지를 입고 알베르게나 레스토랑에서는 청바지를 입고 다녀 마치 여행을 하고 있는 순례자라고 생각했다.



D+37 락세(A Laxe)



일기예보와 달리 찬바람이 불며 하늘엔 검은 구름이 몰려다니며 알베르게는 아직 어둑어둑했다. 비 에보가 아직 남아있지만 그래도 알베르게를 나설 때까지 비는 내리지 않아 오늘도 빨리 걸어 도착 시간을 당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제 레스토랑에서 파는 송아지가 그려져 있는 팩우유와 머핀을 사 왔는데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팩을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우유가 아니라 연유를 잘못 사 왔던 것이다. 머핀과 함께 몇 번 마시다 속이 더부룩해져 그만 버렸다. 그리고 속을 달래기 위해 가지고 다니는 고추장 튜브를 열어 몇 번 빨아먹었더니 속이 개운해진 것 같았다.


오늘 목적지 Castro Dozon 알베르게가 폐쇄되었다고 호스피탈레노가 알려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카나리아에서 온 순례자가 Lalin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서 그곳에서부터 Laxe까지 걸어가라고 했다. 일단 저녁 식사를 하러 점심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으로 다시 가서 주인에게 버스 정류장 위치를 물었더니 잘 모른다고 해서 정말 모르는지 동양인에 대한 무시인지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때 옆 테이블에서 식사 중이던 젊은 순례자 청년들에게 내가 Lalin을 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는 방법을 물었더니 한 명이 휴대폰을 꺼내 Rome 2 Rio 앱으로 버스시간을 찾아 나에게 Lalin 가는 8시 10분 버스를 타면 된다고 설명을 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은 이곳에서 1킬로 정도 떨어져 있는 식당 옆에 있으니 가는 길을 가리키며 직접 확인해 보라고 알려주었다.


아침에 버스를 타러 어제 젊은이들이 알려준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근처 카페로 들어가 카페콘레체를 한잔 주문해서 밖에 있는 테이블로 나와 앉았다. 조용한 시골길에 자동차들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Lalin 가는 버스가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서 도착했다. 버스가 시골길을 속력을 내며 달렸다. Lalin 으로 들어가는 길은 작은 도시지만 상점들과 자동차들이 꽤 많이 움직이는 마을이었다.


이제 다시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며 Laxe로 가는 길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하루종일 걸어야 닿는 목적지가 아니라 쉬운 길을 택한 덕분으로 아무 생각없이 걸어갔다.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따라 걸어가며 거리가 줄어들길 바라는 생각으로 걸어갔다.


Laxe 라는 마을의 표지가 나왔다. 마을의 중심을 지나 까미노 앱에 나타나는 안내선을 따라 알베르게를 찾아갔더니 현대식 건물에 뮤니시팔 알베르게 이름과 체크인 시간이 적힌 안내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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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는 오후 3시에 체크인이 시작되어 먼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구글맵을 열어 레스토랑 니어 미(restaurant near me)를 입력하니 300미터 떨어진 공장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에 식당이 하나 있었다.


나는 샌드위치와 콜라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종업원에게 손님이 없다고 하니까 오늘은 주말이라 식당들이 문을 닫고 쉬는 곳이 많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히 음식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갑자기 단체 손님들이 몰려왔다. 스무 명이 넘는 중년의 남자와 여자들이 내 주변의 침대에 2층까지 꽉 들어찼다.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지면서 신경이 많이 거슬려 로비의 소파로 나와 카미노 카페에 밀렸던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잘되어 일기쓰기는 어제 일까지 마무리하고 침대로 돌아왔다 이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구글맵으로 현재 영업 중인 식당을 검색하니까 근처에는 없고 최소 7km 정도는 나가야 해서 포기하고 가지고 다니는 빵과 생수로 식사를 해결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단체 순례자 한분이 나에게 오더니 저녁 식사를 단체 주문 할 계획인데 메뉴는 생선 또는 고기를 선택하고 수프는 기본이니 신청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생선요리를 주문해 달라고 했다.


8시가 훨씬 넘어서야 식당 주인이 자동차로 음식을 가져왔다. 감자를 곁들인 생선 요리는 맛이 좋았고 곁들인 와인은 풍요로운 식사를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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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침대로 돌아온 후에 사람들은 대화를 늦게까지 하면서 웅성거리며 창문을 열어두어 모기가 들어와 몇 번씩 깨어나 플래시를 켜고 모기를 잡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D+38 폰테 울라(Ponte Ulla)



오늘부터 매일 17킬로 거리에 있는 Bandeira , Outeiro , Santiago Compostella 까지 걷기로 했다.

7시쯤 식당으로 가서 머핀과 생수를 끓여 한국 커피 KANU를 마셨다.


까미노는 알베르게를 나와 바로 근처의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 시간을 쉬지 않고 걸어서 Silleda에 들어갔다. 마을에 있는 카페를 지나가다 잠깐 쉬어갈 겸 문을 밀고 들어갔다. 오늘 두번째 커피를 마셨다.


마을의 주택가에 들어서자 하늘에 무지개가 나타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잿빛 구름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오늘 목적지로 염두에 두었던 Bandeira에 들어섰다. 도시는 크지 않아 중심 도로에서 좀 떨어진 길에 있는 알베르게를 쉽게 찾아갔다. 하지만 컨테이너 같은 조립식 건물에 'Xunta Albergue de Banderia'라는 알베르게 명칭을 발견하고 너무 열악한 시설에 머물고 싶지 않아 다른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다시 거리로 돌아가서 일단 점심 식사를 하고 시간을 고려해서 다음 마을 Casa Leiras까지 가는 것도 고민해 보기로 했다.


작은 시내의 거리를 걸어가다 손님이 많은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 그리고 비어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종업원을 향해 손을 들었다. 손님들로 가득한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방법은 손을 들어 내가 당신을 필요하다는 표현을 해야 오기 때문이다. 오늘의 메뉴(Menu del Dia)인 닭고기를 구워 만든 요리를 선택했다.


넓은 접시에 담긴 요리는 약간 검게 그을린 닭고기에 양념을 발라 알맞게 구워졌고(바베큐처럼) 빨간 파프리카와 당근 그리고 통감자까지 넣어 푸짐하게 보였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콜라 한 병과 함께 즐거운 식사를 했다.


레스토랑에서 카미노 앱을 켜고 루트를 확인했다. 이곳을 떠나면 카미노 루트는 자동차 길을 따라 계속 가야 했다. 시내를 빠져나와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길로 들어서자 멀리 산능선 위로 검은 구름이 몰려오며 연한 무지개가 하늘에 피워 올랐다.


그곳에서 소낙비가 몰려오는 듯 갑자기 바람도 불어오며 도로에는 낙엽들이 굴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후드득하고 빗소리가 들리더니 길바닥에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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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배낭옆 포켓에 끼어둔 우산을 꺼내 펼쳐들고 일단 걸어가기로 했다. 바지는 젖더라도 얼굴을 온전히 비를 피할 수 있는 우산이 편리하게 느껴지고 조금 더 걸어가다 우비를 입을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곳부터 까미노 길이 따로 없는 아스팔트 도로의 옆을 걸어야 했다. 이제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과 나를 향해 날아오는 비를 맞으며 걸어야 하는 내내 매우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어야 했다.


카미노 닌자앱에서 보여주는 루트는 내가 찾아가는 알베르게를 약간 벗어나 있었다. 나는 일단 구글맵을 켜고 알베르게 주소를 검색하여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벗어나 농지가 있는 작은 길로 들어서 걸어갔다. 밀을 수확한 후 버려진 농지에는 텅 비어있었고 농로의 끝에 주택들이 몇 채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찾는 가정집 같은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그런데 대문에 떡하니 10월 11일부터 16일까지 쉰다는 안내장이 붙어있어서 정말 온몸이 내려앉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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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내고 구글맵을 열어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검색했다. 그러나 숙소가 없어서 부킹닷컴(Booking.com)을 열어서 검색을 하고 있는데 카나리아에서 온 순례자 마노르가 나타났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올라. 미스터 마노르"하고 인사를 하고 알베르게가 닫혔다고 하니 그가 작년에 이곳 알베르게에서 하루를 지냈는데 좋아서 다시 왔다고 했다.


마노르가 잠깐 기다리라고 하며 다음 알베르게를 예약해주겠다고 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했다. 그는 꼬레아노 한 명을 더 부탁하고 나서 나보고 출발하자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마노르는 나에게 은의 길에서 세 번째 천사로 인정되었다. 예상치 못한 마노르의 출현에 나도 놀랐지만 어쩔 줄 모르는 나에게 숙소를 예약해 준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뒤를 따라 Ponte Ulla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Ponte Ulla는 이곳에서 8.1킬로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래서 오늘은 30킬로를 걸어가게 되었다. 장시간 걷다 보니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마노르를 따라가야 하니 쉴 틈이 없었다. 다시 도로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야 하는 길이 멀어서 배낭에 레인커버를 다시 씌우고 우산 대신 우비를 꺼내서 입고 부지런히 마노르를 따라갔다. 숙소를 1.7킬로를 남겨놓고 걸음이 더 빨라졌다. Ponte Ulla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자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20킬로 표지석이 나타났다.


그러자 숙소가 있는 방향으로 원을 선명하게 그린 무지개가 나타났다. 이제 나는 환희의 순간을 보고 있는 듯 가슴에서 심장의 박동이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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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39 산티아고 컴프스텔라(Santiago Compostella)



새벽에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날씨 예보를 스페인 앱 AEMET를 열어 확인을 했다. 시간에 따라 비가 내리다 그치다를 반복하는 예보가 나왔다. 아무튼 오늘은 은의 길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는 기대감으로 아무 걱정이 없었다. 새벽에 깨어나 계속 뒤척이며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한국 소식도 찾아보았다.


깜박 잠이 들어 일곱 시에 부리나케 일어나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와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길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어두었으며 약간 찬바람도 불어왔다.


은의 길의 마지막 날 순례자들이 카페를 열심히 들락거리며 다들 분주해 보였다. 아침을 무엇으로 먹을까 하다 산티아고 들어가서 정찬을 하기로 마음먹고 빵과 우유를 먹기로 했다.


어둠이 걷히고 이제 확연히 드러난 길이 내 앞에 나타났다. 그곳에는 벌써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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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경사진 길로 들어서고 호흡을 가다듬을 때 앞에는 할아버지 순례자들이 작은 배낭을 메고 판초우의를 입은 채 걷고 있었다. 차례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의 뒷모습이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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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차올라 언덕 위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멀리 안개가 걷힌 작은 마을들이 바라보였다.

비가 내린 뒤의 산과 마을의 풍경은 물을 머금은 듯 촉촉하게 느껴졌고 거리의 풍경도 너무 평화로워 보였다.


그러나 그런 감상은 얼마못가 비가 다시 내려 길바닥에 떨어지고 있었고 나는 순례길을 조금 벗어난 곳에 카페가 있다고 광고를 보고 비도 피할 겸 찾아갔다. 카페에 들어갔더니 순례자들이 몇 명 와 있었다. 주인이 추천하는 문어(Pulpo)가 들어가는 샌드위치를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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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소한 샌드위치에 궁금했던 맛은 별로였다. 계산을 하고 나갈 때 주인은 웃으며 맛을 물어봐 나는 '긋' 하고 대답을 해주었다. 진심은 아니지만 그를 격려해 주는 용기가 필요했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9킬로 표지석을 만나니 갑자기 힘이 절로 나왔다. 걸음이 빨라지며 주변을 바라보지도 않고 땅바닥만 보고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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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우뚝 솟은 두 개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길바닥에서 튀어 오른 빗물이 신발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젠 한 걸음씩 줄여가는 길이 재미가 났다. 이 길은 내가 여태 살아온 여정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과 태어남, 그리고 삶의 흔적을 남기고 돌아갈 채비도 하며 그러면 나의 여정은 마무리되어갈 것이다.



그렇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오브라도이로 광장으로 들어서서 나는 비가 몰아치는 광장에서 한참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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