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un에서 Santiago de Compostela 까지
2012년 11월, 한 해가 또 지나갈 무렵, 나는 설렘을 안고 다시 순례길 도보 여행의 출발지 스페인과 프랑스의 국경도시 이룬(Irun)에 도착했다. 대서양과 맞닿은 스페인 북쪽 해변을 따라 걸어가며 갈리시아 지역의 해안 도시 Ribadeo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내륙길로 접어들어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825km를 걸을 예정이다.
나는 한국을 떠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인 민박집에서 이틀을 보내고 스페인의 북쪽 휴양지 산 세바스티안으로 왔다. 그리고 다시 순례길의 출발지 이룬(Irun)으로 이동했다.
늦은 오후 내가 이룬에 도착해 알베르게를 찾아 도심의 거리를 걸어갈 때 겨울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으며 가로수에서 떨어진 누런 낙엽들은 바람에 날려 길바닥에서 어지럽게 뒹굴고 있었다. 이런 풍경들은 순례길에서 혼자 걷는 나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어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다짐했다. 매일 새로 시작하는 길에서 푸른 대서양 해변을 마주하게 될 것이고 특별히 날씨가 좋은 날 아침에는 수평선 위로 솟구치는 여명으로 그 햇살이 바다에 부딪혀 윤슬을 만들어 낼 때 나는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풍경에 온몸을 내던지게 될 것이다.
카미노를 걷는 동안 내가 품은 희망사항은 많은 날을 파르스름한 하늘을 보며 신비한 영감을 얻기를 기대했다. 그것은 내가 순례길 도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오랫동안 나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쪽길 루트는 Irun에서 출발하여 목적지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825km를 걷는다
카미노 노르테(Camino del Norte)의 출발은 바스크(Basque) 지방인 이룬의'Nuestra Señora del Juncal' 성당에서 시작했다.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받고 나는 가슴 두근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성당의 묵직한 출입문을 나서 상큼한 바람이 불고 있는 길로 나섰다. 길에는 아침 햇살이 성당의 돌담을 따라 내리쬐고 있었으며 매우 설레는 나의 카미노 보도블록을 걸어가며 시작되었다.
이룬 시내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나는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를 따라 산티아고 순례길을 안내하는 가리비 노란 화살표를 눈여겨보면서 걸어갔다. 가로등과 담벼락, 그리고 길바닥에도 그려진 화살표와 때때로 가리비 문양을 발견하며 길을 따라갔다. 그러나 이런 풍경은 이제 나에게 낯설지가 않았다. 작년에 걸었던 카미노 프랑세스에서 만났던 노란 화살표는 이미 나에게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낯설고 생소한 도시에서 약간은 긴장하면서 걸어야만 했다.
카미노는 곧 이룬 도심의 분주한 거리를 벗어나 대체적으로 하얀 이층 집들이 모여있는 외곽의 넓은 주택가를 지나갔다. 한동안 자동차가 분주히 지나가는 도로를 지나더니 화살표는 왼쪽으로 꺾이며 이제 밀을 심어놓은 경작지의 한적한 농로를 따라 걸어갔다. 농로의 물고랑에는 티 없이 맑은 물이 찰랑찰랑 작은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물속에는 풀무덤들이 물결을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
농로가 끝나고 작은 개천을 지나는 징검다리를 건너가다 투명한 물이 흘러가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수초들이 길게 늘어져서 물결에 흔들거리고 있었으며 개천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이제 나는 지금부터 앞에 나타난 낮은 산으로 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 마치 숲 속에 나있는 오솔길이 터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길섭에는 늦가을이 지나가는 길목에 보랏빛 들꽃들이 바람에 사르르 몸을 떨고 있었고 그 잎사귀들은 아침 햇살에 쉬엄쉬엄 말라가기 시작했다. 카미노는 조금씩 경사진 길로 나 있었고 그 길에서 만난 플라타너스 나무 잎들은 모두가 이미 갈색이나 노르스름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숲으로 들어가는 순례길은 지나가는 사람도 동물도 심지어 산새들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했으며 걸어갈 때마다 신발에서 사각사각 낙엽을 밟는 소리가 났다. 숲길을 막 벗어났을 때 약간 경사진 야산에 목초지가 나타났고 초원에는 이슬을 머금은 초록 풀잎들을 누렁소들이 어울려서 열심히 뜯고 있었다. 오솔길에는 방목하는 소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목책이 세워져 있었으며 목장이 거의 끝나는 지점에 이르자 다시 자작나무 숲이 나왔다. 숲을 지나는 길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숲에서 발산하는 청량한 피톤치드 냄새 때문인지 이제껏 자주 느낄 수 없었던 후각의 체험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쉼 호흡을 통해 산속 공기를 폐부 깊숙이 가득 채우게 해 주었으며 몇 번이나 긴 호흡을 하다 다시 걷기를 반복하였다.
내가 이런 소중한 체험을 얻을 수 있는 기을 걷고 있을 때 한 손에 바구니를 들고 걸어오는 남자를 만났다. 그리고 근처 산비탈에 사람들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고 숲길 가까이에는 자동차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자가 내 앞을 지날 때 내가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바구니를 들여다보았더니 하얀빛의 싱싱한 송이버섯이 담겨있었다. "머시룸" 하고 내가 물었더니 "씨"하고 대답하며 웃음을 띠고 있었다.
숲길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바람이 불어와 숲 속의 나뭇가지들이 심하게 흔들렸고 그때 가까운 곳에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쉼 없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느라 정적을 깨트렸다.
숲길이 끝나자 아스팔트 길이 나왔으며 파란 하늘이 열리는 산마루에 작은 공원과 자동차 주차장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긴 세월을 외롭게 서있는 갈색 지붕의 과달루페(Guadalupe) 성당이 내 앞에 있었다. 그곳에서 성당 너머 바라보이는 이룬의 바닷가 해변에는 여전히 검푸른 파도가 밀려와 하얀 포말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육중한 성당 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제대 뒤로 스테인리스 글라스를 통해 약간의 빛이 들어 실내는 어둡지는 않았고 천정에 범선 같은 배의 모형이 매달려 있었다. 그곳에는 앞쪽 긴 장의자에 단아한 뒷모습의 검은 머리 여인이 다소곳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나는 통로를 따라 일렬로 가지런히 놓여 있는 의자들 사이를 지나 중간쯤에서 조심스레 의자에 앉았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오래된 의자의 나무 냄새가 왠지 기분 좋게 느껴왔다. 나는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십사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촛불 봉헌함으로 걸어가 코인을 넣고 봉헌초에 불을 붙인 후 아직 불꽃이 남아있는 초 옆에 조심스럽게 두고 밖으로 나왔다.
오랜 흔적의 성당은 이제 한낮의 따뜻한 햇볕이 건물을 감싸고 있었고 나는 다시 길을 재촉해야 했다. 카미노는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갔다. 가끔 숲 속을 빠져나오면 산에는 바위가 널브러져 있고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검푸른 바다에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선으로 끊임없이 밀려와 부딪히고 멀리 코발트빛 수평선에는 화물선 한 척이 그 위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마에 땀이 자주 흘러내렸다. 길은 좁았고 다시 해안 절벽에 나 있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위에는 오랫동안 해풍을 맞으며 벼랑사이에 솟아 있는 작은 소나무들과 계절을 잊은 듯 홀연히 꽃을 피운 보랏빛 야생화들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거칠고 가파른 절벽 계단을 계속 오르자 건너편 바위 너머에 우뚝 솟아있는 흰색 등대 건물과 근처에 고즈넉한 모습의 수도원 건물이 보였다.
정오가 지나 해안 마을 파사이 도시바네의 산티아고 광장으로 내려가는 경사진 좁은 계단을 내려가 포구가 보이는 곳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중세 시대의 오래된 건물들이 나란히 붙어있는 골목이 있었고 작고 소박한 레스토랑들과 바르가 여럿 있었다. 단체 여행자들과 마을 사람들이 식사를 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들락거리며 해안가 부두 앞 바에는 오크통을 가운데 두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산미구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점심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바깥에 내놓은 배너에 문어(Pulpo) 요리 사진이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산티아고 순례길의 프랑스 루트에서 들렸던 멜리데(Melide)의 문어 요리 마을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턱수염을 기른 주인장이 테이블로 다가와서 주문을 요구했다. 나는 문어 요리(뿔포:Pulpo) 한 접시와 물을 주문했다. 얼마 후 주인이 접시에 올리브 오일에 볶은 문어 요리와 병에 담긴 생수를 테이블로 가져왔다. 나는 처음 프랑스 길을 걸을 때 멜리데에서 먹었던 문어 요리에 대한 좋았던 기억으로 포크를 집어 조각낸 문어 다리를 찍어 입에 넣었다. 나는 몇 번 씹었던 문어를 너무 짠맛에 그만 뱉을 뻔했다. 옆에 놓인 유리컵에 생수를 따르고 새로운 문어 조각을 물에 씻어 어느 정도 희석을 시켜 먹어보았다. 그러나 요리를 할 때 소금이 많이 들어간 문어는 짠맛이 달라지지 않았다. 생수는 또 내가 싫어하는 탄산가스가 들어있는 스파클링 생수를 가져왔다. 주인에게 주문을 할 때 문어는 “신쌀(Sin Sal: without salt: 소금 없이)” “생수는 “미네랄워터” “노 스파클링”을 전달하지 않았다는 것을 늦게 알아차렸다. 나는 억지로 문어 몇 점을 먹다 그만 포기하고 주인이 가져다 논 바게트 몇 조각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포구의 선착장에서 건너편 산 베드로 마을로 가는 연락선을 타야 했다. 부두에 묶여있는 연락선은 하루 종일 건너편 부두와 이곳을 왕래하는 단순히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연락선은 출발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어느 정도 손님들이 배에 오르면 출발하는 것 같았다. 왜냐면 내가 배에 오르자 구레나룻 수염을 기른 선장이 돌아다니며 1유로의 뱃삯을 받고 뱃고동을 한번 울린 다음 엔진을 구동하여 눈 깜빡할 사이에 건너편 선착장으로 달려가 나를 내려주었다.
카미노는 선착장의 앞 마을을 지나 산으로 들어섰다. 이미 오솔길에는 수북하게 쌓인 유칼립투스 낙엽들이 쌓여있고 줄곳 풋풋한 나무 냄새를 맡으며 걸어갔다. 숲 속은 늦가을 풍경으로 매우 화려했고 진한 오렌지빛 색깔의 야생화들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산자락에 드넓게 펼쳐져서 자리하고 있었다.
오후에 들어서면서 나는 벌써 지쳐 가는 듯했다. 알베르게를 떠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과 해안 절벽도 오르내리며 또 바다를 가로질러 오랜 시간을 걸어왔다. 오늘 밤을 지낼 알베르게는 아직도 7km 정도는 더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었으며 점점 느려지는 걸음은 시간을 더디게 했다.
바스크 지방의 도노스티아 산세바스티안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고 산길을 따라 내려오며 멀리 바라보이는 산세바스티안 바다의 석양은 벌써 수평선 가까이 내려앉고 있었으며 해변에는 이미 스멀스멀 불빛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우리아(Uria) 산 능선으로 나 있는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기진맥진하여 힘없이 내려오다 눈앞에 조그만 레스토랑을 발견했다. 내가 힘없이 축 늘어져서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젊은 종업원이 나에게 다가와서 괜찮으냐고 물었다. 그가 나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가져다주며 앞에 있는 의자를 꺼내 자리에 않도록 안내를 해주었다. 나는 배가 고프니 힘을 낼 수 있는 음식을 달라고 했다. 그는 바구니에 바게트빵을 담아 내왔고 곧 따뜻한 토마토수프도 가져왔다. 일단 배를 채우고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완전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나는 더 이상 걷기를 포기하고 레스토랑 종업원에게 택시를 불러 달라고 했다.
북쪽길 카미노의 첫날은 오르내림이 심한 27.5km를 걸어가는 구간이다. 프랑스루트 첫날 구간인 피레네산맥을 넘어가는 거리와 동일하다. 어느 루트나 첫날의 카미노는 사람들에게 혼을 다 뺏어가는 듯했다.
나에게 따뜻한 배려를 해준 레스토랑 젊은이가 호출해 준 택시를 타고 나는 알베르게가 있는 산세바스티안으로 도착했다. 이미 어둠이 찾아든 해변에는 젊은 여행객들로 가득했으며 바다는 어둠에서도 높은 파도를 만들어 해변으로 밀어내고 그 사이에 서핑을 즐기는 젊은 서퍼들이 아직도 바다에서 해양스포츠를 즐기고 있었다.
유럽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변 관광지 산세바스티안은 바스크 지방어로 도노스티아(Donostia)로 같이 불리고 있었다. 늦게 찾아들어간 알베르게는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건물이라 규모가 컸지만 침실에는 순례자들보다 많은 일반 젊은이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산세바스티안의 아침은 지루할 만큼 더디게 찾아왔다. 숙소 안의 탁한 공기를 환기를 시키기 위해 누군가 밤에 열어놓은 창문으로 정원의 희미한 불빛이 들어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숨을 죽이고 누워있던 나는 창밖으로 새벽의 여명이 스멀스멀 실내에 비추기 시작하자 나는 더 이상 침대에 머물지 못하고 조심스레 일어나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와 지하 식당으로 내려갔다.
아침 식사를 제공하는 알베르게의 식당은 단체 숙박객을 위해 넓고 깨끗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투숙객은 음식 진열대에서 자기가 직접 먹고 싶은 종류를 골라 쟁반에 담아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나보다 먼저 와 있던 순례자가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토스트와 우유 그리고 쨈과 버터. 오믈렛 한 조각. 바나나 한 개를 트레이에 담아 그가 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가 네덜란드에서 출발한 '토마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프랑스 바욘(Bayonne)에서 기차를 타고 이룬에 도착한 다음 카미노를 시작하여 이곳에 왔으며 빌바오까지 걷고 나서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우리는 식사를 하면서 잠시 북쪽 길 카미노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는데 토마스는 겨울철 날씨와 걷기의 어려움에 대해 얘기했으며 그는 카미노 노르테 루트 정보를 인터넷에서 받았다고 보여주었다. 나는 한국어판 가이드북이 없어서 '부엔카미노'를 사용하며 걷고 있는 중이었다. '토마스'는 카미노 노르테 구간 별 정보와 알베르게 정보까지 자세히 내용이 수록된 자료를 나에게 이메일로 전달해 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진열대에 차려놓은 빨간 사과 하나를 배낭에 넣고 토마스에게 "부엔 까미노" 하고 먼저 알베르게를 나섰다. 토마스는 천천히 출발한다고 하며 끝까지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라고 악수를 청했다. 이렇게 나의 둘째 날 카미노가 시작되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언덕길을 걸어갔다. 어제 겪은 피로감이 덜 풀린 듯 어깨가 벌써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겨울 카미노에서 제일 걱정했던 것은 혼자 걸으며 감당해야 할 추위와 외로움의 극복이었다. 그러나 한국을 출발하기 전에 북쪽 루트에 대한 정보 수집과 카미노 카페에 소개된 경험자들의 글을 읽으며 나는 혼자 걷는 카미노가 나만의 해방감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단정했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산세바스티안의 해변을 따라 걸어갔다. 이곳은 휴양지라서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로 산책로가 북적거렸으며 걷기와 러닝 하는 사람들, 또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도 그 틈에 끼어들어서 걷고 있었다. 산책로 해변은 파도가 일정하게 밀려와서 부딪히고 사라져 갔다. 그 너머로 끝없이 펼쳐진 대서양의 칸타브리안 해(Cantabrian Sea)에서 일렁이는 파도는 잔잔했던 마치 햇볕에 비친 은빛 물결들이 서서히 밀려오는 듯 눈을 부시게 하고 있었다.
길게 이어지던 해변 길이 끝나고 노란 화살표는 이제 경사진 산으로 향했다. 돌계단으로 이어지던 길은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올라서자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집들이 숲 속에 아늑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광경이 나타났다. 아마 도노스티아 산세바스티안의 부유 주택들이 모여있는 지역 같아 보였다.
잠깐 편안한 길로 이어지던 카미노는 얼마 안 가 주택가를 벗어나 다시 경사진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부드러운 아침 햇살과 바다에서 불어오는 훈풍이 뒤섞여 숲의 청량한 내음을 건네왔다.
카미노는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능선을 지나고 나서야 다시 천천히 이겔도(Igeldo)라는 마을로 들어섰다.
적색의 오래된 벽돌 담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서자 키가 큰 고목나무가 나타났고 그 아래에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의 순례자들이 네모난 돌바닥에 앉아 쉬고 있었다.
“올라”하고 내가 인사를 하고 옆에 앉으려 하자 한 남자가 초콜릿 하나를 건네주면서 자신의 이름을 '호세 마리오'라고 소개를 하며 나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지체 없이 “꼬레아”라고 하자 “쏘르테” “노르떼” 하고 다시 물어왔다. 그들은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으며 이룬에서 출발하여 이틀째 걷는다고 했다. 남자가 오늘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 나는 오늘 구간 마을인 '사라우츠'에 간다고 하니까 '사라우츠'는 지역 행사 때문에 알베르게가 모두 문을 닫았으니 우리와 함께 '오리오'에서 숙박하고 내일 같이 가자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들이 앞장서고 나는 맨 뒤에 조금 떨어져서 걸어갔다. 일행이 되었지만 그들 틈에 끼어들어 어울리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밝았던 하늘이 점점 잿빛 구름으로 덮여가고 금방이라도 비를 떨어트릴 기세였다. 사실 스페인의 우기는 11월이면 시작된다고 들었는데 정오가 가까운 시간이 되자 가랑비가 조금씩 도로를 적시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 우비를 꺼내지는 않았는데 앞서가던 일행들이 오리오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었다.
오리오의 사립 알베르게 여자 호스피탈레노는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침대를 지정해 주었다. 나의 침대 위치는 룸의 안쪽에 있었으며 창문과 떨어져 있어서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배낭을 침대 위에 던져놓고 앞마당으로 나왔다. 정원에는 아직도 파릇하게 잎사귀가 남아 있는 이름을 알 수 없는 꽃들이 담벼락을 따라 모여있었다.
알베르게 마당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리오 마을은 오리아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으로 올드 타운인 이곳은 예전에 상당히 번창했던 항구답게 큰 어선들이 정박해 있고 마을 안쪽의 언덕에는 17세기에 지어진 크고 장엄한 붉은 벽돌의 산 니콜라스 성당 건물이 있었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포구 건너 산에는 짙은 초록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보였으며 산봉우리 사이의 계곡에는 아직 무거운 안개가 느릿느릿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고 있었다. 비가 완전히 걷히며 안갯속을 벗어난 봉우리들은 이제 속살을 내 보이기 시작했다. 호스피탈레노가 정원으로 나와 별채 건물 안에 음료수를 마실 수 있는 밴딩머신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늦은 오후 시간, 오리오 마을은 이제 안개가 산너머로 완전히 사라지면서 지붕 위로 석양이 노을을 연출하며 마을 전체를 물들이기 시작하며 평화스러운 어촌의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었다.
나는 저녁을 먹기 위해 언덕에 있는 알베르게를 나서 경사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갔다. 오랜 세월을 지나온 포구에는 어부들을 상대하는 상점들과 바와 식당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제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시간이라 바와 식당들은 조명들을 밝히고 있었으며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들로 분주해 보였다. 노인들은 바 앞에 놓인 커다란 오크통 테이블을 둘러싸고 서서 맥주를 앞에 놓고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불이 밝혀진 포구는 조용했으며 어선들과 화물선들이 커다란 앵커에 밧줄이 걸려있었고 해풍에 조금씩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침에 누군가 일어나 전등의 스위치를 올리자 실내가 밝아졌다. 침대에 누워있던 사람들은 재빨리 일어나 침낭을 걷어서 배낭에 넣고 출발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정원의 앞 건물 테이블에서 어제 준비한 머핀빵과 사과주스를 먹고 나왔다. 알베르게 주인이 나에게 오더니 어제 같이 도착한 일행들을 자기 자동차에 태우고 “사라우츠”에 내려 주기로 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걸어야 한다는 원칙 때문에 망설이다 스스로 위로를 하면서 자동차로 갔다.
우리 일행을 태운 자동차는 좁은 골목을 나빠져와 자동차 도로에 들어서자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호스피탈레노가 말한 목적지 사라우츠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오리오에 비하면 규모가 훨씬 커 보이는 마을이었다. 나는 일행들과 함께 건물들이 밀집한 시내로 걸어가며 해변 가까이를 지나가는 도로를 따라 걸어갔다. 그런데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바람과 함께 하늘은 온통 잿빛 구름이 들어차 있었다. 아무래도 금방이라도 비가 올 거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걸었다. 검푸른 바다와 쌀쌀한 해풍은 쉼 없이 불어와서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일행들을 따라 스틱을 힘껏 뒤로 밀면서 빠른 걸음으로 따라갔다.
빗 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비를 처음으로 꺼내 입고 쯔마이아(Zumaia) 가는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까미노는 차분한 느낌의 도시 즈마이아(Zumaia)에 들어섰다. 도시로 들어가는 길에 개천에서 흐르는 물이 바다와 합해지는 다리를 건너 적색 벽돌 지붕과 화색돌로 지은 큰 건물들이 있는 시내로 들어섰다.
앞서 걷는 일행들이 오늘은 일요일이라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나도 미사를 드리고 다시 출발하기 위해 그들을 따라나섰다. 아리토키에타 성당(Arritokieta Chapel)은 시내의 약간 언덕으로 올라가는 곳에 있었다.
우비를 벗어 배낭과 함께 입구에 놓고 비어있는 좌석을 찾아 신자들과 같이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미사는 시작되어 신부님이 강론을 하시는 중이었다. 나는 스페인어를 모르지만 세계가 공통인 미사의 순서대로 따라 하기만 하였다. 주일 미사가 끝나고 다음 순서로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들을 위해 유아세례를 신부님이 집전하셨다. 아이들 한 명씩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세례를 주셨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항상 어디에 있던 하느님과 함께 하기를 바랄 것이다.
미사가 모두 끝나고 밖으로 나왔더니 빗줄기가 더 굵어진 것 같았다. 성당의 지붕 위로 빗줄기가 떨어지며 내는 둔탁한 소리도 들려왔다. 미사를 끝낸 신자들이 우르르 나와 각자 골목을 빠져나갔다. 바르셀로나 일행들은 이곳에서 하루를 더 머무를 거라고 했다. 나는 계속 걸어가겠다고 했더니 '호세마리오'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며 내가 산티아고까지 무사히 잘 걸어가게 기도를 하겠다고 하며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나에게 건넸다. 그는 바르셀로나 성당의 신부님이셨다. 나는 그 명함을 아직도 내 지갑에 분신처럼 넣고 다닌다.
우비를 걸치고 성당의 계단을 일행들과 내려가시는 '호세마리오' 신부님의 머리 위로 빗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일행들이 골목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도 다시 출발하기 위해 우비를 입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카미노 방향을 가리키는 노란 화살표를 찾았다. 주택들이 모여있는 골목을 지나 경사진 언덕을 올라갔다. 경사가 약간 가팔라서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굉음을 내며 매연을 뿜어냈다. 길바닥은 물에 젖어 미끄러웠고 오르막이 끝날 무렵에는 호흡이 가팔라지고 걸음도 느려졌다. 허겁지겁 언덕을 오르자 드디어 앞에 넓은 초원이 나타나며 목장에 소들의 무리가 비를 맞으며 풀을 뜯고 있었다. 목장의 철 울타리를 따라 걸어가며 멀리 쯔마이아(Zumaia) 시내가 내려 보이는 높은 언덕에서 잠깐 멈추어 잿빛 구름에 갇혀있는 칸타브리아 해변을 바라보았다. 비가 조금씩 그쳐가는지 가는 빗줄기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아직 구름에 가려진 하늘 때문에 주변이 약간 어둠침침해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알베르게를 찾아서 서둘러 걸어갔다.
내가 찾아간 알베르게는 목장 근처에 있었으며 넓은 정원이 있는 하얀 페인트 칠을 한 주택이었으며 나는 비를 피해 숙소에서 빨리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앞서 서둘러 대문 앞으로 다가갔다. 울타리 중간에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기둥에 빨간 글씨로 'Santa Klara Pension'이라는 조그만 간판이 붙어있고 정원을 지나 대문 앞에 나 있는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서 나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대체적으로 겨울철에 들어가면 순례자들이 걷기를 멈추면서 대부분 알베르게들이 휴업을 하기 때문에 걱정이 앞서기도 했었다. 만약 알베르게가 휴업 중이라면 나는 더 걸어 다음 마을까지 가서 숙소를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금 후에 집안에서 인기척이 나고 여자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숙소는 주인이 거주하는 건물을 지나 뒤쪽에 따로 연결된 방으로 안내를 했다.
나는 다른 순례자가 찾아오지 않아 늦은 오후 내내 아주 호젓한 시간을 침대에서 뒹굴었다. 초겨울 일몰 시간은 빨리 찾아왔다. 창밖이 이미 어두워져서 나는 저녁 식사를 해결해야 해서 주인이 있는 거실로 갔다. 내가 저녁 식사를 하러 시내를 가야 하니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주인이 시내에 갈 일이 있으니 같이 가자고 했다. 주인이 울타리 밖에 세워둔 빨간 승용차에 시동을 걸고 나에게 옆좌석에 타라고 했다. 내가 오후에 올라왔던 언덕을 쉽게 내려가 레스토랑들이 있는 거리에 나를 내려주고 돌아갔다.
스페인 레스토랑은 대부분 저녁 8시에 영업을 하기 때문에 이전에는 바르나 스낵코너 또는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해결해야 했다. 나는 스낵 종류의 음식을 파는 곳에서 바게트 빵 몇 조각과 추로스, 하몽 그리고 와인도 한잔 마시면서 거리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창문 커튼 사이로 아침의 햇살이 비집고 들어왔다. 높은 지역에 있는 알베르게는 밤새 바람소리가 윙윙거렸다. 다행히 어젯밤까지 더 이상 순례자는 찾아오지 않아서 큰 방을 독차지하여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배낭을 들쳐 매고 어제 주문한 아침 식사를 먹기 위해 주인이 거주하는 집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바게트 빵에 잼과 버터를 조금씩 발라서 커피와 우유와 함께 먹고 당도가 높은 오렌지로 마무리를 했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자 주인이 배웅한다며 어린아이와 함께 집 앞에 나왔다. 내가 스틱을 챙기며 돌아보자 주인이 나에게 “부엔카미노” 하며 잘 가라고 손까지 흔들어 보였다.
오늘은 비가 완전히 물러간 뒤라 날씨가 많이 청명했다. 그러나 11월 초 스페인의 겨울 하늘은 파랗게 질린 것처럼 차가워 보이고 수평선 위 회색 빛 구름 틈사이로 강인한 햇살이 바다 위에 길게 내려 그곳은 마치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주인에게 웃음 띤 인사를 하고 뒤돌아서서 어제 지나왔던 쑤마이아 시내를 바라보았다. 한적하고 평화스러운 조그만 항구 도시는 이제 바삐 움직이는 자동차의 행렬들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알베르게 앞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가다 카미노 이정표인 노란 화살표를 만났다. 꼬불꼬불 돌아가는 길에는 초원의 목초지가 있었고 소를 키우는 목장의 축사들이 있었으며 이곳에서는 진한 풀냄새가 피워 올랐다.
카미노를 걷는 내 등 뒤에 아침 햇살이 내려앉아 오랜만에 여리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카미노는 고도를 점차 높여가기 시작했고 올라갈수록 시야는 넓어졌다. 그곳에는 산능선을 따라 걸어가는 평탄한 길이 나타났으며 마침 그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조그만 벤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모양이 아주 예술적이다. 등받이를 수평구조가 아니라 경사를 두었다. 제작자의 의도가 궁금했는데 나는 벤치에 앉아 멀리 나타난 바다를 보고 그 위로 점차 하늘이 조금씩 열리는 광경을 보았다.
정오가 다가올 무렵 산길에서 내려오다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Deba 마을의 주택가 골목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만났다. 복잡한 대도시에서나 있을 법한 엘리베이터는 지자체에서 경사가 심한 지역에 주민들을 위해 쉽게 오르내리도록 설치했다고 했다.
나는 이곳에서 '게르니카'에 갈 계획이었다. 그곳에 '피카소'가 그린 유명한 벽화가 있다는 정보를 카미노 카페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마침 젊은 부부가 아이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다가왔다. '게르니카' 가는 방법을 물었더니 남자는 기차를 타야 한다고 말하며 근처에 기차역이 있는데 내가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그는 부인과 아이를 기다리게 하고 나와 함께 앞장서서 걸어갔다. 그리고 남자는 역무원을 만나 게르니카로 떠나는 기차 시간을 알아보고 나서 중간에 환승을 해야 한다고 하며 "Buen Camino" 하며 돌아갔다. 나는 “무차스 그라시아스” 하며 총총걸음으로 돌아가는 남자의 등에 대고 감사를 표했다. 내가 플랫폼 안으로 들어가자 조금 후에 기차가 모습을 나타냈고 나는 중간에 잠시 기차를 바꿔 타고 '게르니카' 역에 도착했다.
거리는 아주 조용했고 파블로 피카소의 벽화가 그려진 장소는 조용한 도심의 주택가로 올라가는 어느 부잣집 담벼락에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피카소와 그의 연인들, 그리고 흑색과 흰색을 섞어 그린 전쟁에 따른 폭격의 참상을 그려낸 벽화였다. 프랑스에서 활약한 스페인 화가 피카소의 그림에는 늦은 오후 햇살이 퇴색된 대리석의 매끄러운 면을 따라 길게 비추고 있었다.
게르니카의 알베르게는 시설이 열악했다. 좁은 방에 이 층 침대를 많이 배치해서 통로가 비좁아 옆자리에 있던 독일 순레자는 계속 불평을 해댔다.
오늘은 가까운 빌바오에 먼저 가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을 관람하고 그곳에서 다시 카미노를 시작하여 목적지 '카스트로 우디아스'까지 걷기로 했다. 알베르게를 나와 게르니카 시외버스 터미널을 찾아갔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빌바오행 플랫폼에는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매표창구에서 티켓을 사고 가까운 벤치에서 잠시 기다렸다.
빌바오행 버스가 터미널에 들어오자 사람들이 줄을 서서 버스에 오르고 잠시 후에 게르니카 시내를 벗어나 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버스가 산 고갯길을 돌아서 올라갈 때마다 나는 한쪽으로 많이 기울여야 했었다. 그렇게 고갯길을 줄곧 오르내리던 버스가 빌바오 외곽 지역으로 들어서자 주위는 어느새 산업이 발달한 도시인 듯 큰 공장 지붕들이 많이 나타나고 높게 서있는 기둥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거리에는 자동차와 사람들이 뒤섞여 분주하게 지나가고 도중에 정류장에서 승객들이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도시의 분진 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버스가 여러 개의 신호등을 지나 빌바오 터미널에 도착하자 다양한 모양의 여행객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에는 대도시 마냥 고층빌딩들이 많았고 건물마다 칼라플한 색상의 명품 패션 간판들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또 사람들이 분주하게 걸어가는 모습과 다채로운 상점들과 레스토랑들이 도시의 생명력을 실감하게 해 주었으며 산업과 예술이 공존하는 빌바오의 진 면목을 보게 되었다.
이제 천천히 구겐하임의 화려한 지붕 색깔과 디자인이 도심 빌딩 사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미술관 건물벽에는 지금 전시 중인 작품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붇어있고 관람을 하려는 사람들이 총총걸음으로 미술관의 커다란 유리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뉴욕과 베니스 그리고 베를린, 아부다비(2025년 예정)에도 있으며 이곳 쇠퇴하던 공업도시 빌바오를 디자인 빌바오로 탈바꿈하게 만든 미술관 전시장에는 1층에 철판을 소재로 한 원형의 대형 작품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작품을 소개하는 안내판에 미로”(迷路)”라는 주제를 갖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갔다. 이곳에는 목재를 이용한 건축물 모형과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들인 누드 그림들도 전시하고 있었는데 관람객들은 매우 진지해 보이는 표정으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미술관 2층에서 커다란 유리문을 밀고 나가면 넓은 옥상에 작품을 설치한 실외 전시장이 있었다. 이곳에도 '거미와 크리스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유리를 소재로 다양한 색깔의 거미를 형상화한 작품들을 이곳저곳에 설치해서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미술관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빌바오 시내 거리 모습은 마치 온 도시가 디자인되어 예술의 도시임을 확인하고 있었다.
빌바오 시내를 지나가는 '네르비온강'의 물살은 아주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며 투명한 색깔을 띠고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 거리를 걸어가며 높은 건물들을 만났다. 화려했고 오래된 도시만큼이나 이제는 공원을 사이에 두고 칙칙하고 오래된 색깔의 석조 건물들이 있는 거리를 지나갔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카페테리아에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도시의 공원 벤치에는 간간히 햇볕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커피잔을 들고 앉아 있었다.
이제 점심을 먹고 원래의 순례길을 찾아가야 할 시간이다. 도심 거리를 지나가다 보니 '버거킹'이 있어서 가장 손쉬운 선택인 버거를 먹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전부터 좋아하는 고기 페티가 들어간 '와퍼세트를 주문하고 기다렸다. 두툼한 패티에 얹어진 양상추 그리고 토마토가 먹음직스러웠다.
카스트로 우디아스(Castro Uldias)로 들어서는 길에 간간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비는 두르지 않은 채 작은 우산을 펼쳐 들고 걸어갔다. 우기에 접어든 11월, 스페인 북부 지방의 날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린다고 했다. 자주 내리는 비에 도심의 아스팔트도 물웅덩이가 여러 곳에 생긴 것 같았다.
매일 알베르게를 목적지로 찾아 걷는 카미노는 온종일 매우 썰렁하고 조용해서 잠에서 덜 깨어난 듯이 머리가 무거웠다. 나는 매번 무엇엔가 쫓기듯이 걸음이 빨라지고 홀로 떠도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알베르게는 카스트로 우디아스 시내로 들어와서 도심의 끝에 있었다. 입구에 시내버스들이 차곡차곡 줄지어 있는 주차장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가자 공립 알베르게가 나타났다.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자 나이가 많은 호스피탈레노 남자와 젊은 여자가 테이블에서 와인과 홍합을 먹고 있었다. 그는 순례자 등록을 받은 후 침대가 있는 열린 방으로 안내했다. 숙소는 청소를 거의 하지 않은 상태로 침대 커버는 오랫동안 세탁을 하지 않은 듯 얼룩이 있고 다른 곳 침대의 커버는 어지럽게 헝클어져 있었다.
순례자가 적게 찾아오는 비수기라 해도 청소와 세탁을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불결한 환경에 침대에서 지내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나는 간단히 샤워를 끝내고 침대로 돌아와서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왔다. 체크인을 할 때 저녁 식사를 주문했는데 숙소 환경이 열악해서 음식에 대한 신뢰가 안 되어 취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나는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길까 생각했다 귀찮아서 포기하고 말았다. 공립 알베르게는 주정부나 시청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자원봉사자들이 청소를 도와주고 있는데 낮에 알베르게 안에서 술을 마시는 호스피탈레노에 대해 신뢰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알베르게를 나와 카스트로 우디아스 해변 마을로 들어섰다. 오후의 햇살이 해변에 내려앉고 있었으며 그곳에는 산책을 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도 그들 틈 속에 끼어 해안 끝머리의 조각공원까지 걸어 올라갔다.
대서양의 넓고 짙푸른 바다에 파도가 밀려오며 절벽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잘 가꾸어진 단아한 꽃들이 불어오는 해풍에 생명을 지키려는 듯 혼신을 다하여 버티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우뚝 솟아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산책로에는 일행들끼리 곳곳에 세워져 있는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광장에 있는 벤치에 앉아 멀리 바라보이는 수평선을 보며 이룬을 출발하여 여기까지 걸어온 과정을 생각해 냈다.
수평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일어나 산책로를 걸어 내려오다 해안가에 있는 성당 마당으로 들어갔다. 성당에는 결혼식이 막 끝나고 하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으며 신랑과 신부가 타고 떠날 리무진이 입구에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성당에서 빠져나와 시내로 가기 위해 골목 계단을 따라 내려와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거리로 나왔다. 이제 성당의 뾰쪽한 탑 위에 머물렀던 석양의 잔영들은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나는 해안도로를 따라 걸으며 도시의 차분하고 한적한 빌딩들에서 드러난 상점들과 호텔들을 눈여겨보면서 산책을 했다. 늦가을 해변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파도를 가르며 윈드서핑을 즐기고 있는 서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추운 날씨에 물에 들어갈 엄두도 못 낼 것 같지만 젊음은 개의치 않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길을 건너 카페테리아로 들어갔다.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에는 아직 시간이 일러서 간단히 추로스와 보카디요 한 개로 저녁을 대신하고 내일 걸으면서 먹을 간식으로 사과와 납작 봉숭아 두 개를 사 들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그런데 알베르게 대문이 잠겨 있어 여러 번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었다. 나는 무척 당황해서 출입문 앞에 낮은 벽 위에서 호스피탈레노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도착하고 30분은 훨씬 지났을 때 숙소에 체크인할 때 호스피탈레노와 같이 술을 마시고 있었던 젊은 여자가 나타났다. 나는 그 여자에게 대문이 잠겨 있는데 열어 달라고 했다. 그가 문을 두드리며 “알폰소”, “알폰소” 하고 외쳐 댔다. 몇 번을 소리 질러도 안에서 인기척이 없자 여자가 나에게 알폰소에게 전화를 할 테니까 전화기를 달라고 하였다. 전화벨이 몇 번 울리고 남자가 전화를 받았는데 여자가 몇 마디를 건네자 뭐라고 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여자가 다시 어디론가 전화를 하고 상대방에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고 나서 나한테 전화기를 돌려주었다. 잠시 기다리면 문을 열어주기 위해 남자가 온다고 얘기를 하면서 난간에 기대어 앉았다. 잠시 후에 젊은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다. 남자는 여자에게 설명을 듣더니 다시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가버렸다. 10분쯤 지나 남자와 경찰차가 나타나 경찰이 열쇠를 가지고 와서 출입문을 열어주고 돌아갔다. 아무 일이 없는 것처럼 경찰과 여자가 돌아가고 젊은 남자가 남았다. 나는 호스피탈레노의 행동에 무척 불쾌하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뜬눈으로 지냈다.
어제저녁 알베르게에서 일어난 일들로 찜찜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침낭 속에서 뒤척이다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이른 새벽에 일어나 출발을 서둘렀다.
아침 6시가 되어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배낭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밖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해드랜턴을 켜고 도로로 나왔다. 카미노 표시를 찾아 희미한 가로등이 도로를 비추고 있는 길을 걸어갔다. 가끔 자동차들이 강렬한 헤드램프의 불을 쏟아내며 달려왔다 지나가곤 했다. 머릿속에는 어젯밤에 일어난 알베르게의 형편없는 일들로 인해 매우 심란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한 시간 정도를 땅을 쳐다보며 바쁘게 걸어 해변의 마을로 들어섰다. 그때서야 내 앞에 점차 물체들이 가까이 나타나며 멀리 낮은 산 위로 여명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떠오르는 아침의 아름다운 풍경은 조금이나마 마음의 위로를 해주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멍하니 검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드넓은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평온한 해변 마을이 부러웠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아이팟을 꺼내 음악을 들었다. 피아니스트 '유키꾸라모토' 연주곡 '꿈의 창가에서'를 선택하고 볼륨을 크게 올렸다. 아무도 곁에 있지 않아 음악소리에 자유를 얻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이 높게 서있는 나무를 쉴 새 없이 흔들어 대는 모습을 보았다.
카미노는 다시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고갯길로 들어섰다. 차량들이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도로의 맨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갔다. 언덕에서 내려오다 도로를 벗어나 다시 해안을 따라가는 길로 들어서자 바다와 가까운 근처의 멋들어진 주택들이 몇 채 있는 마을을 지나갔다. 돌담을 지나는 골목을 빠져나와 노란 화살표가 표시한 방향으로 다시 조용한 오솔길이 나타났다. 입구에 이스라에스(Israels)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북쪽 길 순례길에 나서기 전 '카미노' 카페에서 이곳에 한국인이 살고 있다는 글과 함께 이곳을 지나가는 길에 연락을 하면 라면을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연락처는 남기질 않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멋진 바다를 앞에 두고 매일 삶을 살아가는 그가 부럽기도 했다.
마을에는 대서양의 넓은 바다를 품고 널찍한 정원을 갖춘 아름다운 주택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다시 자동차가 지나는 차도로 올라왔다. 마을 정수장이 있는 건물 앞에 'Liendo'라는 지명을 알리는 팻말이 나타났다. 나는 불규칙하게 깔려 있는 보도블록을 걸어가다 버스정류장을 만났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쉬지 않고 걸어온 탓에 약간 지쳐있었다. 어디서든 좀 쉬었다 갈까 했는데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땀을 식히고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지나가는 버스를 잠깐 타고 카미노 구간인 푼달(Pundal)에서 내려 다시 걷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연락선을 타고 싼 토냐로 가야 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정류장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멀리서 버스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급히 신발을 신었다. 한 손을 들어 버스를 타야 한다는 표시를 했다. 나는 기사에게 '푼달'이라고 외치며 앞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버스는 바로 출발하여 고개를 넘어가더니 잠시 후에 푼달 선착장으로 가는 종합병원 건물 앞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사람의 흔적도 없는 신작로를 따라 선착장으로 가는 순례길 표지를 찾아가며 해변도로를 걸어갔다. 그곳은 여름철 내내 피서객들로 붐볐을 모래 해변의 피서지가 나타나고 아직도 바다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풍겨왔으며 모래사장을 걸어 바닷물과 맞닿은 곳으로 걸어가서 연락선을 기다려야 했다.
그때 멀리 이곳을 향해 연락선 같은 목선이 이쪽으로 물결을 가르며 다가왔다. 그리고 엔진 소리가 멈추고 모자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나무 널판을 뱃머리에서 비스듬히 내려 모래사장으로 내려놓았다. 뱃전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우르르 널판을 지나 모래사장으로 나 있는 길로 내려왔다.
연락선은 다시 사람들을 태우고 규칙적인 엔진음을 내면서 뱃머리를 돌려 떠나왔던 곳으로 물살을 가르며 미끄러지듯이 움직였다. 이곳은 싼토냐(Santona) 마을이다.
연락선이 선착장에 도착하고 사람들을 내려주었다. 나는 배에서 내려 조그만 공원에 있는 광장을 지나갔다. 공원에는 한낮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고 산책하는 부부들과 아이들 그리고 노년의 부부가 다정하게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아무 표정이 없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하러 근처 조그만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곳에서 소고기 필레 요리와 호박 수프를 먹고 시원한 콜라도 마셨다. 스페인에 와서 먹는 호박 수프는 어디에서 먹든지 맛있었다. 물론 오후 2시가 넘었기 때문에 허기가 져서 뭐든지 맛있을 시간이었다.
싼토냐(Santona)는 조그만 도시였다. 길을 따라 걷다 눈에 익은 싼 탄데르 은행 지점이 있어서 ATM 기기에서 약간의 유로를 인출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숙소는 카미노 카페나 가이드북에 소개된 순례자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친절하고 기대 이상의 음식을 제공하는 호스피탈레노 에르메르소의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
'구에메스(Guemes)' 알베르게는 순례길 루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을 찾아가야 하는데 시간이 이미 3시 가까이 되어 택시를 타고 찾아가기로 했다. 버스정류장 근처에 택시들이 나란히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주소를 건네고 알베르게에 내려 달라고 했더니 그는 구에메스 알베르게를 잘 알고 있는 듯 호스피탈레노 에르메르소가 동네 사람들을 자주 초청하여 식사를 같이 한다고 했다. 택시는 이곳에서 20분 정도 달려 주변에 복숭아 과수원들이 가득한 언덕 위에 자리한 알베르게 건물 앞에 나를 내려주고 돌아갔다. 자동차 소리를 듣고 열러 있는 대문 밖으로 히스패닉계 청년 자원봉사자가 나와서 아주 반갑게 “올라” 하고 인사를 했다.
건물로 들어가자 그는 데스크에서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주고 우리가 점심때 먹은 수프를 먹고 가라고 나를 식당으로 안내했다. 갈색 뚝배기 같은 그릇에 푸짐한 렌틸콩 수프(Lentejas)와 바게트 빵을 내왔다. 식당 규모가 꽤 큰 것으로 보아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할 법했다. 그때 머리가 백발인 호스피탈레노 에르메르소가 왔다. 그의 얘기를 들은 후로 매우 궁금했는데 오늘 만나게 되어 반가운 생각에 내가 인사를 건넸더니 일흔이 넘은 에르메르소는 반가워하며 음식을 먹고 있는 내 등을 톡톡 두드려주며 어디서 왔고 어디서 출발했는지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보며 저녁 식사 때 보자며 벽난로가 있는 곳에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로 갔다.
렌틸콩 수프는 씹히는 질감이 좋았고 걸쭉한 맛은 내가 순례길을 걸으면서 맛보았던 어느 수프보다도 훌륭했다. 식사를 끝내자 젊은 호스피탈레노가 나에게 숙소로 가자고 하면서 건물 뒤편으로 데려갔다. 숙소는 한 방에 2층 침대가 4개씩 있었으나 요즘이 비수기라서 아마 혼자 있게 될 거라고 일러주었다.
어느 정도 짐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청량한 하늘에는 하얀 구름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으며 석양의 붉은 노을이 언덕 위에 얌전히 자리 잡은 알베르게 건물을 비추고 있었다. 건물 주위에는 구릉을 따라 포도밭 묘목들이 펼쳐 있었고 이곳의 칸타브리아 평원에도 겨울의 스산한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저녁 식사 시간까지 며칠간 밀린 일기를 쓰고 7시가 좀 넘은 시간에 식당으로 향했다. 알베르게 주방에는 자원봉사자들이 식사 준비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고 식탁에는 식사를 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동안 순례자들 몇 명이 도착했고 마을 사람들도 여럿이 식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점심때 먹었던 렌틸콩 수프가 먼저 나오고 하우스 레드 와인이 큰 유리병에 담겨 나왔다. 순례자 메뉴라고 하지만 스테이크 요리가 나올 때 몇몇 순례자들이 박수도 쳤다. 구에메스 알베르게는 이처럼 순례자들에게 상당히 관대하고 온정을 듬뿍 베푸는 서비스로 알려질 만했다. 와인을 마시면서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스페인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나로서는 그냥 그들의 표정을 보면서 같이 웃어주는데 동참했다.
오랜만에 와인의 취기가 서려 멋진 만찬을 끝내고 식당을 나와 숙소로 돌아올 때 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하고 나는 오랜만에 편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구에메스 알베르게의 정겨운 추억을 안고 이제 산탄데르로 향했다. 알베르게에서 마련해 준 식사를 하고 나서 숙박비를 도네이션(Donation) 박스에 넣고 나오면서 방명록에 호스피탈레노 '에르메르소'에 대한 감사의 글을 남겼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밤새 내린 하얀 서리가 근처의 포도나무 농원들과 채소밭 그리고 알베르게 건물 지붕에도 내려앉아 있었다.
마침 '에르메르소'가 밖으로 나와있어서 나는 알베르게 간판 앞에서 '에르메르소'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포도나무 농원 사이로 나있는 오솔길을 걸어서 본래의 카미노 루트를 찾아갔다. 농로에 서리가 내린 풀섭은 하얗게 변해있었고 마치 눈이 내려앉아 겨울을 알리는 현상처럼 보였다.
농로를 걸어 나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 나왔다. 카미노를 알리는 노란 화살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방향이 잡혔으니 이제 좀 빠른 걸음으로 걸어야 했다. 오늘 목표는 소모(Somo)에 간 다음 '산탄데르'를 거쳐 '산티아나 델 마르'까지 걸을 계획이다.
아침 공기가 매우 싱그러워 걷는데도 컨디션이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어제 묵었던 구에메스 알베르게에서 호스피탈레노의 정감 어린 대화와 푸짐한 식사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느새 소모(Somo) 선착장까지 걸어왔다. 배가 출항할 시간이 되자 흩어져 있던 승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싣고 가는 페리선이 시간에 맞춰 나타나 선착장으로 다가왔다. 그러자 선원이 내리고 줄을 서서 기다리던 승객들이 줄지어 배위로 올라섰다. 선착장에 잠시 걸어 두었던 밧줄이 들어 올려지며 연락선은 뱃머리를 돌려 건너편 항구의 뱃길을 따라 움직였다.
스페인의 대도시 산탄데르(Santander)는 높은 건물과 자동차의 행렬 그리고 거리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오래된 석조 건물들은 역사를 자랑하듯 반듯하게 나란히 서 있었으며 키미노 루트는 도심을 지나 공원도 지나갔다. 그리고 이곳 산탄데르에는 유럽지역의 대표적인 은행으로 성장시킨 산탄데르 은행의 본부가 있는 도시이다. 시내 중심의 거리에는 역사가 정말 오래된 듯한 빵 가게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여행자 안내센터를 들려 지도를 구하고 근처의 페레다(Pereda) 공원에 왔다. 공원 광장을 중심으로 근처에 레스토랑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공원 옆으로 나 있는 길을 걷다 건물 벽에 1890년에 영업을 시작했다는 명판이 벽에 붙어있는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오래된 역사만큼 클래식한 분위기의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가 배어 나오고 나이가 많은 종원원들이 하얀색 에이프런(Apron)을 두르고 서빙을 하고 있었다. 오래된 역사만큼 손님을 대하는 태도에도 능숙하고 친절하게 손님을 리드했다. 나는 창 쪽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밖을 내다보며 파스타를 주문했다. 메뉴판에 보이는 음식의 종류는 많았지만 잘 이해하질 못해 파스타나 피자가 점심으로 적당했던 것 같았다.
오늘은 구에메스(Guemes)에서 산탄데르까지 걷고 다음 구간 산티아나 델 마르(Santillana Del Mar)까지 44km는 기차로 이동할 계획이다. 겨울로 접어들면서 밤이 길어지고 낮에 걸어야 할 시간이 많이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매일 걸어야 할 구간을 잘 계산해야 했다.
스페인의 열차 FEVE를 타기 위해 산탄데르 역을 찾아갔다. 역사에는 어디론가 떠나는 많은 여행객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티켓팅을 하고 플랫폼으로 갔다. 잠시 후에 열차가 서서히 철로 위로 미끄러지듯이 들어왔다.
열차가 움직이며 창쪽으로 바깥 풍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페인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기분이 너무 상쾌했다. 어느새 느낌이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대고 밖을 내다보며 시골 풍경을 감상했다. 열차는 정말 빨리 달렸다. 시골역을 몇 개 지나더니 나를 산티아나 델 마르역에 내려주고 가버렸다.
어둠이 거의 찾아들 무렵 도시의 박물관 뒤에 숨어있는 듯한 알베르게 건물을 찾아냈다. 이곳에는 프랑스, 덴마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온 3명의 젊은 순례자들이 먼저 도착해서 쉬고 있었는데 내가 숙소에 들어섰을 때 모두가 번갈아 가며 인사를 건네서 조금 쑥스럽기도 했다.
알베르게에는 취사 시설이 없어서 모두가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골목을 나와 큰 거리로 나오자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았지만 레스토랑은 불을 환하게 켜고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이곳에서 종업원이 스페인 사과주 시드라(Sidra)를 따르며 묘기를 부리는 광경을 손님들과 보면서 즐거워했다.
오늘은 가이드북에 소개된 선시시대 원시인들이 살았던 '알타미라 동굴'을 다녀오기로 했다. 알타미라 동굴(cueva de Altamira)은 스페인의 세계유산으로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전망 (high view) “ 뜻을 갖고 있으며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서 야생 동물의 뼈와 사람들의 손으로 그린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고 했다.
알베르게를 나와 동굴까지 약 40분 정도를 걸어갔다. 동굴의 총길이는 296m이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매표소에서 관람료를 지불하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원시인들은 숯이나 황토, 철석으로 형상을 그리거나 자연 염료를 이용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여러 가지 색채가 나타난 천정이 가장 유명하며 두 마리의 말과 큰 사슴, 수퇘지가 그려져 있는 벽화이다. 그러나 진짜는 다른 곳에 보관하고 있고 관람용 벽화나 유물 들을 전시하고 있다고 했다.
나는 동굴을 견학하고 산티아나 델 마르(Santillana Del Mar)로 다시 돌아왔다. 오늘은 꼬미야스(Comillas)까지 21km를 걷게 된다. 자동차 도로를 벗어나 카미노는 도시의 언덕길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야 했다. 길가에 세워둔 캠핑장 팻말이 있어서 열려있는 문을 지나 안으로 슬쩍 들어가 보았다. 캠핑카를 세울 수 있는 지역과 글램핑 장소가 있고 방갈로도 보였다. 어제 알베르게를 검색할 때 캠핑장을 본듯한데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있을 거리고 생각을 못했다.
카미노는 근처의 넓은 광장을 지나 지금은 문이 잠겨있는 커다란 성당 건물을 지나갔다. 나지막한 산능선에 자리 잡은 성당은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듯 여러 곳이 허물어져 있었고 성당 바로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고인에 참배를 하러 온 사람들이 차례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서양 국가들의 묘지들은 죽은 자와 산자를 특별히 구분하지 않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에 가깝게 그리고 성당 안에도 자리 잡고 있어서 언제든지 생각나면 찾아올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았다.
도시를 벗어나 카미노는 숲길로 향하다 정오가 다 되어갈 무렵에는 초원에 덩그러니 있는 코브레스(Cobres) 수도원을 지나갔다. 어떻게 이런 외딴곳, 아무런 방어막도 세워지지 않은 장소에 건물을 세웠는지 궁금했다. 과거에 수도사들은 외부와 차단된 채 수도 생활을 위해 지내기 좋은 장소로 이곳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수도원 담벼락에 기대어 점심 식사로 한국에서 가져온 비상식량인 육포를 꺼내서 먹었다. 허기를 채워주는 육포는 오래 가지고 다녀도 상하지 않아서 좋았다.
수도원을 내려와 이제 귀족들의 삶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꼬미야스(Comillas)로 출발했다. 그리고 우선 시내에 있는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가 설계했다는 모더니즘 기반의 건축물 카프리초(Capricho)를 찾아갔다. 안토니오 가우디가 19세기에 음악과 건축을 융합한 기발한 건축물. 모더니즘을 시험한 건물은 아라베스크(타일. 벽돌)와 신고딕 양식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로 해바라기를 묘사한 도자기로 장식된 원통형 타워 건물이다.
겨울 카미노는 칸타브리아 지역으로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사뭇 달라지고 있었다. 특히 숲 속에 나 있는 오솔길은 걷기에 포근한 느낌의 갈색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 있어서 걷기에 피로감이 훨씬 덜한 것 같았다.
오늘부터는 스페인 순례자 라파엘과 함께 걷기로 했다.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난 그는 바르셀로나에서 살고 있으며 북쪽길을 나보다 늦게 출발했지만 벌써 이곳까지 도착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격을 가진 그는 추운 날씨에도 반바지를 입었고 잘 웃으며 낙천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해안가를 따라 걸으며 바다에서 풍기는 짠 내음과 여름철 풍성했던 해변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걸어갔다. 산 빈센테 데 바케라(San Vincente de Barquera) 호수를 지나가는 다리를 지나갈 때 앞서 걸어가는 라파엘의 배낭 위로 빗물이 맺히기 시작해서 우비를 꺼내 입고 걷기로 했다. 비와 함께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다리를 건너 급하게 마을로 들어섰다.
우리는 길에서 보이는 카페테리아로 들어가 젖은 옷을 말리고 쉬어 가기로 했다. 따뜻한 카페콘레체를 마시면서 젖은 옷을 바꿔 입고 가게에서 신문을 구해 신발안에 넣어 습기를 줄이고자 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이제 움츠렸던 몸이 좀 풀린 거 같아 밖으로 나와 비에 젖은 길을 다시 걸어갔다.
'Unquera'와 'Cobres' 마을 알베르게는 모두 문을 닫아버려 다음 마을 'La Franca'에 있는 숙소를 찾아가야 했다. 우리는 가랑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자동차 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걸어 La Franca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도로를 따라 걷다 식당이 딸린 호스탈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라파엘과 나는 각자 정해진 방으로 들어갔고 오랜만에 따뜻한 물로 샤워를 했다.
겨울 낮 시간은 짧아서 그런지 벌써 창밖으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호스텔의 레스토랑에서 하기로 했다. 나는 라파엘에게 전화를 걸어 1층 식당에서 만나기로 했다.
식당 한쪽에 켜진 TV 모니터에는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 팀과 FC 바르셀로나의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아마 스페인의 최강팀끼리 갖는 경기라서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격하게 응원을 하고 있었다. 테이블에는 스페인 맥주 '산 미구엘' 맥주병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우리는 우선 와인과 샐러드를 주문해서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텅 빈 뱃속에 와인이 들어가자 금세 취기가 올라왔다. 나는 라파엘의 세계 여행 계획을 듣느라 늦은 시간까지 식당에 머무르다 방으로 돌아왔다.
창 틈으로 아침 햇살이 살며시 스며들 때까지 뒤척이다 늦게 일어나 식사를 하기 위해 일층 식당으로 내려가 라파엘이 오기를 기다렸다. 오늘은 모처럼 아침 식사를 느지막하게 먹고 출발하자고 했다. 그동안 매일 혼자 걷다가 이제 일행이 생겨서 대화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라파엘과 호스탈을 나와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 바라보이는 산에 만년설처럼 하얀 눈이 쌓여 있는 풍경이 보였다.
카미노는 한동안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차도를 곁에 두고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 철 지난 해안가의 을씨년스러운 바닷가 길로 들어서 이름을 알 수 없는 조용한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골목에 시골의 당산나무처럼 둘레가 큼직한 나무 옆에 샘물(La Fuente)이 있었다. 몇 번 목을 축이고 마을을 나와 널찍한 구릉지대를 지나 다시 바닷가로 나왔다. 해변을 지나가는 길에는 갯바위 틈사이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구멍 사이로 바닷물이 높게 솟구치고 있었으며 또 높게 물기둥이 솟구칠 때마다 바닷물이 바람에 날리며 얇은 무지개가 피어오르는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해변에 있는 길을 벗어나서 근처의 산 위로 방향을 틀어서 오르기 시작했다. 숲이 없는 산으로 오르자 바닷바람이 그대로 불어와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했다.
거의 정오가 넘어갈 무렵 산 아랫마을 '라네스(Llanes)'에 도착했다. 그리고 기차역 근처의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알베르게는 겨울철이라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라파엘이 근처에 있는 호스텔로 가격을 알아보러 간 사이에 여자 순례자 한 사람이 걸어왔다. 덴마크에서 온 여자 순례자는 이름이 '크레타'라고 하며 조금 가면 'Poo de Llanas'가 열러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고 하였다. 크레타는 체격이 크고 다부진 인상으로 말수도 적었으며 걸음이 빠르고 대체적으로 힘차게 걸어갔다.
우리는 바닷가 모래 언덕을 지나가는 길에 이제 말라버린 가시덤불을 보면서 걸어갔다. 해변을 따라가는 길은 가끔 모래 구릉이 있는 지역을 지나고 다시 해변을 벗어나 목장에 나 있는 길을 가기 위해 철문을 열고 지나가기도 했다. 바닷가 근처에 조성된 목장이라 이곳에서 방목되는 소들이 해풍을 맞고 자라 더욱 건강하게 자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그러나 빠른 걸음으로 건너편 철문까지 걸어갔다.
'Poo de Llanes'의 젊은 호스피탈레노가 우리에게 세요를 찍어주며 자신이 팔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주면서 앞마당에 있는 무화과나무에서 수확한 무화과를 이용해서 아이스크림을 만들었다고 자랑하였다. 아이스크림은 무화과의 단맛이 더해져 간식으로는 최고라고 추겨 세워줄 수 있었다.
북쪽길을 시작하기 전에 카미노 카페에서 'Poo 해변에서 놀기'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 알베르게에 대한 연상은 아름다운 해변에 위치하고 있고 오후 저녁노을이 지는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알베르게 근처의 풍경은 내 예상을 약간 벗어난 것 같았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알베르게 골목을 지나 마을의 레스토랑이 있는 거리로 갔다. 마을은 작아 레스토랑도 하나밖에 없었다. 라파엘과 나는 소고기 필레를 와인과 함께 주문하고 크레타는 스파게티를 주문했다. 크레타는 직업이 여행가이드로 주로 마요르카섬에 덴마크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에 조금씩 내리던 비가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설 때는 그치고 공기는 차가웠지만 상쾌한 느낌을 받았다. 라파엘과 크레타가 출발이 늦을 거라고 해서 걸음이 느린 내가 먼저 숙소를 나왔다.
어젯밤에 내린 비로 길거리는 물웅덩이가 많아졌다. 약간 질퍽거리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느낌, 그 자체는 자유로운 느낌을 주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도 생겼다. 거리의 광장 카페테리아 앞에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어서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카페콘레체' 한잔으로 긴장을 풀고 일어섰다.
마을을 벗어나자 근처에 캠핑장이 보였고 소나무 숲길을 지나 세로리오(Celorio) 마을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다시 해안도로에 접어들어 걷는 동안 여러 곳에 호텔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이곳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지역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리바데세야(Ribadesella)로 들어가는 아스팔트 길은 근처의 건축공사장에서 날아오는 분진 때문에 뿌연 먼지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도로를 벗어나 마을에 들어갔을 때 조그만 항구를 갖고 있는 이곳은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라파엘과 나는 저녁 식사를 위해 알베르게를 나와 포구에 나란히 정박해 있는 화물선들을 보면서 어둠이 짙게 깔린 해안도로를 걸었다. 우리는 숨을 죽이듯 바다를 비추고 있는 가로등 밑을 걸어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종업원이 안내한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살펴보고 레드와인 한 병과 문어요리(Pulpo)를, 라파엘은 생선 슈트를 주문했다. 라파엘이 음식값이 좀 비싸다고 불평을 하길래 내가 저녁 식사비를 지불하겠다고 했더니 의외로 라파엘은 무덤덤한 표정을 보였다. 라파엘의 와인잔에 레드와인을 듬뿍 따라 주고 내가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와인잔을 들어 올리며 “위하여”라고 외쳤더니 라파엘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돌아왔다.
아침에 배낭을 메고 알베르게 로비로 나왔더니 라파엘이 나에게 은행에 볼일이 있으니 먼저 출발하라고 하며 들어갔다. 나는 별생각 없이 "오우케이. 걷다가 또 봐" 하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알베르게 문을 열고 밖의 여러 계단을 내려와 자동차가 다니는 넓은 길로 나왔다. 어제저녁에 식사를 했던 레스토랑 앞을 지나 베이커리 카페로 들어가 샌드위치와 카페콘레체를 주문했다.
아침에 라파엘의 표정이 어두웠던 모습이 맘에 걸렸다. 카페에서 빵으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밖으로 나와 전신주에 그려 있는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고 그 방향대로 걸어갔다. 그런데 라파엘이 근처의 은행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았다.
나는 해변도로를 따라 고급 주택들이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가 도로 끝에서 방향을 좌측으로 돌아가다 뒤를 돌아보니까 멀리서 라파엘이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그를 기다리다 “올라” 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라파엘은 무덤덤한 얼굴로 나를 지나쳐서 그냥 걸어갔다. 나는 무척 당황해서 잠깐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라파엘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모르는 척하기로 했다. 그리고 발걸음을 늦춰가며 라파엘과 거리를 두며 걷기로 했다. 왜 내가 그의 돌발적인 행동에 마음을 써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앞서 걸어가던 라파엘이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아 있길래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나는 라파엘이 앉아있는 벤치 앞을 지나가면서 아는 체하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노란 화살표를 찾아 계단이 있는 야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가능하면 라파엘과 많이 떨어져 걷는 것이 마음이 편할 것 같아 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나는 라파엘의 생소한 행동에 대해 시간이 지나면서 더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순례길에서 며칠간 같이 지냈던 사람이라 자꾸만 신경이 쓰였는데 내가 이런 생각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을 때 라파엘이 항상 가지고 다니는 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땅바닥에 내리치며 걸어왔다. 내가 손을 들어 반갑다는 표현을 하자 지팡이를 든 양손을 위로 치켜세우며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내 옆을 지나쳐 갔다. 우리는 대화가 중단되어 있는 상황이라 서로 말없는 시간이 흘러갔다.
카미노는 산페드로(San Pedro) 마을의 가파른 언덕을 다시 올라가서 넓은 목장의 지그재그식 출입문을 지나고 넓은 구릉의 초원을 지나갔다. 라파엘이 앞장서서 걸어갔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간격을 두고 목장의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을 걸어갔다.
목장 밖으로 나서자 건너편 구릉의 높은 언덕에 원추형 종탑이 있는 수도원 건물이 보였다. 밖으로 나가는 문을 밀치고 나와서 수도원 쪽으로 걸어갔다. 라파엘이 성당 난간 위에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도 벗은 채 그 위에 누워버렸다. 나는 라파엘과 좀 떨어져 있는 곳에서 같은 방법으로 난간 위에 몸을 눕혔다.
초겨울의 청아한 푸른 하늘과 뭉개 구름들이 서서히 밀려가는 광경을 누워서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그동안 쌓였던 긴장과 갈등이 금세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한동안 눈을 감고 무념의 시간을 가지면서 불편한 사실들에 대해서는 빨리 잊어버리자고 생각했다.
라파엘이 먼저 일어나 나에게 출발하자고 하며 먼저 앞장서서 걸어갔다. 오늘 목적지인 '라 이슬라(La Isla)' 알베르게를 찾아가기 위해 언덕을 내려와 마을로 들어왔다, 골목으로 들어가 주택가를 지나서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 나왔다. 길거리는 한산하여 사람들이 가끔 보였으며 자동차들이 가끔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노란 화살표는 곧장 해변으로 나 있었다. 바닷가를 따라 피서객들이 머물다가 돌아간 풀빌라들과 조그만 호텔들이 살림 나간 집처럼 텅 비어 있는 듯했다. 알베르게 안내문이 걸려있는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으로 들어갔다. 호스피탈레노 마리아가 순례자 등록을 받은 후에 알베르게 룸으로 이동해서 오늘 밤 지낼 숙소의 사용 방법에 안내를 하고 돌아갔다.
숙소 안에는 채광이 잘되는 커다란 창이 나있었으며 밖에는 정원의 키가 큰 나무들이 바다 바람 때문에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라파엘과 나는 오늘 입은 옷을 빨래하고 모처럼 숙소 안에서 느긋한 오후의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라파엘의 침대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의식적으로 그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대화와 행동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알베르게 앞마당에 햇살이 시들 해 질 무렵 출입문을 열고 그레타가 지친 모습을 하며 들어와 침대에 배낭을 던지고 벌렁 누워 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던 그레타가 우리 모두가 모였으니 저녁에 파티를 하자고 제안을 해서 너무 반가웠다.
그레타와 라파엘과 함께 밖으로 나와 좁다란 골목길을 빠져나와서 슈퍼마켓이 있는 건물로 들어섰다. 그동안 보지 못한 식품들이 마켓 한 모퉁이에 가득 쌓여 있었다. 각자 자신이 먹을 것을 사고 와인은 내가 두 병을 사서 봉투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각자 계산을 한 다음에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된장국 블록 3개와 그동안 신줏단지처럼 가지고 다닌 튜브 고추장을 꺼내 국을 끓이고 양상추를 씻어서 흰쌀밥을 준비했다.
우리는 소고기 스테이크와 된장국 그리고 와인을 잔에 듬뿍 따라서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내가 양상추에 쌀밥을 얹고 고추장을 발라먹으니 라파엘과 그레타도 같은 방법으로 쌈밥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와인을 마셔대며 “원더풀” 하고 모처럼 웃음을 내 보였다.
그동안 걸었던 순례길에 대한 경험을 얘기하며 식사 분위기가 환해지고 대화가 늘어났다. 오랜만에 어색했던 분위기도 어느 정도 풀렸는지 그레타가 따르는 와인에 라파엘은 점점 붉은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라파엘과 그레타가 먼저 출발하고 나는 조금 후에 알베르게 대문에 빗장을 걸어놓고 나왔다. 바로 맞은편 전신주에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고 나는 쉽게 방향을 잡고 거리로 나섰다.
카미노는 얼마 안 가 도로를 벗어나서 숲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칼립투스 숲길을 지나 곧 넓은 들판을 지나가자 스페인의 휴양지로 알려져 있는 베가(Vega) 해변이 나타났다. 이곳에는 오랜 해풍에 나무들이 위로는 자라지 못하고 옆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고 있었는데 식물들이 척박한 환경에도 잘 적응하여 생명을 유지하는 모습은 동물이나 인간들도 마찬가지 같았다.
바닷가의 훈훈한 바람을 맞으며 느릿느릿 길을 걸었다. 순례길은 다시 산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산길을 걸어가는 동안 조그만 마을 세브라요 (Sebrayo)를 지나갔다. 이곳은 목장들이 있는 지역이라 축사들이 몇 개 지어져 있으나 소들은 방목 나가고 보이질 않았다. 아마 주인이 모두 초원으로 데리고 가서 풀을 뜯어먹이고 있을 것이다.
까미노는 산으로 다시 바닷길로 오르내리는데 이제 나지막한 산을 내려와 바닷가로 나있는 길로 들어섰다.
빌라 비쇼사(Villa Viciosa) 항구 마을로 들어섰다.
여러 척의 하얀 보트들이 항구에 나란히 정박해 있는 풍경은 이곳이 휴양지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와 개천이 만나는 도로의 다리를 지나 골목의 건물사이로 들어가자 오늘 숙소 호스텔 Café Delsol가 나왔다.
아침에 식당으로 내려가니 라파엘과 그레타가 먼저 내려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 라파엘은 오비에도(Oviedo)에서 프리미티보(Primitivo) 길을 걷는다고 했다. 어차피 마지막 목적지는 다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이기 때문에 서로 연락을 하자고 하면서 헤어졌다.
나는 북쪽 해변을 따라 걷는 라 코스타(La Costa)를 계속 걸어가기로 했다. 아침 식사를 하고 그레타는 발목이 아프니 오늘 이곳에서 쉬고 이동하겠다고 했다.
나는 일단 버스를 타고 히온(Gijon)으로 가서 계속 걸을 예정이라 버스터미널을 찾아갔다. 버스터미널에는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상당히 북적거렸다. 티켓 발권 창구로 가서 히온으로 가는 티켓팅을 하고 벤치에서 기다렸다.
히온(Gijon)으로 가는 버스는 시내를 벗어나자 곧장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가며 올라갔다. 멀리 조금 전에 머물렀던 도시의 풍경이 가끔 나타났다 사라졌다. 버스는 내리막길로 줄달음 치면서 가끔 손님들을 태우고 부지런히 움직였다. 버스에 올라타는 승객들은 아마 근처의 산골 마을에 살고 있는 분들로 서로 알고 있는 듯 인사도 나누고 즐거운 얘기로 시간을 보냈다.
버스가 시내로 진입하면서 바깥 풍경은 이제 높다란 건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버스가 터미널에 진입하고 나는 배낭을 메고 차량들과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벗어나 바닷가 근처의 넓은 공원을 지나갔다. 근처에 대성당이 있었고 닫혀 있는 육중한 대문을 열리고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밖으로 나왔다.
항구 도시 히온의 거리와 광장에는 바다를 주제로 하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꾸며 놓은 조각품들이 여러 곳에 설치되어 있어서 예술적 감각을 갖춘 도시라고 생각했다.
까미노는 걷는 목적을 달성하려 매일 걷지만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때때로 인간 본성에서 우러나는 낭만과 자유도 필요해 보였다. 풍경을 감상하며 갖게 되는 감성을 가슴속에 채워보려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두에는 크고 작은 보트들과 여객선들이 차례로 정박하고 있었다. 부둣가를 따라 길게 나있는 넓은 인도에 사람들이 오후의 여유를 즐기며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가로등은 마치 예술 작품처럼 멋들어져 보였다.
마침 그곳에 히온 여행자 안내센터를 발견했다. 나는 이곳에서 근처의 숙소와 가 볼 만한 곳을 추천받고 우선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호스텔을 찾아갔다.
어느 회색돌 건물의 초인종을 누르니까 사람의 음성이 들려오며 출입문이 열렸다. 이층으로 나있는 목재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이층에 호스텔의 후론트 데스크가 있었다. 나는 주인이 건네는 열쇠를 받아 조그만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와 자그마한 책상이 있고 벽걸이 TV에서는 화면이 흐리면서 잡음이 심해 전원을 꺼버렸다. 좁은 공간에 오래된 집기로 인해 쾌쾌한 냄새가 나서 일단 작은 창문을 열어놓고 환기를 해야 했다.
히온 시내 산책을 하기 위해 삐걱거리는 계단을 내려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초겨울이 찾아온 도심의 빌딩사이로 찬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오후의 햇살이 비추는 항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트와 보트들이 정박해 있는 부둣가에는 파도를 막기 위한 제방이 있고 사람들은 계단을 올라 걷고 있었다. 바다는 금빛 색깔의 낙조가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고 물결은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었다.
부둣가 공원에는 젊은 연인들과 노부부들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참 다정스러워 보였다. 주름진 얼굴이지만 얼굴에는 평화로움이 가득한 표정이었고 따스한 햇살이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바다를 뒤로하고 아주 오래된듯한 짙은 갈색의 석조 건물들 사이를 지나갔다.
시내 공원을 지나가다 1899년에 건축한 건물에 1901년 오픈한 Café Din durra를 발견했다. 104년이 지난 지금도 변함없이 영업 중인 이곳에 나는 추억을 갖고 싶어서 구릿빛 손잡이를 밀고 들어갔다. 높은 천장과 잘 장식된 인테리어가 오랜 역사와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카페테리아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실내는 한 곳에 Bar. Cafeteria. Restaurant를 갖춘 곳이다.
하얀 에이프런을 두른 노년의 웨이터가 다가왔다. 그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하게 띄우고 메뉴판을 주며 잠시 후에 오겠다고 했다. 눈에 띄는 것이 깔라마레스(Calamares), 즉 오징어튀김이다. 깔라마레스는 외국의 대부분 식당에서 팔고 있는 음식인 거 같았다. 연어샐러드와 바게트 빵 그리고 생맥주 한잔을 주문했다. 깔라마레스는 언제, 어디서든지 정말 맛있는 저녁 식사가 되어주었다.
북쪽 해변의 항구 도시 Gijon… 아름답고 낭만이 깃든 도시를 뒤로하고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며 오늘 까미노는 출발했다. 호스텔에서 밖으로 나와 자동차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진 큰 도로를 지나갔다. 네모난 보도블록에 가끔 구릿빛 금속에 까미노 상징의 가리비가 새겨진 표식을 발견하며 걸어갔다. 순례자들을 위한 히온시(市)의 배려가 돋보였다.
도시의 아침 시간은 어딜 가나 늘 매우 분주하게 움직인다. 편도 2차선 도로에는 시내버스들과 승용차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지나가고 있었다. 도시의 외곽으로 나가는 길에 가끔 수명이 오래된 트럭이 지나가며 내뿜어대는 가스 냄새가 청량한 공기를 흩트리고 있었다. 근처에는 굴뚝이 높은 공장들이 드문드문 보여 그곳이 공장 지대임을 알 수 있었다.
카미노는 도시를 벗어나 건물의 높이가 낮아지는 지역에 들어오자 차량 행렬도 뜸해지기 시작했다. 찬공기를 막느라 입었던 얇은 패딩 안으로 가슴까지 땀이 차 올랐다. 인도에 잘 만들어진 시내버스 정류장의 밴치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물을 마시며 호흡 조정을 해 보았다.
조금 전까지 아름다웠던 도시, 히온(Gijon)을 완전히 벗어나자 주변 분위기는 사뭇 완전히 달라졌다.
도로에는 거의 화물차들이 많이 움직이고 높게 솟아있는 굴뚝에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곳을 지나가는 까미노에는 폐허가 된 주택들도 많이 만났다. 사람들이 살지 않아 지붕이 아예 무너져 내려앉아 흉물처럼 된 쇠락한 지역이다.
더군다나 자동차가 지나가는 아스팔트 도로는 검은색이 아니라 철강공장에서 날아와 내려앉은 녹이 쓴 붉은 갈색 철분가루들이 길바닥에 쌓여 있었다..
순례길은 이제 나선형 모양으로 나있는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구불구불하던 길 끝머리에 상당히 멋진 주택들이 모여있는 곳이 나타났다. 마지막 커브 길 모퉁이를 지나가다 주택의 주차장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스페인 전통 신발(나막신 모양)을 신고 있는 노년의 남자를 만났다. 내가 신발을 보며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남자가 놀라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남자는 내가 사진을 다시 찍겠다고 했더니 자세를 다시 잡고 포즈를 취해 주었다. 내가 나무로 만든 신발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목장의 축사에 들어갈 때 긴 장화 대신에 통풍이 잘되는 굽이 높은 나무 신발이 좋으며 평상시는 집 근처에 다닐 때만 신는다고 했다.
화려하고 다양한 색깔을 입힌 주택들이 모여있는 오르막 길을 오르다 이제 평편하고 넓은 구릉에 양배추를 기르는 채소밭이 있는 곳을 지나갔다. 스페인 순례길에서는 보기 드문 채소밭이다. 가끔 레스토랑에서 샐러드를 먹을 때마다 순레길에서 채소를 기르는 밭을 보지 못했는데 어디서 재배하여 공급을 하는지 많이 궁금했었다. 한동안 구릉을 지나는 길은 다시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아래 마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오늘 목적지 아비에스(Aviles)의 외각 마을 타바자(Tabaza)라는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에도 작은 공장 건물들은 여러 개 보였다. 나의 휴대폰 시계는 이제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카미노는 공장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가야 했고 이때 작업복을 입은 여러 명의 근로자들이 근처의 식당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공장에서 나오는 매스꺼운 가스 냄새가 계속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냄새 때문에 이대로 계속 길을 걸을 수가 없어서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조금 후에 정류장으로 다가오는 시내버스를 물어보지 않고 그냥 올라탔다. 시내 중심에 내려달라고 버스 기사에게 구글 번역기를 보여주며 부탁했다. 마요르 광장에 내려 근처에 보이는 여행자 안내 센터로 들어갔다. 시내 지도와 알베르게 위치 정보를 받고 늦은 점심 식사를 해야 해서 직원에게 '맥도널드' 위치를 물었다. 직원이 내가 묻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아 내가 다시 “햄버거”라 고 하였더니 그때 옆에 같이 있던 직원이 “함베르게”라고 외치면서 환하게 웃었던 해프닝이 있었다. 영어 대신 스페인 발음을 의식하지 못한 잘못도 있지만 순례길에서 이런 재미난 대화도 생기는구나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스페인어로는 햄버거는 '함베르게'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여행자 안내 센터 건물을 나와 유명 브랜드 상품들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갔다. 멀리서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버거킹' 간판이 보였다. 버거킹에는 젊은이들로 꽉 차있었다. 테이블에 두툼한 와퍼세트를 콜라와 같이 올려놓으니 이렇게 먹는 시간이 나름 무척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그동안 보지 못한 이메일과 네이버 뉴스도 들여다보며 여유를 즐겼다.
나는 여기에서 오늘 걷기를 멈춰야 했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네모난 돌길을 따라 10분쯤 떨어져 있는 알베르게로 갔다.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의 유럽에는 마치들이 잘 다닐 수 있도록 네모난 돌을 도로에 깔아 만든 길이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이 도로를 걸어 다닐 때 발바닥에 전달되는 딱딱한 느낌이 올라와 상당히 불편을 느껴야 했다.
지도에 나와 있는 뮤니시팔 알베르게는 공원을 지나서 자동차들의 왕래가 많은 사거리 코너에 있었다. 하얀색 건물에 뮤니시팔(Municipal) 알베르게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헐거운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영어를 잘하는 젊은 남자 호스피탈레노가 먼저 "잉글리시?" 하고 물어왔다.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부모가 있는 이곳에서 잠시 자원봉사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알베르게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곳이라 그런지 넓은 공간에 이층 침대가 4줄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아직 찾아온 순레자가 없어서 실내는 텅 비어 있었는데 나는 창문이 가까이 있는 침대가 좋을 거 같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내가 발견한 침대는 얼룩 때가 눈에 보일 정도로 지저분했다. 너무 더럽다는 생각이 들어 침대 커버를 벗겨버리고 그 위에 침낭만 깔고 옷을 입은 채로 지내기로 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사명감이 없으면 공동 숙소인 실내 청소나 화장실과 주방의 위생문제에 등한시할 거라며 생각했지만 하루를 지내고 다시 떠나는 순례자들은 호스피탈레노를 지적한 경우는 없었다. 만약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알베르게는 숙소 사이트에서 평점을 낮게 받으면 영업에 차질을 빚게 되지만 공립 알베르게는 제제 방법이 없어 자원봉사자의 성실성에 의존해야 했다.
샤워를 하고 다른 순례자들이 없는 기회를 이용해 그동안 미루었던 빨래를 하고 밖으로 나오니 호스피탈레노가 외출을 했는지 자리에 보이질 않았다.
나는 숙소 한편에 준비된 전자레인지와 커피 포트를 보고 한국에서 가져온 인스턴트 시금치 된장국 블록을 끓는 물에 넣어 먹기로 했다. 배낭 깊숙이 넣어둔 된장국 블록을 꺼내 머그컵에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전자레인지에 넣어 가열을 시키자 금방 뜨끈뜨끈한 국물이 되어 나왔다. 마당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국물을 막 마시기 시작했을 때 호스피탈레노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된장국 냄새에 약간 당황한 듯해서 나는 컵을 들어 보이며 “코리안 빈 슈트”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더니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마지막 한 모금까지 후루룩 다 마시면서 오랜만에 속이 개운한 거 같아 무척 행복했다.
침낭을 길게 펼치고 휴대폰을 열어 메일을 검색하고 간단하게 일기를 써 내려갔다. 침대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창문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 너머로 보이는 하늘에는 잿빛 구름으로 가득 가려져 있었다. 아마 내일 비가 온다면 기온이 내려간 날씨 때문에 무척 힘든 순례길이 될 것이다. 우비와 가져온 조그만 우산도 모두 이용해서 최대한 비를 피하고 추위도 막을 생각을 했다.
새벽, 어둠 속에서도 창밖에 가랑비가 투투둑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와서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켜고 시간을 들여다보니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비가 왔지만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심란 해진다. 오늘은 비를 맞지 않고 이곳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그러나 한 곳에서 머무르지 않고 매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들춰내야 했다.
알베르게 주방에서 바게트빵에 버터를 바르고 포트에 따뜻한 커피를 끓여 식사를 하고 아비에스(Avilles) 시내로 나왔다. 일단 우비를 입지 않고 우산을 쓰고 출근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 요리 저리 걸어가는데 배낭을 메고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이 덴마크 여자 순례자 '크레타' 같았다. 우비를 입지 않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크레타의 뒷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서둘러 걸어가 크레타에게 인사를 했다. 그의 머리와 얼굴이 비를 맞아서 초췌한 모습이었다. 내가 우산을 건넸더니 자기는 비를 맞아도 괜찮다며 한사코 거절을 해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더니 크레타가 나에게 오늘은 비가 와서 걷기 힘드니 다음 마을 '바르코(Barco)'까지 기차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다시 출발하자고 제안을 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동의를 하고 같이 근처의 아비에스 기차역으로 갔다.
우리는 '바르코'를 거쳐가는 기차를 확인하고 남은 시간에 역사 옆에 있는 카페에서 따뜻한 카페콘레체를 한잔씩 마시고 카미노 걷기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다. 커피를 마시고 출발 시간에 맞춰 역사의 플랫폼으로 내려가서 마침 들어오는 기차에 올랐다. 따로 좌석 번호가 없는 열차라서 우리는 서로 다른 빈좌석을 찾아가 앉아 지나가는 시골 마을에 비가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단지 세 칸이 연결된 기차는 생각보다 느리게 덜컹거리며 철길을 달렸다.
기차는 시골의 무인 역사를 몇 번 지나더니 금방 바르코(Barco) 역에 도착해 우리를 내려주고 다시 떠났다. 우리는 직원이 없는 조그만 역사 주변을 살펴보다 엘 피투(El Pitu)라는 방향으로 나있는 표지판을 발견하고 그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마을을 빠져나와 자동차가 다니는 아스팔트 산길을 따라 걸어갔다. 크레타는 앞장서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가끔 트럭들이 고갯길을 오르면서 내뿜는 매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걷기를 멈추었다 가야 했다. 앞서 걷던 크레타가 길가의 아스팔트 위에 주저앉아 물병을 꺼내 물을 마시고 바나나를 꺼냈다. 나도 이미 지쳐있어서 그를 지나쳐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물병에 들어있는 미지근한 물을 마셨다. 그리고 사과를 꺼내 칼로 반을 잘라 허기를 채우기 시작했다. 사과의 반을 그에게 줄까 생각했지만 받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비가 그친 적막한 시골에서 고갯길을 따라 몇 구비를 더 올라서 다음 마을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엘피투(El Pitu) 마을에 들어서자 거리는 적막할 정도로 조용했다. 비가 그친 시골 거리에는 그래도 드문드문 상점들이 열려있었고 카페테리아도 보였다. 모처럼 대형 화물자동차가 마을의 폭이 좁은 도로를 지나가고 나서야 한 사람이 나타났다. 마을에는 비가 그친뒤에 짙은 물안개가 도로와 적막한 주택들 사이에 내려앉아 있었다. 우리가 도로를 따라 걸어갈 때 그곳은 무거운 분위기가 엄습했으며 갑자기 한줄기 소나기가 훅하고 숲 사이로 떨어지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마을의 중심을 지나가다 건물 벽이 분홍 색깔이라 눈에 금방 띈 'Hotel Alaba'로 들어갔다. 한적한 시골에 멀리서도 보이는 밝은 색깔이 주위를 밝게 해 주어서 좋아 보였다. 호텔 입구에서 주인을 불러 체크인을 하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가느다란 비가 날리고 있었으며 바로 옆에 넓은 정원과 오랜 세월을 지켜낸 듯한 플라타너스 고목들이 울타리를 따라 서있고 회색빛 석조 건물의 성당도 보였다.
도로의 출입구에서 정원 사이로 나있는 길이 성당의 대문과 연결되어 있었다. 성당 건물 벽은 이끼가 덥혔으며 담쟁이덩굴도 넓게 퍼져있었다.
보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지붕의 종탑에는 금방이라도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그러나 성당의 철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는데 마치 적막함에 휩싸여있는 마을과 함께 나의 쓸쓸한 기분도 방안에 가라앉어 있었다.
겨울비가 오는 날이라 다섯 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도 주변은 벌써 어둠이 서서히 찾아들었다. 나는 자그마한 호텔방에서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며 무거운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다.
이때 성당의 대문이 열리며 사제가 밖으로 나와 벽에 붙어있는 스위치를 올려 백혈등을 켰으며 희미한 전구 불빛은 가랑비가 흩어져 내리는 애처로운 광경을 보여주었다. 사제는 길가에 있는 출입문 쪽을 바라보고 백혈등을 다시 한번 쳐다보더니 자기 할 일을 다한 듯 돌아서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오는 날이라 어둠은 빨리 찾아왔다. 나는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복도를 걸어 나오다 크레타의 문을 노크했지만 반응이 없어서 그냥 우산을 갖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건물에 불이 켜있는 건물들이 보여 인도를 따라 걸어갔다. 도로에는 빗물이 넘쳐나고 있고 어둡고 적막하고 을씨년스러운 거리에 서 성당 앞을 지나고 보도에 비바람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밟으며 마을의 중심으로 걸어갔다.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에 밖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레스토랑테'라는 간판을 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몇 개의 원탁 테이블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출신 선수 메시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는 남자에게 내가 엄지 척을 해 보였더니 일어나 더욱 열심히 응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비가 내려 축축해진 옷을 난로 가까이서 말리며 우선 따뜻한 토마토 수프와 작은 사이즈의 안심 스테이크와 레드 와인 한잔을 주문했다.
새벽에 커튼을 제치고 창밖을 내다보았더니 여전히 가느다란 빗줄기가 가로등의 흐릿한 불빛 아래로 힘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불을 켜고 침대 위에서 수첩에 일기를 써 내려갔다. 로밍해 온 휴대폰을 인터넷에 연결하려고 했지만 시골이라 잘 터지지도 않아 그것마저 그만두었다.
어둠이 가시며 밖에서 빛이 들어와 창문을 열어 보았다. 하늘은 비구름이 어디론가 빠르게 몰려가기 시작하며 조금씩 파란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주변이 재빠르게 밝아지기 시작하자 나는 배낭을 챙겨 밖으로 나가다 크레타가 쉬고 있는 방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어서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조용한 성당 입구를 지나쳐 가다 철 울타리 안으로 보이는 이끼 낀 건물의 뾰쪽한 종탑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는 밤에도 매 시간에 맞춰 울려대는 종소리가 마음을 평화롭게 해 주었다. 마치 이승과 저승을 연결해 주는 종소리는 조용한 마을의 순례길에서 나를 감싸듯이 다가왔다.
어제 오래도록 비가 내려 도로에 난 물 웅덩이를 지나가는 자동차들 때문에 나는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그리고 방향 표시인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며 도로의 풀잎이 자라는 갓길을 걸어가며 좌우를 살펴야 했다. 마을을 벗어나고 이십 분 정도 지나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흙과 자갈이 뿌려진 산길로 들어갔다. 밭에서 농부가 흙을 갈아엎고 있는 모습을 보고 '올라"하고 인사를 했더니 허리를 펴고 아내와 함께 나한테 “부엔카미노” 하고 격려의 인사를 해 주었다. 나는 손을 흔들며 감사를 표했다.
이제 카미노 방향은 계속 오르막 산길을 따라 걸어갔다. 출발부터 계속 오르는 길 때문에 아침부터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했다. 나는 한 구비 넘어가는 고갯길 언덕에 앉아 하늘을 쳐다보며 쉬고 있었다. 그때 고갯길을 크레타가 허리를 숙이고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그쪽을 보며 손을 들어 아는 채 했더니 그는 반가운 표정으로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덴마크인 크레타는 체격이 크고 평소에 대화가 거의 없는 사람이었는데 가끔 식당이나 간식을 먹을 때도 혼자 따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그녀가 이전에 라파엘과 같이 걸을 때도 일상적인 대화가 없어서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혹은 사람들에 대한 기피증이 있나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능하면 먼저 식사 제안을 하거나 신상에 관한 대화를 가진 적은 없었다. 그런데 라 이슬라 알베르게에서 라파엘과 같이 저녁을 먹을 때 자기는 스페인의 섬 '마요르카'에서 관광가이드를 했다고 말했었다.
북쪽길은 순례자들이 주로 바다를 따라 걸어가지만 가끔 산악지역의 고갯길을 지나가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높은 고도에 위치한 산길이라 간혹 계곡에서 물이 흘러 내려가는 소리가 청량하게 들려올 때도 있어 걷는 내내 기분은 좋았다. 오랫동안 경사가 난 길이 나타나며 나의 이마와 가슴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갔다. 나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의 갓길에 주저앉아 호흡을 조절하고 휴식을 취했다.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하늘이 점차 밝게 열리며 주위가 밝아지기 시작하고 산속의 옅은 물안개도 걷혀가고 있었다. 산 주위는 점점 초록과 누런 색깔로 변해 잎사귀 본연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다시 걸음이 점점 느려질 때 고갯길 끝에 무지개가 하늘에 나타났다. 비가 그친 후 무지개는 가끔 나타나는데 이럴 때 신비한 자연경관이 순례자들에게는 긍정의 힘을 주고 있었다.
정오가 지날 무렵에 우리는 조그만 마을 소토델 루이나(Soto del Luina)에 도착했다. 크레타는 걸음이 빨라 항상 나하고 먼 거리에서 걷고 있는 편이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걸어갔다. 마을을 빠져나와 잠깐 평평한 도로를 걸어가다 다시 자동차가 다니는 산을 넘어가는 도로를 따라 걸어야 했다. 오늘 구간은 대부분 산악지역을 지나가는 순례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산 모퉁이를 돌아가자 도로의 평평한 갓길에서 크레타가 초콜릿을 먹고 있었다. 나도 그 옆에 주저앉아 어제 준비해 둔 바나나를 먹고 물병을 꺼내 어느 정도 허기를 채웠다. 크레타가 주섬주섬 배낭을 정리하더니 힘들어서 오늘은 조그만 더 걷고 다음 알베르게에서 쉬겠다고 했다.
산길을 따라 내려오니까 마침 자동차 도로가 지나가는 길에 큰 휴게소 건물이 보였다. 주유소와 식당도 있어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가자고 했다. 앞장서서 식당으로 들어간 크레타는 종업원에게 무엇인가 주문을 하고 창가의 테이블로 갔다. 나는 종업원에게 주문한 샌드위치와 주스를 담은 쟁반을 들고 크레타가 앉아 있는 테이블의 건너편에 앉았다. 크레타의 음식이 나오면 같이 먹기 위해 가이드북을 들쳐가며 오늘 걸어가는 루트를 다시 확인하고 있었는데 그는 주문한 스테이크가 나오자 아무 말없이 열심히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씩씩하게 먹기 시작했다.
보통 식사 전에 서로 '맛있게 드세요' 정도 인사를 나눌 것으로 생각했는데 동양과 서양인의 관습의 차이가 있구나 생각했다. 나는 그를 배려해서 음식이 나올 때를 기다렸는데 좀 머쓱하게 되어 버린 상황이 되어버려 왠지 좀 씁쓸한 생각이 들어 음식을 다 먹고 일어서면서 아무 말없이 식당을 빠져나와 버렸다.
식당이 있는 고속도로 휴게소를 나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 무성한 풀이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 숲길을 잠깐 걸어가는데 한적한 언덕길을 따라 잠깐 올라 걷다 기차역의 무인 대합실을 을발견했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조그만 목조 건물의 대합실로 들어갔다. 역사 건물 벽에 오래전애 붙여 놓은 퇴색된 기차 행선지별 정차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잠시 후에 다음 마을 루아르카(Luarca)에 정차를 하는 열차가 있어서 오늘은 이곳을 목적지로 정해 버렸다. 텅 빈 플랫폼에 앉아 있었는데 크레타와 찾아와서 플랫폼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마침내 멀리 선로 위로 기차가 나타나서 나는 손을 들어 승객이 있다는 걸 알렸다. 기차가 서서히 플랫폼에 멈추고 나는 기차에 올라 빈자리가 많은 객실의 창가에 앉아 산악지역의 풍경을 바라보며 잠깐 여유를 즐겼다.
열차 역무원이 건너편 객차를 지나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나는 가이드북의 지도에 적힌 루아르카(Luarca)를 보여주며 역무원에게 열차 티켓을 구매했다. 주민이 소수인 기차역은 역무원은 없지만 지나가는 기차를 세우면 이렇게 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기차는 마침내 하루 밤을 지낼 오래되고 낡은 건물들이 모여 있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하여 우리를 내려주고 떠나갔다. 마을로 들어가자 폭이 넓은 개천이 있었고 자동차가 다니는 길에 호스탈과 식당. 상점들이 있었다. 가이드북에 나와있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더니 겨울이라 문을 닫아버렸다. 크레타와 함께 마을 중앙의 조그만 광장 옆에 호스탈이 있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주인이 입구의 사무실에서 조그맣게 난 창문을 열고 숙박비가 40유로라고 했다. 나는 웃으면서 방 두 개가 필요하니 60유로에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했더니 "씨" 하고 대답을 해서 우리는 10유로를 절약하게 되었다. 사실 절감한 10유로에 저녁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크레타와 나는 열쇠를 받아서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피곤함에 쌓여 있어서 우선 간단하게 샤워를 한 다음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사실 스페인의 방송은 뉴스를 제외하고 오락 프로그램 같은 시간으로 채워져 있어서 나는 별로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지나며 크레타가 머무는 방문을 두드렸으나 인기척이 없어서 그냥 밖으로 나와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거리는 밤이 찾아와 스산한 바람이 불고 있었으며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의 상점들 창에서 나오는 밝은 불빛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레스토랑떼'라고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스페인 북쪽 해안길에는 해산물 요리 식당이 많은 편인데 메뉴판에 보이는 사진을 들여다보다 오늘은 괜찮은 요리를 먹을 생각했으나 결국 결정은 홍합과 새우가 들어간 스파게티와 샐러드 그리고 맥주 한잔으로 만족했다. 순례길에서 가장 선택하기 쉬운 음식은 참치 혹은 연어가 들어간 샐러드였다. 왜냐면 평소에 먹는 빵과 고기류를 생각해서 샐러드에 들어가는 주 재료인 채소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른 아침, 호스탈 창밖으로 희미한 빛이 들어왔다. 산너머로 아침을 알리는 여명의 빛이 피워 오르고 이제 다시 하루를 시작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을 준비하였다.
굳게 닫혀있는 호스탈 출입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미동도 없는 거리에는 어슴푸레한 가로등 불빛이 거리를 비추고 상가 건물들이 있는 도로 옆을 흐르는 작은 개천에서 물이 흘러가며 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일찍 어디론가 떠나는 자동차가 불빛을 강하게 비추며 지나갔다.
나는 그동안 불편하게 느낀 크레타와 아주 멀리 떨어져 걸을 작정이었다.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을 이동한 다음 걷기를 시작하면 아마 카미노가 끝날 때까지 서로 만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길에서 만난 주민에게 버스 정류장을 물어보고 마을 끝으로 걸어갔다. 버스정류장에는 벌써 어디론가 떠나는 사람들이 보였다.
포르시아(Porcia)로 가는 버스는 곧 도착하였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승객들이 차례로 버스에 올라타고 맨 마지막에 오르며 나는 기사에게 핸드폰에 적힌 포르시아(Porcia) 지명을 보여주고 올라갔다.
버스는 산길을 여러 번 오르내리더니 포르시아(Porcia)에 들러 나를 내려주고 다시 출발하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 모퉁이를 돌아가자 실개천을 지나는 다리가 나왔다. 그리고 깊은 산간 마을 분위기의 낡은 주택들이 있는 길로 들어가자 골목길에 빵을 배달하러 다니는 조그만 픽업트럭이 있었다. 트럭에는 바게트빵 박스가 가득했는데 여자 주인이 집집마다 대문에 달아 놓은 주머니에 빵을 집어넣고 있었다. 내가 바게트빵을 가리키며 “우노” 하고 말했더니 길쭉한 바게트빵을 건네주며 1유로를 달라고 하였다. 바게트빵은 표면이 울퉁불퉁하고 바삭바삭해서 먹고 나면 가끔 입천장이 벗겨지기도 해서 상당히 조심스럽지만 씹고 난 후 고소한 맛에 이끌려 가끔 배낭에 넣어둔 빵을 꺼내 심심풀이 간식으로 질근질근 씹어 먹으면서 걸어갈 때도 있었다.
피구에라스(Figueras)를 지나 강과 바다가 만나는 다리를 지나면 이제 칸타브리아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리바데오(Ribadeo)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카미노 노르테 (Camino Norte)는 바다를 따라가는 북쪽 순례길이 끝나고 이제 내륙으로 들어가서 걷는 길이 연결된다.
어느덧 해가 정오를 훨씬 넘어가며 멀리 수평선이 환히 바라보이는 길에 들어섰다. 오늘은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마지막 날이다. 오후에 들어서며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면서 어깨를 움츠러들게 하였고 때때로 바다에서 불어오는 세찬 찬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나는 장갑을 낀 손으로 얼굴을 감싸기도 했었다.
리바데오(Ribadeo)로 들어가는 긴 다리가 나왔다. 다리 양쪽으로 따로 인도가 설치되어 있어서 안전했으며 차도에도 드물게 자동차가 지나가고 건너편 다리 끝에는 커다란 갈리시아주 행정구역 빌보드판이 서 있었다.
이제 갈리시아 지방으로 들어가면 zk미노는 이전까지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를 것이다. 다리를 지나가면서 대서양의 세찬 바닷바람이 챙이 넓은 모자를 계속 흔들어 댔다. 오늘 날씨가 좋으면 푸른 파도와 하얀 포말을 보면서 대서양 바다도 감상하며 걸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아쉬운 시간이 되었다. 리바데오를 떠나면 나는 한동안 바다를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베르게에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을 보고 호스피탈레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방을 안내했다. 텅 빈 알베르게는 추운 날씨가 더해져 을씨년스러울 만큼 칙칙했다. 호스피탈레노는 난방이 약하니까 옷을 잘 입고 자라고 하면서 나가고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방은 침대가 눅눅해서 히터를 최대한 높이고 침낭을 펴서 최대한 한기를 피할 준비를 해야 했다. 추위를 감사고 걸어오느라 움추러들었던 몸을 녹이느라 한동안 시간을 방에서 보냈다. 그리고 내피가 들어간 동절기 파커옷을 덧 입고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제 저녁 식사를 하러 밖으로 나가 시내 방향에 있는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조용한 길거리는 가로등 불빛이 날씨만큼 힘없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걸어가다 처음 눈에 띄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는 손님들이 식사 시간을 기다리는 듯 맥주병을 앞에 놓고 텔레비전에서 방영 중인 축구 경기를 보고 있었다. 대체적으로 식당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하루 종일 유럽 프리미어 리그 채널을 켜놓고 있으며 손님들은 경기때마다 열심히 응원하며 식사 서빙이 시작하는 저녁 8시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녘 창문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창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소리 때문에 몇 번을 일어나야 했다. 침대에서 뒤척이다 일어나 흐릿한 형광등을 켜고 그동안 못다 쓴 일기를 숙제하듯이 써내려 갔다.
아침이 조금씩 밝아오며 비는 그치기 시작했고 나는 이제 다시 떠나야 할 준비를 했다. 알베르게 밖으로 나오니 아스팔트 도로는 아직 빗물로 흠뻑 젖어 있었으며 사람들과 자동차가 지나가는 거리에 나오자 기분이 더 맑아졌다.
시내의 밝은 거리가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나는 거리를 걸어가며 먹음직한 빵 사진이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이제 나는 무슨 빵이든지 맛에 익숙해져 있었다. 아메리카노는 잘 없지만 카페콘레체는 언제 마셔도 달콤했다. 그리고 샌드위치나 치즈를 넣은 베이글도 좋았다. 아니면 머핀이나 쿠루아상 같은 부드러운 빵도 언제 먹어도 맛있고 커피와 안성맞춤이었다.
이른 아침 리바데오(Ribadeo) 거리는 찬바람이 불어 약간 스산했다. 그래도 곧 파란 하늘 위로 해가 불쑥 치고 올라와 온기가 금방 도시를 채울 것 같았다. 리바데오는 곧이어 아름다운 여명이 멀리 대서양 바다 위로 올라와 하늘을 붉게 물들고 말았다.
지금 순간이 북쪽길에서 만나는 마지막 바다를 볼 수 있는 시간이고 소중한 기억이었다. 그동안 내가 걸어오면서 보았던 광활한 대서양 바다는 닫혀있던 가슴을 오랫동안 열어주었던 소중한 시간들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카미노방향은 이제 리바데오 시내를 벗어나 도로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노란 화살표가 있었다. 그곳에는 밀크빛 색깔의 깔끔하고 미끈한 자작나무 숲길이 계속 이어지고 낙엽 때문에 걷기에는 한적하고 좋았다.
숲길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고 가끔 숲에서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나뭇가지들이 흔들거리며 내는 윙윙 소리가 차디찬 겨울 느낌을 주어서 상당히 거슬리기도 하였다. 혼자 숲길을 걸어갈 때마다 겨울철 카미노는 긴장을 해야 했다.
정오가 지나가며 하늘에 먹구름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아 나는 바짝 긴장을 하며 바삐 걸었다. 숲길을 벗어나자 내리막 길이 나타나고 다시 자동차가 지나가는 아스팔트 길로 나왔다.
텅 비어 있는 시골길에 가끔 자동차들이 나타나 재빠르게 내 옆을 지나갔다. 이곳에는 오래전에 가동을 멈춘 듯 낡은 지붕의 화학공장이 있었고 나는 그곳의 회칠된 공장의 담벼락 옆을 지나갔다.
아스팔트가 깔린 도로를 지나가다 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사과를 꺼내 먹으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걸어온 방향에서 장대 같은 무거운 지팡이를 땅에 치면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키가 상당히 커 보이는 남자 둘이 가까이 걸어오면서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반가워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손을 흔들었더니 그들은 아주 반가운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내가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더니 50대 중반의 월터는 독일에서 20대 청년 로버트는 미국인이었다. 나는 외롭지 않으려고 배낭을 서둘러 메고 그들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월터와 로버트는 키가 크기 때문에 보폭이 길어서 나를 훨씬 앞질러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그들은 길가에 앉아 나를 기다려 주기도 했다.
숲이 우거진 산길을 걸어가다 월터가 점심을 먹고 가자고 해서 우리는 길 옆 풀 위에 주저앉아 배낭에서 간식을 을 꺼냈다. 젊은 로버트는 빵을 꺼내더니 오렌지와 사과 한 조각을 치즈와 함께 얹어서 즉석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오늘 목적지 Gontan 알베르게는 도시의 자그마한 공원 옆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알베르게 시설은 보기 드물게 현대식 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호스피탈레노 또한 젊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스페인 말을 곧 잘하는 로버트와도 의사소통이 잘 되었다.
로버트는 호스피탈레노가 예전에 미국 여행을 할 때 몇 가지 당황했던 사실을 말하자 한참 동안 그를 이해시키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우리는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큰 거리로 걸어갔다. 해가 이미 저물어 가는 거리는 어둠이 찾아오고 기온도 뚝 떨어져 추웠지만 젊은 로버트는 반팔 티셔츠를 입고도 추운 기색이 없었다.
거리를 지나가다 손님들이 북적거리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로버트는 생선과 수프 그리고 월터는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나는 싱거운 메뉴인 샐러드와 콩 슈트를 시켰다. 월터는 생맥주를 두 잔이나 시켰는데 독일인들에게는 맥주가 생활에 일부로 느낄 만큼 평소에도 바에서 음료수나 물 대신 자주 맥주를 주문했었다. 우리는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 즐거운 기분으로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로 돌아오는데 월터와 로버트는 60년대 팝송을 목청 높여 부르며 흥이 나서 인적이 없는 골목길을 걸어갔다.
오늘은 내가 걸음이 느리기 때문에 로버트와 월터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빨리 출발할 생각으로 배낭을 챙겨서 일찍 식당으로 내려왔다.
한국에서 가져온 인스턴트식품인 시금치 된장국 블록과 누룽지를 끓여서 먹고 있을 때 벌써 월터가 들어왔다. 내가 “올라”하고 인사를 하고 나서 월터에게 내가 걸음이 느리니 먼저 출발하겠다고 했더니 조금 후에 보자고 하면서 어제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음식 꾸러미를 들고 다시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는 상당히 자기의 행동에 엄격한 듯 매사에 규칙적이며 행동이 흐트러지지 않는 정통 독일인 같았고 준비성이 강해서 항상 간식거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심심할 때 수시로 꺼내 먹는 완벽한 사람인 듯했다.
그러나 젊은 로버트는 좀 늦게 일어나 여유만만하게 출발하는 편이지만 걸음이 빨라 곧장 내 뒤를 따라와서 “천”하며 반갑게 아침 인사도 나누는 쾌활한 미국 청년이었다.
알베르게를 출발하고 4시간쯤 지나 곤탄(Gontan)을 지나갈 때 월터와 로버트가 뒤에서 나타났다. 월터는 말린 무화과를 호주머니에 넣고 걸으며 수시로 꺼내서 먹다 나한테 몇 개씩 주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에 살고 있고 건축회사에 다니며 한 달간 연가를 내서 카미노 걷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미국 청년 로버트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대학을 다닌다고 했다.
오늘 카미노 구간은 상당히 길어서 늦은 오후가 되어 비랄바(Vilalba)에 들어갔다. 거리에는 건물들이 점점 많아지면서 공장 건물들도 많이 보였다.
알베르게는 시내로 들어가는 초입에 있었으며 호스피탈레노는 메모지에 연락처를 붙여놓고 자리에 없었다. 아마 겨울철에는 찾아오는 순례자가 별로 없기 때문에 호스피탈레노는 연락을 받으면 달려와서 출입문을 열어주는 것 같았다. 월터가 전화를 해서 호스피탈레노와 연락을 취했다. 그가 알베르게 도착하는데 40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우리는 근처에 보이는 바에 가서 맥주나 마시자고 했다.
호스피탈레노가 나타날 때까지 바의 어닝 아래 놓인 원형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기다렸다. 거의 한 시간이 지나갈 무렵 여자 호스피탈레노가 나타나서 순례자 등록을 해 주었다. 가끔 공립 알베르게는 자원봉사자가 관리를 하기 때문에 자신의 본업이 있으면 알베르게 관리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 같았다.
저녁 시간이 되자 유쾌한 로버트가 오늘은 'Thanks Giving Day'라고 떠들면서 만찬을 제안해 우리는 시내의 레스토랑을 찾아가 칠면조 요리 대신에 닭고기를 먹으면서 추수감사절 식사를 즐겼다.
우리는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추수감사절을 핑계로 식사와 맥주로 정찬을 즐기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그러나 로버트와 월터는 알베르게 식당에서 마치 부자지간처럼 얘기를 나누다 침실로 올라왔다.
어젯밤에 기온이 많이 내려갔는지 창밖으로 밖을 내다보니 서리가 내려 마을이 하얗게 변해있었다.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서리는 순례자들에게는 걸어야 하는 부담 때문에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오늘은 이룬을 출발한 지 딱 20일이 지났다. 그동안 날씨도 추워지고 비도 많이 내려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걷는 것과 먹고 자는 것은 상당히 익숙해져서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이제 열흘 정도 남은 거리를 체크하고 목적지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면 작년에 경험한 환희의 기쁨을 상상해보곤 했었다.
오늘도 내가 먼저 알베르게를 나섰다. 모처럼 아침 식사를 여유 있게 먹고 알베르게 밖으로 나와 길거리로 들어서자 밖에 세워둔 자동차들이 서리 때문에 모두 하얗게 변해 있었고 도로는 약간 미끄러워 조심스럽게 걸었다. 나는 숙소 앞 광장과 공원을 지나 개울이 지나가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갔다.
아침 날씨는 조금 추웠지만 그래도 시간이 지날수록 거리는 해가 차 올라 화창해졌다. 울창한 가로수 길을 걷다가 전신주에 붙어있는 카페 안내 전단을 보고 100미터쯤 떨어진 카페를 찾아가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의 따뜻한 기운이 좋아 카페콘레체를 주문하여 마시고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월터와 로버트는 정오가 되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카페에 잠깐 다녀온 사이에 지나갔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카페를 나와 그들을 혹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단념하고 그냥 걷기로 했다.
그들을 다시 만난 곳은 직선으로 뻗어있는 가로수 숲길이 었다. 내가 가끔 뒤를 돌아보고 누구라도 사람을 만났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걷다가 멀리서 월터와 로버트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내가 많이 기다린 듯한 모습을 보이자 먹을 것을 사러 마트에 다녀오느라 늦었다며 월터는 말린 무화과 2개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무화과가 입에 들어가자 마치 곶감을 먹는 듯 단맛이 났다. 월터는 매사에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이며 상대방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다.
도로 가장자리에 산티아고 107km 표지석이 나타났다. 이제 며칠 지나면 산티아고에 들어간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로버트는 나무 지팡이를 가지고 땅을 내려치며 걷는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 있는 시원한 아스팔트 길을 걸어갔다. 가끔 텅 빈 길에 자동차들이 미친 듯이 달려와 금방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노란 화살표는 리바데오에서 코루나로 연결되는 기찻길과 그리고 루고로 가는 철길이라고 안내판이 붙어있는 건널목을 지나 왼쪽 방향으로 걸어갔다.
이곳은 자동차들이 지나는 아스팔트 길바닥에 노란 화실표를 그려 놓아 눈에 잘 띄게 해 주었다. 이제 화살표는 철길을 건너서 벤치가 여럿 나있는 숲 속의 휴식터에 다다랐다.
개울을 지나는 다리를 건너 조용한 분위기의 공원이 나왔다. 이끼가 낀 벤치들과 캠핑을 하며 장작을 태운 흔적들도 남아 있었다. 개천은 물살이 빠르게 흘러갔다. 잠시 다리 위에서 심호흡을 크게 하며 마음을 정화시켜 보았다. 물살이 바위에 부딪히며 큰 소리를 내며 흘러갔다. 숲 속에는 오래전 수도사들이 기거했을 거 같은 자그마한 성당 건물이 있었지만 이제는 폐건물로 남아 있었다.
오늘 숙소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외딴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딱 한채뿐인 건물이 좁은 오솔길에 나타났는데 이런 곳에 숙소가 있을 거라고는 정말 짐작을 못했다.
숙소는 도심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곳에 있으며 근처에 개울이 있고 숲이 우거진 장소에 알베르게가 있어서 상당히 궁금했다. 일단 대문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자 회갈색 머리를 뒤로 넘긴 젊은 주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밖을 내다보며 방문객을 확인하는 듯해서 내가 “올라” 하자 우리들을 둘러보고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아마도 건물이 외딴곳에 있으니까 염려차원에서 순례자임을 확인한 후에 입장을 허락하는듯했다.
호스탈 내부는 심신이 지친 순례자들이 편안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넓은 소파와 개별 전등이 있는 침대가 있어서 마치 내가 숲 속의 어느 아늑한 안식처에 와 있는 느낌을 받도록 했었다.
호스피탈레노는 서비스에 대한 깊은 철학을 갖고 있는 듯 저녁을 준비할 때 그는 식당 셰프처럼 하얀 모자를 쓰고 에이프런도 걸친 채 우리를 위해 분주하게 순례자 메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숲 속에 있는 알베르게 건물은 일찍 찾아온 어둠 때문에 더욱 고요했고 창밖 전등 아래로 가랑비가 흩어져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저녁 식사 준비 완료를 알리는 호스트의 외침이 아래층에서 들려왔다. 오늘 이곳에서 지내는 순례자는 우리 일행 3명뿐이었다. 하얀 식탁보 위에 포크와 나이프, 스푼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곧 빵을 담은 바구니와 와인을 가득 채운 디켄터를 들고 와서 식탁에 내려놓고 다시 돌아갔다.
주인은 잠시 후에 메인 요리인 치킨과 호박 수프를 내왔고 연어 샐러드와 과일도 가져와서 식탁 위에 놓고 돌아갔다.
오늘은 북쪽길 카미노 구간 중 제일 오래 걸어야 하는 35킬로를 걸어 소브라도(Sobrado) 수도원까지 걸어야 했다. 새벽에 일어나서 여러 번 창밖을 내다보며 세차게 불어대는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무척 긴장을 해야 했다.
호스피탈레노가 아침 일찍 준비해 준 식사를 하고 나서 배낭 위에 우비를 걸치고 일행들과 건물 입구로 나왔다. 주인 부부가 우리를 밖에서 마중하면서 빗 속에서도 잘 걷기를 바란다고 위로를 해주었다. 우리는 부인의 제안으로 일행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이제 비가 쏟아지는 약간 경사진 언덕을 따라 올라갔다.
주위는 아직 어둡고 길은 벌써 흐르는 빗물 때문에 질퍽거려서 걷기도 불편했다. 그러다 숲길을 빠져나와 다음 마을로 들어섰을 때 비가 그치고 이제 우비를 벗어 배낭에 올려놓고 걸어갔다.
먼저 걸어가던 로버트가 버스 정류장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며 손을 높이 흔들며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지붕이 있는 버스 정류장 벤치에 앉아 비스킷으로 간식을 먹고 있을 때 햇살이 구름 사이로 삐쭉 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이 조금 전보다 훨씬 밝아지자 나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조금씩 안도감을 느꼈다.
수령이 오래된듯한 나무에 근처 70미터에 카페테리아가 있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앞서 걷는 로버트가 커피 한잔하자고 뒤를 돌아보며 외쳐서 우리는 카페로 들어갔다. 젊은 바리스타 남자가 끓여내는 고소하고 진한 커피 내음이 내 후각을 들춰내고 있었다.
비로 젖은 신발을 말리기 위해 카페에 있는 신문지를 말아 안으로 집어넣고 습기를 빨아들였다.
카페를 나와 오늘 목적지 소브라도를 향해 출발하자마자 하늘은 다시 잿빛 구름이 몰려오면서 주위가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하며 바람이 불어왔다. 얼마 전까지 느긋했던 분위기가 비구름 때문에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금방이라도 하늘에서 비가 내릴 거 같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순례자들은 비가 오는 날을 제일 두려워한다. 이제 심하게 불어오는 바람 때문에 플라타너스 나뭇가지가 몹시 크게 흔들리고 넓은 목장 옆을 지날 때는 빗줄기가 흩어져 멀리 날아가는 광경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우비를 다시 입고 챙이 있는 모자를 쓰고 걸어도 비가 얼굴에 부딪치며 안으로 들어왔다. 빗속을 계속 걸어가자 이제 신발 속으로 빗물이 들어오기 시작해서 걸을 때마다 신발 안에서 질퍽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젖은 양말 때문에 발가락들이 부딪히며 신경이 매우 거슬리기 시작했다.
도로에는 벌써 빗물이 빠르게 늘어나며 넘쳐나고 있었다. 카미노는 이제 다시 오르막 산길을 지나가야 했다. 나무 숲이 없어지고 한동안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너덜길이 계속되었다. 앞에서 불어오는 강풍과 세찬 빗줄기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편했다. 또 바지가 비에 젖어서 다리에 딱 달라붙어 왔다.
소브라도(Sobrado) 가는 길은 정말 험난한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가 잠시 멈추었다 계속 내리면서 마음은 심란해지고 프랑스길 메세타 지역을 지날 때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오가 훨씬 넘은 시각에 앞서 걷고 있던 월터와 로버트를 길가의 거의 쓰러져가는 폐가에서 만났다. 나는 비를 맞으며 따을 보면서 걷느라 완전히 기진맥진해서 그들이 있는 폐가로 들어갔다. 그들은 비를 피해 그곳에 들어가서 점심 겸 간식을 먹고 있었다. 뒤늦게 걸어오느라 지쳐 있는 나에게 옆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우선 물에 젖은 신발을 옆에 벗어 놓고 젖은 발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왼쪽 엄지발가락과 오른쪽 검지발가락이 약간 빨갛게 변해 있었다. 일단 발가락은 밴드를 붙이고 양말을 새것으로 갈아 신었다. 신발 속은 수건을 넣어 습기를 닦아냈다.
월터와 로버트를 먼저 보내고 차분하게 배낭에 넣어두었던 초콜릿과 오렌지를 꺼내 허기진 배를 채웠다. 배고픔은 사라졌지만 남은 거리를 계속 걸어갈 때 부어 있는 발가락이 괜찮을지 염려가 되었다.
잠깐이라도 앉아서 쉬었다는 안도감으로 신발을 다시 신고 밖으로 나왔다. 옅은 잿빛 구름들이 빠르게 반대편으로 흘러가며 빗줄기가 약해지고 있었다. 가느다란 빗줄기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어서 비는 이제 소강상태로 들어간 거 같아 약간은 안심이 되었다.
시골의 아스팔트 도로는 그동안 내린 빗물로 여러 곳이 넘치고 있고 언덕길을 따라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자 이제 소브라도 근처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근처의 높은 석조 건물들과 넓은 호수를 보면서 이제 오늘 힘들었던 순례길 걷기가 끝나가고 있다는 예감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사실 매일 목적지가 가까워지면 기운이 다시 살아나고 힘도 나기 시작했다.
안개에 가려졌던 도시가 드디어 가까이서 보이기 시작하며 오늘 도착지 소브라도(Sobrado) 수도원의 뾰쪽한 첨탑과 돌로 쌓은 사각형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시내로 가까이 들어서자 이곳은 고대 문명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 분위기를 풍기고 비가 그친 뒤 정적이 무겁게 흐르는 느낌의 동네가 나타났다.
수도원 건물은 모두가 커다란 돌들로 축조되었고 외부에서 볼 때는 바깥세상과 단절된 느낌을 주는 적막한 건물이었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수도원 대문 앞에 월터와 로버트가 주저앉아 개방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후에 큰 문이 열리며 호스피탈레노가 밖으로 나와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수도원 건물은 입구에 알베르게로 사용하는 건물이 있고 좀 떨어져 있는 곳에 수사들이 거처하는 공간이 따로 있다고 했다.
이곳 소브라도 수도원에는 2명의 한국인 수사님이 기거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를 받고 성물방을 둘러보다 가리비 모양의 금속 성물에 십자가와 성인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 키 고리를 다섯 개를 구입하고 배낭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호스피탈레노에게 한국인 수사님 면화가 되느냐고 물었더니 선뜻 알아보고 연락 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사실 한국인 수사님은 왜 이곳까지 와서 수도 생활을 하는지 매우 궁금했다. 나는 어설픈 가톨릭 신자이지만 고행스런 사제의 길을 가고 계시는 신부님과 수도에 전념하는 수사님을 볼 때마다 본인의 인생을 오직 하느님에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뜻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성물방을 나와 건물 안으로 통하는 문을 지나 알베르게로 사용하는 사각형 건물로 갔다. 그곳은 무거운 분위기가 내리는 계단들과 회랑에 아기 천사들이 그려진 커다란 벽화, 그리고 성인들의 활동들을 묘사한 그림들로 꽉 채워져 있었다.
숙소의 배정된 침대에서 일단 젖은 옷을 갈아입고 젖은 옷은 난로 근처에 걸어놓고 말리기 시작했다. 내가 샤워를 하고 돌아왔더니 늦게 칠레에서 온 여성 순례자가 들어왔다. 로버트는 반색을 하며 내일부터 같이 걷자고 제안을 했다.
저녁이 되어 우리 일행 4명은 근처의 식당을 찾아갔다. 오늘은 로버트가 와인을 주문했고 그리고 스테이크와 샐러드로 만찬을 이어갔다.
일곱 시가 넘어 수도원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호스피탈레노가 한국인 수사님이 8시에 나와 만나겠다는 전갈이 왔다고 일러주었다. 나는 이렇게 멀리 떠나와 스페인의 외진 곳에서 수도생활을 하시는 수사님을 만나는 것 만으로 약간 흥분되었다. 영화에서 가끔 보았던 머리를 덮는 검정 망토 또는 회색 망토를 걸친 수사님들은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생활은 어떨까 궁금했었다.
여덟 시에 수사님이 면회가 허락된 성물방 옆 벤치로 나오셨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옆에 앉았다. 정말 회색빛 망토를 걸치셨고 이곳에 온 지 8년이 되었다고 했다. 대구가 고향이며 2년 전에 집에는 한번 다녀왔다고 하며 수도원 텃밭에서 가꾼 채소를 시장에 팔아 생활하며 수도원에 거주하는 수사님들은 자급자족하며 잘 지낸다고 하였다. 그리고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수사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했다.
나는 그만 들어가셔야 한다고 일어서는 수사님을 그대로 보내 드리고 말았다. 무엇이라도 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지만 실행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
아침에 수도원 알베르게를 나서자 가슴이 확 넓어진 듯 공기가 시원했다. 초겨울의 갈리시아 하늘은 어제 쉼 없이 내렸던 빗줄기를 멀리 보내고 이제 짙은 잉크 빛 색깔로 화창했다.
오늘은 일행이 4명으로 키가 자그마한 여성 순례자 캐럴이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키가 큰 로버트는 멀찌감치 떨어져 걷고 있었고 역시 나는 맨뒤에서 여유를 갖고 걸어갔다. 아루스와는 작년에 프랑스길을 걸으면서 지나갔기 때문에 사실 이번에는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
우리 일행들의 분위기는 조금 달라져가고 있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오며 젊은 로버트와 캐럴은 서로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천천히 걸었고 또 지나가는 길에 카페가 있으면 자주 쉬었다 가는 여유를 가졌다.
우리는 오후 일찍 아루쓰아(Arzua)에 들어섰다.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를 따라 인도를 걸어가며 가지런히 서있는 상점들이 있는 건물을 지나치며 걸어갔다. 나는 지난해에 이곳을 걸어가며 가졌던 특별한 추억을 찾아가며 걸어갔다.
공립 알베르게는 이미 걸어온 순례자들로 북적거렸다. 순례자 등록을 마치고 침대를 배정받아 배낭을 풀어놓고 그냥 누워있었다.
우리 침대 옆에는 유모차에 18개월 되는 유아를 데리고 순례길을 걷고 있는 젊은 부부가 있였다. 그들 부부는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할 정도로 강인한 체력을 지녔고 생장에서 하루에 40킬로씩 걸어서 20일 후에 산티아고에 도착할 것을 계획하고 진행 중이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에 이 부부는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아이의 유모차를 서로 끌면서 거의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오늘은 아침에 배낭을 정리하다 앞 침대에서 지낸 한국 젊은 청년을 만났다. 어제 늦게 이곳에 도착했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복학하기 전에 산티아고 길을 걷겠다고 야심 차게 찾아온 젊은이였다.
나는 월터와 로버트. 캐럴을 먼저 보내고 비가 내리는 언덕 숲길을 걸어가며 오랜만에 우리말로 대화하면서 걸어갔다. 나는 걸음이 점차 늦어지기 시작하면서 젊은이에게 먼저 가라고 일러주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나는 혼자 걷고 있는 동안 더 이상 그를 만나지는 못했는데 다음 날 산티아고 대성당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러 온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가까워 올수록 사람들의 표정은 힘들기보다는 더욱 밝아진 표정들이었다. 어젯밤에 우리 일행들은 숙소에서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 월터와 로버트는 산티아고에서 이틀정도 쉰 다음 월터는 걸어서 피니스테라로 갔다 독일로 돌아간다고 하고 로버트는 버스로 피니스테라에 갔다 이틀간 지낸 후에 덴마크를 거쳐 집이 있는 미국 샌디아고로 돌아간다고 했다. 캐럴은 산티아고 이후의 일정은 없지만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거쳐 칠레로 돌아간다고 했다.
순례길은 이제 산티아고 근처의 작은 도시들을 지나가고 있었으며 주변의 풍경들은 서서히 도시의 건물들로 분위기가 한껏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아스팔트 길에는 공장 건물들이 많아졌고 회색빛 벽돌 건물들과 조립식 건물들도 많아졌다. 이룬을 떠나 그동안 오랫동안 보고 지냈던 자연의 녹색에 대한 풋풋한 감정들의 소중함은 이내 사라져 버리고 그냥 이런 복잡함이 더 좋아 보였다.
나는 그만 나 자신의 변덕스러움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거 같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비바람이 흩날리며 아스팔트 길이 적셔지고 있었다. 앞에서 불어오는 비바람 때문에 허리를 구부려 머리를 숙이고 걸어야만 했다.
내 앞의 먼발치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큰 키의 로버트가 안쓰러워 보였다.
오늘 “Pedrouzo”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나는 그동안 내 몸에서 긴장하고 있는 세포들을 방출하고 싶어 했다.
정오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주위는 여전히 약한 빗줄기 때문에 어두웠고 발걸음도 늦어지고 있었다. 오늘 순례길은 도시 근처에서 보기 힘든 넓은 과수원 옆을 지나가며 겨울에도 푸르름을 그대로 지닌 목장의 넓은 목초지대도 지나갔다.
이제 비는 완전히 그치고 하늘이 파랗게 열리면서 도시의 높은 건물들이 점점 많아 보였다. 이층 흰색 건물의 주택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날 때는 어린 학생들이 내리는 스쿨버스가 보이고 아이들을 기다리던 엄마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들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도 참 오랜만에 정겹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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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카미노 노르테의 마지막 알베르게는 순례자들로 북적거렸으며 다들 들떠서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내일 산티아고 오브라이도 광장에 도착하여 12시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려면 좀 일찍 출발하여야 해서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어섰다.
그러나 새벽에 손등이 가려워 순간적으로 헤드렌턴을 켜고 가려운 곳을 들여다보니 베드벅에 물렸는지 손등이 빨갛게 부어 있었다. 알베르게 실내가 더워서 팔과 다리를 침낭 밖으로 내놓고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공격을 해서 빨간 자국이 생겼다. 이곳까지 베드벅에 물리지 않고 잘 지내왔는데 하루를 남기고 이런 일이 생기니까 약간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아침 5시에 잠이 깨어 침대 위에서 숨죽이며 뒤척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뒤따라 월터도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났다. 부지런한 월터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일어나 나와 같이 배낭을 꾸리고 옆 침대에 자고 있는 로버트를 깨웠다.
나는 아래층 식당으로 조심조심 내려와 그동안 배낭에 넣어두었던 누룽지 봉지를 꺼내 냄비에 끓여서 훌훌 들여 마셨다. 커피는 걸어가다 카페에 들러 먹을까 하다 마침 지퍼백에 남은 홍삼가루가 생각나서 남은 뜨거운 물로 휘저어서 월터와 나누어 마셨다.
로버트는 버터를 꺼내 쿠키에 바르더니 그 위에 얇은 사과 한 조각과 치즈를 얹어 대충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일행들과 마지막 날을 기념하는 파이팅을 외치고 출발을 했다.
11시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순례자 사무실을 찾아가 순례 완주 증명서를 받고 12시 미사 후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에서 저녁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나의 두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는 이제 끝으로 가고 있었다. 등산화의 흐트러진 끈을 고쳐 메고 있을 때 신발 앞쪽 창이 약간 벌어진 틈이 생긴 것을 발견했다. 월터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Camino Souvenir' 라 고 말을 던졌다.
그래 이제 집에 가면 과감하게 벗어던져 버려야지 하고 혼잣말로 하다가 그래도 이 신발이 나와 함께 오랫동안 탈없이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고 생각하니 버리지 말고 기념으로 신발장에 보관하자 하고 마음을 바꾸었다.
월터와 로버트가 걸어가는 모습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끝낸 로버트와 칠레에서 온 캐럴이 떠날 준비를 끝냈다. 출발을 위해 숙소밖으로 나오자 아직은 어둠이 남아있고 살짝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순례길 마지막 날까지 비가 내려서 마음이 심란한 거 같았다. 나는 걸음을 잠깐 멈추고 우비를 꺼내 입고 비를 피할 수 있도록 신발끈도 확인하였다.
어둠침침한 산길로 들어서자 앞이 잘 안 보여 월터가 플래시를 켜고 앞장서서 분대장처럼 성큼성큼 걸어갔다. 길을 따라 빗물이 빠르게 흘러 내려오는 오르막 길에 들어섰다. 그래도 간간이 나타나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남아 있는 거리 표지석이 무척 반갑게 느껴졌다. 우리 앞에 목적지까지 거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가끔씩 물 웅덩이를 지나가면서 발 디딜 곳이 마땅하질 않아 스틱을 지렛대 삼아 건너 뛰어가기도 하였다. 날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빗줄기가 잦아들고 드디어 흩어진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나왔다. 그래도 낮 기온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숨을 쉴 때마다 입 밖으로 뜨거운 입김이 품어 나왔으며 콧물도 자주 나왔다. 우리는 점점 대성당이 가까워질수록 상당히 들떠 목소리가 커졌으며 월터와 로버트 그리고 캐럴은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갔다.
내 시야에서 그들이 사라지자 나는 그들과 꼭 같이 걸어야 하는 생각을 포기한 채 좀 여유 있게 걸어갔다.
내가 일행들을 다시 만난 곳은 조그만 마을 카페였는데 로버트가 고맙게도 내가 즐겨 마시는 카페콘레체를 미리 주문해 놓아 도착하자마자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었다. 월터는 비에 젖어 축축한 신발을 말리기 위해 카페에 버려둔 신문지를 돌돌 말아 신발 속에 넣어 습기를 없애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비 오는 날 소브라도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서 처럼...
나는 커피와 블루베리를 간식으로 먹고 바깥으로 나왔다. 드디어 우리 앞에 산티아고 4.7km라는 거리 표지판이 나타났다. 일행들이 약간 승리에 찬 기쁨으로 술렁거리며 걸어갔다. 발걸음이 조금 전보다 더 빨라진 듯 보였다.
도시의 높은 건물들이 나타나 보기에 좋았다. 무언가 풍족한 물건들이 어딜 가나 보일 듯했다. “Monte Do Gozo" 알베르게 팻말을 보면서 나의 가슴도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정신이 혼미해질 듯이 걸음이 빨라지며 자동차들이 줄지어 지나가는 찻길의 보도블록 위를 걸어갔다.
우리는 횡단보도를 건너가기 위해 오랜만에 초록색 빛의 신호등을 만났다. 그리고 산티아고 외각 도로에 들어서자 멀리 무지개가 우리를 축하해 주었다.
길 건너편에 “Santiago de Compostella”라는 반가운 사인이 보이자 모두 그곳으로 몰려가 어깨동무를 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앞서 걷는 순례자들의 뒤를 따라 우리는 드디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의 오브라이도 광장에 들어섰다. 마침내 힘들고 지친 한 달간의 북쪽 길 여정이 이곳에서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우선 순례자 사무실로 몰려갔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이 줄지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순례완주증을 받고 정오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러 다시 대광장에 있는 오브라이도 대성당으로 갔다. 어제와 오늘 도착한 순례자들과 일반 관광객들로 성당 내부는 붐볐으며 사람들 틈새로 들어가 겨우 한 곳에 서서 미사 시작을 기다렸다. 오늘은 미사가 시작되고 이후에 어린이 성가대가 사운드 오브 뮤직 영회 테마송인 “에델바이스”를 부르자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성당의 미사 시간에 공식적인 성가 외에 일반 음악을 부른다는 것에 가톨릭의 진일보한 모습이 담겨있는 듯했다. 모든 전례가 끝나고 신부님이 오늘 도착한 순례자들의 국적을 하나씩 부르기 시작하자 해당하는 순례자들이 손을 들어 답례했다.
나는 대성당의 높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한동안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다. 이룬을 출발하여 한동안 외롭고 지치고 후회했던 몇 날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일어나서 출발하여 이곳까지 몸성히 도착할 수 있는 용기를 내 주심에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이제는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날만 남았다. 이번에는 피스테라와 묵시아는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 긴 겨울에 마음을 추스르고 싶었다.
두 번째 순례길은 2012년 12월 4일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멈추었다.
대서양의 짙푸른 쪽빛 바다와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는 끝없는 해변에는 계절에 묻힌 화려한 여름날의 흔적들이 여러 곳에 남아 있었고 인적이 끊어진 길을 걷는 동안에 나 자신의 또 다른 성찰 과정을 거치기도 했었다.
파르스름한 겨울 하늘에 검은 구름이 밀려오며 폭우가 쏟아졌을 때 나는 새로운 세상에 내동댕이 당한 설움으로 한동안 우울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나는 이런 모진 순간들을 절대 잊지 않을 생각이다.
또 두 번째 순례길을 떠나게 격려해 주고 염려해 준 우리 가족들에게 한없이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