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Jean Pied Port,Santiago Compostela
.
이곳은 카미노 프랑세스(Camino Frances)의 출발점이다. 피레네 산맥을 넘너가는 길목에 자리한 생소하고 낯선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는 의외로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가고 있었으며 다리를 사이에 두고 검푸른 강물이 넘실대며 흐르고 있었다.
나는 상당히 긴장되어 있었고 사람들에 뒤섞여 호스탈. 레스토랑. 카페. 여행자안내센터가 줄지어 나란히 있는 길로 들어서서 생장의 중심지역 시타델(Citadel) 거리를 지나갔다.
거리에는 순례길을 떠나는 사람들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으며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갖는 길가의 레스토랑과 카페 야외 테이블에는 순례자들과 유럽의 시니어들로 보이는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이젠 나도 떠날 준비를 위해 가야 할 곳이 있었다. 골목길의 경사진 언덕을 따라 올라가다 순례자 여권을 받기위해 순례자 사무실(Accueil St. Jacques) 앞에 줄을 섰다. 내 차례가 되자 자원봉사자가 순례자 여권(Credential)에 첫 스탬프를 받고 삐걱거리는 의자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따라 이어지는 언덕을 올라가 멘디구렌 성채(Citadel of Mendiguren)를 찾아갔다. 1628년에 건축한 중세 나바레 왕국의 요새.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한 이곳에 올라서자 마을 전체가 조망되었다. 피레네산 능선을 뒤에 두고 마을은 회갈색 벽돌 건물의 집들과 굴곡진 목초지 그리고 하얀색 집들이 산 능선 아래까지 드문드문 이어지고 있었다.
낮 동안 포근했던 생장의 날씨는 해가 저물어갈 무렵 산줄기를 따라 햇살을 거두어 가고 있더니 얼마후에 완전히 저 산아래로 사라지면서 어둠이 찾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벌써부터 낯선 곳에 홀로 떨어진 느낌을 갖게되고 긴장과 기대감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언덕을 내려왔다. 카미노의 첫날이 지나면 모든 순례자들은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가는 경험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이다.
나는 첫날을 오래된 목조건물의 호스텔에서 지냈다, 근처의 알베르게에서 머무르지 않고 혼자 지낼 수 있는 숙소를 원했다. 대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 프랑스 할머니가 정해준 이층방으로 가기 위해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복도를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소리가 상당히 신경에 거슬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복도의 마지막 방에서 걸음을 멈추고 구리 색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조금 열러 있는 창밖으로 오후 햇살이 희미하게 남아 비스듬히 방안을 비추고 있었으며 침대는 흰색 베드커버로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창 쪽으로 조그만 탁자 하나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호스탈 건물 뒤뜰에는 갈색잎의 너도밤나무와 짙은 초록색 대나무 숲이 있었고 나무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때문에 그곳에는 쉭쉭소리가 나며 가지들이 흔들리는 모습이 드러나고 있었다.
생장 마을은 피레네산맥 끝자락으로 부터 어둠이 일찍 내려와 창문을 닫고 오래된 형광등 불빛이 흔들거리는 방에서 나는 노란색 가이드북을 꺼내 들어 내일 걸어야 할 코스를 탐색했다. 두꺼운 책은 나에게 무겁게 느껴왔고 어제부터 누적되어온 피로가 밀려오기 시작해 나는 눈커플을 비벼대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갔다.
늘상 그렇듯이 외국에 나오면 체험하는 '시차'라는 불청객이 또 찾아왔다. 새벽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 복도 끝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와서 시계를 들여다보니 이제 새벽 5시가 조금 넘어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워있었지만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그냥 일어나서 어두운 룸의 스위치를 올리고 불을 밝혔다.
어제 저녁에 사둔 쿠루아상과 오렌지쥬스로 이른 시간에 식사를 하고 출발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이곳을 나가면 이제 그동안 모아둔 나의 카미노가 시작됨을 알리는 것이다. 침대 근처에 둔 물건들을 하나씩 챙겨 배낭에 집어넣고 조심조심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와 밖으로 나왔다.
알베르게를 빠져나온 골목길에는 벌써 순례자들이 듬성듬성 모여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길을 따라 내려가며 담벼락에 표시된 가리비 표식과 노란 화살표를 따라 성모승천성당과 연결된 아치형 건물을 지나갔다. 어둠속에서도 다리 아래를 빠르게 흘러가는 니브강의 물살이 보였다. 짧은 다리를 건너 에스파냐 문(la Porte d'Espagne)을 지나고 헝빠흐 광장(Pl.des Remparts)으로 나왔다.
헝빠흐광장에는 오리송(Orisson)}으로 가는 안내판이 보였으며 순례자들은 옹기종기 모여서 심호흡을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 둘씩 자리를 떠나 까미노의 첫걸음인 나폴레옹 루트에 들어섰다. 이젠 내 차례가 왔으며 나도 그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피레네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피레네 산맥의 뢰페르네 능선으로 향하는 카미노(순례길)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헝빠흐광장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순례길 표시를 확인하고 아담한 주택들이 나란히 있는 길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아스팔트길을 따라 단정하게 지은 하얀집들의 창문과 발코니에는 예쁜 꽃 화분들과 귀엽고 재치있는 소품들로 꾸며놓은 주택들을 보면서 나는 이곳에 살고있는 그들이 삶이 참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 일찍 마당의 잔디를 깍고있는 젊은 남자를 보았다. 웃자란 잔디가 제초기에 의해 짤리면서 공중으로 넓게 흩어지고 있었다.
카미노는 겨울의 칼바람 추위를 이겨내고 이제 막 올라오는 여러가지 풀들의 초원지대를 지나고 다시 이어지는 능선을 향해 가고 있었다. 초원의 주변에는 가끔 양 무리들이 이제 자라오른 풀을 뜯고 있는 목축지대도 바라보며 지나갔다.
느릿느릿 언덕을 걸어오는 순례자들의 어깨에는 무거운 배낭이 걸려있었고 오로지 침묵으로 점철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진한 코발트 빛의 푸르른 하늘과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초원의 풀들이 광할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키가 크고 건장한 젊은 외국인 순례자들이 나를 지나쳐가며 “올라. 부엔카미노” 하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나는 그들을 향해 뒷전에서 ‘올라’ 하고 외쳤다.
카미노를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등뒤로 멀리 산능선 뒤에 숨어있던 붉은 해가 완연히 하늘위로 솟아 오르자 그들의 모습들이 그림자를 만들어 앞 쪽으로 길게 드러났다. 그리고 내가 걷고있는 길에도 뒤에서 햇살이 비치며 내 모습을 담은 그림자가 어느새 같이 걷고있었다.
내가 걷는 길은 이제 조금 더 가파른 언덕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호흡은 이전보다 조금 더 거칠어지기 시작하며 이마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훔치고 패딩안에 가려있던 가슴에도 땀방울이 천천히 적셔가고 있었다. 길을 멈추고 땀을 닦고 다운 자켓을 벗어 배낭에 집어넣고 걸었다.
내 앞에 시원하게 뻗어있는 길에 순례자들이 피레네산맥의 레퓌데르능선을 향해서 천천히 오르는 모습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생장피에드포르를 출발하여 두 시간이 조금 넘었을때 나는 오리송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오리송 알베르게 카페에는 커피와 간식을 주문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줄을 서서 기다리다 카페콘레체 한잔을 주문하여 받아 들고 밖에 마련된 경치 좋은 야외 테이블로 갔다. 그리고 배낭을 열어 어제 준비한 노란바나나를 꺼내 간식으로 커피와 함께 먹었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갖는 휴식은 마치 고생을 다한것 처럼 진한 여유를 느끼게 했다.
그런데 건너편 테이블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커플이 걸어와 배낭을 내려놓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나 서로 인사는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편안한 점퍼에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또 젊은이 답게 격식 없는 운동화를 신고 소박한 준비로 순례길에 나선 것처럼 보였다.
오리송 알베르게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은 평화로웠다. 아마 목축업을 하는 주민들이 긴 겨울에서 막 벗어나 기르는 소나 양들을 위해 열심히 풀을 뜯어 먹도록 목초지역을 옮겨가며 바쁜 시간을 보낼거라 생각하며 커피를 마셨다.
테이블에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조망은 연두 빛을 띈 구릉을 따라 마을들이 보였고 더 멀리는 피레네를 연결하는 산능선이 걸쳐 있었다. 청량한 하늘에 처음 맞는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이 시간이 갈수록 머리위로 강하게 내려 앉았다.
오리송 쉼터에서 기운을 얻은 순례자들은 다시 그 길위에 들어서고 있었다. 순례자들이 지나가면 곧이어 다른 순례자들이 뒤를 이어 걸어오고 있었다. 봄철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며 이제 순례길을 걷기 좋은 계절인 까닭이었다.
“올라”… “부엔 카미노” 내가 먼저 인사를 해본다. 그들이 큰 목소리로 “부엔카미노”하며 나를 지나쳐 앞서 걸어갔다. '올라'는 스페인 인사로 ‘안녕하세요’ 이고 ‘부엔카미노’는 ‘좋은 길 되세요'이다.
카미노는 얼마전부터 나무 한 구루 없는 구릉같은 지역의 초원지대를 지나갔다. 순례자들이 지나는 길옆 풀잎 위에 앉아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길을 벗어나 풀이 풍성한 지역인 약간 안쪽으로 들어가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얼굴을 들어 하늘을 향해 얼굴을 들었다. 하늘이 평소 보지못했던 청색과 파랑의 중간 빛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피레네산맥이 지나가는 능선들이 줄지어 마치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있는 풍경을 보았다.
봉우리를 향해 카미노는 계속 연결되어 있었고 순례자들은 쉬엄쉬엄 그리고 느릿느릿 한봉우리씩 정복하듯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렇지만 봉우리에 서서 뒤를 돌아보면 오랫동안 꿈꾸어 오던 순례길에 내가 서 있다는 현실만으로 모든 고통은 사라지고 말았다.
스페인과 프랑스를 사이에 두고 북쪽 대서양에서 남쪽 지중해까지 걸쳐 있는 광할한 피레네산맥을 넘어가기위해 순례자들은 마침내 최종 목적지 산티아고에 도착하기위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오며 햇볕은 조금 더 뜨거워지기 시작했으며 초원에는 드문드문 보랏빛 에델바이스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었다. 넓게 형성된 구릉에는 지쳐가는 순례자들이 길에서 벗어나 풀위에 배낭을 머리맡에 두고 누워있는 모습도 보였다.
이 길은 단순하고 아주 무딘 길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소개하던 인간의 인내심을 최고조로 올리는 길이었다.
사람들의 영혼을 잠시 탈취해서 오늘의 걷기가 끝날 때야 비로소 돌려주는 길이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애초에 영혼없는 길을 계속 걷기를 각오해야 했었고 그들이 피레네산을 향해 오르며 지닌 무거운 배낭은 자신들 삶의 영겁일지도 몰랐다. 마치 버릴 수도 없는 꼭 지니고 생의 목적지까지 동반해야 할 귀중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쯤 걷고 있을 때는 순례자들은 대부분 대화가 사라졌다. 누구도 인사외에는 더 이상 아는 체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이나 연인과 식구들조차 이쯤에서는 대화가 사라졌다.
잠시후에 카미노 왼쪽 부근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소박한 비아꼬레 성모상이 나타났다.
비아꼬레 성모상으로 다가가 잠시 묵상을 하며 순례길에서 무사 안전과 내적 평안함을 간구하였다. 오늘은 카미노 프랑세스에서 가장 힘들고 고도가 높은 해발 1,344미터 벤따르떼야 언덕을 넘어가야 해서 순례자들은 고통을 이겨내야 했었다.
멀리 산능선위로 보이는 풍력발전기가 더위에 지친 순례자들의 발걸음처럼 느릿느릿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언덕길에는 순례자들이 더위에 지쳐 머리속이 하얗게 변해가며 더딘 걸음으로 움직였다. 길가에 주저앉아 물을 마시며 목을 축이는 순례자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할때 가이드북에서 읽었던 ‘롤랑의 샘’이 구세주처럼 나타났다.
나는 이미 지져있었기 때문에 느릿느릿 샘물이 나오는 입구로 다가갔다.
시원한 물이 나오는 꼭지에 컵을 대고 마음껏 물을 마셔 댔다. 그리고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샘물을 가득 채운 다음 근처의 평평한 자리에 앉아 쉴새없이 더 마셔 댔다. 그곳은 생명의 물이 나오는 구원의 샘이었다.
‘롤랑의 샘(Fuente de Roland)' 을 검색해보면 중세시대 샤를마뉴 대제의 기사인 롤랑은 패전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검 **뒤란달(Durendal)**을 사용해 바위를 쳐 샘을 만들었고, 그 물을 마셨다고 적혀있었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은 샘물을 마시고 근처의 바닥에 앉아 지치고 힘든 얼굴로 배낭에 기대어 눈을 감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또 다른 순례자들은 호흡이 어느정도 가라앉은 듯 배낭에서 간식을 꺼내 먹으며 마치 죽음 직전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제일 어려운 구간을 지나왔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도 좋았다.
그때 한국인 젊은 여자 순례자가 거의 쓰러질 듯이 숨을 몰아세우며 샘으로 다가왔다. 그는 내가 그랬듯이 철철 뿜어대는 샘물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여자는 많이 지쳐 있었으며 창백한 얼굴로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오랜 시간 햇볕을 받으며 산길을 오르는 일은 무척 힘든 일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내가 안타까움에 “걷는 게 많이 힘들지요?” 하고 물었다.
그녀는 너무 지쳐 있는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배낭에 가지고 있던 바나나 한 개를 건네며 말했다. “나도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기가 힘드네요”하고 말하며 “힘내고, 천천히 걸어가세요”하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이렇게 높은 곳인지 몰랐는데 너무 힘들어요” 라고 그녀가 입을 떼었다. 평소에 등산을 많이하는 나도 힘든데 거리가 27km 되는 숲이 없는 민둥산 같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자신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푹 쉬었다 오세요” 라고 그녀에게 위로를 전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순례길은 곧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길에 있었다. 그러나 표식은 아주 작아서 관심을 갖지않으면 어느새 자신이 스페인 땅을 밟고있는지 몰랐다. EU 국가들 사이에는 딱히 국경의 개념이 없고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기 떄문에 순례자들은 미처 인식을 하지 못하고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순례자들은 이제 높게 자란 침엽수림들로 꽉 들어차 있는 숲 사이에 만들어진 약간 평편한 길로 들어섰다. 지난 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이 아직도 좁다란 오솔길에 쌓여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신한 느낌을 주었다. 숲길을 따라 언덕 아래 방향으로 동물들이 벗어나지 못하게 철조망이 쳐저있었고 그곳 목초지에는 몇 마리의 소들이 모여 풀을 뜯고 있었다.
이제 뢰페데르 언덕으로 올라갔다. 피레네의 정점에 다 달았는지 능선을 가로지르는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 몇 명의 작업복을 입은 남자들이 픽업트럭을 두고 서 있었다. 멀리 능선 너머로 산불이 난 건지 흰 연기가 피어 오르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쪽을 바라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연기가 피워올랐던 사연은 산지를 개간하기위해 불을 피운것이라고 했다.
카미노는 이제 능선에 나 있는 아스팔트 길을 가로질러 내리막 숲 경사길로 들어섰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 숲길을 한시간 이상 걸어갈때 발가락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리막 경사길을 한참 내려오면서 발가락이 신발 앞쪽으로 밀리면서 생긴 통증 같았다.
나는 키가 크고 둘레가 넓은 너도밤나무에 기대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발바닥 열을 식혀주어야 했다.
배낭을 나무에 기대고 그 위에 비스듬히 누워 버렸다. 잠시 눈을 감으니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 힘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으나 마음은 편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다시 경사진 내리막 길을 한동안 내려가다가 계곡의 물소리가 들려오는 지점을 만났다. 깊은 산골의 운치를 더해주는 계곡에는 맑은 물살이 바위에 부딪치면서 소리를 크게 내고 있었으며 콸콸거리는 소리는 공명되어 숲 속으로 퍼지고 있었다. 주변에는 이제 막 피어난 가느다란 줄기의 토끼풀같은 들꽃들이 산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끝날 줄 모르게 이어지던 미루나무숲을 지나자 드디어 오른쪽에 회색 돌벽을 가진 수도원 알베르게 건물이 삐쭉 나타났다. 이제 첫날의 카미노는 이쯤에서 명백히 끝났음을 알려주었다.
'가시 골짜기'라는 의미를 갖고있는 론세스바예스(Roncesvalles)의 콜레지알레(Collegiale) 수도원 알베르게는 자원봉사자들이 140개가 넘는 침대를 관리하며 피레네 산맥을 힘들게 넘어온 순례자들에게 첫날 편안한 숙소를 제공하는 곳이다.
나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를 사전에 알지 못해서 근처 조그만 호텔을 예약했었다. 수도원을 지나 광장을 빠져나가는 길목에 있는 호텔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클래식한 분위기가 풍기는 로비가 나타났다. 대문에 달려있는 풍경이 소리를 내자 주인이 프론트로 나와 무덤덤하게 체크인을 하였다. 오랫만에 쇠붙이로 만든 열쇠를 받아 방안으로 들어갔다.
땀으로 흠뻑 젖어있던 속옷을 물로 씻어내고 샤워를 한후에 로비로 내려와 벤딩머신에서 캔맥주를 꺼내 바깥 테라스의 테이블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신록의 초록빛 숲이 보이는 방향으로 자리를 잡고 편안한 자세로 앉아 캔맥주 뚜겅을 열어 제쳤다. 고즈넉한 호텔 건물과 오랫동안 지켜온 수도원. 아담한 레스토랑이 자리한 아주 단순한 분위기의 론세스바에스 광장 서쪽에는 이제 해가 넘어가며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 나를 향해 검은색의 투박한 옷을 입은 남자가 걸어왔다. 그는 분명 한국 사람이며 순례자 느낌이지만 특수부대 군인같이 보이는 남자가 터벅터벅 나에게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시죠?”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습니다”
“저녁에 저기 보이는 식당에서 한국 사람들이 식사를 할 계획인데 같이 하시죠?” 하고 물어왔다. 남자는 강인한 윤곽에 체구가 나보다 큰 젊은 사람이며 인상이 좋아 보였다.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머무르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 식사 자리에 초대한 그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감사하다고 답례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내가 시니어라 젊은이들과 섞여서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되니 부디 이해를 부탁한다고 첨언했다.
이곳의 유일한 알베르게에는 식당이 없어서 순례자들은 바깥의 레스토랑에서 석식과 조식을 해결해야 한다고 들었다. 테이블에 남아있는 맥주를 마시고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서 식사시간까지 잠시 눈을 감았다.
일곱 시 알람이 울리자 나는 옷을 갈아입고 광장 모퉁이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 순례자들과 한국인 7명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를 초대한 검은색 옷을 입은 젊은이가 테이블 가장자리에 앉았고 롤랑의 샘에서 기진맥진하며 쓰러질 것 같았던 젊은 여성 순례자도 앉아 있었다.
여자가 나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젠 괜찮아요?”
그녀는 웃으면서 “이제 살만해요”하고 당당하게 대답을 했다.
레스토랑의 저녁 메뉴는 딱 하나밖에 없는 '순례자 메뉴'라고 하였다. 주인의 생각대로 만들어져 나오는 음식이라 순례자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무슨 요리가 나오든지 순례자들은 아마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있는 순례자들은 상당히 들뜬 분위기에 서로가 오늘 피레네를 넘으며 겪었던 고생스러운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떠들썩한 분위기였다.
식탁위에 바게트 빵이 담긴 바구니가 먼저 건네지고 레드 와인 병이 전달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스테이크와 따뜻한 단호박 수프도 나왔다. 식사와 곁들어 제공되는 와인이 옆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촉진제가 되었다. 한국인 순례자들은 검정 옷을 입은 젊은이의 압도적인 목소리에 빠져들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의 고생담을 들으며 각자의 글라스에 와인을 따르기에 바빴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르자 식사 합석을 권유했던 젊은이가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산티아고까지 걸으실 건가요?"
“그럼요” 당연한 질문을 묻는 그를 쳐다보며 응답을 했다. 그리고 앞에 놓인 레드 와인 잔을 들어 한모금을 마시면서 젊은이를 다시 응시했다. 나는 그가 범상치 않은 직업을 가진 젊은이라는 생각이 들어 질문을 했다.
“그런데 궁금한 게, 입고 있는 옷이 특별한 거 같은데 무슨 일을 하십니까?"
내가 질문을 하는 바람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나란히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자신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는 직업군인으로 전방에서 10년간 근무하고 작년 초에 전역해서 퇴직금으로 지금 세계일주 여행을 2년째 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중국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이동하며 중동 지역을 지나 유럽과 아프리카와 남미 국가들을 여행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6개월간 스페인어와 탱고 춤을 배우고 오는 길입니다”
그가 힘주어 말할 때 마다 한국인 순례자들이 식사를 잠깐 멈추고 와!! 하고 모두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제야 일반 순례자들이 입고 오는 옷과 달리 그 사람의 특별한 복장에 궁금증이 풀린 듯했다.
“퇴직금을 많이 받았나 봐요?”
“세계일주 여행할 정도는 가능했어요”
식사를 하고 있던 동석자들이 세계여행을 하고 싶은데 어느 나라를 다녀야 하는지, 한 나라에 가면 며칠씩 지냈는지 등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는 매우 신이 난 듯 목소리를 높여가며 대답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이제 또 어느 나라로 갑니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갑니다”
와!! 하고 모두가 다시 탄성을 올렸다.
“그리고 또 다음은 어느 나라에 갑니까?” 하고 젊은 커플의 여자가 질문을 헸다.
“모스크바에 가서 지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수에서 며칠 보낸 다음 블라디보스토크에 가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갈 겁니다”
그는 자신감이 넘쳐나는 얼굴로 모두를 압도했다. 아직 군인정신이 투철한 군인 같았다. 와인이 몇 잔씩 돌아가자 세계 일주를 하고 있는 그가 동석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관심을 끌고 있는 젊은 커플에게 순서가 먼저 돌아갔다.
커플은 IT업체의 프로그래머와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는데 얼마전에 프로젝트가 끝나서 태국에 갔다가 이곳에 대한 얘기를 듣고 곧바로 짐을 챙겨 이곳에 왔다고 했다. 역시 젊음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바로 떠날 수 있는 용기가 부럽기도 했다.
자신을 “부산의 중학교 국어 선생님. 대구에서 온 공인회계사, 광주의 응급의학과 의사. 인천의 치과의사” 라 고 소개를 했다. 모두가 쟁쟁한 경력을 소유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떠들썩하던 순례자들은 10시가 넘어서야 하나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깊은 산속의 고즈넉한 수도원은 초점 잃은 가로등들이 이곳 저곳에서 마당을 비추고 있었으며 밤하늘의 별들은 은하수를 이루며 수없이 아래로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이런 밤하늘에 대한 기억을 순례길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로도 한동안 내 가슴속에 여전히 머무르고 있었다.
첫날을 힘겹게 걸어온 순례자들은 둘째 날에는 전날과 달리 발걸음이 좀 가벼웠다. 어제 피레네산맥을 넘어오느라 피곤하겠지만 알베르게를 나서는 순례자들은 들떠서 이른 시간부터 바쁘게 서둘렀다.
호텔 식당에서 차려 놓은 콘티넨탈 부페식의 아침 식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어제 같이 식사를 했던 한국인 순례자들이 근처 광장에 모여 있었다.
구리빛으로 그을린 약간 투박해 보이는 얼굴의 세계 여행가 젊은이가 중세시대의 순례자처럼 묵직하고 큰 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다 나에게 다가오더니 오늘 수비리(Zubiri)에 도착하면 알베르게에서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하고 먼저 출발했다. 그는 걸음이 빨라서 얼마 후 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순례자들은 꽤 즐거운 표정들을 하고 있었고 어제와 달리 벌써 몸이 적응한듯 가벼운 걸음으로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아스팔트 포장 길로 걸어 나왔다. 자동차 길을 따라 걷다 하얀색 페인트가 드문드문 벗겨진 오래된 이 층 집들을 만났다. 그리고 한동안 시골길을 따라 걸어갈때는 가끔 자동차가 빠르게 다가왔다 휙하고 지나가는 바람에 놀라기도 했다.
한국인 순례자들은 이제 같은 일행이 되어 같이 걷고 있었으며 나는 맨 마지막에서 그들을 따라 걸었다. 카미노를 알려주는 순례길 방향 표시인 노란화살표가 나무나 바위에 표시되어 있어서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곳에는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들이 한동안 지속되는 길이었다.
론세스바에스 지역은 9세기부터 16세기까지 나바라왕국이었다. 풍성한 기후, 경관, 문화, 그리고 다채로운 역사와 전통이 가득한 지방으로 유럽의 순례길은 이곳 나바라(Navara)를 지나면서 한 개의 길로 합쳐진다.
이제 우리는 거침없이 나바라 전통마을 부르게테(Burguete)를 지나갔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이곳에는 유명한 문학가들이 머물렀는데 ‘빅 토르 위고'와 '구스타보 아돌프 베케르'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쿠바로 가기 전에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종종 머물던 부르게테 호텔은 마을 입구에 있다. 이곳에는 1923년 7월 25일에 헤밍웨이가 싸인을 남긴 피아노가 있다고 들었지만 보지는 못했다.
카미노는 마을을 벗어나 폭이 좁은 우로비강을 건너 숲길로 들어섰다. 나는 내 앞에 천천히 걸어가는 일행들을 앞질러 가며 “부엔 까미노”하고 여느 순례자들처럼 인사를 하였더니 모두가 합창하듯이 '부엔까미노'라고 외쳤다. 때때로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이 숲속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소리를 질러대며 날아갔다.
카미노의 둘째날은 어제와 달리 숲이 있고 작지만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햇볕이 가려진 숲때문에 시원한 공기가 스쳐지나가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우리의 발걸음은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숲을 벗어나 좁다란 길을 한 줄로 나란히 걸어가다 약간 경사진 길에 올라서자 우리 앞에 방송용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스페인 방송국 취재팀을 만났다. 순례자들이 걸어오는 모습을 담기 위해 오르막을 오르는 길에서 순례자들을 촬영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조금씩 올라가는 오솔길 근처에는 목장과 축사가 있었다. 축사에서 풍기는 소의 구수한 냄새가 훅하고 콧속으로 들어왔고 우리가 지나가는 길에는 소들이 이동하며 떨어트린 대변들이 퍼져있어서 조바심을 내며 피해걸어야 했다.
스페인의 자외선은 강하다고 해서 썬크림을 바르고 출발했지만 얼굴은 이미 땀이 흘러내려 손수건으로 닦아내야 했다. 하늘에 붉은 해가 서서히 높게 떠올라 이제 나른한 봄의 느낌이 발걸음을 느리게 만들었다. 우리 일행 중 세 명이 길가에 주저 앉아 있었다. 이마와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고 힘들어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웃으며 "힘들죠" 하고 그들을 위로했다.
젊은 커플과 부산에서 온 선생님은 오랫동안 걸어야 하는 카미노에 적응하느라 특히 많이 힘들어 했다. 나는 배낭에 넣어두었던 비스킷 ‘오레오'를 꺼내 그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제 두 시간정도면 오늘 목적지 수비리에 도착하니까 힘을 내자고 했다. 지독히 높은 경사진 길은 없지만 오늘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일거라 생각했다.
나바라주의 수비리(바스크어로 다리가 있는 마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맑은 시내물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냇물은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 보이고 물속에서 수초들이 물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조그만 다리를 건너자 오늘 목적지 알베르게 간판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대문도 활짝 열려 있어서 안쪽으로 들어가자 여자 호스피탈레노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크리덴시알에 스탬프를 찍어주었다. 물론 세계 여행가 젊은이는 벌써 도착해서 동네 산책을 나가고 없었다.
우리는 오늘도 걷느라 지친 표정들로 샤워장에 다녀오자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모두 꼼짝하지 않고 침대에 머물렀다. 세계 여행가 김바울이 모두를 밖으로 불러냈다. 그리고 마을의 식당으로 몰려가 스페인의 전통음식 ‘빠에야’를 주문하고 닭고기 요리도 주문해서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피레네산맥을 넘으며 롤랑의 샘에서 만났던 대구에서 온 젊은 회계사가 이제는 제일 씩씩하게 걷는다고 사람들이 칭찬을 했다. 부산에서 온 국어선생님은 ‘부르고스’에 가면 연박을 하겠다고 했다. 일행들은 식사를 하면서 점점 생기가 돌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것은 어려움은 없을 거라고 자신만만하게 떠들어 댔다.
이곳에서 김바울은 내일 먼저 떠난다는 선언을 했다. 발걸음이 빠른 그는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며 걸을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 이제 우리는 각자의 사정으로 점점 헤어지는 경험을 하게 될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알베르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긴 잠에 골아떨어졌다.
아침 일찍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일행들은 배낭을 꾸리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바울은 오늘도 긴 나무 지팡이를 땅바닥에 내리치며 걸어가더니 이내 바람처럼 사라졌다. 이제 멀리 떨어진 그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걸음이 빠른 젊은 일행들이 앞서 걸어가고 나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며 뒤에서 걸어갔다. 아르가강과 나란히 지나가는 너도밤나무와 떡갈나무 숲을 빠져나와 우리는 낡은 지붕의 주택들이 있는 채석장 옆을 지나갔다. 그곳에는 광물을 가공하는 의미의 ‘마그네시타스’ 라고 적힌 높은 굴뚝이 보이는 공장이 있었으며 얼마후에 '이야리츠'와 '에스키로츠'의 작은 마을도 지나갔다.
나바라 지역은 대체적으로 높지 않은 산을 끼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는 목장들이 많았다. 그곳에는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의 무리들과 때로는 하얀털을 갖은 양들의 모습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목장을 지나자 오솔길로 들어가는 울창한 숲을 두고 조금 떨어진 곳에 아르가강의 힘찬 물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햇볕을 피해 걸었던 그 길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바로 숲밖으로 빠져나와 중세 다리인 '시글로 14세의 다리'를 지나 이제 라라소냐 마을에 도착했다.
오늘은 비가 내릴거 같은 잔뜩 찌푸린 날씨에 공기는 약간 차갑고 스산한 바람도 불어왔다. 마을에는 습기에 젖은 잔디와 벤치 그리고 멋진 예술품 조각상을 세워둔 작은 공원이 있었다. 그곳에는
앞서가던 일행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젊은 커플이 배낭에서 초콜릿을 몇 개 꺼내서 일행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나는 어제 사둔 ‘오레오’ 비스킷을 꺼냈고 말린 무화과도 한개씩 나누어 가졌다.
IT 회사에서 일하며 짝이 되었다는 젊은 커플이 일행들에게 특별하게 관심을 많이 끌었다. 주로 여자 순례들이 질문을 많이했다.
“결혼은 언제 해요?” 인천에서 왔다는 중년의 치과의사가 물었다. 그러자 여자가 결혼 문제에 관심이 없는 듯이 말했다.
“아직 몰라요. 돈도 모아야 하고 여행도 즐긴 다음에 천천히 해야겠어요” 이번에는 질문을 했던 치과의사가 타이르듯이 한마디 던졌다.
“그러다 애뜻한 감정도 무뎌지면 결혼식도 까 먹는 거 아닌가요?” 치과의사가 농담조로 말을 이어갔다.
“결혼식이 하나의 형식 치례인데 중요하지 않은 거 같아요”. 커플 중 여자가 당차게 대답을 했다. 요즘 사회가 빠르게 변화하는 과정에서 그 중심에 있는 젊은 커플의 인식을 이해해야만 할 거 같았다.
“그래, 젊음은 이해가 다양해야 해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젊을 때 의미 있고 자유로운 시간을 많이 갖는 게 당연한지도 몰라” "그러다 문득 해야겠다 싶으면 준비해서 하면 되지요" 국어선생님이 젊은 커플을 거들었다. 응급의학과 의사도 끼어들었다. “기성세대들이 하지 못했던 자유로움을 젊은 세대들은 실천하는 시대라 그게 요즘을 살아가는 옳은 생각일 거야” 라고 결론을 내렸다. 모두가 한마디씩 거들었지만 나는 침묵을 지켰다.
우리는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찻길을 건너 숲이 있는 약간 경사진 언덕을 넘어 다시 목장의 목책 울타리가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정오가 지나고 이제 느릿느릿 봄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처음으로 우비를 꺼내 입었다.
비가 내리는 날, 스페인의 농촌은 약간 목가적인 풍경을 맛보면서 걸어갈 수 있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시골길은 더 우수에 젖은 것처럼 조용하고 마침 도로를 지나가는 자동차들도 뜸했다. 앞서 걷고있는 일행들은 말없이 걷기만 했다. 어쩌면 우울해 보였다.
이제 낮은 건물들이 자주 나타나며 팜프로냐로 들어가는 길에 가까이 다가선 느낌이었다. 대도시처럼 크고 작은 공장 건물 몇 개가 나타났으며 가끔 빌딩과 주택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도시로 들어가는 가로공원에는 비에 흠뻑 젖어 축 늘어진 수양버들이 이끼 낀 돌담을 따라 나란히 서 있었다.
이제 우리는 공원을 가로질러 고딕양식의 중세 다리인 막달레나 다리를 지난 후에 프랑스 문(Portal de Francia)을 통과하여 웅장하게 서있는 거대한 성채를 만나고 멀리 팜프로냐 대성당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팜프로냐(Pamplona)’는 인구가 20만명이 넘는 교육도시이다. 그리고 매년 7월에 열리는 ‘산페르민’ 축제는 엔시에로(Encierro)라는 황소 달리기로 산 사트루니노 성당의 시계가 아침 8시를 알리면 황소들이 산토 도밍고 거리를 825미터 달려 투우장으로 이동하는데 이때 시민들이 황소몰이에 참여하는 축제로 아주 유명하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소설에서 산페르민 축제가 등장한다. 이 도시는 매우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데 서기 275년 게르만 족의 침략, 8세기에는 아람의 지배를 받았고 산초 3세 시대에 나바라 지역의 순례길이 자리를 잡으며 도시가 발전했다고 하였다.
성채의 문을 지나 알베르게를 찾아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네모난 까만 돌을 길에 깔아 조성된 골목길은 걷기에는 불편하지만 이 길을 조성한 로마시대의 마차들은 지나가기에 편리했을 거 같았다. 드디어 높은 석조 건물 앞에 멈추었다. ‘알베르게 헤수스 마리아(Jesus y Maria)’ 라고 안내판이 자그맣게 벽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높이가 커다란 대문을 밀고 들어가자 리셉션에 앉아있던 젊은 남자와 여자 호스피탈레노가 “올라” 하고 인사를 먼저 하며 우리의 등장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친절한 매너와 마음에서 우러나는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나는 왠지 순례자로서 받는 혜택이라 생각했다.
우리는 호스피탈레노가 정해준 침대를 찾아 복도를 지나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알베르게는 매우 큰 규모로 넓고 천정이 높아 우선 답답하지 않으며 실내 공간에 이층 침대들이 나란히 양편으로 놓여 있어서 번호를 확인하며 내가 지낼 침대를 찾을 정도였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막기위해 침대마다 커튼이 쳐 있었고 매트리스도 하얀색 배드 커버가 잘 씌어져 있어서 맘에 들었다.
나는 배낭을 머리맡에 두고 우선 샤워장으로 갔다. 규모에 어울리게 여러개의 샤워장과 화장실이 있었다.
일행들이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마트에 가자고 해서 프론트로 갔다. 프론트에 있던 호스피탈레노가 지도를 보여주며 동양인이 운영한다는 마트를 소개해주었다.
우리는 보슬비가 내리는 골목을 걸어가며 밝게 불이 켜진 상점들을 구경했다. 그곳에서 오리엔탈 식품점이라는 간판을 보고 들어갔다. 역시 계산대에 있는 중국인이 주인임을 담박에 알아챘다.
우리는 저녁 식사 재료로 고기와 와인을, 약간의 채소 그리고 쌀을 사고 내일 걸으면서 먹을 과일과 봉지에 들어있는 마들렌 빵도 구입해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이층에 있는 주방으로 다들 올라가서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응급의학과 의사 선생과 젊은 커플이 나서서 스테이크용 소고기를 프라이팬에 굽고 상추를 씻었다. 또 회계사가 주방에 비치된 냄비를 꺼내 쌀을 물에 씻어 밥을 준비했다.
긴 테이블의 식탁은 일곱 명이 앉아 식사하기에도 충분했다. 나는 비행기안에서 승무원에게 얻은 튜브 고추장 4개를 준비했다. 깨끗하게 씻은 양상추에 고기를 얹어 그 위에 고추장을 바르고 와인을 마시며 오늘 카미노의 느낌을 털어놓으며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다.
생장을 떠나 3일째 탈없이 이곳까지 잘 걸어온 자신이 매우 대견스러워 모두가 들떠있는것이다.
오늘은 바람의 언덕을 오를 때 몸이 흔들거릴 정도의 세찬 바람을 만나는 페르돈 봉을 지나 푸엔테 라 레이냐로 가는 날이다. 배낭을 메고 밖으로 나와서 다들 앞서가는 사람들을 따라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걸어갔다. 오래전에 지은 석조 건물들이 골목길을 따라 계속이어지더니 얼마후에 넓은 차선에 자동차들이 지나는 팜프로냐 시내의 중심 지역으로 나왔다. 그리고 부엘타 델 카스티요 공원을 가로질러 갔다.
도시의 아침은 매우 활기차며 일터로 출근하는 사람들과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분주하게 지나 다녔다. 교육도시의 상징인 나바라 대학의 부속 건물들이 보이는 길을 따라 걸어가다 시내를 빠져나오는 길로 들어섰다. 유유히 흐르는 사다리 강을 지나자 곧 넓은 평원이 보이며 무어인 군사들이 전쟁에서 참패해 십만 명이 전사했다는 시수르 메노르(Cizur Menor)로 향했다.
카미노는 팜프로냐 교외의 부유한 주택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지역을 지나갔다. 사리키에기 마을에 들어서자 이제 바람의 언덕으로 올라가는 구부러진 고갯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는 작고 조용한 마을을 지나야 했는데 물론 마을을 빠져나오는 동안 동네 사람들은 보지못했다.
순례자들은 바람이 굉장히 세기로 알려져 있는 페르돈 고개(Alto del Perdon : 자비의 고개) 언덕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우리 앞에 경사진 오르막이 시작되자 불어오는 바람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가이드북에서 알려준대로 바람은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여서 그냥 느릿느릿 땅만 보고 걸어야 했다.
산 능선 자락위로 잿빛 비구름이 하늘을 덥고 있고 여러 개의 풍력발전기가 세찬 바람에 실려 빠른 속도로 돌아가고 있었다. 우리는 고갯길을 따라 힘겹게 걸어가며 페르돈 봉 언덕을 향해 올라서고 있었다.
페르돈 봉 언덕 광장에는 ‘순례자들의 행렬’이라는 의미의 철 조각물이 세워져 있었다. 광장에는 순례자들이 모여서 호흡을 가라앉히고 있었으며 그곳에 예상치못한 따뜻한 커피와 샌드위치를 팔고 있는 푸드 트럭이 보였다. 우리는 트럭으로 몰려가 각자 따뜻한 커피를 주문해서 받아 들고 페르돈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아랫마을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하얀 지붕의 주택들이 몇 채 보이고 건물의 지붕 위로 뾰족한 굴뚝에서는 흰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풍경이 시골의 한가로운 느낌을 갖게 했다.
오늘 카미노의 가장 힘든 구간을 지나온 순례자들은 이제 경사가 심하고 자갈이 많아 울퉁불퉁한 너덜길을 따라 내려가야 했다. 그러나 너덜길을 내려갈 때는 넘어지지 않도록 긴장을 하고 스틱을 깊게 내리치며 천천히 움직였다.
페르돈 봉에서 바라보이던 마을에 들어섰다. 골목을 지나쳐 나오자 붉은 색이 유난히 뚜렷한 황토길이 나왔으며 그곳에는 포도농원이 많은 우테르카 마을이 있었다. 이제 이곳부터 스페인의 포도농원이 많은 지역이 시작된 셈이다. 마을의 중앙 광장을 지나는 곳에 물이 하늘로 뿜어 나오는 분수대와 식수대를 만났다. 순례자들은 물병에 물을 다시 채우고 있었으며 마을의 바르와 레스토랑, 자그만 마트를 들락거리는 순레자들도 있었다. 우리는 카미노 길의 노란 화살표를 찾아 골목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한적한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 다음 마을 무루사발에 들어서자 이곳은 뿌엔떼 라 레이나로 가는 가까운 길목에 위치한 아름다운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 이곳 저곳에는 와이너리 지역에 있는 포도주 저장 창고가 많이 보이고 벤치도 있어서 편하게 앉아있는 순례자들도 만났다.
이제 카미노를 위해, 카미노로 인해 발달한 전형적인 카미노 도시, 푸엔테라 레이나(여왕의 다리)로 들어갔다. 가이드북에 이곳은 오래전 순례자들이 아르가강을 탈 없이 잘 건널 수 있도록 여섯 개의 아치로 만들어진 다리를 세웠고 그 주변으로 도시가 발달하여, 도시 이름이 곧 다리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아를(Arles)에서 출발하여 Somport를 경유하는 아라곤(aragon route) 길이 만나는 푸엔테 라 레이나의 알베르게는 상당히 오래된 건물이었다. 길을 걷다 불쑥 나타난 사립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에게는 낮 익은 모습이 아니었다. 이 마을에 하나뿐인 숙소는 낡은 주방과 침대들이 어쩌면 우리에게 어색할지도 몰랐다. 그래도 우리가 적응해야 해서 체크인을 하고 우리 일행들은 마트에 들러 파스타면과 토마토 소스와 치즈, 올리브 오일, 양파, 바게트 빵을 사와 저녁 준비를 하였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알베르게의 벤딩머신에서 캔맥주를 하나 꺼내서 내가 앉아있는 식탁으로 왔다.
“선생님. 선생님은 무슨 목적으로 산티아고 길을 걷고 계십니까?”
나는 갑작스러운 그의 질문에 당황했다. “ 한달동안 걷는 길이 있다 해서 궁금해서 왔어요. 그냥 걸어보자는 생각입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쓴 책에서 역설하고있는 정신적이거나 신앙적인 이유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보다 그냥 한국을 떠나 걷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는 그가 마음에 와 닿는 대답이 아니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더 이상 가감하지 않고 속내를 보여주었다.
그는 어떤 목적으로 이 길을 택하고 스스로 고생스러운 일정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가 이번에는 똑 같은 질문을 했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젊은 나이인데 장기간 자리를 비우면서 이 길을 걷는 목적이 있어요? “ 나는 분명히 그가 만들기 어려운 시간을 내서 이 길을 걷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의사 선생은 뜻밖에도 평범한 대답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다른 병원으로 이직하며 한달간 시간을 내서 힐링 겸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왔어요”
그렇다. 특별히 신앙의 발자취를 찾아 이 길을 걷는 사람을 제외하고 대부분 사람들은 한달간 집을 떠나 매일 걸으면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인내심도 갖고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고 건강해져서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계획을 하며 집을 나섰을 것이다.
나는 그래도 멋진 목적이라도 갖고 올 걸 그랬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목적지를 향해 매일 걸으며 생각하고 여행하겠다고 시작한 사유(思遊)의 순례길을 선택했을 따름이다.
푸엔테 라 레이나의 밤하늘은 무척 맑았다. 우리 일행들은 파스타로 식사를 끝낸 뒤 알베르게 밖으로 나와 순례길에 대한 얘기와 밤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풍경을 늦게까지 감상하였다.
오늘은 진정한 순례길 체험을 하며 걷는 날이다. 푸엔테 라 레이나 마을을 나와서 '여왕의 다리(Puente la Reina)'를 넘어갔다. 돌로 만들어진 긴 다리를 건너 다시 아르강과 고속도로를 옆에 두고 걸어가며 도로를 휙휙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면서 그 안에 타고 있을 사람들이 몹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늘부터 어제까지 같이 걷고 있던 일행들을 벗어나 빠른 걸음으로 걷기에 집중했다. 아무래도 이제 걷는 페이스를 조절해야 할 필요를 느꼈으며 의식적으로 그들과 보조를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아마 앞으로 남은 기간 길에서 또는 알베르게에서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혼자 걸으며 이제 까미노 걷기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해야 할까도 생각해보기로 했다. 내가 직장에 얽메어 그동안 시간적 여유를 내기 어려워 포기했던 일들을 들춰내어 시도해보기로 했다.
오전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나는 이제 좁은 비포장도로를 통해서 계곡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마내루(Maneru) 마을 입구에 있는 십자가까지 오르는 가파른 비탈길을 올라 오래된 보고타 수도원과 성당건물 근처를 지나갔다. 이때 앞에 시라우키로 가는 길 안내 표지판이 나타났다.
이제 약간 비탈길에 올라서며 호흡은 매우 거칠어졌다.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의 고도계가 해발 470미터를 가리키고 이곳을 지나자 다행히 카미노는 이제 다시 내리막길로 이어졌다. 이제는 매일같이 언덕과 낮은 산을 몇번씩이나 오르내리면서 산티아고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 시라우끼 마을이 나타났다.
오래된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의 마을, 12세기에서 13세기에 이르는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양식으로 건축된 커다란 두 개의 성당이 시라우끼의 마을을 지나는 순례자들에게 중세의 나바라 왕국의 정취를 새삼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주로 포도밭과 올리브 밭을 경계로 순례길은 나 있었으며 한적한 마을로 들어서면 로마시대의 도로가 형성되어 거리는 하나의 예술성을 새삼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실개천 위로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돌 다리를 건넜다. 나는 이제 바쁜 걸음으로 비야뚜에르따로 들어가기 위해 깊은 숲길을 지나야 했으며 이곳에도 작은 마을이 나왔다. 이전 마을보다 거리에는 마실 수 있는 샘이 있었고 빵가게, 레스토랑, 약국이 있었으며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오래 머물렀다.
나는 마을의 광장을 가로질러 다시 시골길에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후에 오늘의 도착지 에스테야(Estella)로 가는 길 표지판을 보았다. 그런데 길가에는 이곳에 2002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숨을 거둔 캐나다인 캐서린 킴톤을 추모하는 페레그리나의 묘비가 세워져 있어서 잠시 그 앞에서 묵념을 하고 지나갔다. 이런 사고를 당한 순례자들의 추모비는 이후로도 산티아고로 가는 길에 또 볼 수 있었으며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순례자들의 본인 사진과 함께 식구들, 그리고 친구들의 글과 십자가 묵주가 함께 놓여있는 장소를 만날 수 있었다.
에스테야는 인구가 1만명이 넘는 도시로 1090년 산초 라미네스가 프랑스인 순례자 정착민을 위한 리사라(Lisara 바스크어로 별)자치구를 만들었다. 이곳은 나중에 ‘은하수’ 혹은 ‘콤포스텔라로 가는 길’ 로 연결지어 ‘에스테야(스페인 말로 별)’ 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로스 아르코스가는 길은 드넓은 포도밭이 이어지는 곳으로 약간 무료한 길이다'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와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보데가스이라체” 건물에 있는 포도주의 샘(Fuente del Vino)으로 갔다. 이곳은 이전에 이라체 수도원이 있던 건물로 지금은 순례자들에게 포도주 한잔과 샘물을 제공하는 곳으로 건물 앞에는 이미 순례자들이 줄지어 벽에 설치된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붉은 포도주를 머그잔이나 물병에 담고 있었다. 붉은 포도주 한잔을 마신 순례자들은 불그스레 달아오른 얼굴로 마냥 즐거운 표정들이었다. 아마 오늘 걷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은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건물의 철제 대문을 나오다 벽에 부착된 네모난 돌에 새긴 글을 보았다. ‘산티아고에 힘과 활기를 가지고 도달하고 싶은 이에게 여기 있는 포도주 한모금이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라고 적혀 있었다.
에스테야를 빠져나와 카미노는 산 마르틴 성당을 지나갔다. 예전의 순례길에는 먼 길을 걸어오느라 먹거나 씻지도 못한 순례자들을 돌보아 주기위해 마을의 성당이나 수도원에는 순례자 숙소를 만들고 가정에서도 방을 빌려주며 식사도 대접했다고 한다.
나는 아예기를 지나 아스케다로 들어가는 평화로운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부터 작은 능선들을 지나 흙먼지나는 언덕을 오르자 무어인의 샘이라 불리는 장소에 창고처럼 보이는 건물로 다가갔다. 건물 가까이서 내려다본 샘의 바닥에는 물이 없고 먼지가 쌓여있었으며 이제는 아무 쓸모없는 장소로 이전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맑은 샘물을 제공하는 곳이라 했다.
나는 이곳 돌담 위에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카미노 길위의 햇살은 이미 뜨거워지고 있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더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오래 걷느라 뜨거워진 발을 식히기위해 신발을 벗어 옆에 두고 발을 말렸다. 오랫만에 물병에 담아온 물을 한모금 마시며 어제 사두었던 납작 복숭아로 허기진 배를 채웠다. 내 앞에 펼쳐진 농촌의 작은 마을들이 멀리까지 아스라히 바라보였다. 언덕과 이어지는 초원에는 이제 완연한 봄날이 찾아온 듯 화려한 색깔의 들꽃들로 꽉 차 있었다.
카미노는 이제 정오를 지나며 오늘 구간에서 가장 높은 마을인 비야마요르 데 몬하르딘에 도착하였다. 마을 언덕 위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풍경에 둘러 쌓인 조그만 마을을 지나며 성벽에 맞대어져 있는 바로크 양식의 화려한 탑이 있는 아름다운 성 안드레 아 성당을 보면서 지나갈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로스 아르꼬스까지 11km 거리는 마을이 없는 외딴길을 걸어야 했다.
카미노는 가로수를 따라가는 찻길을 걸어가며 오랫동안 비 포장된 길을 지나가느라 몸은 지쳐가기 시작했다. 가끔 자동차가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가 하늘로 날아 올랐다. 그러나 찻길에는 그늘진 곳이 없었고 변화가 없어서 무료하게 걸어갔다. 카미노 루트가 근처의 포도농원 사이의 길로 들어가 오솔길을 지나갈때는 햇살은 더욱 달아 올라 나는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로스 아르코스로 들어가는 길은 그렇게 단조롭고 무디었다.
오늘은 나바라 왕국의 오래된 길을 따라 걷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포도밭 지역인 라 리오하(La Rioja)를 지나가게 된다. 그리고 라 리오하 자치지역의 첫 도시 로그로뇨(Logrono)로 들어간다.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오자 건물 위 하늘에 로스 아르코스의 붉게 떠오르는 여명을 볼 수 있었다. 한마디로 평소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하루가 시작하는 붉은 여명은 인간들에게 자연의 신비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알베르게 앞 주택의 담벼락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를 확인하고 사람의 배꼽 정도까지 자란 초록색 밀밭의 고랑을 빠져나와 큰길로 들어섰다. 로스 아르코스의 오드론 강에는 물안개 사이로 빛이 길게 스며드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오늘도 아무런 번잡함이 없는 아주 편안한 순간들로 돌아왔다.
나는 닳고 닳아서 이곳 저곳이 움푹 패인 아스팔트 신작로를 걸어가며 시골의 여유로운 아침 풍경들을 보았다. 또 길가의 풀섶에서는 간간히 물기를 머금은 빨간 양귀비꽃이 밤새 기다리다 불쑥 튀어 오른 듯 꽃대를 빳빳하게 치켜세우고 있었다.
산 페드로 개울을 건너 한 시간쯤 나지막한 언덕을 따라 오르다 다시 내리막 길에 들어섰다. 왼쪽에 ‘산솔(Sansol)’이라는 마을을 지나갔다. 마을이라야 몇 채의 주택과 길가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산소일로 성당과 아르카디 알베르게 간판이 보였다.
나는 이곳을 지나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카미노는 이제부터 소나무가 울창한 숲길을 지나 점점 아래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로 나왔다. 그리고 드디어 비아나(Viana)에 들어섰다. 순례길이 지나는 도로 옆에 있는 산타마리아 소성당으로 갔다. 열려진 문을 지나 성당안으로 들어가 어깨를 짓눌리던 배낭을 의자 옆에 내려놓고 잠시 묵상을 하고 제단 뒤편에 걸린 십자가에 못 박혀 고통으로 힘들어 하시는 예수님 상을 보며 저에게 아직까지 편안한 걸음으로 산티아고에 향하는 길을 잘 걷게 해주심에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기도는 간단했지만 마음이 말할 수 없이 편안해졌다.
이제 스페인에서 가장 작은 자치주 '라 리오하' 주로 넘어갔다. 가이드북에는 스페인에서 '라 리오하' 만큼 좋은 포도주를 생산하는 지역은 없다라고 설명한다. 특히 적포도주는 세계 최고라고 할 수 있는데 비노 호벤(Vinos Jovenes), 끄리안사(Crianzas), 레세르바(Reservas), 그란데스 레세르바(Grandes Reservas)와 같은 포도주가 생산되는데 이 포도주들은 오래된 떡갈나무 통에 숙성되어 균형 잡히고 풍성하며 풍부한 색깔, 적당한 산도, 섬세한 향, 기분 좋은 감칠맛을 낸다고 설명했다.
나는 로그로뇨를 향해 아주 여유로운 느낌으로 혼자 터벅터벅 그리고 천천히 들판을 지나고 있었다. '라브리사' 냇가를 따라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고 주말 도심의 공원을 지나갔다. 이제 막 봄이 찾아온 듯 느낌에 가족들과 야외 나들이에 한창인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로그로뇨의 ‘베르가도’ 광장에는 ‘라스 제멜라스’ 라 이름 붙은 쌍둥이 탑이 있고 오래되었지만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또한 14세기의 고딕풍 건물인 ‘산타마리아 레돈다 성당 주변에는 바르와 식당 그리고 상점들이 있었고 거리에는 왕래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나는 아스팔트길 보도를 따라 걸으며 한층 여유로운 마음으로 거리의 풍경을 감상했다. 나의 걸음은 천천히 그리고 노란 화살표를 찾아가며 도시의 내부를 여유롭게 음미하며 지나갔다.
멀리 오늘 묵을 알베르게가 시야에 들어왔다. 아담하고 나지막한 3층 건물의 알베르게는 오후의 한적한 햇살이 건물 안까지 깊숙이 찾아 들고 있었다. 앞마당 빨래줄에는 순례자들이 널어놓은 다양한 색갈의 옷가지들이 봄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호스피탈레노가 크리덴시알에 세요를 찍어주며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오랫만에 들어보는 한국말이 듣기 좋았다. 나도 " 올라" 하고 스페인 인사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호스피탈레노로부터 침대 배정과 각종 시설들에 대한 위치와 사용법을 들으며 내 자리를 찾아갔다.
나는 오늘도 규칙적인 하루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순서대로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서 건조대에 널어 놓은 후에야 자유시간이 시작되었다. 이제 휴식을 해야 할 시간이라 밴딩머신에서 맥주를 꺼내 순례자들이 모여 있는 뒷마당으로 갔다. 가볍게 차려입은 순례자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 벤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도 플라스틱 의자에 몸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하루를 잘 걸었다는 안도감으로 나의 느슨해진 영혼이 점점 기운을 늘어트리고 말았다. 해가 건물 지붕위로 나지막이 걸쳐갈 즈음 온화했던 봄바람이 이제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며 빨래줄에 걸려있는 옷들이 바람에 심하게 날리기 시작했다.
나는 패딩 조끼를 위에 걸치고 시내의 슈퍼마켓에 가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거리에는 봄이 오기전 자연의 시샘처럼 아직 누런 색갈의 가로수의 가지들이 몸을 떨 듯 흔들거리고 나무의 몸통은 까칠까칠한 피부처럼 건조해 보였다.
나헤라와 아소프라로 들어가는 날은 아침 식사를 머핀과 사과주스를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로그로뇨의 오래된 회색빛 건물들을 지나가다 오랫만에 우체국(Correos)을 만났다. 출입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가서 즉석에서 작성하여 보낼 수 있는 우편 엽서를 구입해서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안부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던 가족들에 대한 감정을 글로 쓰고 싶었지만 생각만 떠올리다 아내와 두 딸들의 이름을 적고 사랑한다는 글과 '잘 걷고, 먹고, 잘 지내고 있다' 라는 글을 적어 우체통에 넣었다.
편지는 세월이 가도 항상 가슴에 와닿는 감정 전달 방식인데 오늘은 스스로 애잔한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 채 멋대가리 없는 아빠 노릇을 하고 말았다.
우체국을 나와 상점들이 나란히 있는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 도시를 빠져나왔다. 아침이라 거리에는 조깅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 자동차 전용도로 아래를 지나가는 터널을 지나자 도로를 따라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줄지어 있는 왼쪽 길을 걸어갔다. 한동안 자동차 도로를 따라가는 순례길에 스페인의 강렬한 태양이 머무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순례자들은 점차 길 옆에 주저앉아 햇살을 피해 쉬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뛰었다.
넓은 자동차 도로가 순례길 옆으로 지나가고 도로를 따라 설치된 철조망에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면서 나뭇가지를 이용해 만든 여러 모양의 십자가들을 걸어놓아 순례자들의 성심이 여기까지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그로뇨 시내를 완전히 벗어나는 지역을 지나갈때는 규모가 큰 공원이 있었다. 공원에 조성된 숲길을 걷다 갑자기 하늘이 열리는 듯 내 앞에 널찍한 호수가 나왔다. 호수에는 잔잔히 일렁이는 윤슬의 아름답고 느슨한 특별한 느낌이 가슴에 와 닿았다. 호수위로 하늘에는 구름들이 몰려가며 점차 파란 하늘이 열리는 광경이 나타났다.
호수가에는 제방을 세워놓아 둑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들도 보였다. 숲이 보이는 호수가에 목조 건물의 아담한 카페가 있었다. 커피를 주문하고 데크위에서 한가롭게 주변을 둘러보며 잠깐의 여유를 즐겼다. 카페의 종업원이 테이블로 가져다준 카페라테의 달달한 맛이 금방 피로를 풀어주는 듯 했다.
숲속에 있는 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자작나무 숲을 지나갈때는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스러울 만큼 크게 들려왔고 여러곳에 놓인 벤치와 테이블에는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이 한나절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빠져나와 그라헤라 언덕의 정상을 향해 급한 오르막길로 들어섰다. 정상에 올라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내리막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갔다. 그러자 자동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려가는 고속도로를 건너가는 육교가 나왔다. 순례길에서 고속도로를 만나면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 생각에 잠깐 멈춰서 물끄러미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광경을 보곤 했다.
카미노는 오늘 구간의 중간 마을인 나바레떼로 들어가는마을 입구에 들어섰다. 이곳에는 과거에 순례자들을 치료해주던 산 후안 데 아끄레 순례자 병원의 유적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돌을 쌓아 지은 건물은 무너지고 잔해만 남아있었으며 길에는 유적지 안내판에 당시의 역사를 설명하는 글이 있었다.
나바레테를 지나 얼마후에 아담한 벤또사 마을로 들어섰다. 마을의 벤치에 앉아 신발과 양발까지 벗어서 열을 식히기 위해 바람에 말리느라 잠깐 휴식을 취했다. 외국인 순례자들이 지나가며 나에게 "올라"와 "부엔 까미노" 를 연발하며 엄지를 들어 올려보였다. .
나는 이제 다시 높은 언덕인 산 안똔 언덕(Alto de San Antón)을 넘어가야 했다. 이곳을 넘어 나헤라강이 있는 나헤라(Najera) 시내로 들어선다. 이곳은 예전 나바르 왕국의 수도였던 역사적인 마을로 주변은 강을 따라 암벽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고 지금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현대적 건물과 여러 바르와 카페가 자리잡고 있었다. 도시에는 산미겔광장을 지나면 스페인광장도 만나며 레스토랑에서는 순례자 메뉴를 제공한다는 홍보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헤리아강을 따라 조성된 공원에는 주말이라 오후에는 가족들끼리 즐거운 바비큐 파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이제 이곳을 지나 다음 마을 아소프라로 향하는 길에 들어섰다. 나는 아직 더 걸을 수 있는 여력때문에 다음 마을의 아소프라까지 걷기로 했다.
한 시간쯤 시골길을 걸어 '자연보호구역'이라고 명명된 숲을 지나 오늘 숙박지 아소프라 마을로 들어섰다.
인구가 적은 아소프라의 한적한 오후는 씨에스타를 즐기고 있는 듯 아주 조용했다. 골목에 있는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바르 밖에서 몇몇 아소프라 남자들이 어울려 오크통에 둘러쌓여 맥주를 마시며 떠들어 대고 있었는데 바르가 그들에게는 유일한 즐거움의 장소가 아닌가 생각했다.
건물 벽에 하얀색 회칠을 한 알배르게는 무척 깨끗해 보이고 뜻밖에도 침대가 한방에 두 개씩 구비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반대편 침대에 순례자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나는 오늘 저녁을 아주 편안한 호텔방 느낌의 하루를 즐길 거 같은 생각을 해 보았다.
나는 샤워를 끝낸 뒤 빨래와 침낭을 햇볕에 말리기 위해 뒷 마당의 빨래줄에 널어놓고 순례자들이 모여 있는 바깥의 테이블로 찾아갔다. 길쭉한 모양의 테이블이 있었고 출입구에 세워진 벤딩머신에서 스페인 맥주 스텔라 캔맥주를 꺼냈다.
테이블 끝자리로 와서 맥주를 놓고 앉았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키가 작은 순례자가 친근한 표정으로 나에게 “올라”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어디서 부터 걷기 시작했느냐고 서툰 영어로 물어왔다. 나는 생장에서 부터 걸어왔다고 했더니 그는 프랑스 르퓌에서부터 카미노를 시작했으며 자신은 파리에 사는 프랑스인이라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 지금은 40일째 걷는 중인데 두 달에 걸쳐 산티아고에 도착할 거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나는 프랑스의 르퓌가 어디인지 몰라 궁금했지만 아무튼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어나 다시 벤딩머신으로 가서 캔맥주를 하나 가져왔다. 다음에 알게 되었지만 르퓌에서 생장까지는 750km 거리이고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 거리이니 총 1550키로를 걷게 되는 것이다.
그가 이제 나에게 어디서 왔는지, 이름은 무언지 물어왔다. 그는 한국을 많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지만 남쪽과 북쪽으로 갈라진 국가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영화 “빠삐옹”의 배우 ‘스티브 맥퀸’ 이 생각이 난다고 했더니 피식 웃고서 나를 보고 상당히 젊어 보인다고 하면서 나의 이름을 그냥 “영” 이라고 크게 불렀다. 그는 이번 순례길 걷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은 삶의 시간을 영적인 시간에 더 할애하고 싶다고 했으며 그래서 순례길 걷기도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며 천천히 걷는 것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또 매일 아침에 그는 일부러 제일 늦게 알베르게를 나선다고 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 대부분이 아침 일찍 출발해서 바쁜 걸음으로 알베르게에 도착하고 좋은 자리의 침대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하는 모습이 너무 싫다고 했다. 나는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상당히 동감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나에게 “스로우, 스로우” 가 자기의 신념이라며 빙긋이 웃어 보였다. 내가 마시던 맥주 캔이 비워지자 그는 커피를 한잔 하겠냐고 물었다. 그리고 맥주 캔 옆에 두었던 자신의 텀블러에서 커피를 내 앞에 있는 머그컵에 잔뜩 따라주었다.
오늘은 닭의 전설이 내려오는 산토 도밍고로 출발하는 날이다. 어제 밤, 옆 침대의 독일 순례자 녀석이 코를 심하게 곯아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사실 어제 알베르게는 드물게 2인 실이었는데 오랜만에 조용한 수면을 기대했다가 오히려 매우 불편한 밤을 보낸 셈이었다.
여섯 시에 나는 배낭과 흐트러진 침낭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일찍 출발하는 순례자들이 옆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배낭을 들고 나와 짐 정리와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빵과 커피. 변비를 예방하기위해 준비하는 요구르트와 과일류가 주식이 되었다. 커피를 거의 다 마시고 출발하려고 하는데 같은 방에서 지낸 독일 녀석이 나타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식당으로 들어와 휙 들러 보더니 그냥 나가버렸다.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와 ‘오늘도 상쾌하게 출발’ 하고 외치며 즐거운 마음으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약간 쌀쌀하지만 그래도 신선한 공기의 흐름이 폐부 깊숙이 빨려 들어오며 나도 모르게 '이런 순간이 참 좋다' 라는 생각을 했다.
카미노길은 따스한 아침 햇살이 길게 뻗어 있는 길에 내려앉으며 오늘은 길가의 풋풋한 풀 냄새가 유독 나의 예민한 후각을 흔들어 댔다. 오늘은 어려운 길이 없어서 발걸음이 가벼워지며 나는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일본인 피아니스트 유키꾸라모토의 서정적이며 잔잔하고 웅장한 피아노 연주곡을 먼저 들으며 걸었다. 차례대로 '루이스 호수(Lake Louise)' '세느강의 정경(A Scene of la Seine)' 을 듣고 '꿈의 창가에서(Reviere)' 그리고 '황혼(In the Gloaming)' 같은 피아노 연주를 들으며 때론 선율을 따라 흥얼거리며 걸었다.
라 리오하에 들어서자 대지는 붉은 색깔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곳은 석회암이 많은 지역으로 잡초가 덜 자라기 때문에 포도나무들이 잘 자라는 토질로 좋은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이라고 했다.
포도 재배 지역을 지나고 밀을 심은 들판을 지나 넓은 구릉에 있는 골프연습장을 지나갔다. 그리고 조용한 마을 시루에냐에 도착했는데 감자 농사를 주로 한다는 마을의 높게 쌓아 올린 감자 창고를 지나가며 시계탑이 있는 수도원을 만났다. 이곳부터 카미노에는 마사토가 깔린 길이 시작되었고 순례자들은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걸어가야 했다. 그래도 평탄하며 약간의 오르내리막이 있는 넓은 들판에는 붉은 양귀비가 널려있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꽃, 양귀비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카미노는 이제 오늘 머무를 산토도밍고 데라 깔사다 마을 입구로 들어섰다. 순례자들을 위한 도시 산토도밍고는 이 도시를 세운 도밍고 가르시아의 이름을 따온 것으로 성당에는 산토 도밍고 성인의 묘지 앞에 살아있는 닭장이 있다고 했다. 고딕식 닭장에는 산토 도밍고와 관련된 유명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고 하며 바로 옆에 위치한 알베르게에서도 가끔 닭의 울음소리가 들려 성인이 행했던 기적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고 했다.
산토도밍고 알베르게는 골목을 따라 들어가다 도시의 작은 공원 근처에 있었다. 바로 옆에 산토도밍고의 전설을 간직한 성당이 있고 정말 닭의 울음소리가 들릴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날 밤 나는 정말 새벽녘에 닭의 외침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나의 결혼기념일로 이곳에서 집으로 전화를 했다.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잠깐 감정을 내비치며 잠시 울먹거리며 대화를 이어갔다.
“아픈 데는 없는지. 걸을 만한지, 밥은 잘 챙겨 먹는지, 묻는 말에 나는 “건강하고 잘 먹고 잘 걷고 있으니 염려말라고" 대답했다. 전화를 끝내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아마도 퇴직을 하고 집을 떠나 오랫동안 고생스러운 시간을 보내는 남편에 대한 애잔한 감정을 아내도 안쓰러워했을 것 같았다. 사실 나는 직장에 다닐 때 해외 출장을 자주 다녔지만 일단 집에서 가방을 들고 나오면 다시 집으로 올때까지 전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아무 탈이 없으면 전화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고 아내도 나에게 왜 전화를 안 하느냐고 불평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나는 간단한 샤워를 하고 늦은 오후에 알베르게 밖으로 나왔다. 벨로라도 광장으로 갔더니 그곳 바르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빠피옹을 다시 만났다. 체격은 왜소하지만 오랜 순례길 걷기에도 쉽게 지치지 않는 그가 부러워 보였다. 나는 바르에서 그와 맥주를 마시면서 오후 한나절을 보냈다.
오늘은 라리오하주를 벗어나 ‘벨로라도’로 향한다. 이제 카미노 프랑세스 순례길의 3분의 1 을 지나가게 된다. 산토도밍고 알베르게의 커다란 나무 대문을 밀고 나와 마요르 거리가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갔다. 이곳을 나오자 이제 넓은 도로가 직선으로 나있었고 도시를 감싸고 있는 성벽을 지나갔다.
오하강을 건너 그라뇽 마을로 들어섰으때 한국순례자협회 홈페이지에 소개된 빵과 과자를 팔고있는 가게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이 마을에는 그라뇽 전통의 버터가 풍부한 둥근 케이크인 그라뇽 빵과 마그달레나스라고 부르는 과자를 파는 빠나데리아 헤수수(Panadería Jesús) 빵 가게가 있다고 했다.
그라뇽 마을을 벗어나자 고속도로를 따라 만들어진 좁은 순례길을 따라가게 되었다. 이제 카스티야 레온의 자치 공동체가 있는 부르고스 지방의 카스틸라 레온(Castilla y Leon)주로 들어갔다. 벨로라도로 향하는 길은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가는데 대체적으로 고속도로를 오른쪽에 두고 지루한 길을 걷게 만들었다.
비야마요르 델 리오를 지나면서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바르를 찾아갔다. 보카디요(Bocadillos)와 카페콘레체를 주문하고 오랜만에 쉼을 청했다. 보카디요 속에든 하몽의 얇은 속살이 부드러워 커피와 함께 먹기에 부드러웠다.
이제 카미노는 내리막 길을 따라가다 벨로라도의 벽돌 공장 옆을 지나쳐 다시 또 고속도로를 옆에 두고 쉼없이 걸어갔다. 그러다 카미노는 이제 고속도로와 멀어지는 갈림길에 들어서고 소나무가 무성한 야산 언덕으로 올라갔다. 나는 이제 산타마리아 성당을 지나 아름다움이라는 뜻을 가진 벨로라도에 들어갔다.
'벨로라도'는 중세의 왕국들이 영토를 차지하기 위한 격전의 장소로 알려져 있었다. 마요르 광장에 들어서자 상점과 바르, 식당들이 있고 티론 강의 가파른 절벽과 석회암을 마주보고 산타 마리아 성당이 있었다.
마요르광장 바르에서 다시 프랑스인 빠삐용을 만났다. 그는 오늘도 여유있게 야외 테이블에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계속 "헬로. 빠삐용"하고 불렀고 그는 여전히 나에게 “영”이라고 불러주었다. 알베르게 체크인을 우선하기 위해 광장을 지나쳐 주소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마지막 구간에 고도 1100m 지역을 올라가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아무튼 4월 중순을 넘어가며 오후에는 햇볕이 뜨거워 가능하면 햇볕을 피해 일찍 출발, 일찍 도착으로 모드를 바꾸었다.
출발전에 자외선 차단제를 이전보다 얼굴에 더 두껍게 바르지만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 별 효과가 없는 것 같았다. 강한 자외선을 피하기위해 그동안 챙이 넓은 모자를 쓰다 보니 익숙하지 않아 답답하고 앞이 가려진 느낌이 들어 아예 벗고 다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카미노는 마을을 흐르는 티론강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다시 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토산토스라는 작은 마을을 지나가며 그곳에서 무성한 풀로 덥힌 황량한 야산에 구멍이 숭숭 뚫어있는 궁금한 광경을 목격했다. 야산에 바위를 파서 만든 페냐의 성모 경당이라는 유적도 있어 무척 이채로워 보였다.
오늘의 두번째 마을 에스삐노사 델 까미노까지 완만한 구릉이 이어지며 밀밭이 있는 평야지대를 지나갔다. 널따란 들녘을 지날때는 의외로 상당히 부드러운 미풍이 불어와 나의 볼을 스쳐가서 나는 완연한 봄을 의식하기 시작했으며 들판을 지나갔다.
카미노는 다시 고속도로를 따라 걷는 순례길을 만났다. 사실 고속도로 옆 길을 지나갈 때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귀에 거슬려서 빨리 이 길이 끝났으면 하고 매번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곧 부르고스(Burgos)에 들어가면 고독과 적막함이 극치라는 메세타 평원을 하루 종일 걸어야 하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은 나 혼자 외로움을 체험하는 날들이 기다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오가 가까워오며 카미노는 햇살이 내려앉으며 아지랑이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그런길을 걷다 어느새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길에 순례자들이 인근의 부르고스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카미노는 산 펠리세스 수도원의 유적지를 지나가자 오까강을 건너야 했으며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의 성당 앞에 도착했다. 이미 이곳에는 순례자들이 더운 날씨에 힘이 들었는지 더 이상 걸음을 멈추고 담벼락에 등을 대고 다리를 쭉 펴고 있었다.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를 벗어나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나타났다. 그러나 다행이 길은 충분히 트랙터가 다닐 정도로 넓어서 마음은 편했다. 상당히 키가 훌쩍 자란 소나무 숲이 계속 나왔고 가파른 길을 올라갔을때 그곳에는 '빵을 적시는 샘(Fuente de Mojapan)'이라는 표지판과 쉼터가 나왔다. 이곳의 오늘의 가장 높은 지역 1,100미터 지점이었다.
가이드북에서 산 후안 데 오르데가 알베르게 정보를 두 개 확인했다. 처음 만난 알베르게는 마을로 들어가기전에 길 옆에 입구가 있어서 밖에서 안을 살펴보았다. 건물은 마치 판자집 같은 입구에서 볼때도 환경이 열악해 보였고 대문과 건물안에 여러 나라 국기를 나란히 걸어놓아 순례자들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국기는 보이질 않아 숙소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소외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순례길 마을의 중심에는 항상 광장이 있었다, 나는 광장으로 나가는 길목을 지나가다 두 번째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이곳은 새로 개축한 아주 깨끗한 건물에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체크인 시간을 한 시간 남겨놓고 나는 배낭을 다른 순례자들 배낭의 마지막에 놓고 광장으로 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 벌써 빠삐옹이 바르 앞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다가 나를 보더니 반갑게 손을 들었다. 그는 정말 나를 따라다는 것인지, 내가 그를 따라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난번 나에게 커피를 내준 빠삐옹에게 감사의 표현으로 맥주를 하나 더 주문해서 그에게 건내고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아무런 직업이 없이 부모의 도움으로 산다는 빠삐옹, 그 얼굴에는 걱정이 하나도 베어 있질 않았다. 산티아고길은 그에게 최고의 안식처가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닝커피와 머핀은 나의 아침 주식이 되어버렸다. 대체적으로 머핀과 바게트는 보관이 쉬어 배낭에 넣어두고 이삼일은 충분히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안개가 자욱했고 약간 쌀쌀한 공기가 얼굴을 차갑게 느끼게 했다. 벌써 앞에서 걸어가는 순례자들이 어깨를 움츠리고 총총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동안 시골의 작은 마을들을 지나면서 만났던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경들도 이제는 매일 반복되어 만나게 되어 지루할 만도 했다. 그러나 오늘은 드디어 부르고스의 번화한 거리를 만나는 날이라 한편으로는 가슴을 설레게 하였다.
지나가는 길의 주택 담벼락에 순례자를 형상화하여 재미있게 그려진 그림들을 보았다. 아마 마을의 아마추어 화가가 힘들게 걸어가는 순례자들에게 격려를 하고자 그렸을 것이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잠시나마 걸음을 멈추고 긴 호흡을 할 수 있는 여유를 갖을 수 있을 수 있었다. 또한 스페인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순례길을 걸어가는 순례자들을 위해 숙소와 먹을 것 그리고 병이 난 환자를 위한 순례자 병원을 운영했다고 했다. 그만큼 순례자들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산티아고에 잘 도착하도록 도움을 주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멀리 들판 너머로 특급열차 렌페(Renfe)가 지나가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기차가 우측에서 나타나더니 잠깐사이에 들판을 미끄러지듯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그늘이 있는 숲속 길을 나오자 전면이 확 트이면서 목장이 나왔다. 나무로 만든 출입문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 좁은 통로를 따라 걸었다. 목장은 다시 소를 방목하기 위에 목초지를 회복시키는 중이며 아마 이전에 이곳에서 소들을 방목하여 풀을 먹이고 이제 다른 목초지로 옮겨간 듯했다.
목장을 지나 밖으로 나오자 오늘 여정의 첫 번째 마을인 아헤스가 나타났다. 조용한 마을 주택들을 지나 베나강의 다리를 건너고 왼쪽에 있는 버드나무 숲길로 걸어갔다. 그런데 떡갈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가자 폭이 좁은 경사진 오르막을 지나 하늘이 보이는 고도 1,050m 정상 마루에 다 달았다. 그곳에서는 멀리 광활한 평원이 내려다보이며 부르고스 시내의 높다란 성당의 탑이 까스떼나야의 초원과 지평선 사이로 보였다.
정상 부근에 돌과 나무로 만들어진 높다란 십자가(Cruceiro)를 만났다. 이제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조그만 마을 비얄발과 까르데뉴엘라를 지나고 카미노는 자동차 길을 따라 있는 대도시 부르고스 방향으로 들어섰다.
카스따냐레스를 지나고 아를란손 강을 건너자 부르고스 외곽에 들어섰다. 이제 비야프리아의 실개천을 지나는 아름다운 숲길에 들어서자 모처럼 한낮의 더위를 잠깐 피해줄 수 있는 조용한 길이 있었다. 떡갈나무 숲과 나무 십자가를 만나고 곧 너덜길이 끝나면서 부르고스가 나왔다.
그런데 잿빛 하늘로 변해 있던 하늘에서 갑자기 추적추적 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바퀴에서 물을 품어 뒤로 내 던지고 있었다. 나는 자동차의 소음 소리때문에 약간의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고 그래서 빨리 알베르게에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우비를 걸친 나는 생각만큼 속도가 빨리 나질 않았고 걷고 있는 내내 여유가 없이 아스팔트 바닥을 쳐다보며 긴장감으로 걸어갔다.
부르고스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서자 빗줄기가 점점 더 굵어졌다. 아스팔트 위로 빗물이 튀어 오르면서 신발에 빗물이 스며들어 양말마저 젖어버려 걷기에 불편했다. 그리고 걷는 내내 앞에서 날라오는 비가 얼굴을 때려 머리를 숙이고 보도블록을 보면서 걸어야 했다.
부르고스 공항 근처를 지날때 활주로가 보여 새삼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날을 계산해 보았다. 도로와 차단된 공항의 펜스 옆을 지날때 비때문에 인도(人道) 곳곳에는 벌써 물웅덩이가 생겨 나는 그곳을 피해 걷느라 상당히 신경이 쓰였다. 그러나 비바람은 점차 거세지며 약간의 추위도 느끼기 시작했고 컨디션 조절이 필요해서 나는 땀을 내기 위한 방법으로 더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이제 공항을 지나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섰다. 도로와 인도가 분리된 건널목과 신호등이 있는 도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높은 건물들이 나를 점점 긴장하게 만들었고 평소 잘 보이던 카미노 노란 화살표도 눈에 잘 띄지 않아 애를 먹었다. 다행히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면서 이제 우비를 벗어야 했다. 그리고 건물 앞에 설치된 어닝밑에 잠시 서서 빗줄기가 약해진 도시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이럴떈 번잡한 도시도 그리웠다.
또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멀리 부르고스의 산타마리아 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도시 답게 주변은 온통 회색빛 높은 건물들과 공원에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많이 보였다. 그동안 추적추적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지면서 도시는 재빨리 밝아졌다
.
이제 발걸음을 늦추면서 오늘만큼은 번잡한 도시의 내음을 만끽하고 사람들 틈에 끼어서 음식 냄새도 맡고 싶었다.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길은 몇 개의 교차로를 지나가고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려야 했다. 도시를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제법 밝게 느껴졌다. 도시만의 번잡함이 있지만 나는 금세 익숙해져서 모든 물체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 보기에 좋았다. 아마 그동안 조용한 시골 마을과 길을 따라 걸으며 익숙해졌던 느낌을 벗어나니까 기분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이제 산타마리아 성문을 지나 대성당 앞 광장으로 들어섰다. 13세기 건축물인 산타마리아 대성당의 규모는 스페인 성당 중 세번 째로 큰 규모라고 한다. 알베르게는 성당 뒤편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지나 있었다. 이제부터 오늘의 긴 휴식이 남아있고 또 자주 마주치는 순례자들과 소소한 얘기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가 알베르게이다.
알베르게의 무거운 출입문을 밀고 들어가자 젊은 호스피날레노가 기다리고 있었다. 크리덴시알을 제시하고 빈칸에 세요를 받았다. 침대는 개인별 커튼이 있어 옆 침대와의 공간이 완전히 차단되어 개인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에게 배정한 침대는 이층이었다. 침대에 걸쳐있는 사다리를 이용해 위로 올라갔다. 마치 야간 열차의 이층 침대를 타고 여행하는 것처럼 허리를 펴지 못한 상태로 엉거주춤하면서 배낭을 풀고 빨래감을 들고 샤워실로 향했다. 알베르게 규모가 매우 커서 샤워실도 여러 개가 나란히 붙어 있었다.
론세스바에스에서 만났던 치과의사 선생님을 이곳에서 만났다. 며칠전부터 발가락에 물집이 생겨 걷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는 이곳에서 시내 구경을 하고 하루를 더 지내고 출발한다고 하며 더 쉴 수 있는 이유가 생겨서 즐거운 듯 나에게 ‘부엔카미노’를 외쳤다. 이게 바로 순례자들의 고통이자 특별한 추억 아닐까? 베드버그 물림과 함께 말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우비를 걸치고 걷느라 땀을 많이 흘렸다. 샤워실에서 나오는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오랜만에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하늘에는 잿빛 구름으로 주위가 다시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빗방울이 유리창에 후드득하고 강하게 내리치고 있었다. 나는 창 쪽으로 다가가 밖을 내다 보았다. 문득 안락한 숙소안에 있다는 것이 안심이 된 느낌이었다. 대성당 주변으로 우산을 쓴 사람들과 그냥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도 보였다.
나는 비가 내리는 부르고스 풍경이 궁금했다. 갑자기 시내를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일어 우비를 쓰고 알베르게의 큰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부르고스 대성당 방향으로 가파른 골목 계단을 내려와 오래된 성당 건물 앞에 섰다. 장엄하고 성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고딕양식의 성당 건물 앞에는 교황이 다녀가신 것을 기념하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있고 성당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로 상당히 분주한 모습이었다.
내일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 부활절이다. 대성당 아래 중세 풍 거리의 상점들과 식당들이 즐비한 골목길을 따라 걸어가다 스테이크가 전문인 식당 앞에서 멈춰 섰다. 그래 오늘은 비를 맞으며 걷느라 고생했으니 좀 고급스럽게 식사를 하자고 생각했다. 레스토랑으로 들서 서자 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나는 메뉴에 있는 사진을 보고 고기와 샐러드 그리고 와인을 주문했다. 오랜만에 혼자 즐겨보는 정찬에 순례길 걷기가 흐뭇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비가 그쳐 바람만 좀 불고 있었다. 나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찾았다.
밤부터 부활절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어 성당 주위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가톨릭과 개신교의 연중 제일 큰 행사인 부활절은 종교와 관계없이 일반인들도 부활절 분위기에 모두가 즐거운 날이 되고 있었다.
산타마리아 대성당 광장에는 성가대와 합창단들이 모여 밤 늦도록 부활을 축하하는 성가와 부활절 미사로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산티아고 순례길의 핫 플레이스 메세타 고원으로 들어가는 첫날이다. 프랑스길을 걷게되면 누구든지 이곳을 지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들 긴장하고 출발을 하게 된다. 그곳에는 지평선을 마주하며 넓은 평원을 계속 걸어 메세타(Meseta)로 들어가는 날이다.
새벽까지 알베르게 밖에는 부활절을 찬미하는 성가대의 찬송과 폭죽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대성당이 가까이에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의 환성소리는 밤새 들렸는데 그 무렵 잠을 깬 나는 어찌할 수가 없어서 아침까지 멍하니 누워있기만 했다.
아침 6시가 되면 대부분 순례자들은 일어나 출발하기에 바쁜 거 같았다. 대체적으로 순례자들이 많아지는 지역부터는 매일 알베르게에 빨리 도착해서 침대를 먼저 확보하기 위한 탓이었다.
침낭을 길게 펴서 반으로 접고 또 접어서 배낭에 집어넣고 침대에서 내려와 세면장을 들러 식당으로 왔다. 어제 밤에 식당 냉장고에 넣어둔 음식 비닐봉지를 꺼내 식탁이 여러 개 있는 테이블로 갔다. 그곳에서 며칠간 같이 걸었던 응급의학과 의사 선생을 만났는데 그는 나이가 드신 한국인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건너편 좌석에 앉았다.
"잘 걸으셨죠?" 하고 간단하게 안부를 묻고 옆에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시는 부부에게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다. "예. 하루 하루 가이드북에 있는 구간별로 잘 걷고 있습니다" 하고 그녀가 말했다.
옆자리에서 식사하던 부부가 인사를 건네며 남편이 간단하게 자신들을 소개했다. 미국 LA에 살고있고 며칠전에 서울을 거쳐 생장피에드포르에 도착해 프랑스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부부는 산티아고까지 걷는다고 하며 서울이 고향이고 남편이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LA에서 직장을 다녔고 퇴직해서 전자부품 회사를 경영하다 68세가 되어 은퇴를 하였다고 하셨다. 부부는 인터넷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기사를 보고 즉시 배낭을 꾸려 이곳으로 왔으며 아주 천천히 걷는 중이라고 했다.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 선생에게 "아직 씩씩하게 걷는 중이죠?" 하고 물으며 웃어보였다. 그녀가 웃으면서 “그럼요. 아직 젊은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녀는 옆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순례길이 건강에 최고라고 연신 노부부에게 건강 자문을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는 오늘 지나가야 할 메세타 평원을 같이 걷기로 했다.
우리가 알베르게 대문을 나서자 바로 앞 카페 담벼락에 표시된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우측으로 방향 표시가 되어있었고 좁다란 골목길을 우리는 작은 돌들이 삐쭉삐쭉 튀어나온 바닥을 걸어야 했다.
그렇게 상당히 길게 이어진 골목을 벗어나자 이제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큰 도로에 나서고 자동차들은 출근 시간과 맞물려 양편 도로를 꽉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길을 걷는 사람들 틈에 끼어 보도를 따라 느릿느릿 움직여야 했다.
간간히 보도 블록위에 '산티아고 가는 길'이라고 표시된 금속으로 만든 표징을 발견하기도 했다. 부르고스는 대도시 답게 다양한 상점들이 많았고 드문 드문 베이커리와 과일가게도 발견했다. 근처에서 구수한 빵 냄새가 나는 빵집(Panaderia)을 만나 우리는 서로 눈 빛으로 쳐다보고 곧장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빵집 주인이 스페인의 국민 빵이라고 알려준 ‘엔사이마다'를 간식용으로 1인당 3개씩 구입하고 나왔다. 이럴때 나는 배낭에 먹을 것이 많을수록 든든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후에 번잡했던 도시를 벗어나 가로수가 줄지어 보이는 조용한 길로 들어서고 도로에도 자동차들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카미노 길 근처에 넓은 부지의 산후안 병원이 보이고 베네딕도회 수도원도 지나며 분위기는 다시 조용해지며 마음이 안정을 되찾았다.
순례길은 어제 내린 비로 약간 질퍽거리고 특히 포장되지않은 흙길을 걸어갈때는 물웅덩이 때문에 요리저리 피해가야 했다. 그러나 큰 물웅덩이를 만나면 나는 스틱을 이용해 길가의 풀이 자라는 가장자리로 피해서 지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산티아고 길의 하일라이트 '메세타평원', 내가 가진 가이드북 정보로는 순례자들에게 진정한 순례의 기쁨을 주는 또 고독과 침묵, 그리고 평화를 주는. 정작 육체적, 정신적 시험을 요구하는 곳으로 비를 피할 곳이나 마을도 없어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바라보며 오랜 시간 걸어야 하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두렵지만 막상 걸어보면 인간이 얻게 될 나만의 세계가 여기에 있다고도 했다.
버드나무 숲 아래의 철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농로를 따라 걷다 아를란손 강을 건너며 왼쪽으로 까미노 방향을 틀었다. 오랫만에 첫 번째 마을 따르다호스(Tarjados)가 나왔다.
오늘은 어제 비가 온 탓에 자전거 순례자들이 질퍽거리는 길을 지나가기 힘들어 자전거를 그냥 어깨에 메고 지나가는 광경도 볼 수 있었다. 바퀴에 진흙이 달라붇기 시작하면 저항을 받아 바퀴가 구르지 않아 아예 자전거에서 내려서 같이 걸어가고 있었다. 멀쩡한 길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기분이 최고지만 지금은 자전거 무게를 감당해야 해서 상당한 고통을 갖고 걷는 중이라 세상은 공평한 것이라 생각했다.
메세타를 지나가는 길은 대체적으로 흙길이지만 간혹 작은 자갈이 깔려있거나 때로는 깨진 벽돌을 무더기로 깔아놓은 너덜길도 만난적이 있었다. 이럴때 순례자들은 발바닥이 아프기 때문에 걸음을 이리저리 옮겨가며 지난한 평원을 걸어가야 헀다.
메세타 평원에는 농사를 짓는 지역도 있지만 농사 인력이 없어서 그런지 그냥 내버려둔 지역도 많았다. 오늘도 하늘엔 회색 잿빛 구름들이 몰려들어 흐릿한 날씨가 계속되었는데 오히려 이런 지역을 걸을때는 구름이 많은 날씨가 좋을 것 같았다. 평원의 직선길은 지평선이 보이는 곳까지 점점히 걸어가는 순례자들도 멀리서 볼 수가 있었다.
우리도 아마 지루하고 변화없는 순례길에 모두 무심한듯 아무 표정 없이 길을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언제 끝날줄 모르고 마을도 보이지 않고 지평선은 정말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시간이 흘러가면서 메세타의 끝을 향해 걷는 순례자들은 힘들어 보였다. 오늘은 햇살이 강하게 비추지는 않지만 후덥지근한 날씨는 계속되었고 간혹 밀을 심어논 밭에서는 열을 품은 밀줄기들이 온기를 뿜어내는 거 같았다.
풀밭이나 작은 바위가 나타나거나 자동차가 지나는 길을 만나면 그곳에는 순례자들이 주저앉아 마실 물과 간식거리로 허기를 달래고 또 일어나서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가 평원을 지난하게 걸어오며 상당히 지쳐갈때 내 앞에서 순례길이 점점 낮아지며 가이드북에서 소개한 무척 외로운 작은 마을 깔사도스(Calzados)가 나타났다.
메세타 평원에 있는 마을의 바르에서 순례자들은 모두 쉼을 청했다. 그런데 순례자들의 얼굴 표정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아마 이곳까지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자신감이 생겼을 것이다.
바르는 지면에서 푹 꺼진 낮은 구릉에 있어 우리는 마을 입구에 가서야 비로소 그 곳을 만날 수 있었다. 바르를 겸하고 있는 레스토랑은 순례자들로 붐볐고 우리는 그들 틈새로 들어가 시원한 콜라와 커피 그리고 하몽이 들어있는 초리조를 주문하여 딱 하나 남아있는 테이블로 갔다.
오후 들어 강렬했던 햇살이 이제 약간 기울어 갈 무렵 지도에 그려진 메세타 봉 지역을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 지내야 할 숙소인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 마을의 알베르게를 만났다. 그런데 숙소 앞에는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이 체크인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줄지어 찾아오는 순례자들이 그 뒤로 차곡차곡 송편을 쌓듯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침대를 배정받기 위해 호스피탈레노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도 다시 인적이 드문 메세타 평원으로 들어간다.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의 실 개천을 지나 곧 지평선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메세타로 들어섰다. 오히려 순례자에겐 고독한 길이 때론 매우 평온하고 안락한 느낌을 갖는 길이 되기도 한다.
태양은 구름에 가려서 강렬한 햇살은 피할 수 있었으며 넓은 평원을 가로 질러가는 길에는 이제 자주 봄철에 피어나는 야생화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길게자란 들풀들도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오늘 메세타 평원에 들어서고 처음으로 아로요 산 볼이라는 지명 안내판을 만났다. 가이드북에 이곳에도 알베르게가 있으며 아마 이런 황량한 들판에서 하루를 쉬어가는 재미도 괜찮을 것 같았다. 마을 입구를 지나가면서 바라보이는 주택에는 십자가가 보이고 산 볼(San Bol) 알베르게가 보였다. 순례길에서 약간 떨어져 낮은 야산 아래 외롭게 자리잡고 있는 산볼(San Bol) 알베르게와 주변을 포플러 나무들이 멋대로 우겨져 있어서 자연 그대로의 정취를 더 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곧장 반듯이 나있는 길을 걸어갔다. 그곳에도 자동차가 대평원을 가로 지르며 지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이 있었다. 아마 특별한 상황, 즉 순례자들에게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이곳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어야 해서 길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우리는 어느새 온타나스(Hontanas) 마을로 들어가는 길에 들어섰다. 조그만 마을에도 알베르게가 두 개나 있다고 가이드북에 소개하고 있는데 이 지역을 지나가며 몸이 불편한 순례자에게는 정말 필요한 숙소라 생각했다. 작은 마을을 지나면 순례길은 점점 고요속으로 빠져드는 듯 사방이 조용했다. 순례자들의 발자국 소리와 스틱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만 들려왔다. 한동안 지나가는 길에 지금은 폐허가 된 산 빈센떼 수도원과 또 아름다운 고딕 양식의 산 안똔 수도원도 지나갔다. 오래전부터 가톨릭 신앙을 숭배하는 성직자들은 번잡한 도시를 벗어나 거칠고 매마른 광야로 나왔을까 생각해본다.
이제 순례자들의 상징적인 마을이라고 하는 '카스뜨로헤리스'가 가까워지면서 자동차 도로가 나타났다. 우리는 자동차 도로의 갓길을 걸을때 앞에서 속력을 줄이지않고 달려오는 차량때문에 몹시 긴장해야 했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길 바깥으로 벗어나 잠시 멈추었다 다시 걸어야 했다.
정오가 지나며 드디어 멀리 높은 언덕 위로 카스뜨로헤리스의 성이 눈에 들어왔다. 까스뜨로헤리스로 향하는 마지막 구간은 정말 지루했는데 정작 알베르게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걸어야 했다.
나는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라는 지명을 보면서 이곳이 아주 오래된 도시임을 생각했다. 가이드북에서는 천 명 정도의 인구와 7월의 마늘 축제 기간을 제외하고 시에스타에 영원히 점령되어 있을 것 같은 마을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로마와 서코트 왕국의 유적이 있는 요새 마을로 무어인과 그리스도교인 간에 전쟁의 무대가 되었던 마을이라고 했다.
마을에는 낮은 지붕의 주택들이 많았고 한적하고 조용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었다. 마을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이제 메세타의 여운을 뒤로하고 오늘 저녁을 편하게 머무를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우리가 도착할 때 마을은 씨에스타 시간으로 거리는 조용했으며 가끔 열려있는 바르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나는 오히려 번잡하지 않은 시골 분위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우리는 알베르게에 들어서자 체크인을 하면서 호스피탈레노가 제안한 저녁 식사로 순례자 메뉴를 신청했다. 프랑스길을 걸을때 대부분 순례자들은 마을 마트에서 음식 재료를 사와 직접 만들어 먹지만 이곳 알베르게는 주인이 수고스럽게도 직접 음식을 준비해주어서 순례자들은 그에게 감사를 해야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은 대부분 8시였다. 그가 만들어 내주는 순례자 메뉴는 도마토 수프를 가져와 각자 한 국자씩 그릇에 담고 다음 순서로 감자가 들어간 돼지고기찜을 내왔다. 물론 레드와인이 곁들어진 식사를 즐기며 스페인 요리를 맛 볼 수 있었다. 와인의 영향으로 우리는 걸으면서 얻게된 피곤함을 쉽게 털어낼 수 있었다.
평화로운 마을 '카스트로 헤리스'를 떠나는 날이 결혼 기념일이었다. 새벽에 잠이 깨어 침낭속에서 아내에게 같이 있어 주질 못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여행이지만 집을 떠나 있는 나의 처지가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아침 6시, 창문에 약하지만 빗줄기가 흩날리며 부딪히고 있었다. 아직 날이 밝아지기 전이라 바깥은 아직 어두었다. 문득 오늘 하루는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바꾸었다.
오늘은 900미터 높이의 모스텔라레스 고개를 넘어야 하고 중간 마을 팔렌시아에 가면 바르나 레스토랑이 있다고 했다. 배낭을 챙기고 우리는 알베르게 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했다. 식당에는 부지런한 순례자들이 벌써 여럿이 모여 간단한 식사를 하고 있었으며 나는 어제 사둔 빵과 시리얼을 넣은 우유를 마시고 마지막으로 사과를 먹고 일행들과 함께 나왔다. 식당을 나오자 입구에 호스피탈레노가 순례자들을 위해 마련한 커피와 쿠키가 있었다. 출발전에 마시는 커피는 빵을 먹은 후에 답답한 속을 개운하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어 좋았다.
알베르게를 출발하여 두 시간쯤 걸어 아홉 시가 넘어가자 이제 잿빛 구름들이 빠르게 밀려가면서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우리는 입고 있던 우비를 벗어버리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걷기로 했다. 그러나 도로에는 아직 옅은 안개가 머무르고 있었는데 시골길을 지나가는 자동차들은 아무런 조심성없이 속력을 내며 우리들 앞을 휭하니 지나가고 있었다.
어제 숙소에서 미국 교포 부인의 발가락을 응급 치료한 닥터정이 부인에게 조금 낳아졌는지 물어보았다. 앞쪽이 들려 있는 엄지발가락을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밴드로 부쳐서 고정을 시켰는데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는 부인의 뒷 모습은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래도 부인은 일행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쉬지 않고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교포 부인은 매일 저녁 일행들의 식사를 챙기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간단한 식재료 밖에 없지만 쌀을 사서 밥을 짓고 남은 잔밥은 아침에 주먹밥을 만들어 나누어 주기까지 하였다. 얼마전에 마을 식료품 마트에 가서는 대구 생선을 사와서 무우와 파를 넣고 소금으로 간을 해서 대구지리탕을 만들어 쌀밥과 같이 먹은 적도 있었다.
순례길은 오드리아강을 건너 밀밭 평원을 지나 고도가 900미터 가까이 되는 모스텔라레스 언덕으로 이어졌다. 그곳의 끝자락에 올랐을 때 순례자들의 쉼터가 보였다. 이곳 쉼터에는 순례객을 상대로 커피와 빵 그리고 과일을 팔고 있는 트럭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으며 나는 트럭에서 시원한 콜라를 사와 바람이 부는 곳으로 가서 땀을 식혔다.
이제 카미노는 언덕을 내려가서 밀밭 지역을 지나야 했다. 이때 멀리 갑자기 기차가 나타나더니 빠르게 미끄러지며 지나가는 광경을 만났다. 특급열차 렌페는 정말 빠르게 나타났다 금새 사라져버렸다,
오르막 길이 계속 이어지는 모스뗄라레스 언덕으로 올라갔다. '부엔카미노(Buen Camino)' 앱을 켰다. 지도상에는 '프로미스타' 방향으로 대체적으로 평탄한 길이 나타났는데 이 루트는 피수에르가강을 지나고 운하도 지난다. 그리고 보다니야 델 카미노 마을을 지나면 다시 카스티아 운하를 따라 걷다 드디어 프로미스타에 도착하게 되어 있었다. 행정구역 또한 부르고스 지역에서 논과 밭의 땅 팔렌시아 지역으로 넘어간다.
스페인의 곡식을 공급하는 넓다란 평원에 있는 카미노는 피수에르가강을 지나자 직선으로 나 있는 길이 시작되었으며 이제 햇살이 나타나고 싱그러운 바람도 불어와 걷기에는 좋은 날씨가 되어갔다.
끝없이 넓은 초록색 들판 한가운데 길게 나있는 흙길에 오늘도 많은 순례자들이 한 줄로 점점이 걸어가고 있었다. 운하를 따라 유유히 흐르는 물을 보며 걷는 길은 조금 더 느림의 걷기를 재촉하였다. 정오가 되면 가로수 길에서는 그늘을 찾을 수 없어서 햇볕을 온전히 마주하고 걸어야 했다.
보아디야 델 카미노라는 마을을 지나는 길이 끝나자 다시 운하를 만나며 물가를 따라 걸어갔다. 이제 멀리 프로미스타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을이 멀리 시야에 들어오면서 사람들은 걸음이 빨라졌다.
철길을 지나자 프로미스타 시내의 오래된 건물들이 나란히 길에 마주하고 있었다. 프로미스타 광장 앞마당에 그동안 보지 못했던 빠삐옹이 테이블에 앉아 맥주잔을 앞에 놓고 있었다. 그는 한결같이 맥주를 사랑했다. 볼때마다 맥주를 앞에 두고 멍을 때리고 있는 듯했다. 나를 보고 손을 들어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오늘 지낼 알베르게를 찾아 주택가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알베르게는 골목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쪽 귀퉁이에 있었다. 열려있는 대문안으로 들어서자 젊은 호스피탈에노가 나를 보자 웃으면서 “웰컴” 하고 소리치며 메세타를 걷고 오느라 지쳐 있는 우리에게 열렬한 환영인사를 건넸다. 일행들에게 호스피탈레노가 웰컴 드링크로 레몬이 들어간 레몬 에이드를 가져왔다.
교포 부부와 닥터정이 마을 산책을 하자고 해서 반바지와 샌들을 신고 밖으로 나와 프로미스타 마을을 구경하며 걸었다.
거리는 씨에스타 시간으로 인적이 드물었고 거리의 식품가게가 문을 닫아 근처의 빵가게에서 스콘빵과 토마토쥬스를 사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무척 단조로운 아스팔트길의 프로미스타 마을, 특히 주말이라 가게들 대부분이 일찍 문을 닫았고 길을 걷다가 11세기에 세워진 순수한 스페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마르틴 성당 앞에 섰다. 굳게 닫혀진 성당은 오랫동안 묵묵히 버티고 있었고 또 더 이상 잘보이려고 포장되지 않은 모습처럼 보였다.
이곳은 시내 호텔 레스토랑에만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특히 마을의 중심 광장에는 아직 벌거벗은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있었고 더군다나 쌀쌀한 날씨는 아직 봄을 시샘하는 듯 거칠게 느껴졌다.
오늘 저녁 식사는 호텔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기로 했다. 어제 닥터정이 교포 부인의 발가락을 치료해준 감사 표시로 남편분이 저녁식사를 초대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페인 와인과 스파게티를 맛있게 먹을 수 있었으며 때마침 TV화면에 FC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팀의 유럽 챔피언스 리그 1차전 경기를 보느라 관심은 유럽 축구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었다. TV에서 바르셀로나의 메시가 움직일 때는 식당의 손님들 대부분이 열광적으로 박수를 치며 흥분하고 있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오자 옆자리 침대에 60대쯤 되어 보이는 일본인 여자가 같은 방에 있는 순례자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난 내 침대위에서 그동안 쓰지 못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여자는 어찌나 말이 많은지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가며 쉬지 않고 말을 해댔다. 그 일본 여자는 산티아고 길에서 알게 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세계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출발합시다" 하고 외치며 밖으로 나왔는데 알베르게 골목으로 찬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뚝 떨어진 기온 탓에 거리에는 두꺼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플라타나스 나무가지가 바람에 흔들리고 상점들은 아직도 문이 닫혀있어서 거리는 을씨년스러웠다. 알베르게와 인근 호스탈에서 나온 배낭을 맨 순례자들만 거리에 있었다.
오늘은 자동차 도로 옆에 나있는 카미노를 20km 쯤 걸어가는 날이라 약간 지루하고 건조한 길이 될거 같았다. 일행들은 그래도 즐거운 표정으로 걷고있었는데 교포부인이 염려스러웠지만 그래도 남편과 같이 꾸준히 뒤에 따라오면서 대단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씩씩한 젊은 닥터정은 일찌감치 앞서서 걸어갔고 나도 그 뒤를 따라 걸어갔지만 그를 만난건 카리온 시내에 들어가는 초입에서 였다.
프로미스타를 빠져나와 한 시간 이상을 경사진 길이 거의 없고 평평한 시골길을 햇볕을 받으며 걸어갔다.
두 개의 마을을 지나면서 정오가 가까워갈 무렵에는 거칠은 풀로 뒤덥힌 평원 지역을 지나갔다.
비얄까사르 데 시르가 마을을 지날때는 템플 기사단이 만들었다는 아름다운 로마네스크 양식의 블랑까 성모성당에도 들렸다. 순례길에서는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경적이 울리면서 창밖으로 엄지손가락을 높혀보이며 우리를 응원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또 순례길을 지나가는 차량들 중에는 간혹 순례자들을 격려하는 상징으로 차의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기도 하였다.
카리온 데 로스콘테스에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들어왔다. 서울의 숭례문처럼 시내로 들어가는 입구에 오래된 돌로 축조된 게이트가 있었다. 이런 게이트는 과거에 이곳을 다스리는 영주가 자기의 영역을 구분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물론 입구에는 군인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통제했을 것이고 물자도 관리했을 것이다.
지금은 오래되어 까만 이끼가 끼어있는 게이트를 지나 마을의 건물들이 밀집되어있는 거리를 지나갔다. 건널목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뒤에서 “선생님”하고 반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닥터정이 바르에서 식사를 하다 지나가는 날 보고 들어오라고 했다. 항상 씩씩하게 앞서 걷기 때문에 먼저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쉬고 있을 걸로 생각했는데 그는 아직 알베르게가 열리지 않아서 점심을 먹는 중이라고 했다.
오늘은 카리온 성당에서 지역 행사가 있는 듯 성당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있고 차량 통행을 금지시켜 놓았으며 얼마 후에 수녀님들과 한무리의 신도들이 성당안으로 들어가면서 바리케이드는 치워지고 차량들의 통행이 다시 허용되었다.
바르에서 닥터정이 남겨준 쿠루아상에 오렌지 쥬스를 한병 주문해서 점심 식사를 대신했다. 성당을 지나 공원을 지나고 우측에 알베르게가 보였다. 순례자들이 출입구에 배낭을 길게 줄을 세워놓고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이 알베르게는 오후 두 시에 문이 열리고 순례자들이 안으로 들어가며 체크인을 시작했다. 젊은 남자 호스피탈레노가 한 사람씩 국적을 물어보고 책상위에 적어 놓은 각국의 인사말로 환영 인사를 했다. 즐겁게 봉사하는 호스피탈레노는 저녁 시간에는 로비에서 키타를 치면서 순례자들과 함께 노래도 불러주었다. 우리는 이층에 있는 침대위에 침낭을 늘어놓고 일행들과 밖으로 나왔다.
카리온 로스 콘텐츠 마을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서 꽤나 많은 상점들이 나타났다. 나는 기념품 상점에서 카미노의 상징인 노란 가리비를 하나 샀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배낭 한 켠에 매달았더니 그럴듯해 보였다. 내일부터는 까미노에서 진짜 순례자 티를 내보려고 했다.
순례자들이 알베르게 오픈을 기다리며 배낭을 줄 세워 놓았다.
며칠전부터 순례길에는 온화한 봄날씨가 이어지며 걸음에 탄력이 붙기 시작하였다. 나는 며칠전부터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침대위에서 스트레칭을 하고 얼굴과 발바닥을 20분 정도 맛사지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걷기를 했더니 이전보다 몸의 컨디션이 훨씬 좋아졌다. 매일 걷느라 중요해진 발에는 바셀린을 바르고 곧바로 문질러주었는데 발의 피로도 풀어주고 발가락 물집이 생기지 않아서 좋았다.
알베르게를 나와 카리온 강을 지나고 조금후에 산 소일로(San Zoilo) 마을에 들어왔다. 오늘은 아주 여유있게 지나가는 마을 분위기도 살펴보고 한창 피어나는 야생화도 들여다 보는 진정한 사유(思遊)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이곳을 지나면 이제 오랫동안 마을이 없는 지역을 걸어 깔사디야까지 17km 들판을 지나가야 했다. 그늘이 거의 없는 광활한 평야 지역을 지나가며 마주하게되는 햇볕을 피할 방법이 없어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듬뿍 발랐다. 아침에 알베르게를 출발할때 물병에 생수를 가득 채워 목마름 더위에 대비도 했다.
오늘도 알베르게를 출발하기 전에 교포 부인께서 어제 마트에서 쌀을 사와 저녁에 먹고 남은 밥을 가지고 주먹밥을 만들어 두 개씩 나누어 주었다. 나와 닥터정이 주먹밥을 받아 배낭에 넣으면서 먹거리를 챙겨주시는 부인의 배려에 감동해서 몇 번의 감사를 표현해야 했다.
순례길 걷기 시작은 오르내림이 없는 평평한 길로 대체적으로 걷기에는 수월했다. 그런데 정오가 넘어가며 한낮의 햇살이 점점 강해지고 가로수가 없는 길을 걷다보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훈기때문에 여전히 얼굴이 후꾼거릴 정도였다.
깔사다 마을까지 걸어야 하는 지루한 길에는 운좋게도 순례자들을 상대하는 푸드 트럭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시원하게 얼려있는 콜라와 이름모를 빵으로 요기를 하며 잠깐의 휴식을 갖고 다시 길을 나섰다. 근처에 여름철에 가장 성장이 왕성한 넓은 해바라기 밭도 지나갔다.
지루하게 걷고 있던 우리 앞에는 예전처럼 갑자기 지대가 낮아지며 깔사다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을 위치가 분지처럼 움푹 들어간 지역이라 가까이 걸어갔을 때야 비로소 모습을 들어내고 마을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나타났다.
오전부터 햇볕을 마주하며 들판을 지나가는 길을 순례자들은 거의 5시간 정도 걸어오느라 무척 힘들어했다. 마을에 들어서자 바르에는 순례자들이 상당히 북적거렸으며 어떤 순례자들은 골목길에서 배낭을 주택의 벽쪽에 두고 머리를 기대어 두 발을 뻗은 채로 누워있었다.
바르에서 시원한 얼음이 들어간 유리잔에 콜라를 부었더니 거품이 올라오는 모양은 내 머리를 식혀주는 듯 시원함을 느꼈다. 이제 곧 오늘 목적지 테라디요스(Terradillos)로 향해 출발했다.
카미노는 깔사디아를 빠져나와 바로 넓은 자동차 도로와 나란히 지나가는 길로 들어섰다. 한시간쯤 걸어 레디고스를 지나자 유유히 흐르는 케사(Cueza)강이 보이며 조금 후에 오늘 목적지 테라디요스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마을에는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위한 쉼터가 있었고 오늘 지낼 알베르게는 마을의 입구에 있어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알베르게에는 순례자들을 위한 작은 수영장도 갖추고 있었으며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순례자 두 명이 벌써 수영장안에 들어가 있었고 물은 깨끗해 보었다.
어제 머물렀던 테라디요스 알베르게에는 주방 시설이 없어서 주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를 예약해야 했다. 저녁 7시에 식사 시간을 알리는 호스피탈레노의 외침이 있었다. 우리 일행은 독일에서 온 순례자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으며 식탁위에 놓인 하우스 와인을 마시면서 우리는 다같이 한국식 “위하여”로 건배사를 하였다.
독일 순례자는 한국에 관심이 많았으며 그동안 걸어오면서 한국인 순례자들과 교류하고 경험했던 일들에 대해 대화를 쭉 이어갔다. 우리는 서로 뜨거운 대화를 이어가고 잠깐이지만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식사가 끝난 후에 우리는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아서 유난히 빛나는 밤하늘의 별들을 감상했다. 거리가 아주 조용한 밤의 시골 마을은 정적히 흐르고 있었으며 알베르게 밖에 켜둔 가로등 불빛이 아주 희미하게 길을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밤하늘의 별들이 뿜어내는 환상적인 그림들을 보면서 오랜만에 시간의 여유를 누리고 있었고 빛나는 별들의 이름을 들춰내가며 모두가 탄성을 질렀다.
모두가 피곤한 얼굴로 아침에 만났다. 어제 긴 시간을 걸었던 탓에 준비가 늦어졌다. 알베르게를 나오자 밖은 이미 여명이 사라지고 동쪽 하늘 위로 불그스레한 태양이 점점 힘차게 솟아오르는 장엄한 광경이 나타났다.
오늘 카미노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폭이 좁은 강들을 지나고 마드리드길에서 걸어오는 순례자들과 만나는 사하군을 지나갔다. 이곳은 팔렌시아주를 지나온 순례자들이 이제 레온(Leon)으로 들어서는 마을로 북적거렸으며 이곳을 지나면 다시 자동차 도로를 따라 걸어야 했다. 그런데 내 앞에 키가 큰 서양인 여자들이 일렬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한 명은 손잡이가 있는 짐수레를 끌고가며 제일 뒤에 걷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옆을 지나가며 수레를 쳐다보자 여자가 “부엔 카미노”하고 인사를 했다. 수레에는 배낭이 들어 있었으며 이런 모습이 마치 무거운 인생의 짐을 끌고 가며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는 자기만의 철학일까하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궁금해서 그녀에게 “짐수레가 편안한가요?' 하고 물었더니 "예. 편안합니다. 수레를 끌어야 하니까 걷는 속도가 좀 느려 빨리 가지는 못하지만 배낭보다는 덜 힘들어요.” 이때 나는 프랑스 여행가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도보여행기 ‘나는 걷는다’ 책에서 그가 짐과 배낭을 짐수레에 싣고 중국의 시안까지 걸었던 기억이 났다. 나는 중세시대의 순례자들은 오랜 기간 이베리아 반도를 걸어야 했으므로 많은 짐을 이렇게 수레에 싣고 걸었지 않았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모라띠노스와 산 니꼴라스 델 레알 까미노 마을, 진흙과 짚을 섞어서 만든 소박한 집들이 간간히 눈에 띄었다. 길에서 바라보는 근처의 야산에 토굴처럼 보이는 오래된 시설물이 눈에 띄었는데 판타지 문학에서 소개하는 ‘호빗’ 집을 연상시켰다. 아마 마을 사람들의 곡식 저장고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레온주 사하군으로 들어가는 가로수 길에는 자동차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났다. 버드나무 가로수가 바람에 흔들리며 출렁거렸고 그 아래를 걸어가는 순례자들은 바람때문에 더위를 덜 느낄 수 있었다.
이제 멀리 사하군의 마을이 보이기 시작할 즈음, 시간은 정오가 넘어가고 있었다. 사하군(Sahagun)은 중세시데 교회 권력의 중심지 답게 성당과 수도원 등 유적이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다. 사아군에 점점 가까워지며 근처의 기찻길에 목적지를 알 수 없는 기관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으며 카미노는 철길 근처를 따라 걸어 사아군의 오래된 구시가지에 들어갔다.
보물 유적이 많은 마을 사하군(Sahagun)은 파꾼도 성인인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의 이름에서 붙여진 지명으로 도시의 건물들은 돌 대신 벽돌을 주로 사용하여 건축하는 로마네스크-무데하르 양식이라고 했다. 주변의 건물들과 탑 그리고 아치들이 도시의 독특한 건축 양식이라고 가이드북은 안내하고 있었다.
사하군은 3개의 성당이 있고 매년 4월 25일에는 “빵과 치즈 순례” 라는 축제가 열리는데 농부와 목자들이 우정을 증명하는 표시로 그 해 가장 좋은 생산물을 서로 나누어 먹는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아군 마을출구를 나와 세아 강 위를 지나가는 깐또 다리를 건너갔다.
카미노는 고속도로 위를 지나가는 다리를 건너간 후에 두 가지 루트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좀 더 가깝고 편안한 고속도로 옆길을 걸어 베르시아노스(Bercianos)로 가는 플라타나스 가로수길을 걸어갔다. 이 길은 다행히 무성한 플라타나스 가로수에 햇볕이 가려져서 길에는 나무의 긴 그림자가 나타났다.
이제 베르시아노스 마을에 들어왔다. 골목을 지나 조그만 광장이 나타나고 텅 빈 벤치 몇 개가 보였다. 시골 마을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마을을 거의 빠져나갈 즈음 반가운 식료품 가게가 나타났다. 구레나룻 수염을 짙게 기른 젊은 주인 남자가 먼저 들어온 순례자들에게 주문을 빨리하지 않는다고 투덜댔다. 사람들이 약간 술렁대기 시작하며 가게를 빠져나갔는데 나는 진열장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흰색 요플레를 사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오후 2시가 넘어 오늘 순례길 목적지 엘부르고 마을에 도착하여 개천을 지나가다 보이는 조그만 건물의 알베르게를 만났다.
호스피탈레노는 반갑게 인사를 했다. 대체적으로 개인들이 운영하는 알베르게 주인들이 좀 더 친절한거 같았다. 체크인 수속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침대를 정하고 빨래를 들고 샤워장으로 갔다. 규모는 작지만 시설은 그런대로 꺠끗하고 청결했다. 시원한 샤워를 즐기고 침대에 잠깐 누워있다가 햇볕이 좋아 마당의 빨래줄에 걸어논 빨래를 확인하러 순례자들이 앉아있는 벤치로 향했다. 벤치에는 햇살이 내려 않고 있었으며 순례자들이 “산 미구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호스피탈레노는 출입문 앞에서 순례자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다 누구라도 두리번 거리면 즉시 달려와 필요한 것을 묻고 친절히 안내해주시는 굉장히 부지런하며 깔끔한 분이셨다.
마침 씨에스타 시간이라 정말 지나는 행인도 거의 없었다. 호스피탈레노가 있는 사무실 입구를 지나다 우연히 몇 권의 책이 꽂혀 있는 자그마한 책장을 발견했다. 순례자들이 두고 간 가이드북. 잡지들과 호스피탈레노가 따로 비치한 카미노에 대한 책과 팜플렛이 대부분이었는데 제일 아래 칸에 한국어로 적힌 '용서' 라는 단행본 책을 발견했다. 발행처는 대학로 근처에 사무실이 있는 어느 기독교단체에서 매월 펴내는 월간지로 내용은 '타인으로 부터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받아 복수를 위해 분노에 쌓여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신적 상담을 통해 보복 대신에 상대방을 용서함으로써 괴로움을 빨리 벋어나 마음의 평안함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는 목적' 을 취지로 만들고 있는 계간 잡지였다.
나는 침대로 돌아와 가져온 책을 계속 읽어내려 갔다. 이 단체를 통해 치유를 하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사람들이 매달 모여 발표를 하고 같은 고통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치유 과정의 내용을 책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중이었다. 나는 남은 시간을 책을 읽는데 시간을 모두 배려했다.
인간의 본성은 여러가지 형태를 갖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긍정적 사고를 갖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부류와 평소에 부정적 사고로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며 사리분별이 떨어지는 사람들로 나누게 되는 것 같다. 남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끼치고도 뉘우침이 없는 파렴치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정말로 용서를 해야 할까 한동안 궁금했지만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오늘은 좀 늦게 출발하자고 했지만 외국인 순례자들이 일찍 나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우리도 비슷하게 출발을 하게 되었다. 성격이 급하거나 평소 경쟁심이 강한 순례자들은 6시가 되기도 전에 침낭과 배낭을 들고 밖으로 나와 전등을 켜고 짐을 꾸린다. 알베르게 숫자가 적은 마을에는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고 있기 때문에 순례자들은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목적지 만시야(Mansilla)에서 가까운 렐리에고스(Reliegos)라는 마을까지 13키로를 그림자 없는 길을 걸어야 했다. 이 구간은 밀을 경작하는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 농수로를 지나가며 수로에는 물이 넘실대며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또 그늘이 없는 농로를 걸어갈때는 순례자들은 햇살을 피하느라 모자를 푹 둘러쓴 채로 걸어가야 했었다.
그러나 밝았던 하늘은 시간이 흐르며 조금씩 잿빛 구름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후에는 비가 내릴거 같은 날씨로 카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은 점차 걸음을 제촉하고 있었다.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가로수 나무가지들이 흔들거리며 나는 모자를 벗어 들고 청량한 공기를 마시며 걸었다. 아주 밋밋한 그리고 변화가 없는 길을 따라 걷다 우리 앞에 금속의 아치형 구조물을 만났다. 누구든지 이곳을 통과해야만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이른다는 무언의 표시일까?
이제야 멀리 들판 끝자락 지평선에 지붕만 솟아 보이는 마을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대편에는 산능선이 지나가고 바람이 많은 지역인지 여러 개의 하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렐리에고스 마을을 지나갔다. 노란 화살표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육감으로 출구를 찾아 잘 빠져나왔다. 하늘이 그새 다시 밝아져 왔으며 대지의 날씨 변화는 정말 변덕스러울 만큼 거칠었다.
멀리 지평선 너머로 만시야 데 라스 몰라스의 높은 성당의 탑이 보였다.
카미노는 평탄한 길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었고 순례자들이 나무의 밑을 지날 갈 때는 그곳에 그림자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길이 끝나갈 무렵 밀밭은 사라지고 포도밭과 과수원들이 다시 넓게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만시야로 들어가는 마을 초입의 길에 들어섰을 때 왠지 모두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역 명칭을 알리는 간판이 나타나고 우리는 상당히 설레는 기분으로 도시의 중심을 지나가며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오늘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날이었다. 며칠 전 마드리드 지인에게 전화를 하면서 탈없이 잘 걷고 있다는 소식을 전할 때 한국 음식이 먹고 싶을 텐데 위문품을 알베르게로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뮤니시팔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문이 열러 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여성 호스피탈레노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크리덴샬에 세요를 받으며 나는 내 이름으로 배달된 물품이 있는지 확인을 했다. 그러나 호스피탈레노는 평소 택배 물품이 2시쯤 도착하니 그 시간에 찾으러 오라고 했다.
교포 부부와 닥터 정, 그리고 호스피탈레노는 교포 부인의 엄지발가락 치료를 위해 순례자 진료소에 가고 나는 침대로 돌아와 땀에 젖은 옷들을 모두 가지고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세탁기에 넣었다. 얼마후 세탁이 끝났다는 벨이 울리자 자원봉사자 호스피탈레노가 다가와서 자기가 건조기에 넣어주겠다고 하면서 빨래를 받아갔다. 그녀가 건조기에 빨래를 넣고 밖에 있는 순례자들에게 다가와서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자기에게 알려달라고 하며 자원봉사자가 일을 안 하면 쫓겨난다고 농담을 하여 다들 웃고 말았다. 자신의 일을 즐겁게 하는 그녀가 우리보다 더 행복한 삶을 갖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위문품이 도착 할때까지 2층으로 올라가서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오랜만에 침대에 누어 밖에서 불어오는 실바람을 맞았다. 참 오랜만에 행복하고 편안한 기분으로 들떠있는 시간이었다. 왜냐면 조금 후에는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제 사무실에 가서 위문품을 챙겨 할 시간이라 호스피탈레노를 찾아갔다. 그녀의 책상 옆에 정말 라면박스가 놓여있었다.
“올라” 내가 박스를 보고 무턱대고 인사를 하자 여성 호스피탈레노가 일어나면서 “이것이냐” 하고 물었다.
교포 부인이 순례자 진료소에서 돌아와 우리는 주방으로 가서 위문품 박스를 해체했다. 포기김치 팩이 3개. 신라면 6봉지. 포장김 3개. 고추장 1통. 깻잎 통조림 6개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일행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 퍼지고 교포 부인이 점심으로 라면을 먹자고 제안하였다. 부인과 닥터정이 함께 주방으로 가서 큰 냄비를 꺼내 물을 끓였다. 라면 사리를 넣고 스프를 풀어 넣자 순식간에 매운 냄새가 식당에 퍼져갔다. 근처에서 음식을 준비하던 외국인 여성 순례자들이 혼비백산하여 코를 막고 밖으로 나갔다. 사실 나도 근처에서 기다리다 매운 냄새 때문에 기침을 하며 창문을 모두 열어 제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나 오랜만에 느끼는 매운 냄새는 싫지 않았다. 밖으로 피신한 외국인들도 우리를 보면서 한바탕 웃기 시작했다. 라면에 계란을 풀어 먹지는 못해서 좀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맛은 더 말할 거 없이 최고였다.
저녁이 가까워 오자 교포 부부가 김치찌개를 끓여 먹자고 마켓에서 쌀과 이베리코 흙돼지고기를 사왔다. 냄비에서 끓고있는 김치찌개 본연의 냄새가 퍼지고 또 다른 버너에서는 쌀밥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오랜만에 김치찌개를 반찬으로 한국식 집 밥을 먹게 되었다.
어제 만시야 알베르게에서 저녁 만찬은 평생을 잊지 못할 카미노의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다. 쌀밥과 김치만 있으면 밥 한끼는 훌륭하지만 돼지고기가 들어간 김치찌개는 순례길에서 맛볼 수 없는 최고의 식사였다.
오늘은 스페인의 대도시 레온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어제 순례자 진료소에서 교포 부인의 엄지발가락이 들떠있어서 치료를 하였으나 아직은 걷기에 약간의 고통이 있기 때문이었다.
오전 9시에 레온으로 가는 버스 시간에 맞춰 느긋하게 정류장으로 나왔다. 'Leon' 이라는 네온 싸인이 보이는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서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갔다. 나는 걷지않고 버스를 탄다는 현실에 들떠서 자리에 바로 앉지 않고 통로에 서서 즐거워했더니 교포 남편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며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재빠르게 시골길로 들어섰으며 나는 푹신한 좌석에 편하게 앉아 스쳐지나가는 농촌 풍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느새 나는 이런 시간이 오래 갔으면 생각하면서 이렇게 이동하기 편한 것을 두고 매일 걸어야 하니 정말 힘들구나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동차들이 가끔 지나가는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는 작은 마을들을 여러곳 지나서 조금 후에 레온 시내로 들어가는 넓은 도로의 차선으로 들어갔다. 역시 도시의 길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으며 높은 건물과 상점들 그리고 레스토랑들도 자주 눈에 띄었다. 버스가 터미널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고 모두가 그곳을 빠져나와 여러갈래로 흩어지고 있었으며 우리는 레온 시내의 중심가를 찾아 걸어갔다.
대도시 레온 시내로 들어가는 오래된 다리를 건넜다. 레온은 인구가 14만명이나 되는 대도시 답게 사람들과 자동차들로 상당히 붐볐다. 구글맵을 켜고 레온에서 처음 방문지로 시내에 있는 산타마리아 대성당을 찾아갔다.
레온성당은 1205년에 공사를 시작해 1301년에 성당의 주요 부분을 완성했고, 그 후에도 나머지 공사는 계속 진행했다고 한다. 레온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과 내부 전체를 화려하게 장식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평가되며 성경의 장면이나 성인의 일화, 신화에 나오는 야수나 식물의 문양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했다.
성당 앞에는 이미 관광객들이 줄지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성당의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는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 중앙 통로를 따라 신자석을 두고 높은 천정과 장식, 대형 파이프 오르간이 보이고 양쪽 복도를 따라 소예배실이 있었다. 그리고 창문에 장식된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무척 아름다웠다. 이러한 장엄한 분위기를 느끼며 제단을 향해 걸음을 옮기자 측면 스테인드글라스로부터 햇살이 들어와 주변이 환하게 반짝거렸다. 제단을 중심으로 세상에 빛을 발하며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시는 예수님은 십자가를 등에 지고 여기 들어온 모든 이들에게 자비와 용서와 평화를 빛을 통해 전하고 계셨다.
나는 절실한 기도가 필요했다. 우리의 순례 여정에 하느님의 사랑이 저희와 같이 해 주십사하고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이제껏 힘들게 걷고 있는 저에게 산티아고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사고!!
우리가 성당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자 출입구에는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입구에 모여있었다. 사람들 가운데 한국인 몇 명이 사진을 찍고있어 서로 인사를 했다. 그들은 순례자가 아니고 두산출판사에서 출장나온 직원들인데 자동차를 렌트해서 스페인의 관광지를 다니면서 사전에 포함할 실제 정보를 수집중이라고 했다.
우리는 성당을 벗어나 도심의 거리를 걸으며 여유있게 주변을 산책했다. 작은 공원과 도심의 거리를 걸어가며 상점들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사람들도 구경했다. 도시는 역시 번잡하고 사람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레온 시내는 중세시대 건물들이 많이 들어 차있고 드문드문 현대식 건물들이 틈새에 끼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존경받는 위인들의 동상들과 철 조각품들이 레온주도의 화려했던 과거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닥터정이 레온에 1825년에 문을 연 오래된 약국 ‘파마시아 메리노(Farmacia Merino)’ 가 있다고 해서 우리는 약국이 있는 산타 도밍고 광장 근처로 가기로 했다. 성당에서 멀지않은 약국에 들어서자 내부는 예전처럼 전통적인 인테리어에 고풍스러운 약 진열장이 그대로 있어 과거의 약국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약사들은 하얀 가운을 입고 고객을 기다리며 지금도 전통 약과 현대 약을 함께 팔고 있다고 했다. 약국을 나와 우리는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걸었다.
우리는 거리를 걷다 건물 앞에 앉아 있는 멋진 집시 풍 아저씨를 만나 구경을 하며 서 있었다. 그 사람은 멋진 보헤미안풍 모자를 쓰고 여러 색깔의 훈장을 가슴에 달았고 그리고 스타킹과 목이 있는 부츠를 신었으며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방에서 샌드위치를 꺼내 먹기 시작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이 힐긋힐긋 쳐다보며 걸어갔다. 나는 조금 떨어져서 멋을 많이 낸 아저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스페인은 관광국가이다. 국가 총생산의 15%가 관광 수입이라고 했다. 어딜가나 중세시대 또는 로마시대의 건축들이 예술적 가치를 더하고 그곳에는 여행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레온에는 까따루냐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Antoni Gaudí)가 설계한 카사 보틴(Casa Botines)이라는 건축물이 있었다. 가우디의 독창적 건축 디자인은 지금까지도 그의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고 특히 건축 특징인 고딕 스타일의 성채와 화려한 장식물, 곡선미, 독특한 창문 디자인운 건축가로서 지금도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레온을 떠나 다음 구간까지 버스로 이동하기로 했다. 어제 만시야 순례자 치료소에서 교포 부인의 치료받은 발톱 통증이 아직 가라앉지 않아 오래 걷는데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 오늘은 걷는 일을 멈추자고 닥터정이 제안을 했다. 일단 레온에서는 여행자 모드로 지내기로 했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태리 식당으로 들어갔다. 각자 스파게티와 피자 한판 그리고 음료수로 콜라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피자도 콜라와 먹으니 속이 시원하고 잘 넘어갔다.
오늘 숙소는 레온에서 출발하는 다음 구간 목적지 빌라당고스(Villadangos)로 정했다. 레온에서 23키로 떨어져 있는 마을로 가기 위해 아침에 내렸던 버스터미널로 다시 걸어갔다. 일행 중에 가장 젊은 닥터정이 버스 티켓 자판기로 가더니 이것저것 두드려보고 동전을 넣고 버스표를 꺼내 왔다. 닥터정은 응급의학과 의사답게 행동이 민첩하고 센스가 빨라 우리에게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얼마후에 우리는 다시 빌라당고스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스페인의 시외버스들은 좌석이 넓어 아주 편안한 느낌이었다. 어느새 버스가 터미널을 빠져나오자 시내를 벗어나 외곽도로에 접어들었다. 나는 계속 창밖으로 눈길을 주며 도시를 구경했다. 버스가 잠시후에 도시를 벗어나자 주변은 한적했고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어느 대도시나 마찬가지로 도시의 변두리는 항상 썰렁한 분위기였다. 조금전에 마주쳤던 복잡하고 활발했던 거리가 아니고 한동안 어수선했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버스는 우리를 조용한 마을 빌라당고스에 내려놓고 또 어디론 가 줄달음쳐 달아났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오늘 지낼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사실 이곳이 까미노 길이 지나가는 곳이라 길에는 노란 회살표를 만나기도 했었다. 알베르게 체크인 시간이 좀 빨라서 거리의 상점들에 놓인 물건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역시 알베르게는 문이 닫혀 있었고 건물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아무도 없는 듯해서 우리는 체크인 시간인 3시까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해는 하늘 중앙으로 옮겨와서 기세를 올리듯 내리쬐고 우리는 그림자를 찾아 담벼락 쪽으로 옮겨가며 호스피탈레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베르게 밖 출입구에 붙여놓은 안내판에 체크인 시간이 3시로 적혀있었는데 시간이 되어도 찾아오는 순례자나 호스피탈레노는 나타나지 않아 잘못 찾아오지 않았나 하고 염려가 되었다.
나는 시멘트 바닥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힘들어서 그만 일어나 철문을 확 밀쳐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이 열렸다. 우리는 무조건 들어가자고 했고 건물 현관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투숙객들을 접수하는 책상이 놓여있고 넓은 로비와 테이블들 그리고 높은 천정과 순례자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지낼 수 있는 규모의 시설이 보였다. 우리는 주방을 지나고 복도를 따라가다 침실 앞에서 각자 알아서 자리를 차지하기로 했다. 침대가 2개씩 놓여있고 칸막이도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배낭을 내려놓았다. 마치 우리가 단독으로 빌린 숙소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가벼운 느낌으로 샤워도 하고 빨래도 했다. 모든 일을 마친 후 우리는 벤딩머신에 있는 맥주도 꺼내 식탁에 둘러앉아 창으로 들어오는 봄날의 햇살을 받으며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오랜만에 교포부부의 미국 생활 얘기도 들으며 오후의 여유로움을 가졌다.
6시가 넘어가자 마침내 다른 순례자 부부가 들어왔다. 남자는 다리가 약간 불편해 보였는데 독일 베를린에서 온 사람들로 우리는 호스피탈레노가 없으니 아무 침대나 가서 자리를 잡으라고 알려주었다. 이들 부부는 샤워를 하고 마찬가지로 맥주를 들고 우리 옆으로 왔다.
남편이 입고 있는 윗옷이 BMW 마크가 붙어있어서 직원이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내가 자동차 회사에 오랫동안 다녔다고 하자 남편은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상당히 많은 질문을 하였다. 그는 생산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지금은 연가를 내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독일 부부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의 마트에서 오이와 양배추 그리고 쌀을 사와 밥을 만들고 김치와 맛김으로 호젓한 저녁 식사를 즐겼다.
저녁 8시가 되어 호스피탈레노 여자가 나타났다. 우리 일행과 독일 부부는 그녀에게 숙박료를 지불하고 크리덴시알에 세요를 받았다. 그는 침실을 한바퀴 둘러보더니 무슨 일이 있으면 입구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연락하라고 하며 돌아갔다. 그런데 9시가 넘어 출입문이 열리며 2명의 외국인이 들어와 호스피탈레노를 찾더니 침대가 있는 룸으로 들어가서 배낭을 두고 밖으로 다시 나가버렸다.
이제 카미노 프랑세스 순례길 도보 여행은 열흘정도 지나면 도착하게 될 것 같았다. 오늘은 거리가 꽤 먼 30km를 걸어 아스토르가까지 가는 날이다. 매일같이 새로운 환경과 풍경들을 만나고, 같이 걷고 있는 순례자들과 경험을 나누고, 미지의 마을들을 찾아가며 하루씩 지내는 즐거움도 이 길을 걸으며 얻을 수 있는 특별한 행운 같았다.
문득 아소프라에서 만났던 '빠삐용'이 생각났다. 지금은 어느 지점에서 머무르고 있을지 궁금했다. 그는 약간 어리숙하게 보이지만 지금 가장 행복한 삶의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를 만날 때마다 그의 진정한 속내가 매우 궁금했다. 프랑스 자신의 집을 나서 르퓌길을 출발하여 지금은 스페인의 크고 작은 마을들을 지나면서 자연을 보고 느끼며 사색하고 즐거운 여행을 실행하는 빠삐용이 진정한 사유(思遊)의 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라고 생각했었다.
산 마르틴 마을 바르에서 체구가 자그마한 72세의 일본 할아버지를 만났다. 우리와 같이 걷고 계신 교포 남편의 연세가 68세인데 일흔이 넘어도 장기간 여유롭게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웠다. 그분은 이제 두번째 프랑스길을 걷고 있는데 그분의 말을 빌리면 체력 때문에 하루에 10키로정도만 걷고 오래 쉬었다가 또 가던 길을 걸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자식들이 너무 염려하는 바람에 이번 걷는 일이 마지막이라고 하셨다.
아스토르가를 찾아가는 길은 다양한 자연을 접하는 시간들이었다. 야산을 오르더니 오랫동안 너덜길을 걷다 기차가 지나가는 모습도 바라보다 가끔 고속도로를 보면서 가로수 시골길을 지나갔다. 드넓은 농경지와 들판을 지나갈때는 시원하게 뻗어 있는 물푸레나무길을 만나고 물이 흐르는 수로를 만나서 오르비고강을 지나 드디어 오스피달데 올비고 마을로 들어갔다. 산티바네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누구에게나 쉼을 제공하는 샘터와 벤치가 있었으며 이미 순례자들이 여럿 모여 있었다.
나는 마을을 빠져나가다 하얀 집 옆의 텃밭에 업드려 호미질을 하고 계시는 멋쟁이 할머니를 만났다. 동그란 하얀 모자와 붉은색 원피스 옷차림 그리고 선글라스를 착용하신 할머니를 바라보다 카메라를 꺼내서 일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그제야 할머니가 인기척을 느끼고 울타리 쪽으로 다가오셔서 “올라” 하고 내가 인사를 드리자 할머니가 활짝 웃으시며 “올라”하고 답레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 “부엔 카미노” 하고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셨다. 할머니의 정감 어린 표정의 웃음이 걷는 내내 떠올랐다.
주택들을 지나 점차 야산으로 오르는 언덕을 향해 걸어갔다. 길에는 시원하게 하늘로 뻗어 있는 물푸레나무 군락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모퉁이를 돌아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길에 전통적인 모습의 순례자 흉상을 만났다. 종종 만나는 순례자 상은 산티아고를 향해 걷고 있는 순례자들에게 성인 야고보의 참된 의미를 다시 생각하도록 하는 것 같았다.
아스토르가에 가까워지는 동안 도로에는 한낮의 강한 햇살이 내 얼굴에 퍼붓는 것 같았다. 선크림을 바른 내 얼굴은 이제 땀으로 범벅이 되어 흘러내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손수건을 배낭에 걸어놓고 계속 얼굴을 닦고 있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길게 이어지던 포도밭 사이로 나 있는 길을 나왔더니 그곳에는 순례자들이 더위에 지쳐 힘들어 할 시간에 맞춰 고마운 포장 마차가 나타났다. 먼저 도착한 남자 순례자들이 상의를 탈의한 채로 포장마차 주위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다. 여자 순례자들이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포장마차 좌판에 먹을 게 널려 있었다. 시원한 음료수와 과일. 빵. 커피. 보카디요. 물론 아이스커피는 없다. 주인은 지중해 남쪽 나라에서 온 듯 가무잡잡한 얼굴에 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있었고 순례자들이 주문한 오더를 내놓느라 바빴다. 우리는 점심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상황이라 포장 마차는 정말 구세주 같았다. 나는 스페인의 대표적 샌드위치인 하몽이 들어간 보카디요와 콜라를 주문했다.
포장 마차는 카미노 길에서 순례자들이 무척 힘들어 하는 길목에 가끔 구원자처럼 나타났다. 이 지역은 주로 포도를 재배하는 농원들이 있었는데 포도를 수확해서 발효와 숙성을 거치기 위한 와이너리 건물들이 많았다. 포도 농원을 지나 이제 소나무와 떡갈나무가 우거진 숲을 따라 가다 점점 내리막 너덜지대를 걸어갔다. 그 길에 성 또르비오의 십자가 상이 길가에 서 있고 언덕위에는 산 프란체스코 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미노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도로를 건너가더니 산줄기를 따라 형성된 마치 계곡처럼 움푹 파인 지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후에 산 후스또 데 라 베가라는 마을로 들어갔다가 다시 아스토르가 시내로 들어가는 구역 표지판을 만나 길옆으로 흐르는 뚜에르또(Tuerto)강을 지나는 중세 시대의 다리를 건너갔다.
아스토르가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여행자 안내센터'가 보였다. 여행정보도 얻을 겸 또 더위를 피할 생각으로 일단 출입문을 밀고 들어갔다. 실내는 시원한 에어컨이 켜 있었고 의자에 앉아있던 여성 안내 직원이 일어나며 “올라” 하고 반갑게 인사를 먼저 건네 왔다. 순례자들이 이곳을 지나갈때 여행자 안내센터를 많이 방문하는지 안내 직원은 물어보기도 전에 순서대로 먼저 알베르게 위치를 알려주고 아스트로가에서 꼭 가 보아야 할곳을 지도위에 볼펜으로 표시를 해 주며 안내를 해주었다.
나는 아스토르가 시내 지도와 팜플렛을 받아서 밖으로 나왔다. 잠깐이지만 시원한 사무실에서 휴식 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정면에 보이는 가파른 언덕길로 올라갔다. 해발 900미터에 자리잡은 아스토르가(Astorga) 시내 아스팔트 포장길은 태양의 복사열 때문에 늘어져 있고 도로에서 발산하는 후끈후끈한 열기는 내 얼굴을 감싸고 지나갔다.
노란 화살표를 따라 가다 산타마르타 성당 옆에 있는 뮤니시팔(Municipal) 알베르게로 들어갔다. 호스피탈레노 남자와 여자는 ‘어서 오세요 !’ 하면서 한국어로 인사를 하면서 환한 웃음으로 나의 방문을 환영했다. 크리덴시알에 세요를 찍어주고 나서 한국 사람들이 있는 방은 침대가 꽉 차서 다른 방으로 가야 한다며 이층 침대가 4개 있는 방으로 안내를 해 주었다. 공립 알베르게의 크고 깨끗한 시설과 순례자들을 진심으로 친절하게 맞이해주는 자원봉사자 호스피탈레노 때문에 한결 기분이 나아졌다.
우리는 오후 늦게 아스토르가 시내 산책을 나갔다.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도시의 카테드랄 광장(Plaza Cathedral)에는 가우디가 설계한 신고딕 양식의 탑이 하늘로 솟아 있고 예전 주교궁으로 사용하던 건물은 지금 카미노 박물관으로 운영되는 건물도 있었다.
또 마요르(Mayor)광장에는 오늘 이곳에서 대형 행사가 있었는지 사용했던 텐트를 하나씩 철거하고 있었다. 거리에는 상점들과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고 또 사람들의 왕래도 많았다. 나는 돌로 만들어진 보도블록을 따라 걸어갔는데 샌들을 신어서 그런지 발바닥이 불편했지만 중세시대 사람들의 발자취를 체험하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로지르는 거리를 따라 이곳 저곳을 둘려보다가 슈퍼마켓이 있어서 저녁 먹을거리를 사고 책방에 들어가 스페인 전역 지도를 구입했다.
도시에는 아름다운 문양이 새겨져 있는 고색 창연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고 거리의 파라솔 밑에는 연인들이 모여 있었으며 기념품 가게에는 여행객들로 북적거렸다. 아스토르가는 생장에서 출발한 프랑스길 순례자들과 세비야(Sevilla)에서 출발하는 은의 길(Via de la Plata) 순례자들이 만나는 도시이며 스페인의 주요 교역, 군사, 순례 루트라고 했다.
오늘은 저녁 식사전에 문어(Pulpo) 통조림과 와인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식탁에는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떠들어 댔고 주방에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들락거리며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방에서 요리를 준비하며 피어나는 구수한 음식 냄새가 옥상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순례자들의 식욕을 돋우고 있었다.
이제 우리도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주방으로 들어갔다. 문어 통조림 요리는 준비하기 쉽고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면 저녁 만찬으로는 끝이다. 이렇듯 하루 중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은 저녁 만찬 시간이 되었다.
오늘부터는 산간 마을이 있는 지역으로 들어간다. 첫 숙박지 폰세바돈은 고도가 870미터에서 1,150미터까지 올라가야 한다. 오늘부터는 쉴 수 있는 마을들도 있으며 레온 지역의 지루한 들판이 사라지고 거친 산들이 나타난다. 가이드북에는 소박한 농부들과 목동들이 사는 아름다운 절경의 산간 마을을 도로를 따라 점점 고도를 높여가는 길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카미노는 알베르게를 출발하여 아스토르가 중심 거리를 빠져나와 천천히 오르막 길을 걸어가야 했다. 우리 앞에는 벌써 앞서 걷는 순례자들이 있었고 배낭은 무거워 보였다. 그러나 카미노는 시간이 지나면서 기온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아스트로가에서 가까운 발데비에하스(Valdeviejas) 마을이 나왔다. 그리고 자동차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고속도로가 나타나고 우리는 도로 아래 터널을 지나서 조금후에 무리아스(Murias)에 도착했다. 그러자 갈림길이 나왔는데 우리는 왼쪽길을 선택하여 2km 정도 걸어 조그만 산타 카탈리나 마을로 갔다. 우리는 마을을 지나가며 그늘진 곳에서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기로 했다. 사과를 꺼내고 물을 마시면서 휴식을 취했다.
마을을 나와서 카미노는 작은 계곡들 옆을 지나가는데 우중충한 하늘에 검은 구름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언제라도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동안 좋은 날씨 덕분에 불편 없이 걸어왔는데 이젠 봄비가 내리면 어쩔 수없이 긴장을 해야 했다.
자동차가 지나가는 조용한 시골길을 걸어가다 조그만 성소 건물을 만났다. 이곳을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잠깐 들러 자신들의 가톨릭 신앙속에서 주님과 만나는 시간을 갖을 수 있는 묵상의 장소로 활용되는 곳이었다. 성소 입구에는 여러나라의 언어로 작성한 내용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국어로 적어놓은 문장이 있었다. 아마 무척 늘어난 한국인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일 것이다. '신앙은 건강하게' 라고 한글로 적혀있었다. 나는 성소안에서 잠시 쉬었다 걷기를 시작했다. 쉼을 제공해주는 성소 건물은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폰세바돈을 향해 카미노는 점점 높아지는 산골마을을 지나갔다. 이곳은 고산지역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아직 봄의 분위기가 찾아오지 않은 듯 가로수에는 아직 초록색 잎이 열리지 않았다. 사람도 차도 보이지 않는 적막한 분위기의 마을을 지나 옅은 안개가 깔려 있는 계곡을 따라 걸었다. 주변의 목초지에는 양때들이 무리를 지어 있었고 그곳에는 드문드문 야생화가 예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이제부터 깊은 산골로 들어가면 이런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은 어떤 풍경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그래도 봄의 화려한 꽃들이 자라고 있었다. 가끔 눈에 확 띄는 진한 빨간색 양귀비꽃도 구경할 수가 있었다. 양귀비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듯 인적이 드문 산길에 홀로 피어 있어서 유난히도 또렷하게 보였으며 진시황제를 사로잡은 여인의 자태를 보는 듯했다.
산골 마을로 들어서며 안개가 피어 올라 앞쪽의 시야를 가려왔다. 그리고 얼마후에 굵은 빗줄기가 후드득하고 나무 가지들을 세차게 흔들었다. 잎사귀에 떨어진 빗물이 잠시 물방울을 머금다 땅으로 주르륵 떨어져 내렸다. 우리 앞에서 우비를 쓰고 걸어가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이 자꾸 느려지고 있는 듯하였다. 또 비가 내리는 날이라 길을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들은 침울한 표정들로 걷는 내내 대화가 없었다.
우리가 알베르게에 도착할 무렵에는 이제 가느다란 보슬비가 흩날리기 시작하였다. 마을로 들어가는 계단을 올라서자 도로 왼쪽으로 알베르게가 나왔다. 앞서 걷던 순례자가 출입문을 두드려 호스피탈레노를 불렀다. 그러자 대문이 열리고 우리는 안으로 들어가 주인이 지시한 옷걸이에 우비들을 걸쳐 놓았다. 그런데 알베르게 한쪽에 편의점처럼 식료품과 생활용품을 진열해놓은 장소가 있었다. 아마도 산골 작은 마을에는 가게가 없으니 사람들이 찾아오는 알베르게에서 이런 물건들을 파는 것 같았다.
이곳에는 식당이 없어서 호스피탈레노에게 숙박료와 저녁 식사 비용을 함께 지불하였다. 숙소로 사용하는 장소는 다락방이었다. 천정이 낮은 다락방에 침대는 없었고 단지 메트리스가 바닥에 일렬로 놓여있었다. 나는 제일 안쪽에 깔려 있는 메트리스 옆에 배낭을 두고 젖은 옷을 갈아 입었다. 문득 내 옆자리에 순례자가 오질 않으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층으로 내려가 샤워를 하고 젖은 옷을 말리기 위해 아직 사용중인 난방기 근처로 갔다. 난로에서 뿜어내는 따뜻한 열기가 내 품안으로 훅하고 들어왔다. 다락방에는 몇 군데에 창문이 나 있었으며 가로로 길게 난 사각형 유리창 밖을 통해 보이는 마을 풍경은 온통 안개가 내려앉아 있어서 조금 쓸쓸해 보였다. 황토색 블록으로 깔린 마을 길에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적색 벽돌 주택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플라타나스 가로수에는 아직 잎이 나지않은 나무가지가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잔뜩 찌뿌린 날씨에 이제 비가 그치면서 숙소에 무료하게 있던 순례자들이 산골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알베르게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팔고 있는 캔맥주를 하나씩 들고 마을 산책을 하며 고개 너머로 잿빛 구름이 밀려가는 산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산위로 연한 무지개가 나타났다. 뚜렷하지는 않지만 무지개가 살짝 피워오르는 광경을 바라보며 사람들이 “와” 하고 탄성을 질러댔다. 그러나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아쉽게도 무지개는 시야에서 금세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인적이 뜸한 폰세바돈 마을을 걸어 한바퀴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새벽에 창틈으로 바람소리가 들리며 빗살이 창에 심하게 내리치는 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하지만 인터넷도 안되고 할일이 없어서 오늘 걸어야 하는 루트를 가이드북에서 확인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알베르게에서 팔고 있는 빵과 커피를 마시고 비가 내리는 길에 나섰다. 나도 어제 걸어둔 우비를 주섬주섬 찾아 입고 밖으로 나오니 다른 순례자들이 문앞에서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호스피탈레노가 밖으로 나와 오전 중에 비가 그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아마 빨리 출발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아 빗속을 걸어가기 싫어 망설이던 순례자들이 하나 둘씩 길에 나서고 있었다.
알베르게를 나와 조금씩 언덕을 올라가 비외 안개가 자욱한 텅 비어 있는 마을의 길 한가운데를 따라 걸어갔다. 빗속에서 만나는 마을의 정취는 정적이 흘러 을씨년스러웠고 공동화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폰세바돈의 마을을 지나 계속 산을 넘어가는 길을 따라 다시 더 높아지는 경사진 고개를 넘어갔다. 얼마후에 가이드북에서 보았던 크루즈 데 페로 (Cruze de Ferro) 철십자가상을 만났다. 그냥 단조롭지만 많은 의미를 지닌 십자가는 이곳을 지나는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뜻있는 멈춤을 하고 다시 출발한다. 이곳이 세월과 비바람을 견뎌낸 '순례자 성 야고보 길' 을 상징하는 십자가라고 전해 내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지나는 순례자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순례길을 걷는 목적을 되새기며 조약돌이나 가지고 있던 물건들을 걸아 놓거나 얹어 놓고 다시 가던 길을 떠난다. 나는 내가 가지고 다니던 손수건에 볼펜으로 내 세례명인 ‘프란치스코 이 길을 걷다’ 라고 쓴 다음 십자가에 단단히 걸어 놓고 기념 사진을 찍은 후에 다시 길을 떠났다.
이제 만하린(Maharin) 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까지 거리를 적어놓은 표지판을 만났다. 허름한 알베르게 겸 식당 건물에 붙어있는 표지판에는 아쉽게도 서울까지의 거리 표시는 없었다.
만하린을 떠나 카미노는 이제 고도가 1,515미터나 되는 푼또(Punto)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를 향해 올라섰다. 산 중턱에 나 있는 너덜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니 갑작스럽게 내 앞에는 아주 작고 오래된 예쁜 아세보(Acebo) 마을이 나타났다. 오래전부터 살아온 예쁜 집들이 길을 따라 나란히 서 있었고 집들마다 벽에 난 창밖 발코니에 봄을 알리는 아름다운 꽃 화분들이 놓여 있었다. 또 길을 지나가다 따뜻한 햇살이 비추는 바르 앞 담벼락에 흰색 털을 가진 강아지를 만났다.
아세보 마을에는 멋을 낸 바르와 레스토랑들이 여럿 있었다. 첫번째 나타난 바르에는 순례자들로 북적거렸으며 하얀색 벽에는 유명 영화배우 사진들과 포스터들 그리고 커다란 스피커에는 잔잔히 팝송이 흘러나왔다. 순례자들은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테이블마다 맥주와 커피를 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으며 우리는 맛있는 토스트와 콜라로 목을 축였다.
골목을 따라 내려가며 이곳 저곳을 둘러보며 걸었다. 네모난 돌을 사용하여 지어 올린 벽체는 튼튼하게 보였으며 눈이 많이 내리는 산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뾰쪽한 삼각형 지붕은 운치를 더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는 여러 그룹의 관광객들이 찾아왔으며 심신산골의 작은 마을의 풍경과 운치 있는 골목을 지나가며 베란다에 꾸며진 제철 꽃들과 담벼락에 멋을 낸 소품들을 구경하며 걷고 있었다.
아세보 마을을 나와 아스팔트 길을 걸어 내려가다 이제 숲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에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는 광경을 만났다. 커다란 바위에 동물 모양의 조각과 'HIDALGO'라고 새겨져 있는 곳에서 물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난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구글 검색을 하면 "HIDALGO"는 스페인어로 귀족, 기사 또는 신사라는 뜻인데 스페인 역사에서 지위가 높은 계급을 가진 분이 순례자들을 위해 이곳에 샘을 만든 것으로 추측하고 있었다.
멀리 산자락 아랫 마을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하얀 집들을 바라보며 아스팔트 길을 따라 내려갔다. 이곳은 아직 긴 겨울을 마지막 보내는 풍경이었고 길 옆에 올라오는 들꽃들은 쌀쌀한 산들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를 낮춰 갈수록 근처의 초원에는 4월의 끝자락에 맞는 화려한 들꽃들로 만개하다시피 널려있었고 점차 완연한 봄이 왔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부터 폰페라다가 가까워오는 지역으로 들어서며 순례자들도 늘어나고 지역마다 카미노 표시인 노란 화살표가 많아지고 있었다.
멀리 높은 건물들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걸음이 빨라졌다. 폰페다라로 내려가는 길에는 초록의 목초지에 목장들이 계속 나타났다. 카미노는 자동차가 지나가는 한적한 아스팔트길을 걸어갔다. 가로수 옆에 비석이 세워져있어 자세히 보니 일본과 스페인 간 카미노들의 우정을 기리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폰페다라 시내로 들어가는 도로를 따라 공장 건물들이 나타났다. 공장이 있다는 것은 이곳이 산업화가 어느정도 활발했던 도시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보에사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고 나서 시내로 들어갔다. 시청 광장을 지나고 근처에 있는 알베르게 간판이 잘 보이지 않아 혼란스러웠지만 멀리서 작은 대문 사이로 순례자들이 하나 둘씩 들락거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저곳이 오늘 숙소임을 알아냈다.
알베르게는 규모가 커서 한방에 4명씩 머물 수 있는 침대가 있고 호스피탈레노는 3명이나 배치되어 있어서 순례자들에게 매우 호의적으로 봉사를 하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난 이곳에서 베드버그에 물리고 말았는데 목과 어께 그리고 종아리까지 빨갛게 부어 올라 며칠간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이곳 알베르게는 순례자들 중에서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료 발마사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교포 부인이 건물 밖에 마련된 발마사지 코너에서 아픈 발을 내밀며 요청을 했더니 자원봉사자가 쾌히 승낙을 하며 거의 30분정도 발을 마사지해 주었다.
또 폰페라다 알베르게에는 보기 드물게 휴게실에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한국어 인터넷 버전이 제공되고 있었다. 오랜만에 네이버에서 한국 소식을 들여다보고 그동안 쌓여 있던 이메일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위해 먹을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갔다. 거리는 비가 살짝 내리고 있었으며 알베르게 앞의 넓은 주차장을 지나서 건너편에 있는 식품점으로 갔다. 거리에는 비 오는 주말이라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았고 바르에는 손님들로 북적거렸지만 거리는 한산했고 자동차들만 빠른 속도로 거리를 지나갔다. 다행이 문이 열려있는 식품점에 들어갔지만 진열대에 먹을만한 식품이 보이질 않고 분위기가 썰렁해서 우리는 쌀과 피클. 내일 걸어가며 먹을 과일과 머핀빵만 사가지고 그냥 밖으로 나왔다.
저녁 식사를 하고 알베르게 옆에 있는 성당에서 8시에 순례자 미사가 있다고 해서 찾아갔다. 성당에는 순례자들과 동네 사람들로 붐볐는데 비 오는 주말 저녁이라 무료한 순례자들은 성당에서 뜻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폰페라다 알베르게를 나설 때도 보슬비가 거리를 촉촉히 적시고 있었다. 알베르게 입구 담벼락에 오늘 도착할 비야프랑카의 사립 알베르게 홍보물이 여러 곳에 붙어 있었다. 이곳부터 순례자들이 늘어나고 숙소도 많아 순례자를 유치하기 위한 홍보전이 된 듯했다. 그런데 한 남자가 알베르게 앞에서 카미노를 출발하는 우리에게 알베르게 홍보 전단지를 나누어 주면서 판촉 활동을 하고 있었다. 정확한 고객을 대상으로 직접 홍보를 하니 기대 효과를 올리는 데는 최고의 아이디어라고 모두가 칭찬했다.
오늘은 어제처럼 포도밭을 따라 이어지는 길을 지나가면서 드문드문 농부들의 일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기도 하였다. 알베르게를 출발하여 2시간쯤 걷고나서 길가의 바위에서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했다. 이곳이 유명한 와인 비에르소(Bierzo)를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길 건너에는 마을의 와인협동조합 건물이 보였다.
카카벨로스 마을과 쿠아강을 지나 산능선을 따라 높은 지역에 올라섰다. 이곳에서 바라보이는 건너 마을에는 물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아 있었고 이제 다시 숲이 우거진 길을 걸어 나와서 마을의 축구장을 만났다.
이제 비야프랑카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들어섰다. 오래된 석조 건물들과 호텔들이 줄지어 보이고 가이드북에 보면 이곳에 ‘용서의 문’ 과 왕족의 순례 복장을 한 성 야고보 상이 있는 산티아고 성당, 그 밖에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마르케세스성과 수도원, 수녀원이 있어서 연중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알베르게로 찾아가는 길은 오래된 건물 사이의 골목을 지나 레스토랑과 기념품 상점들이 가득한 광장으로 들어갔다. 광장에서 바라보이는 주택들 뒤로 보이는 웅장한 산능선에는 자욱한 안개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광장을 지나고 부르비아 강물이 넘실거리며 흘러가는 다리를 지나 골목 사이에 나란히 있는 첫 번째 집의 예쁜 대문앞에 섰다. 아침에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던 알베르게 팜플랫에 적혀있는 주소를 확인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침에 만났던 주인 남자와 부인이 우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벗은 비옷을 걸어주며 자리에 앉기를 권하고 따뜻한 커피와 쿠키를 내 주었다.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으로 다들 한마디씩 칭찬을 했다. 이런 특별한 친절은 순례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하루의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땀으로 범벅이된 셔츠를 빨고 샤워를 끝낸 뒤 일행들과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보슬비가 약하게 내리고 있어서 우비를 다시 걸치고 강물이 세차게 흐르는 다리에서 마을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을은 주위가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아담한 지역으로 광장에는 순례자 조각상이 나란히 세워져있었다. 광장의 상점들은 주로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마을을 걷다 큰 마켓이 보여 우리는 그곳에 들러 저녁 먹을거리를 사기로 했다. 스테이크용 고기와 좀 비싼 와인도 두 병 골랐다. 양상추와 피클도 바구니에 넣고 계란도 샀다. 오늘은 그동안 일행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은 이유로 내가 물건값을 치르기로 했다. 푸짐한 먹거리가 담긴 큰 봉지를 들고 밖으로 나오니 왠지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오늘은 모두가 기분을 내는 날인가 보다. 고기가 구어지고 식전 와인도 한 잔씩 들이켰다. 소고기의 육질은 상당히 부드러워 양상추에 싸먹기도 좋았고 더불어 레드 와인은 좋은 궁합이 되었다.
교포 남편이 나에게 대뜸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 생각이냐고 물어왔다. 사실 나는 아직까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오랫동안 다니던 회사를 얼마전에 퇴직했기에 여행하는 시간을 갖으며 생각해보려던 참이었다.
“이제 막 퇴직했으니까 좀 쉬면서 차차 생각해보겠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다시 순례길 걷기가 끝나면 추가적인 여행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교포 부부는 프랑스로 가서 며칠간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갔다 미국으로 간다고 했고 닥터정은 특별한 계획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 새로운 병원에 출근하겠다고 했다. 나는 스페인 항구도시 루고(Lugo)를 거쳐 포르투갈, 바르셀로나에 갈 거라고 했다.
교포 남편이 앞에 있는 와인잔을 들면서 “남은 일정을 위해 건배”하고 외쳤다. 그는 식사를 하면서 자신이 경험했던 미국에서의 직장 생활과 잠깐 경험했던 전자 부품 사업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했다.
식사가 끝날 무렵 비가 그치고 창밖으로 아직 남아있는 노을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우리는 기분 좋은 느낌을 좀 더 가져가기 위해 마을의 강가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강둑을 따라 걸으며 비가 거의 그친 폰페라다의 느낌을 다시 새롭게 갖고자 했다.
레스토랑 테이블에는 잿빛 구름사이로 슬며시 붉은 노을의 빛나는 햇살이 들어와 모두를 환하게 비추었다. 우리는 간단히 맥주를 한 병씩 앞에 두고 지나왔던 길에서 느낀 일들에 대해 한동안 떠들어 댔다.
어제 알베르게에 예약해둔 아침 식사를 챙겨먹고 출발했다. 대략 바게트와 식빵, 커피. 홍차, 비스킷, 요구르트, 꿀과 버터, 과일류가 테이블에 놓여있다. 순례자들은 각자가 알아서 맘껏 가져와서 먹고 일어났다.
오늘은 발카로스 계곡을 오르며 높은 지점의 라파바(La Faba) 마을까지 가야 한다. 라파바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우리는 경치가 더 좋은 강을 따라가는 길을 선택했다. 주택가 옆에 흐르는 강을 따라 자동차들이 지나가는 아스팔트 길을 걸어갔다. 강물은 며칠간 비가 많이 온 탓에 상당히 불어난 난듯 했다. 또 산에서 내려온 빗물때문에 약간 혼탁했으며 좁은 강폭을 따라 강물은 햇살에 반짝거리며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카미노는 숲 사이로 나있는 아스팔트 길과 바로 옆에 강을 두고 시작되었다. 어제 비가 내려 젖어있는 길은 여러곳에 물웅덩이가 나 있었으며 길옆 숲속에는 근처 산에서 벌목한 큰 통나무들이 높게 쌓여 있었다. 내가 길을 걷는 동안에도 벌목한 목재를 싣고 굉음을 내며 달리는 화물차들이 자주 지나갔으며 이때 차량의 배기구에서 뿜어나오는 탁한 매연때문에 코를 막고 지나가야 했다.
숲길은 꽤 길게 이어지더니 이제 끝을 보이고 조용한 트라바델로 시골 마을로 들어섰다. 그곳 마을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살이 고랑을 따라 빠르게 흘러 내려오고 드문드문 폐가들이 흉측하게 방치되어 있었으며 경작지는 덤불로 덥혀 방치되어 있었다.
한적한 길을 따라 걷는 내내 시간이 멈춘 듯 무거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를 반겨주는 바르가 나타났으며 순례자들은 앞 마당에 놓인 원형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나는 바르의 몸집이 큰 주인에게 커피와 토스트를 주문했다. 주인 여자는 카페 콘레체를 가득 담은 머그잔과 토스트를 담은 봉지를 나에게 건네며 “꼬레아” 하고 나를 쳐다보며 웃었다. “씨. 꼬레아노” 하고 대답을 했다. 그녀는 바르에 들어오는 순례자들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고 오늘 아침에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도 물으면서 대화를 건넸다.
카미노는 주변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갯길을 넘어가자 주택들이 모여있는 자그마한 마을이 나왔다. 우리는 골목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을 걸어가다 펜션 같은 이쁜 집들을 만났고 그곳에서 마을에 바게트빵을 배달하는 하얀색 밴 자동차를 만났다. 차량에서 경적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빵을 사기위해 자동차로 걸어왔고 또 미리 빵을 주문한 집에는 대문에 걸어놓은 바구니에 넣어주는 광경도 보았다. 예전에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기 책에서 읽었던 마을의 보부상 차량 생각이 났다. 식료품을 싣고 외딴 마을들을 찾아 다니며 경적소리를 울리면 동네사람들이 나타나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하고 미리 주문한 물건을 전달도 해주는 차량이었다.
젊은 여성이 대문에 걸려있는 주머니에 바게트를 몇 개씩 넣어두고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자동차 옆을 지나다가 열려있는 트렁크에 들어있는 물건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으려고 했더니 여자 주인이 다가와 포즈를 취해주어서 우리는 마주보며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마을을 지나 다시 또 산길로 천천히 올라갔다. 봄 분위기가 무르익은 듯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으며 점점 경사가 높아지는 언덕길에는 여러 색깔의 야생화가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카미노는 이제 계속해서 깊은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우리는 아래 마을과의 기온 차이를 확실이 느낄 수 있었으며 이제 조금씩 거치른 산길을 걸어가며 호흡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고도가 서서히 높아지며 때때로 얼굴에 와 닿는 시원한 바람은 오히려 부드러운 느낌을 갖게 했다.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따라 걷다가 다시 경사가 가파른 발카로스 계곡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때부터 좁은 등산로 같은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한동안 쉬지않고 오르던 산속에 떡하니 조그만 마을이 나타났다. 이곳에 알베르게가 있다는 것이 너무 궁금했으며 작은 마을에는 골목으로 자동차가 딱 한대만 지날 수 있을 정도로 좁았으며 그곳에는 예쁘게 꾸민 카페도 있었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카페가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안을 들여다 보았으나 문이 잠겨있어서 내부는 자세히 보지는 못했다.
나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그곳에 서서 멀리 내려다보이는 구비구비 지나가는 고갯길을 감상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 ‘라파바’라는 마을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좁다랗게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으며 알베르게를 찾았는데 보이질 않았다. 나는 골목에 새겨놓은 이정표가 헷갈려 올라온 길을 반복하다 뒤에서 올라오는 교포 남편을 만나 같이 이정표를 확인하고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알베르게는 마을에서 약간 벗어나 산 안드레스 성당안에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의 등록을 받고 있는 호스피탈레노가 따뜻한 차와 쿠키를 먹으라고 내 주었다. 배가 출출하던 시간이라 눈치를 보지 않고 쿠키를 여러 개 집어 먹었다.
알베르게는 독일 가톨릭 신자회가 운영하며 성당과 붙어있는 아담한 건물안에 있었다. 자원봉사를 하고 계시는 독일 여성분이 친절하게 숙소 소개와 생활 방법에 대해서 설명하여 주셨다. 설명을 듣고 밖으로 나오자 알베르게 입구에는 중세시대 이곳을 걸어갔던 순례자 형상의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은 그 시대의 의복인 거적 같은 남루한 옷을 걸치고 이곳 높은 고개를 넘어 멀리 떨어져 있는 산티아고를 향해 하루 정도 묵어 갔던 숙소였다.
중세시대부터 많은 순례자들은 이스라엘을 떠나 성경을 전파하러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흩어져 다녔다. 특히 멀디 먼 곳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며 혹독한 날씨에 겪었을 고초는 지금 우리가 체험하는 고통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했다.
알베르게 옆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은은한 촛불이 제단을 비추고 중앙의 스텐드그라스는 밖으로부터 빛을 끌어들여 성모 마리아의 자비로운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잠시 중앙의 의자에 앉아 기도와 묵상을 했다.
성당을 나와 건물의 뒤편으로 돌아가자 돌담 밖으로 나무 울타리가 설치된 넓은 목초지가 보였고 평화로운 산골에 이제 스멀스멀 하루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좁다란 골목 사이를 산책하며 나도 하루의 걷는 일을 잠시 멈춰야 했다.
라파바 산 중턱에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 앉았다. 오늘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있는 갈리시아(Galicia)지역으로 넘어가는 날이다. 차분한 느낌의 알베르게에는 순례자들이 일찍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알베르게를 나와서 연녹색 목초 지대의 철조망이 있는 길을 따라 드문드문 보이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길어갔다. 두 시간쯤 걷다 해발 1,300미터에 위치한 오세브레이오(Ocebreiro) 마을로 들어섰다. 이제 드디어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왔다.
지대가 높은 오세브리오 마을에는 대성당과 기념품 가게들, 그리고 알베르게가 있었다. 이곳에는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칠다고 했는데 정말 나뭇가지도 심하게 흔들리고 공기도 차가웠다. 마을 안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산타마리아 왕립 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의 교구 사제였던 돈 엘리아스 발리냐 산 페드로의 흉상이 성당 광장에 있었는데 사제는 이곳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순례길 루트를 복원하고 우리에게 친숙한 노란 화살표를 처음으로 표시하여 순례자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헌신했던 성인이었다.
광장에는 벌써부터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성당과 기념품가게를 들락거리느라 상당히 붐볐다. 나는 제일 먼저 보이는 가게에 들러 가리비 형상의 조그만 목걸이와 기념 뱃지 그리고 프랑스길 수첩을 사고 밖으로 나왔다.
오세브레이로를 떠나 아스팔트가 깔린 길로 나왔다. 그곳에는 산 로케 공원(Parque de San Roque: 1,270미터) 이라는 표지판이 있고 공원 광장에 순례자 복장의 산 로케 성인의 철 조각상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성인의 이름을 딴 공원임을 알았다.
다음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스산한 바람이 앞에서 불어 닥쳐 나를 더 움츠러들게 하였다. 심한 바람의 고장으로 알려진 이곳에는 키가 낮은 지붕의 집들이 보였는데 일년 내내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지붕을 높게 지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곳부터 산악 지대의 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길이며 주변은 대부분 초원의 목장들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쯤 지나 고도 1,335m 의 포이오 고개(Alto do Poio)를 지나며 점차 내리막 길로 들어서자 이제 주변의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겨울철 혹독한 추위에 길들여진 생물들이 세상밖으로 나오기 시작한 듯 이곳도 이제 봄의 여운이 깔리고 넓은 초원에는 야생화가 드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 위에 소떼들이 무리지어 여러 색갈의 야생화들로 만발해 있는 초원에서 한가롭게 야생의 들꽃과 풀을 먹고 있었다. 이곳의 소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초원을 옮겨가며 방목되고 그동안 살을 찌우는 것이다. 우스운 생각이지만 이곳에서 방목되는 소들은 야생화를 먹으며 살을 찌우니 스페인 사람들은 육질이 뛰어난 진짜 꽃등심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났다.
언덕길을 내려오다 길가의 허름한 바르를 만났다. 정오가 훨씬 넘은 시간이라 별 생각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인심 좋게 생긴 턱수염을 기른 남자는 내가 주문한 하몽 샌드위치와 가득 채운 카페콘레체를 테이블에 가져다 주었다.
아스팔트길을 따라 내려갈수록 이제 폰프리아(Fonfria)의 하얀 집들이 시야에 들어왔고 나는 터벅터벅 느긋한 마음으로 길을 따라 걸어갔다. 길을 걸어가며 땅바닥을 내리치는 스틱 소리가 가깝게 들려와 뒤를 돌아 보았더니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다. 문득 내가 지금 혼자 떨어져 걷고 있는 사실에 몹시 당황스러웠다. 교포 부부와 닥터정이 동행자였는데 지금은 혼자인 것이 언젠가 현실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순례길 걷기가 끝나면 우리는 각자 예정된 길을 택할 것이다.
폰프리아로 가는 길은 계속 고도를 낮춰가고 있었다. 내리막 길이 계속 이어지며 발가락들이 신발 앞으로 밀려와 약간의 통증을 느껴왔다. 나는 길 옆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어 발에 생긴 열을 식히며 바세린을 다시 발랐다. 등산 양발을 벗은 내 발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쭈글쭈글하게 눌러있었다.
마을이 가까워지는 길에는 새로운 도로를 만드는 공사를 하느라 중장비들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스페인의 시골에도 지역 환경 개선사업이 한창인 것 같았다. 오래된 건물은 형태를 일부 유지하면서 현대식 구조로 변화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는데 마을 입구에 2011년 지역환경개선사업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상당한 금액의 예산을 주정부가 지원하고 있다고 적혀있었다.
어느새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산자락에 걸치기 시작했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 나의 긴 그림자가 계속 앞을 비추며 따라 가고 있었다.
드디어 트리아카스텔라 마을로 들어섰다. 오후 3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마을에는 오래된 전통 가옥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었으며 우리는 처음 들어간 알베르게에 침대가 없어 다시 큰길로 나와 다른 사립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했다.
알베르게 주인이 숙박비 10유로에 얇은 1회용 침대 커버와 벼개피를 더 주었다. 깨끗한 잠자리를 가졌으니 베드버그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았다. 그리고 침대 커버는 계속 사용할 수가 있어서 다음날 아침에 다시 챙겨서 배낭에 넣어 두었다. .
오늘은 많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100km 전에 있는 사리아에 가는 날이다. 그곳에 가면 갑자기 순례자들이 많이 늘어난다. 이곳에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걷는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인증서를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리아에서 버스를 타고 근처의 오랜 역사를 지닌 도시 ‘루고(Lugo)’를 거쳐서 산티아고에 우회해서 가기로 했다.
갈리시아 지방은 카미노 프랑세스 루트 중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는 지역이었다. 우리는 아침에 알베르게를 나와 큰 도로를 따라 걷다 오리비오강 다리를 건너고 사리아까지 사모스(Samos)루트 대신 거리가 짧으며 가파른 산실 루트로 들어섰다. 이곳에서 숲속으로 난 길을 계속 걸어 올라가자 길 모퉁이 바위에 앉아 쉬고 있는 젊은이들이 “올라”하고 인사를 했다. 그 곳에는 가리비 조개 형상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틈에서 물이 콸콸 흘러나와 순례자들과 한무리의 관광객들이 물을 마시고 있었다.
물병에 싱싱한 물을 담고 이제 발걸음을 재촉하여 아기아다(Aguiada)까지 걸어갔다. 이곳은 사모스를 경유하는 루트와 다시 합쳐지는 장소였다.
그때 앞에서 말을 타고 역방향으로 오는 순례자를 만났다. 물론 색다른 방법으로 말을 타고 순례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산티아고 순례자사무실에서는 인증서를 제공한다고 알고 있었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순례자들이 말을 타고 가는 순례자가 부러운듯이 한참을 쳐다보다 다시 걸어갔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랜기간 걸어가고 있는 나와 비교하면 부럽지만 나는 혼자만의 걷기가 말을 타고 목적지에 가는 방법과 비교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혼자만의 걷기가 더 홀가분하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가는 그는 멋쟁이 부츠를 신고 배낭은 말의 등위에 올려놓고 터벅터벅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지나갔다.
멀리 사리아(Sarria)의 높은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구가 만 명이 넘는 도시의 윤곽이 점점 가까워지며 컬트족 문화에 기원을 둔 사리아. 중세 시대부터 순례자들이 붐비기 시작하여 여러 개의 성당과 수도원이 생겨났다고 했다. 사리아 시내로 들어오니 도심 중앙로를 따라 화살표가 있었고 알베르게는 시내를 벗어나 약간 언덕을 올라가다 자리하고 있었다. 알베르게는 체크인 시간이 조금 일러서 아직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우리 일행은 문 앞에 배낭을 나란히 세워놓고 아침에 교포 부인이 만들어 준 주먹밥을 꺼내 먹기 시작했다. 곧이어 다른 순례자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오후 2시가 넘어 알베르게 문이 열리고 일행들은 등록을 하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일행들이 침대를 배정받고 모두 밖으로 나왔다. 내가 이제 버스를 타고 루고로 떠나야 할 차례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버스터미널 카페에서 캔맥주를 하나씩 놓고 잠깐 이별의 잔을 기울였다. 언제 다시 만날 줄 모르지만 그동안 힘든 순례길을 같이 했다는 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인연이고 감사했다.
나는 루고(Lugo)행 버스에 올라 언제 다시 만날줄 모르는 길을 떠났다. 사리아 시내를 벗어난 버스는 1시간쯤 달려 고대 역사의 도시 루고에 도착했다. 루고의 버스터미널에서 구시가지를 향해 걸어갔다.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도시는 중심으로 갈수록 오랫동안 버티고 있는 건물들과 현대식 건물들이 혼재되어 있었다.
시내 중심에 서기 3세기 고대 로마의 방어벽으로 지었다는 길이 2,120미터의 Muralla Romana de Lugo 성벽이 나타났다.
루고(Lugo)시내에 있는 성벽
루고의 로마 시대 성벽은 2000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화강암으로 건축된 울룩불룩한 구조의 성벽에는 오랜 세월에 생긴 이끼들이 남아있었다. 성벽안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출입문을 지나자 넓은 광장과 공원 그리고 상점들과 카페테리아와 레스토랑들이 줄지어 있었다.
나는 호텔 앞 카페 광장 햇볕을 가리는 파라솔 아래 테이블에 앉았다. 카페앞에는 테이블이 열과 줄을 맞춰서 가게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위로 오월 초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고 있었다.
광장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테이블에 앉아 오랜만에 카페콘레체를 마시면서 여유를 즐겼다.
내 앞으로 몇 분의 수녀들이 지나가고 여행객들도 캐리어를 끌면서 걸어갔다. 한동안 별 생각 없이 광장을 물끄러미 내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건너편 건물위로 이제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내려앉자 성안을 빠져 나와 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루고 시내를 구경했다. 도로에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자동차는 쉴새없이 지나갔다.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의 소박한 호스텔을 보고 들어갔다. 내일 아침에 일찍 팔라스 데 레이로 가야 했기 떄문이다.
루고에서 투명한 햇살이 비치는 아침을 만났다. 호스텔을 빠져나와 시내를 여기저기 산책했다. 루고 대성당에 들러 의자에 앉아 잠시 묵상을 하고 근처 카페에서 근사하게 머핀과 카페콘레체 한잔. 생과일도 한 접시 주문하고 천천히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상상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다시 순례길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리고 팔라스 데 레이 행 버스 티켓을 끊고 아직 남아있는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프랑스 순례길의 마을 ‘팔라스 데 레이’ 로 돌아왔다.
이곳 알베르게는 일찍부터 순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제 며칠후에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길에 있는 순례자들이 벅찬 느낌으로 도착할 것이다. 나는 2층 구석진 곳의 침대를 배정받았다.
어제 지냈던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이 일찍 도착하여 침대 배정이 일찍 끝났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도착할 아르수와 알베르게도 선점 경쟁이 있을 것 같아 순례자들이 아침 일찍부터 출발을 서두르는 바람에 분위가 어수선했다. 나는 침대를 내려와 식당으로 가서 배낭을 다시 정리하고 크라상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한 후에 사과를 물에 씻어서 배낭에 넣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늘은 자주 숲길을 지나고 여러 강 근처를 지나가게 된다. 팔라스 데 라이를 빠져나와 팜브레강 다리를 건너자 오르막이 반복되는 산길과 계곡을 지나갔다. 유칼립투스 나무가 우거진 산림 지역을 지나자 꼬루냐(Coruna) 지방의 첫 번째 마을인 아름다운 전원 마을 로브레이로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갈리시아 지방의 곡식 저장 창고 ‘오레오(Horreo)’가 많이 나타났다. 가을 철에 수확한 곡식이나 먹을 것을 저장하는 창고는 땅에서 일정한 높이만큼 위에 만들어져 있었다. 동물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땅에서 들어 올려져 지은 창고이다.
이제는 종착지를 찾아가는 순례자들이 점점 늘어나 길에서는 앞 뒤로 볼 수 있을 만큼 많아졌다. 완만한 오르막을 걸어가자 어느새 멜리데(Melide) 마을에 도착하였다.
멜리데는 북쪽 길 오비에도에서 출발하는 프리미티보(Primitivo)길이 만나는 곳이다. 시내에 들어서자 가이드북에서 알려준 대로 문어 요리(Pulpo)와 달콤한 빵 멜린드레(Melindres)로 유명한 마을 답게 문어요리 식당들이 계속 나타났다.
큰 길 모퉁이 식당을 지나가다 주인장이 방금 뜨거운 물에 데친 큰 문어를 내 앞에 들어 보이며 크게 웃는 바람에 나는 주저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 문어 한접시와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문어 요리(Pulpo)는 올리브 오일을 사용하여 소금, 파프리카, 후추와 섞어 후라이팬에서 뒤섞으면서 완성되는 요리다. 식감이 너무 부드러웠고 맛있었으며 시원한 맥주 한잔이 오늘 흘린 땀을 식히기에 충분했었다. 그런데 이곳이 바닷가 마을도 아닌데 싱싱한 문어요리가 어떤 이유로 유명해졌는지 궁금했지만 주인에게 물어보지는 못했다.
멜리데의 큰 도로를 걸어가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쉬고 있는 프랑스에서 온 젊은 순례자 커플을 만났다.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물어보길래 한국이라고 했더니 그들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어 매우 미안하다고 했다.
시내를 벗어나 보엔테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유칼립투스 나무가 울창한 오솔길로 들어섰다. 마지막 마을 리바디소(Ribadiso)를 지날 때 갑자기 비가 쏟아져 허겁지겁 길가의 카페로 들어갔다. 비를 피해 들어온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비가 좀 약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루스와에 가까워질수록 짓궂은 비는 멈추지않아 나의 걸음을 자꾸 느리게 만들었다.
아르수와 (Arzua)는 정적이 흐르는 듯 조용한 마을이었다. 시내를 가로 지르는 도로에 자동차들은 속력을 내며 빠르게 지나가며 내가 머무를 알베르게는 한동안 한적한 도로를 따라가야 했다.
숙소의 저녁은 매우 북적거리는 사람들로 약간 소란스러웠다. 아마 여기에 모인 순례자들은 이틀 후에 만날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의 광장에 도착한다는 기대감으로 들떠있을 것이다. 그런데 알베르게의 내 옆 침대에서 뜻밖에도 아주 어린 아이를 배낭에 태우고 걷는 젊은 순례자 부부를 만났다.
카미노 프랑세스의 마지막 마을로 가는 날이다. 이제 마음도 설레고 걸음도 빨라질 것이다. 새벽부터 떠날 준비를 하는 순례자들은 간단한 식사를 마치고 물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헤드랜턴을 켜고 떠나갔다.
아마 이 길을 걸었던 모든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가 가까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 길에는 젊은 사람들과 나와 같은 시니어들이 혼재되어 목적지를 바라보며 서둘러 걷고있었다. 카미노는 출발부터 떡갈나무와 유칼립투스 나무가 무성한 오르막 숲길을 지나 아르수아를 벗어나며 쉴새없이 오르다 보니 어떤 순례자들은 이제 지친 모습으로 제자리에 서서 쉼 호흡을 하고 있는 순례자들이 있었다.
카미노는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자동차 도로 아래 터널을 지나고 나서 곧 브란데소강 다리를 건너갔다. 아름다운 떡갈나무 숲과 유칼립투스 나무, 소나무, 떡갈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의 완만한 경사 길을 따라 올라가다 ‘카예’ 마을의 바에서 시원한 콜라를 한잔 마셨다.
나는 카페를 나와 도로를 건너 떡갈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오솔길을 지나고 옥센(Oxen)이라는 마을을 지나갔다. 이곳에 1993년 순례 중 사망한 마리아노 산체스 꼬비사를 기리는 비석을 만났다. 목적지를 거의 앞에 두고 생을 길에서 마감한 순례자를 만나면서 주님의 자비가 꼭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페드로우소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서 마지막 밤을 지내기 위해 알베르게로 들어섰다. 건물안으로 들어서자 벌써 순례자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순례길에서 마지막 밤을 어떻게 보낼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알베르게를 나와 거리의 레스토랑에서 괜찮은 와인 한잔을 하며 내 생애의 최고의 만찬을 기대해보기로 했다.
프랑스길의 마지막 밤, 순례자들은 모두가 저녁 늦게까지 즐거움으로 떠들썩했다.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서 11시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면 순례자 사무실을 방문하여 순례자 증서를 받고 12시에 오브라도이로 (Obradoiro) 성당에서 순례자 미사를 드리면 나의 첫번쨰 까미노 프랑세스 걷기가 끝난다. 모두가 이 날을 기다려 왔을 것이다.
.
하나, 둘 순례자 그룹들이 알베르게를 일찍 나섰다. 하늘에는 잿빛 구름이 가득해서 언제라도 비를 뿌릴 기세였다. 알베르게를 나서자 시작부터 긴 숲길을 지나갔다. 갈리시아 지방의 숲은 유칼립투스와 떡갈나무가 많은 지역이었다. 축구장이 보였고 체육관 건물과 학교를 지나서 산 안똔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였다. 다시 넓은 초원 지대를 지나자 아메날 마을에 들어섰다. 대도시가 가까워 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도로에 자동차들이 많이 지나갔다.
거리에 드디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뒤집어쓰고 걸었다. 완만한 경사길을 올라가니 앞에 산티아고 국제공항이 내려다 보였다. 커다란 동체의 비행기가 이륙해서 점점 높은 하늘로 힘차게 오르는 광경이 보였다.
문득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가고 싶은 애절한 생각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멀어져가는 비행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라바꼬야 국제공항 펜스를 따라 있는 아스팔트 길을 걸어갔다. 빗줄기가 점점 바람을 타고 세차게 얼굴을 내리쳤다. 모자를 눌러쓰고 땅을 보면서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이곳을 벗어 나려고 애를 썼다. 이미 땀에 젖은 속옷은 흥건하고 신발 안으로 들어온 빗물은 걸을 때마다 신발속에서 물소리가 철석 철석하고 들려왔다.
공항을 완전히 벗어나서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시내로 들어서자 빗줄기가 가늘어져 걷기에 좀 나아졌다. 산티아고 시내로 들어가는 길을 따라 사람들과 자동차들은 분주하게 지나갔으며 이제 마지막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벌써부터 배낭을 맨 순례자들이 좁고 복잡한 보도를 따라 줄지어 걷고 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제 멀리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성당에 이르는 길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고 식당앞에는 관광객들까지 뒤섞여 복잡했다.
드디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오브라도이로 광장(Plaza do Obradoiro)에 들어왔다. 줄지어 도착하는 순례자들과 가톨릭 성지를 찾은 신자들, 그리고 관광객들로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어떤 순례자는 땅 바닥에 주저앉아 그동안 걸어오면서 외롭고 쓸쓸하고 고통스러웠던 지나간 날들을 생각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있었다. 내 앞에 주저 앉아있는 젊은이는 같이 걸어온 일행들과 서로 어깨를 들썩이며 울먹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달 간의 긴 여정을 잘 극복하고 마침내 개인적으로 삶에서 가장 큰 희열을 느끼고 있는 듯 하늘을 쳐다보며 두 손을 들고 소리치는 사람. 광장 바닥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보고 있는 사람들, 일행들과 박수치면서 서로를 격려하는 그룹들, 순례자들은 이제부터 모두 행복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여행의 목적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었다.................
나는 순례자 사무실에 가서 크리덴시알을 제시하고 인증서를 받고 밖으로 나왔다. 순례자들은 골목에 줄지어있는 레스토랑과 카페 그리고 기념품 상점을 들락거리느라 분주해 보였다.
보슬비가 계속 내렸다. 정각 12시에 시작하는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위해 조금 일찍 오브라도이로 대성당안으로 들어갔다. 성당안에는 이미 많은 신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나는 제단에서 멀리 떨어진 뒷자리에 않아 묵상을 하고 있었다. 성스러운 장소에서 입당 성가가 울려 퍼지고 신부님의 기도를 시작으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스페인어로 미사를 진행하지만 순서는 세계 공통이라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신부님과 마음의 영적인 교감을 갖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부풀어 오르는 기쁜 마음이 어느새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미사가 끝나고 순례자 향로미사(Botafumeiro)가 진행되었다. 향로미사의 유래는 오랜시간 순례길을 걸어오느라 제대로 씻지못한 순례자들에게 나는 냄새를 줄이기 위해 향을 피운 행사라고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일어나서 8명의 사도들이 줄을 힘껏 당겨 움직이는 향로에서 피어나는 연기를 바라보며 환호했다.
미시가 끝나고 나서 나는 얼마동안 의자에 앉아 잠시 묵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가슴이 메이는 듯 기쁨이나 환호보다는 허전함이 물밀 듯 내안에서 요동쳤다. 눈을 뜨자 앞에 예수님이 나를 지그시 내려다보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주님” 하고 속으로 외쳤다. “제가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저와 함께 해주십시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육지의 끝, 피니스테레를 향해 떠났다. 피니스테레행 버스가 산티아고 시외버스 터미널을 빠져나와 근처의 산티아고 대학 캠퍼스를 지나며 시내를 빠져나갔다. 어제 묵었던 한인 민박집 남자 주인이 다니는 대학이다. 버스가 도심 외곽을 따라 달리다 고속도로에 올라섰고 난 이때부터 편안한 시트 쿠션에 기댄 채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스페인의 강렬한 햇살이 완연한 봄날의 길가에 내려 앉고 있었으며 줄줄이 피어있는 주황색 들꽃들은 바람에 일렁이고 있었다. 버스는 한참을 달려 어촌 마을의 정류장에서 잠시 멈추었다 승객들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했다. 길 옆의 해변에는 포말이 일렁이는 파도가 쉼없이 밀려왔다 흩어지고 있었다.
버스는 이제 해안가의 오르막으로 들어섰다. 편도 1차선인 도로때문에 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느리게 움직였다. 고개를 넘어 도로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 내려와서 어느새 피니스테레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주택가 골목으로 나있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 자동차가 다니는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땅끝으로 향하는 길에는 순례자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줄지어 오르고 또 내려오는 사람들로 조금 붐볐다.
땅끝을 알리는 표지석은 대서양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던 물건을 태웠는지 불에 탄 잿더미가 남아있었다.
순례자들은 한달 이상 걸으면서 힘들게 지냈던 생각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다시 언덕길을 내려오게 했다.
이제 다시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오후 4시가 넘어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가 출발하자 나의 긴 여정은 이제 끝맺음을 했다. 그동안 운명처럼 생각했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를 지금 마침내 마무리했다는 벅찬 느낌으로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바람처럼 내 앞을 스쳐갔다.
그리고 얼마후에 버스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터미널에 진입하자 나는 또 다른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