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로 걸어가는 사람들
1. 카미노 프랑세스(Camino France). Saint Jean Pied Port to Santiago de Compostella 800km
2. 카미노 노르테(Camino Norte). Irun to Santiago de Compostella 800km
3. 카미노 실버웨이(Camino Silver Way. Via de la Plata). Sevilla to Santiago de Compostella 1007km
4. 카미노 르퓌길(Via Podiensis). Le puy to Saint Jean Pied Port 750km
이 글을 만들어 낸 동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2024년 봄. 나는 스위스 제네바 레만호수에서 출발하여 프랑스 르퓌앙블레(Le Puy-en-Velay)까지 걷고 다시 포르투갈의 리스본으로 이동하여 포르투까지 걸어가는 도보여행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자 가족들이 나에게 그동안 여섯 번의 순례길 도보여행을 하면서 작성한 일기를 정리하여 글로 남겨보라는 권유가 있었다.
내가 체험한 순례길 도보여행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한다는 일은 마치 나의 속살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오랜 망설임으로 지냈다. 또한 나의 글에 대한 어휘와 표현의 수준은 매우 낮아 책을 받아본 독자들의 평가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2011년 4월 나는 처음으로 한 달간의 산티아고 순례길 걷기의 경험을 하고 돌아와 지인의 알려준 POD의 책 만들기의 툴(Tool)을 통해 처음으로 육십 페이지에 달하는 포토북에 나의 도보 여행 경험을 실어 지인들에게 나누어 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 삶의 흔적을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 며칠 동안 흥분하기도 했었다.
지난한 무더위가 내 방에 머무르고 있는 여름날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올라온 글을 읽다가 그만 내가 해야 할 글쓰기를 생각해 냈다.
나는 그동안 이베리아반도에 조성된 순례길을 여섯 번에 걸쳐 약 3,400km를 걸었다. 오랜 시간 순례길을 걸으며 경험한 사실은 늘 마음의 평화를 얻으며 걸어갈 수 있게 격려해 준 가족과 신에게 감사하는 일이었다. 더불어 길에서 마주하는 신비한 자연의 탄생에 대해서도 나는 누군가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얻고자 했었지만 끝내 지쳐 버리고 말았던 순간들도 있었다. 모든 역사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으로 결론을 맺었다.
이 모든 사실들은 나에게 귀중한 기억들이다.......
이 글은 그동안 산티아고로 향하는 5개의 루트를 걸으면서 일기 형식으로 작성한 메모를 들여다보고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도보 여행기를 작성한 내용들이다.
이 중에서 Camino Frances, Camino Norte, Camino Silver way와 GR65 루트를 지나는 Le Puy Route(Via Podiensis)에 대해 나의 체험을 바탕으로 써 내려가 보았다.
다만 2024년에 걸었던 GR-65 Route에 있는 Geneva-Le Puy en Velay와 Camino Portuguese(Lisbon - Santiago de Compostella) 도보 여행기는 다음 기회를 빌려 전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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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이 다 지나갈 무렵, 나는 어느 일간지 신문 문화면에 실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저자의 도보 여행기 출판 내용 기사를 읽고 깊은 상념에 빠져들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어떤 길일까?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했다.
인터넷에서 발췌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가는 길은 크게 5개의 루트가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1189년 교황 알렉산더 3세에 의해 이스라엘. 로마에 이어 가톨릭 성지로 선언되었다. 신성하게 여기는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순례자'라는 명칭이 주어지고 가리비 껍데기를 순례자의 상징으로 선택하였다. 그래서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스페인 사람들은 '카미노(Camino : 길)'라고 말하며 '가리비'를 상징으로 배낭에 걸어두고 걸어간다.
대표적인 순례길은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Saint Jean Pied de Port)에서 출발하여 780km 떨어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la)까지 걸어가는 길이다. 또한 이 길의 이름은 ‘카미노 프랑세스(Camino Frances)라 불리며 대부분 도보로 정해진 트레일을 따라 노란 화살표와 가리비 형상을 보며 걸어간다.
한편 순례길에 대한 대표적인 가이드북은 번역본 ‘산티아고 가이드북 (존 브리어리 지음. 신선혜 옮김)이며 해외 가이드북 ‘Miam Miam Do Do, 그리고 스마트폰용 앱은 ‘Buen Camino’와 Gronze.com. Camino Ninja 등이 있다.
사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가는 길은 몇 개의 스페인 내륙 길과 유럽 여러 지역에서 출발하여 이베리아 반도를 지나서 이곳에 도착하는 길이 있다. 참고로 2023년 이베리아 반도를 걸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순례자는 다음과 같았다.
순례자 사무소(pilgrim’s reception office) 홈페이지 통계를 보면 2023년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도착하여 등록한 순례자 숫자는 44만 명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루에 1,200명의 순례자가 이곳에 도착하였다.
한국인은 7,563명으로 나타났다. 매일 약 20명이 이곳에 도착하였다. 이제 프랑스길(Camino France)의 32구간 어디에서도 한국인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 이 길을 걸었던 수많은 성지 순례자들 또는 야고보 사도처럼 하느님 말씀을 전파하러 머나먼 이베리아 반도까지 길을 걸었던 역사 이야기 말고. 왜 800km나 되는 머나먼 길을 육체적 고통을 이기며 걷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 순례자들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먼 거리를 걷기로 결심하고 떠났다.
종교와 영적 체험, 자신을 되돌아보기 위한 시간, 더 좋은 건강, 은퇴나 이직에 따른 도보여행 등.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도보로 실크로드 장정을 시작하여 중국의 시안까지 12,000km를 걸었던 도보 여행기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나는 걷는다’ 책(총 3권)과 프랑스 리옹에서 튀르키에 이스탄불까지 3,000km를 그의 동거자 베네딕토 플라테와 75세 나이에 도보 여행을 마치고 어느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명쾌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명쾌하게 대답해 준다.
“왜 떠나는가?”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질문. 왜 안 떠나는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이렇게 답했다.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될 날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데 왜 피곤하다는 핑계를 댄다 말인가?”
그 해에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상상이 뇌리에 남아 꿈틀거리고 있었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인터넷에 들어가 ‘산티아고 가는 길’을 검색하여 들여다보았다.
일단 회사를 퇴직하면 제일 처음 해야 할 것은 이곳을 걸어가는 사람들과 한 달을 같이 하기 위한 결심으로 회사 그룹웨어 아이디를 ‘santiago3’로 바꾸어 놓기까지 하였다. 3월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는 마음의 약속이었다.
나는 평소에 등산을 많이 다니는 편이라 어느 정도 걷는 체력은 단련되어 있기에 한 달 정도는 무리 없이 걸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신했다.
내가 꿈꿔왔던 산티아고 순례길 도보 여행은 예상보다 빨리 다가왔다.
2011년 초, 나는 회사를 퇴직하고 곧바로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출발하여 스페인 국경을 넘어가는 카미노 프랑세스 루트 걷기를 준비하였다. 배낭을 새로 구입하고 우천 시 사용할 판초우의도 구입했다. ‘카미노’ 카페에 가입해서 경험자들이 올려놓은 경험담도 읽어보고 4월 초 스페인 마드리드 항공편도 예약하며 매일 떠날 준비를 했다.
출발일이 다가올수록 나는 긴장과 설렘으로 새로운 경험에 대한 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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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초 아침,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아내와 딸들의 격려 속에 아파트 철문을 밀고 나왔다.
식구들은 그동안 직장생활로 지친 나에게 아프지 말고 편안하게 다녀오라고 당부를 했다.
그래도 나는 찹찹하고 두렵고 걱정스러운 생각들로 꽉 차 있었고 발걸음은 무거웠다.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나는 두툼한 45리터 배낭을 메고 근처의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갔다
공항터미널은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로 분주해 보였다. 티켓을 받아 들고 배낭을 화물로 붙인 다음 나는 홀가분하게 게이트로 옮겨갔다. 마치 통로를 따라 끌려가는 인질처럼 걸어가다 라운지가 보여 안으로 들어갔다.
여행자들로 꽉 채운 비행기가 육중한 동체를 활주로를 따라 서서히 움직이다 출발선에서 멈추었다. 이내 육상선수처럼 신호를 받고 비행기는 금속성의 굉음을 내며 활주로를 힘차게 이륙했다.
나는 창가로 보이는 4월의 하얀 새털구름과 서해안 바다를 바라보다 창문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일부터 경험해야 할 장거리 도보 여행에 대한 기대와 동시에 두려운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기내에는 스페인으로 떠나는 여행자들로 꽉 들어차 소란스러울 만큼 분주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배낭을 찾아 출국장 밖으로 나오자 갑자기 찬기운이 엄습해 왔다. 공항에는 미리 연락해 만나기로 한 지인들이 입국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나를 보고 반갑게 양손을 들어서 환영했다. 우리는 곧장 마드리드 시내의 한국식당으로 가서 순례길 출정에 대한 환영 만찬을 개시했다.
순례길의 출발지 생장피에드포르는 아토차(Atocha) 역에서 기차를 타고 팜프로냐(Pamolona)로 간 다음 다시 피레네산맥을 넘어가야 했다. 이때 지인은 나에게 빈대를 조심하라고 베드버그 퇴치제를 건넸다.
특급열차 렌페는 아토차역을 출발하여 3시간 10분 만에 팜프로냐(Pamplona) 역에 도착하였다. 스페인 반도를 지나가는 창밖에는 봄이 무르익고 있는 듯 화려한 들꽃들과 밀고 쌀인 듯한 곡식들의 들판이 오랫동안 나타났다. 나는 이곳에서 지인들이 부탁한 현지인의 자동차로 옮겨 타고 프랑스 생장피에드포르 (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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