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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M Apr 13. 2020

[토요 호러가이드]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 하여도

영화 <미씽:사라진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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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김혜민


외면받아 숨기고만 있던 취향, 매주 하나씩 <호러 상자>를 열어보자.


지난 주에 이어 이번에도 스릴러 영화다. 맹목적인 호러 고어 영화를 얘기하기엔 아직 좀 겁이 난다. 중간중간 삽입하는 스틸컷의 수위를 어느 정도까지 조정할지, 또 너무 폭력적이진 않은가 싶어서.

세상에는 선혈이 낭자하고 장기가 드러나기 때문에 무서운 영화가 있고, 사람을 심리적으로 옥죄여서 무서운 영화가 있다. 동시에 뒷맛이 찝찝해 계속 곱씹게 되는 영화가 있다. <미씽>은 뒷맛이 쓴 영화다.

사실 이 영화보다 먼저 후보에 올랐던 건 <플라이트 플랜>이었다. 집단 지성과 제노 포빅을 절묘하게 그려낸 점이 이 시국에 어울린다고 봤다. 하지만 스릴러라기엔 다소 밝은 분위기가 아닌가, 오히려 액션으로 분류되는 게 맞지 않나 싶어 대안으로 찾은 영화가 <미씽>이다. 


여기서도 역시 한 명은 정신이 불안정한 사람으로 몰리고 다른 한 명은 이주민이란 이유로 불행한 삶을 살기 때문이다.

나는 호러뿐만 아니라 저예산 B급 장르에도 큰 애정이 있는데, 이 B급 장르가 본질에 충실한지 아니면 감독이 욕심을 부렸는지 가늠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러닝타임을 확인하는 거다. 

저예산은 촬영분도 적다. 그래서 대부분 90분을 넘기지 않는다. 포스터에서 풍기는 B급 냄새와 다르게 러닝타임이 100분을 넘긴다면 그건 감독이 욕심을 부려 내용이 산으로 가는 영화다.

다르게 말하자면, ‘러닝타임 100분 미만’인 영화는 대부분 저예산이다. 물론 유명 감독의 영화는 텐션 유지를 위해 관객의 집중력을 끝까지 붙잡기 위해, 뭐 그런 이유로 100분 내외로 맞추기도 한다. 하지만 <미씽>의 러닝타임이 1시간 36분인 걸 보고 직감했다. 아, 예산 얼마 못 받았구나. 실제로 사운드나 색 보정 등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물론 감상 이후 찾아본 이언희 감독 인터뷰에서 “원래 예산보다 10억 원이 깎였다”는 내용을 보고 모든 게 이해됐다. 영화를 보기에 앞서 <미씽>의 제작 과정이 너무나 험난했다는 걸 염두에 두길 바란다.

▲다은이와 보모 한매
▲외주 홍보사에서 근무하는 지선


지선은 남편과 이혼한 워킹맘이다. 입주 보모인 한매가 아니었으면 13개월 딸 다은이를 키우며 일을 할 수 없었을 거라고 늘 고맙게 생각한다.
             

▲자신이 아침에 썼던 물컵이 퇴근 후에도 그대로 있자, 지선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목요일, 한매는 다은이와 함께 사라진다.          

   

▲"목요일 아침에 나갔어, 나가서 안 돌아온 거야"


지선은 딸을 찾기 위해 한매를 추적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자신이 몰랐던 한매의 과거까지,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원하는 분만 읽기를 바란다.

           

▲우는 다은을 달래는 한매


지선이 원래 고용한 보모를 자른 이유는 다은이가 다치게 내버려 뒀기 때문이다. 같은 아파트 이모님이 자기 조카라며 소개해 준 한매는 조선족. 서툰 한국말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나 의심이 들지만 울던 다은이를 달래는 모습에 지선은 한매를 입주 보모로 들인다.


한매와 다은이가 사라진 뒤, 지선은 며칠 간 자기 집 앞을 어슬렁대던 남자를 붙들고 한매에 대해 아는 게 있냐고 묻는다.

남자는 ‘돈 되는 건 다 한다’는 브로커 박현익. 현익은 한매에게 받을 돈이 있다며 지선과 함께 한매의 옛 일터로 간다.
             

▲보모로 일하기 전의 한매.


지선은 한매가 목련이란 예명으로 성매매 업소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게다가 한매 역시 엄마였다는 것도.
             

▲한매가 두고 간 물건에서 찾은 아기 사진


지선은 무턱대고 충청도로 내려가 사진관을 찾는다. "아기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 고와서 사진을 찍어뒀다"는 사진사 덕에 한매의 본명이 김연이고, 사실 매매혼으로 팔려온 처지였다는 걸 알게 된다. 


▲한매와 딸 재인이


하지만 한매가 살았다던 집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남편 한선호 역시 죽은 채 발견된다. 이웃집을 통해 들은 한매의 과거는 끔찍하기만 하다.

             

▲폭행 흔적이 선명한 한매의 얼굴과 억지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시모


팔려와서, 강제로 머리를 잘렸고 행여나 다른 마음을 품을까 봐 한국어도 배우지 못하게 하는 남편과 시모, 아들이 아니라 딸을 낳았기 때문에 아픈 자식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이웃집 남편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던 것까지.


남편과 시모는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딸 낳은 게 뭐 자랑이라고 동네 시끄럽게 하냐”며 아이를 그냥 집으로 데리고 가 버린다.
             

▲이웃집 남자는 이 뒤로 한매를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후 한매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고,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며 아이를 돌보지만 병원비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에 박현익은 한매에게 장기매매를 알선해 준다.             


▲한매는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장기매매까지 하지만, 의사가 멋대로 병상을 빼버린다.


한매는 장기를 팔아 병원비를 마련했으나, 돈을 가진 박현익이 도착하기 전 병원 측에서 한매와 재인이를 쫓아낸다. 말 그대로 쫓아낸다. 경비까지 불러서.       

      

▲쫓겨난 재인이
▲재인이가 쓰던 병상에는 다은이가 들어온다


그 자리를 차지한 건 지선과 딸 다은이, 급성 폐렴으로 응급실에 있다가 의사인 남편이 멋대로 병상을 빼 버렸다. 한매는 지선과 다은이가 재인이의 자리를 뺏었다고 생각한다.
             

▲한매와 다은이의 두번째 만남


이어서, 한매가 다은이의 보모가 되기 위해 고의로 다은이를 다치게 한 사실이 드러난다. 그 광경을 봤다는 고등학생의 말에 따르면 자전거를 쥐여주며 조용히 할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제 다은이는 실종이 아니라 유괴상태가 된다. 경찰이 박현익을 붙잡아 네 짓이냐고 캐묻자, “목련이가 부탁해서 남편을 죽였고, 그 대가로 자기가 돌보는 애를 준다고 했다. 애 아빠가 의사니 협박해서 돈을 뜯어도 되고 애를 가져다 팔아도 된다고 하던데”라고 답한다.              


▲"내 남편 본 적 있지?" "아, 그 개새끼 그거" "그래, 그 개새끼"


하지만 그 이후로 한매는 연락이 없다고 했다. 아기용 여권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일이 다 해결되면 아기랑 같이 고향에 돌아가 조용히 살 거라고 들었다는게 박현익이 아는 전부다. 물론, 한매의 딸 재인이는 이미 죽었다.

자, 한매가 어떤 마음으로 다은이를 데려갔는지 이제 다들 짐작했을 거라고 본다. 결말은 이야기하지 않겠다, 결국 충무로식 눈물빼기 엔딩이니까.

나는 아이도 없고 모성은 타고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고 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로 아기가 있으면 저렇게까지 하게 되나 싶었으나 <미씽>은 모성을 접속사 삼아 서로 다른 두 여자를 하나로 얽어낸다.

‘을 중의 을 아니냐’는 말을 듣는 외주 홍보사 직원에 월급의 반 이상을 보모 비용으로 지출하고, 아이가 잠드는 걸 지켜볼 겨를이 없을 만큼 바쁘게 살면서도 양육권을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진 워킹맘 지선과 한국으로 팔려와 아무것도 뜻대로 하지 못하고, 인생의 유일한 희망이던 아이가 죽는 걸 무력하게 보기만 해야 하는 이주민 한매.

지선은 누구보다 먼저 한매의 과거와 마주한다. 불행으로 점철된 삶, 유일한 목적이던 딸 재인이의 목숨을, 병상을 빼앗은 게 자신이었다는(사실 지선은 아니고 남편이 저지른 짓이다) 걸 알게 된다.

사실 기자는 이 둘을 모성이 아니라 책임감이나, 어떻게든 혼자 살아남겠단 악바리 같은 감정으로 엮었다면 다른 결말을 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선과 한매는 서로 도우며 잘 지내고, 다은이와 바다도 가고 한국어도 배우는 그런 삶.

하지만 그러기에 한매의 과거는 너무나 각박하다. 침착하게 복수를 계획할 정신이 있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한매에게 선택지라는 게 얼마나 있었는지 떠올려보면 더 그렇다.
             

▲한국어가 서툰 한매에 대한 배려. 이 장면은 한매가 다을이를 유괴한 걸 알게된 뒤 나온다.


지선과 한매는 끝까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둘을 엮는 건 그간 함께한 정과 자식에 대한 책임감이다. 다만 관객만은 이 둘을 이해하게 된다. 영화의 주변 인들은 두 주인공에게 ‘그 여자 좀 이상해’, ‘병원이라도 가보든가’라는 말을 하지만, 다을이를 찾는 과정에서 지선과 한매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개연성이 드러난다.


아동 유괴가 소재임에도 보기 힘든 장면이 없고, 엄지원과 공효진의 폭발적인 감정 연기는 영화에 몰입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경찰이 경찰답게 일처리를 한다. 괜한 헛짓거리로 이야기를 풀어가지 않는다. 한매의 과거를 추적하며 지선의 캐릭터는 조금 덩어리지고 지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워킹맘이 겪는 고초는 충분히 표현한다. 


▲일터에서 발이 아파 구두를 벗는 지선


게다가 남자가 여자를 구하는 게 아니라, 여자가 또 다른 여자를 찾아 나서는 얘기다. 영화에서 입체감 있는 여성 캐릭터가 투톱으로 나서는 영화는 흔치 않다. 심지어 장르가 스릴러다.


호러, 스릴러에서 여성은 그저 벗거나 죽거나 벗겨진 채로 죽는 역할로 소비되는 경우를 얼마나 많이 봤는지 모른다. 마초같은 남성이 여성을 구하는 영웅서사적 스릴러에 지쳤다면, 꼭 한번 보길 바란다. 왓챠플레이와 네이버 영화에서 시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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