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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M Apr 13. 2020

<여성 직업인을 만나다> 기계설계사, 양슬기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날수 있다.
이들의 일은 어떤지 궁금했다. 여러 여성 직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일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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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김혜민


▲기계설계사 양슬기 씨 <사진=김혜민 기자>


나는 기계와 친한 사람이 아니고, 뼛속부터 문과다. 처음 집에 공유기를 설치할 때 3일이 걸렸고 처음 보는 기계는 항상 설명서부터 꼼꼼히 읽고 사용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슬기 씨와 인터뷰를 하기 전에 공부가 좀 필요했다. 하지만 ‘기계설계’가 당최 뭘 하는 일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슬기 씨를 만나 솔직히 잘 모르겠으니, ‘간단한’ 자기소개와 어떤 일을 하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했다.

“안녕하세요. 특장차 업체 개발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양슬기입니다. 기계설계는 말 그대로 기계 제작에 필요한 도면을 만드는 일입니다. 저는 특장차 업체 개발부에서 근무하고 있고요. 사실 기계설계보다 특장차라는 단어가 더 낯설 거예요.”

특장차는 특수한 장비를 갖춰 특수한 용도에 쓰는 자동차로 소방차, 제설차, 사다리차, 믹서 트럭 등이 있다. (출처=네이버 국어사전) 슬기 씨는 보통 트럭 위에 장착되는 장비 모델링과 도면을 배포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주변에서 관련 업계 종사자를 찾기 힘들 것 같았다. 슬기 씨에게 기계설계 일에 종사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어릴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여자가 자발적으로 공고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고, 부모님도 완강히 반대하셨어요. 어쩔 수 없이 인문계고등학교에 진학해 대학에서도 다른 전공을 듣다 결국 자퇴했어요. 20대 중반부터 기계설계를 공부하고 이 직종에서 일하게 됐으니, 좀 오래 걸렸죠.”

그럼 기계설계 일은 슬기 씨의 적성에 맞는지 궁금했다.

“사실 경력이 오래된 편은 아니라, 잘하고 있다는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정말 재밌습니다. 제 직업이 마음에 들어요. 앞으로도 계속 기계설계 일을 하고 싶어요.”

근무하면서 겪는 애로사항이 없는지 궁금했다. 남초 직종이니 회사에 적응하기도 힘들었을 것 같았다.

슬기 씨는 “전 운이 좋았어요. 회사에 여자 과장님이 한 분 계시거든요.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여자가 저 혼자였다면 좀 힘들었을 수도 있겠네요. 동종업계 다른 여성 근로자가 현장에서 폭언을 듣고 퇴사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아무래도 부서 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직종이라, 슬기 씨도 현장에 자주 나가고 공정을 확인하는 일이 잦다고 했다.

현장에 나가면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직원과 만날 일이 많은데, 소통이 원활하게 되는지 궁금했다.

“설계와 생산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은 정말 중요해요.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일에 차질이 많이 생깁니다. 회사 차원에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제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제안제도를 채택해 사무실과 상의한 뒤 내용을 변경해서 소통에 큰 무리는 없어요.”
             

▲현장에 나간 양슬기 씨 <사진=김혜민 기자>


설계 도면을 만들기 위해선 3D 프로그램 이용이 필수적이다.


기자도 모델링을 하느라 3D 프로그램을 사용한 적이 있다. 당시 기초를 배우기도, 응용하기도 힘들었고 업데이트 내용을 따라가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강도 높은 공부가 수반돼야 하니 부담이 클 것 같았다.


“설계 직종에서 오래 근무한 분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존경심이 절로 들어요. 사용되는 부품이나 차 설계에 필요한 부분을 세밀하게 잘 알고 계시죠. 저도 그런 부분을 더 알고 싶어 꾸준히 공부하고 있어요. 3D 프로그램 같은 경우에는 어렵지만, 하나를 알아두면 다른 프로그램을 익힐 때 좀 수월한 것 같습니다. 지금 사용하는 프로그램 말고 다른 툴도 배우고 싶어요. 제 일을 사랑하고, 주변에서 늘 자극을 받기 때문에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3D 프로그램뿐 아니라 부품까지 알아야 한다니,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게 느껴졌다. 다들 어렵게 생각하고 있을 것 같은데, 기계설계 일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물었다.


“음.. ‘생각보다 괜찮으니 겁먹지 말라’고 할래요. 무엇보다 자신이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았을 때 어떨지 고려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직장인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좋아서 하는 일도 어느 순간엔 권태감이 오고 초반에는 ‘내가 재능이 없나? 내 길이 아닌가?’ 싶을 때도 많을 거예요. 하지만 어떤 일을 하든 마찬가지이니, 흥미가 있다면 과감하게 도전하는 걸 추천해요.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잖아요? 저도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한 건 아니라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한 발만 담가보는 게 아니라, 거침없이 뛰어들어보라는 의견에 도 크게 동감했다.


그럼 과감하게 도전해 만족스러운 직장 생활을 하는 슬기 씨에게, 10년 뒤 자신이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 물었다.


“일단 단기적인 목표는 내년에 설계 부분 기사 자격증을 따는 거예요. 근래에는 자동화 시스템이 많이 도입돼서, 근로자 대신 기계로 교체되는 분야가 꽤 많아요. 흐름을 관심 있게 관찰하고 있습니다. 제 영역을 자동화 기계 개발·설계까지 넓히고 싶은 욕심이 있거든요. 전 앞으로 기계설계 분야에도 많은 여성 인재들이 발굴되고 성장할 거라고 봐요. 저도 배울 점이 많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습니다.”


슬기 씨는 “회사마다 다르겠지만 앞서 말했듯 너무 겁먹지 않았으면 해요. 아, 바쁜 건 각오해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아침부터 출근하는 일정을 쪼개 시간을 내준 슬기 씨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회사 로고가 선명한 외투를 입고 웃으며 대답하는 슬기 씨는 실로 행복해 보였다. 할까, 말까 고민된다면 일단 할 것, 그리고 시작한 뒤에는 겁내지 말고 계속 나아가라는 말은 나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혹시 인터뷰를 읽는 독자 중 어떤 일을 시작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면, 일단 뛰어들어보길 바란다. 나도 막무가내로 뛰어들어 기자 일을 시작했다. 재능이 있는 것 같냐고? 그렇다고 대답할 순 없으나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직장 생활은 누구에게나 힘들지만, 과정에서 뿌듯함과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 슬기 씨에게는 기계설계 일이, 나에게는 글을 쓰는 일이 그렇듯이, 이 인터뷰를 읽는 모두가 보람있는 일을 찾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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