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날수 있다.
이들의 일은 어떤지 궁금했다. 여러 여성 직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일을 소개한다.
▲캐리커처를 그리는 전예주 씨 <사진=새턴라이트 제공>
스티브 잡스는 "소비자들은 보여주기 전까지 자신이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남들과 같은 물건을 가지려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사람들의 욕망과 취향이 다양해지는 만큼 그를 표현하기 위한 디자인 브랜드 역시 흘러넘치는 시대다. 하지만 ‘무엇을’ 좋아하는가 보다 ‘왜’ 좋아하냐는 질문이 훨씬 대답하기 어렵다.
전예주 씨의 문구 브랜드 <새턴라이트>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탄탄한 마니아층이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브랜드다.
자신의 개성이 확실한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본인에게 어울리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역시 만나기 어렵다.
예주 씨는 내가 만난 사람 중 자신에게 어울리는 게 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예주 씨의 분위기가 공간을 꽉 채웠다.
‘왜’ 새턴라이트의 문구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잘 어울리는 걸 잘 하는 사람이 이끄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겠다. 새턴라이트에는 예주 씨의 매력이 흠뻑 녹아있다.
▲새턴라이트의 스티커 <사진=새턴라이트 제공>
언제나 달달한 여행을 꿈꾼다는 새턴라이트의 오너 예주 씨. 기자가 자기소개를 부탁하자 '눈으로 보는 것들을 예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가장 먼저 예주 씨가 문구 브랜드를 만든 계기를 물었다.
“사업자를 낸 때는 2016년 11월, 그때 제가 22살이었어요. 문구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1년이 조금 지난 2018년 2월부터입니다.”
시작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텐바이텐 입점에 성공했고, 해외 주문도 꽤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단순히 디자인이 예뻐서, 운이 좋아서 새턴라이트가 인기를 끄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 예주 씨가 문구류에 관심을 가진 이유와 준비 과정이 궁금했다.
“문구류 제작은 중학교 2학년, 15살 때부터 꿈꿔왔어요. 오랜 꿈이었죠. 그때도 문구류를 정말 좋아해서 매주 대형 문구점에 들러 이것저것 구경하고 꾸준히 트렌드를 분석했어요.”
긴 시간을 돌아 시작한 브랜드인 만큼 애정이 남다를 것 같았다. 독특한 이름인 새턴라이트, 브랜드 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물었다.
“우주와 몽환적인 분위기를 좋아해 새턴(토성)이란 단어를 붙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사실 토요일이란 단어에서 왔어요. 2014년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캘리그라피 팀을 만들었는데, 멤버가 7명이라 각각 맡은 요일에 업로드를 했어요. 저는 토요일 담당이었고요.”
생각보다 간단한 이유였지만 예주 씨의 디자인을 보면 충분히 우주와 토성의 분위기를 떠올릴 수 있겠다 싶었다.
캐치프레이즈가 ‘달달한 여행을 꿈꾸는 새턴라이트’인 만큼 예주 씨는 여행을 좋아한다고 했다. 페이스북 ‘여행에 미치다’ 로고를 쓴 것도 본인이라며 뿌듯해했다.
문구류 외에도 좋아하는 일이 있냐고 묻자 예주 씨는 단박에 “캐리커처를 그리는 걸 좋아해요”라고 답했다.
캐리커처는 장시간 앉아 ‘그림’만 그려야 하는 일이다. 자리에서 물 외의 음료도 마시기 힘들다. 자칫 실수했다간 그림은 물론이고 종이를 비롯한 준비물과 부스까지 망칠수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고된 일인데, 예주 씨가 캐리커처 그리는 걸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주 씨는 다양한 사람을 그리기 때문에 공부가 되는 점이 좋다며 대답을 계속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5분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대화하는 게 즐거워서예요. 문구류나 캐리커처나, 행사 때 팬레터와 팬아트를 받는데 정말 기쁜 일이에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계기가 돼요.”
자기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창작자에게 둘도 없는 기쁨일 것이다. 반대로 일을 하며 고달팠던 기억은 뭔지 물었다.
“아직도 사람들은 예술 분야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요. 원재료의 값을 따지죠. 거기에 들어가는 제 노력과 시간은 지적 가치로 환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노력한 것에 비해 충분한 수익이 돌아오지 않을 때 정말 힘들었어요.”
아직도 디자인 쪽에서는 결과물에 대한 평가절하가 큰 문제다. 뛰어드는 사람이 많은 만큼 단가 싸움도 심해지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예주 씨는 문구 브랜드의 전망을 어떻게 내다보고 있을까.
“사실 문구 브랜드 런칭은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진입장벽이 낮아요. 지금 기자님이 제 얘기를 듣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 기사가 나가 독자들이 인터뷰를 읽는 순간에도 소셜미디어에는 새로운 브랜드의 계정이 생겨나고 있을 겁니다.”
기자의 예상보다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예주 씨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개인이 운영하는 문구 브랜드는 기본 판매가는 낮은데 노동력은 많이 들어요. 판매가가 낮은 만큼 문구류를 본업으로 삼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 전업 일러스트레이터가 굿즈를 만들어 판매하는 게 아닌 이상, 대부분 겸직을 해요.”
예주 씨는 본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캐리커처 외에도 영어 강사, 여행 가이드, 법률 사무원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고 겸하고 있어요. 본인의 취향을 반영한 문구류를 만드는 건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다른 직업에 비해 시간과 건강을 많이 쓰게 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걸 가장 우선으로 삼아야 할지 조언을 부탁했다.
“앞서 말했듯 시간도, 건강도 많이 쓰는 직업이에요. 체력과 열정이 꼭 필요합니다. 이 점을 유의해서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취미로 가볍게 운영할지, 일정 금액의 자본을 둔 뒤 본업으로 시작할지 오래 고민하셨으면 합니다.”
예주 씨는 브랜드 론칭을 막연한 로망으로 여기고 뛰어드는 건 위험하니 오래 준비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7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 꿈을 이룬 만큼 예주 씨의 말에서 많은 감정이 느껴졌다.
앞서 다양한 일을 겸하는 중이라고 한 만큼, 개인적인 욕심으로 해보고 싶은 일이 더 있는지 궁금했다.
“올해는 문구류로 나온 그림을 원화로 옮기는 일을 해보고 싶습니다. 과슈라는 재료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작품들을 모아 내년 가을에는 개인전을 열고자 합니다.”
예주 씨의 문구류와 과슈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질감을 생각하니 전시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몽환적인 분위기가 배가 될 것 같았다.
개인전에 전시되는 작품 역시 판매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이 역시 문구류만큼이나 인기가 좋을 것 같았다(일단 내가 갖고싶다).
예주 씨는 올해 계획에 대해 더 얘기했다.
“3월에 새롭게 시작한 문구류 구독 서비스 ‘계간토성문방구’를 탄탄하게 진행하는 데 집중하려고 합니다. 새로운 입점처를 찾고 여러 국가와 수출 계약을 마치는 게 올해 목표예요. 또 가능하다면 내년엔 다이어리를 출시하고 싶습니다.”
‘문구류 구독 서비스’가 뭔지 궁금했다. 아무래도 새로운 개념인 만큼, 예주 씨는 상세한 설명을 덧붙였다.
“구독자에게 계절마다 새로운 문구류를 보내주는 통판 시스템이에요. 3월부터 3달에 한 번씩 신제품이 공개되고 구독하는 분들은 신제품 전부와 추가로 다른 제품까지 받아볼 수 있어요. 저는 고정수입이 생기니 여유롭게 작업이 가능하고, 구독하는 분들은 새로운 제품을 가장 먼저 받아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같이 들어가는 깜짝 선물을 개봉하는 재미도 클 거예요.”
▲새턴라이트 랜덤박스 구성 <사진=새턴라이트 제공>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예주 씨는 그림은 아날로그로 실현하는 일이고 시대가 바뀌면서 더 많은 것들이 디지털로 대체될 테니 미래의 문구 서비스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좋은 추억은 특별하게 간직하려고 한다. 아무리 디지털로 대체되는 것들이 많다 한들 창작자의 노력이 담긴 메모지에 손글씨로 행복했던 일을 적고 마스킹 테이프를 붙여 영원을 기록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예주 씨가 새턴라이트 문구를 사용해 직접 작성한 일상 <사진=새턴라이트 제공>
추억은 기록으로 되새기는 법, 사소한 일이라도 정성을 들여 흔적을 남겨둔다면 훗날 더 각별하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직접 전하진 못했으나 인터뷰로나마, 예주 씨에게 새턴라이트의 문구는 일상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서비스를 계속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