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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M May 25. 2020

<여성 직업인을 만나다> 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 신민주

2편,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만날수 있다.
이들의 일은 어떤지 궁금했다. 여러 여성 직업인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일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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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김혜민


▲서울 기본소득당 창당대회에서 발언하는 신민주 기본소득당 서울 상임위원장 <사진=기본소득당>


1편에 이어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신민주 기본소득당 서울 상임위원장이 총선에 출마했을 때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딸이 아닌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외쳤던 게 생각났다. 페미니즘과 연관된 개념인지 궁금했다.

“맞아요. 제가 출마했을 때 ‘페미니스트 국회의원’이란 말이 크게 박힌 벽보를 붙였는데 그때 페미니즘과 기본소득을 어떻게 이을지, 여러 이야기를 들어야겠단 생각을 했어요. 슬로건도 그 개념에서 비롯됐고요.”

사실 언뜻 생각하기에 두 개념은 전혀 어울리 않는 것 같아 신 위원장에게 더 자세히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지금 사회는 가사노동을 노동이라고 보지 않잖아요. 경제적 생산 활동이 아니니까요. 임금을 받는 노동만 노동인 건 아닌데, 기본소득을 받으면 가사나 육아 역시 노동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게 첫 번째예요.”

두 번째는 뜻밖에도 '이혼'이라고 했다. 흥미로웠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환경을 벗어나거나 원치 않는 관계를 거부하려면 기본적인 경제권이 필요해요.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한다는 조건이 충족되면 우선 개인 중심 사회가 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 봅니다.”

개인이 사회의 기본값이 되면 가족이 중심인 지금과 많은 게 달라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혼주의자, 1인 가구, 단순한 룸메이트부터 사실혼 관계의 동성애자 등 다양한 관계가 존중받을 수 있는 시발점이 될 것 같은데, 신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결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개인에 대한 연고가 실행되면 다양한 관계가 존중되는 것은 물론 가족 내에서도 개인이 존중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 슬로건처럼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딸이 아니라 이름으로 불리는 개인이 되는 거죠.”

신 위원장은 기본소득 외에 별도로 정치기본소득도 도입하고 싶다고 했다.

“정치인한테 보내는 후원금은 10만원까지 100% 환급이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말이 10만원이지 당장 소득이 없는 사람은 후원금을 보낼 수 없고 그럼 당연히 후보 공약은 소득이 있는 사람을 위한 쪽으로 향해요. 그래서 정치기본소득도 도입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투표권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10만원 씩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에 후원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후보 공약이 소득이 있는 쪽으로 향한다는 말을 들으니 소수자 관련 법안이 뒤로 밀려난 게 생각났다. 신 위원장이 처음 선거 유세를 할 당시 n번방은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아니었다. 선거 도중 화제가 됐고 덕분에 20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을 처리했다.

유세 처음부터 ‘n번방 가입자 26만 명 전원 처벌’을 주장했던 신 위원장은 어떻게 생각할까.

“선거 유세 시작 전부터 어떤 피켓을 들고 나갈까 굉장히 많이 고민했어요. 가장 처음 만든 피켓이 n번방이었는데, 그때는 ‘이건 당연히 해야지’란 마음으로 들고 나갔어요. 이렇게까지 큰 화두가 될 줄은 전혀 몰랐죠. 물론 이렇게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건 좋은 일이지만 지금도 사건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회의원이 많을 거라고 봐요. 실제로 사건이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때 사건 경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부적절한 발언을 한 의원도 몇 있고요.”

신 위원장은 n번방 관련 법안이 통과된 게 무척 기쁘다고 했다. 기본소득당은 지난해 9월 8일 창당 발기인대회를 가졌다. 창당한 지 1년도 안 돼서 용혜인 전 기본소득당 대표가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뱃지를 받았다. 원내 진입에 성공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았다.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정치인들은 많이 있었지만 원포인트로 내세운 당은 없었죠. 이번 코로나19로 팬데믹 선언이 됐고 유럽은 완전히 셧다운 됐잖아요. 나라에서 일하지 말고 밖에 나오지 말라고 소득을 지급하고 있고요. 저는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면 필연적으로 기본소득이 중요한 주제로 대두될 거라고 봐요. 또 용 전 대표도 젊으니까, 밀레니엄 정치를 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어서 기대가 됩니다. 저는 옆에서 열심히 조력자 역할을 하려고요.”

용 전 대표는 90년생이다. 이번 총선에는 유난히 20·30대 후보가 많이 보였다. 일전에는 ‘젊은 정치’를 내세운 후보여도 나이가 적으면 30대 후반, 보통 40대 초중반이었다. 그나마 다른 국회의원 보다 어리긴 하지만 정말로 이 후보가 내 나잇대 유권자를 대변할 수 있는지 늘 궁금했다.

하지만 신 위원장은 나이가 젊다고 해서 청년을 대변한다는 얘기에는 반대한다고 했다. 


“저는 나이 많은 아저씨 입에서도 청년 이야기가 나오고 여성 이야기가 나오길 바라고 있어요.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어떤 소외된 계층, 지금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미뤘던 사람들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국회의원 공천 30%도 강제성이 있는 게 아니고 선거법 자체가 젊은 후보에게 너무 불리하게 돼 있어요. 그럼 법을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청년, 여성 문제는 영원히 국회에서 중요한 사안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잖아요.”

신 위원장은 국회의원들이 조금 권위를 내려놓고 생활에 밀접한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슬로건과 연설문을 짜며 최대한 쉽고 직관적인 단어를 고르는데 많은 시간을 썼고 ‘아재 정치 망치러 온 당신의 페미니스트 정치인’ 역시 그런 맥락에서 나온 거라고 설명했다.

“나중에 가선 ‘아재 정치’란 말도 잘 안 썼어요. 너무 함축적인 표현이라서요. 국방, 외교, 안보 모두 중요하지만 정치인들은 정작 사람들이 몸담고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선 잘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탁상공론이란 말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주제는 뾰족하지만, 최대한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했어요. 유튜브도 하고요. 유세 활동 하면서 진짜 별 경험을 다 한 것 같아요.”

나도 기억난다. 신 위원장의 벽보가 두 차례나 훼손됐던 일과 타 후보가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 모르쇠 했던 일. 신 위원장은 정말 너무 허탈했다고 했다.

“CCTV도 없는 곳이고 지문도 남아있지 않아서 훼손한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는 거예요. 유전자 감식을 진행해서 결과가 나오긴 했는데, 이게 누구 유전자인지는 알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가서 놀라서 벽보를 만진 제 유전자일 수도 있고 지나가다가 ‘와 신민주네, 신기하다’하고 만져본 유권자일 수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감식이 쓸모가 없었던 거죠.”

신 위원장은 정말 작은 선거법이라도 바뀌었다면 좋았을 거라고 했다. “가령 선거 벽보는 꼭 CCTV가 있는 곳에 부착할 수 있게 하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많은 범행을 막을 수 있겠죠. 그리고 TV 토론회도요. 추천 후보만 나갈 수 있는데 당내 현직 의원이 5명 이상이어야 하거나 지난 출마에 일정 비율 이상 득표를 해야 했다거나 여론조사에서 얼마 이상의 지지율을 보여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나이가 안되니 이번이 초선이고, 창당 1년도 안 된 당에 현직 의원이 어디 있겠어요. 돈이 없으니 여론조사도 못 했고요. 여러모로 아쉬웠어요.”

신 위원장은 총선 이후 이지원 여성의당 공동대표와 토론회를 가졌다. 이 대표 역시 만만치 않은 피해를 봤다고 했다. “유세하는 데 돌을 던진 사람이 있었대요. 그걸 듣고 이게 당과 상관없이 페미니즘 이야기하는 후보가 다 겪는 문제라는 걸 알았어요. 지선·대선이 다가오고 있는데 그 전에 관련 조치가 취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사실 인력이 문제다, 수사기관이나 선거관리위원회 문제다 하지만 전 기본적으로 이게 혐오범죄라고 생각해요. 차별 금지법의 중요성을 느꼈어요, 선거하면서.”

창당부터 선거까지, 마음고생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신 위원장에게 버팀목이 되는 게 무엇인지 물었다.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엔 정말 다양한 구성원이 있어요. 평균 연령이 27세로 무척 젊은 정당인만큼 다양한 이슈로 기본소득에 관심을 가지고 입당했어요. 어떤 분은 환경이나 생태, 탈핵, 탈성장 같은 것들. 또 어떤 분은 노동 운동을 하다가 오셨고 저처럼 페미니즘에서 시작한 분도 있고요. 사람들에게 기본소득을 주면 소비가 활성화되고 기본소득을 주려면 세법을 강화해야 하고 그럼 경제가 살아나고. 이런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단 인권이 더 중요해요.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해주는 거죠. 부담 없이 배우고 싶은 걸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준비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기회를 많이 주고 싶어요. 이 둘은 아주 다른 느낌이잖아요. 기본소득당이 중시하는 건 후자고요.”

그럼 페미니스트이자 기본소득당 상임위원장인 신민주가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페미니즘 문제는 경제적 이슈가 꼭 뒷받침돼야 해요. 하지만 기본소득만으로 해결할 순 없죠. 사회 이상향이 기본소득이라고 단언하는 게 아니라 이상적인 사회 모습 중 하나라고 제시하고 싶어요. 평등한 사회를 향한 하나의 출발점으로요. 전 계속 여성 인권 운동을 할 거고, 용 전 대표의 조력자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신 위원장은 강남역 살인사건에도, 세월호 사건에도, 한국군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도 꾸준히 목소리를 냈다.

만 25세,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정치와는 연결이 되지 않는 나이지만 신 위원장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확실한 비전이 있었다. ‘당 만드는 여자들’ 펀딩에서 ‘누군가는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부럽다’고 말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신 위원장이 가는 길이 쉬운 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처음 은평구을 후보로 신민주 씨를 알았을 땐 그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용기를 낸 게 고맙기도 했다. 당신이 당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 개인이 가난을 증명하지 않는 사회, 남들보다 대입이, 취직이 늦었다고 해서 조바심을 내거나 자기 자신을 깎아내릴 필요 없는 사회. 신 위원장이 꿈꾸는 사회가 가까이에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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