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넘치는 현대제철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해를 거듭할수록 여름은 계속 더워지고 있다. 며칠 전 에어컨 청소를 하려고 동네 업체에 작업 가능한 가장 빠른 날을 물었더니 23일이라고 했다. 이 달안에 되는 게 어딘가 싶어 바로 예약했다. 주변 사람들도 ‘올해는 안 되겠다’며 에어컨을 주문했고, 선풍기를 꺼내고 이불을 바꾼 건 한참 전 일이라고 했다.
실로 덥다. 마스크를 쓰고 지하철로 출·퇴근하기도 벅찬 날씨다. 고용노동부는 더위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옥외작업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현장 집중 감독을 하겠다고 한다.
고용부가 제시한 열사병 예방수칙은 ▲시원하고 깨끗한 물을 규칙적으로 마실 수 있도록 조치 ▲옥외 작업장과 가까운 곳에 충분한 공간의 그늘 제공 ▲폭염특보 발령 시 시간당 10~15분 규칙적 휴식시간 배치 ▲근무시간 조정 ▲옥외작업 최소화 ▲폭염 시 노동자가 건강을 이유로 작업중지를 요청할 경우 즉시 조치 등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더위에 쓰러지는 노동자는 옥외노동자뿐만이 아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9일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는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또' 일어났다.
동료의 증언에 따르면 박모 씨는 30m 높이, 43도의 현장에서 생수통 한 병만을 들고 올라가 작업을 했다. 쉬는 시간이 있긴 했으나 10분 남짓한 시간에 30m를 오르내리기 힘드니 상부에서 쉬는 게 전부였다. 이런 현장이라면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쓰러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JTBC 보도를 보면 박 씨가 실려 간 응급실의 의료인은 “매해 이때가 되면 온열 질환으로 응급실 오는 사람이 한두 명도 아닌데, 왜 갑자기 취재하려고 하는 거냐”라고 묻는다. 실소가 나오는 대목이다.
현대제철 측은 “원래 박 씨에게 고지혈증·고혈압 등 건강 문제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럼 해당 노동자의 작업을 금지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묻자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기가 찼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제철 당진 공장에서 죽은 35명의 노동자는 모두 직업의 자유를 보장받아 그렇게 된 것인가. 뉴스를 본 뒤 현대제철 관계자에게 “직업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현장에 투입했다는 게 공식 입장이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아니다. 사건 경위를 설명하다 보니 나온 말일 뿐이다”라고 대답했다.
그럼 JTBC 측에 이의제기나 보도정정요청을 했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무척 당황하며 “하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논의 중인 사항도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공식 입장도 아닌데, 기업 이미지가 나빠질 말을 왜 그냥 두느냐고 물었다.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언론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에는 ‘죽음의 공장’이라 불리는 당진 공장의 안전 수칙 준수를 제대로 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 같다. 해당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현대제철의 안전불감증을 지적했다.
풀코드 스위치는 늘어져 있고 조도는 낮은 데다 분진이 너무 많아 시야 확보가 되지 않으니 조치해달라고 요구했다. 또 협착 위험이 큰 설비에 펜스를 설치해 달라고도 부탁했다.
너무나도 기본적인 안전장치지만 현대제철은 들어주지 않았다. 기업엔 그런 자유도 있는 것 같다.
현대제철에 “매해 이런 사고가 일어나는데 어떤 조치를 할 거냐”라고 묻자 “그건 부검 결과가 나오고 나서 의논할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현대제철은 아무리 소를 잃었어도, 또 계속해서 잃는다 한들 외양간을 고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외양간을 고치는 것보다 새로운 소를 구하는 게 쉽고 편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들이 얼떨결에 답한 그 자유는 우리가 쟁취해왔던 그런 자유가 아니란 걸 알았으면 한다. 아무리 자유를 부르짖어도, 사람 목숨을 멋대로 재단할 자유는 누구에게도 없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