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하는 '착한 기업'
김혜민 기자 enam.here@gmail.com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착한 프랜차이즈 인증서'라는 걸 발급해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름만 들어서는 착한 점주와 깨끗한 매장같은 게 생각났다. 하지만 '착한 프랜차이즈 인증을 받았다'며 보도자료를 뿌린 기업은 일전에 '갑질 논란'이 있던 기업들이었다.
물론 낙인을 찍는 건 불공평한 일이다. 기업이 개과천선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갑질 논란 이후 내가 접한 후속 기사는 '대표 부부가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정도였다.
대체 '착하다'는 기준이 뭔가 궁금했다. 공정위가 말하는 선정 기준은 ▲모든 가맹점 로열티 2개월 50% 이상 인하 또는 1개월 이상 면제 ▲모든 가맹점 필수 품목 공급가액 2개월간 30% 이상 인하 ▲모든 가맹점주 광고·판촉비 부담 2개월간 20% 이상 인하 ▲확진자 방문 및 대구·경북 소재 가맹점 매출액 감소분 최소 2개월간 20% 이상 지원 ▲현금 지원 및 1~4에 상응하는 조치 등 총 5가지였다.
변수가 하나 있다면 이 5개 항목 모두를 충족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딱 한 가지만 만족하면 된다. 더구나 공정위의 자료에는 신청 이후 인증서 발급까지 '일주일 이내 신속 처리'한다는 안내가 적혀있었다.
아, 언제부터 공정위가 짜장면 집에서도 안쓰는 '신속 처리'란 말을, 그것도 기업 인증서 발급에 썼단 말인가. 일을 '빨리' 처리한다는게 꼭 일을 '잘' 한다는 뜻은 아니다.
너그러운 공정위 덕에 점포 리뉴얼 비용을 가맹점에 떠넘긴 죠스떡볶이도, 횡령에 대리점 갑질로 대표 부부가 경찰 수사 중인 쿠우쿠우도 ‘착한 프랜차이즈’ 인증을 받았다.
갑질은 아니지만 논란이 많은 명륜진사갈비도 받았다. 노동법을 위반한 가맹점이 수두룩하고 점포 관리가 안돼 무뢰배 점주에 불만을 터뜨리는 고객이 많은 회사다. 상호는 '갈비'지만 리필 고기는 갈비가 아니었고, 요청하면 갈비만 리필해 주지만 그건 점주 마음이라나.
여기에 명륜해장국과 상표권 분쟁, '진사'라는 곳에 대한 역사적 사실 왜곡 등 여러 논란이 있었으나, 너그러운 공정위가 굽어 살피시어 명륜진사갈비 역시 착한 프랜차이즈 인증서를 받았다.
인증서를 발급받은 회사는 대출 금리 인하 혜택을 받는다. 덕분에 리뉴얼 비용을 가맹점에 떠넘기고 회삿돈을 빼돌려 잇속을 챙긴 본사는 꿩먹고 알먹고 도랑치고 가재잡고 그런 셈이다.
사실 본사 입장에선 금리인하보다 '착하다'는 수식어가 더 절실할 지도 모른다. 망가진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돈도 시간도 이만저만 드는 게 아니다. 애 울린 뒤 사탕 쥐어주는 격이다. 하지만 논란 중인 회사가 ‘착한 프랜차이즈’ 인증을 받은 점을 비판한 기사는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광고성 기사에 밀려난 탓이다.
그래서 나는 공정위에 “논란이 있는 기업에 ‘착한 프랜차이즈’ 인증을 하는 건 부적절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러자 “착한 임대인처럼 가맹점 상생에 도움을 주고, 참여를 독려하는 게 목적이다. 우리가 착한 프랜차이즈 인증을 해 줬다고 그 회사가 깨끗하다는 뜻은 아니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또 이 관계자는 “그냥 호칭일 뿐”이라며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나는 아직 죠스떡볶이와 쿠우쿠우 가맹점주들이 본사를 원망하던 목소리를 기억한다.
공정위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자신들이 조사했거나 조사 중인 기업에 '착한 기업'이라는 면죄부를 준 꼴이 됐으니 말이다.
명륜진사갈비는 최근 배우 이순재를 모델로 기용해 ‘한 상 가득 푸짐한 정이 있고, 믿음 가득 정직한 정이 있고, 웃음 가득 건강한 정이 있다’는 문구를 내세운 광고를 만들었다.
'푸짐한 정'은 고기 무한리필 집이 아니라 신뢰가 가장 우선이어야 할 국가기관에도 있나보다. 물론 그 정이 정직하고 웃음 가득한 정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정위가 '착한' 캠페인에 회사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인증서를 남발한 행위는 결코 '착한'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