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혹은 범죄 관련 다큐를 보면 답은 늘 정해져 있다. 법적 판결이 났든 안 났든, 그 판결이 공정하든 아니든 ‘나쁜 놈’은 정해져 있고 다큐멘터리는 시청자가 그에 동조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언론과 다수의 힘은 얼마나 큰가. 아무리 자기 주관이 뚜렷해도 결국 동조하게 되는 게 사람이다.
범죄자를 잡고 보니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학창시절 성적은 우수했으며 주변에서 조용하고 내성적인 청년이란 평가를 받았다’는 식의 서사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다. 범죄좌에게 마이크를 쥐여주지 말라는 말에 깊이 동의한다.
하지만 잘못이 없는데 ‘나보다 잘 나간다’는 이유로 악의적이 소문을 퍼뜨리는 건 참 치졸하지 않은가.
험담으로 한 사람을 몰아가는 건 학교가 사회의 전부였던 학창시절에나 하는 짓이다.
좀처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최근 사진조차 없는 홍원식 남양유업 사장이 얼마 전 입건됐다. 홍보대행사를 시켜 맘카페에 경쟁업체 관련 허위 비방글을 올려서다.
불매운동은 개인 신념에서 비롯되는 선택이다. 타인의 참여 여부를 힐난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 남양의 ‘대리점 갑질’이라든가 ‘물건을 받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 분유 회사가 임신한 직원을 해고시키는 행위, 결혼하면 정규직에서 계약직이 된다는 여직원의 증언 등은 첫 맛도 끝 맛도 쓰기만 했다. 이에 소비자가 분노한 건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전 남양 건 안 먹어요’라고 하면 아무도 이유를 묻지 않는다. ‘저도요’란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인터넷에는 남양에서 만드는 PB제품을 거르는 방법이 공유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불공평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남양 내부도 잡음이 많긴 마찬가지다. 직원 불만이 계속 터져 나온다. 5년째 임금은 동결됐고 영업직원들은 유류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데다가 중식비마저 깎였다.
바닥이 더 있나 싶을 때 지하를 보여주는 영업이익 앞에 사 측이 긴축경영에 들어가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직원들의 고통에 비해 오너 일가의 그것은 너무나 적다. 최근 남양은 팀장급 이상 직원에게 상여금 30%, 하계휴가비 50% 반납 동의서를 받아냈다.
남양은 ‘임원진 포함이므로 홍 회장도 이에 동참한다’고 했지만 영업이익 4억원에 보수 16억원을 가져 간 홍 회장이 겨우 상여금이나 하계휴가비 일부를 반납하는 게 희생일까?
게다다 홍 회장은 상여금이 없다. 반납할 돈이 없다는 뜻이다. 하계휴가비를 뱉어봐야 100만원 가량 될 텐데 홍 회장의 어머니와 아들이 등기이사로 재직하며 받아가는 돈은 인당 연 3억5800만원 가량이다.
재벌은 망해도 3대가 먹고 산다지만 이게 ‘진실로 고객과 다시 소통하겠다’는 기업의 자세가 맞는가.
얼마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전 국민 앞에 나서 ‘경영 승계와 무노조 경영은 없을 것’을 약속했고 신동빈 롯데 회장은 ‘경영악화 극복에 앞장서겠다’며 연봉의 반을 내놨다.
사옥엔 남양 로고가 없고 자체 브랜드 백미당 역시 남양 표시가 없다. 그저 ‘SINCE 1964’ 뿐이다.
도산대로에 위치한 남양 신사옥의 임대료는 연 50억원가량이다. 땅값을 생각하면 거저이겠지만 그 임대료는 모두 남양유업의 자회사이자 홍 회장이 이사로 돼있는 금양흥업에 납부된다. 꾸준한 사익편취 의혹이 있었으나 남양은 한 번도 이 문제에 답한 적이 없다.
남양은 최근 대리점과 상생하겠다며 5년 간 이익의 5%를 대리점과 나누기로 했다. 최소 보장 금액 1억원. 이익이 이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남양이 돈을 보태 1억원을 나누기로 했다.
마음에서 우러나 이런 약속을 한 건지 알 순 없다. 하지만 남양은 2016년 대리점에 통보 없이 수수료를 15%에서 13%로 낮췄다. 이를 공정거래위원회가 위법으로 확정했다. 그러자 남양 측이 먼저 ‘징계 대신 자발적으로 시정방안을 내놓겠다’고 해서 마련한 의결안이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남양의 상생안은 농협에 납품하는 380여 개 대리점이 그 대상이다. 해마다 1억원을 나눠도 한 곳당 26만원, 한 달에 2만2000원이다.
남양은 최근 올린 사과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남양과 일하는 홍보대행사는 주기적으로 맘카페에 ‘상하목장 근처에 원자력 발전소가 있어 제품에 영향을 끼칠 것 같다’, ‘우유에서 쇳가루 맛이 난다’며 경쟁사를 비방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남양은 ‘실제로 4km 반경에 원자력 시설이 있어 자의적으로 괜찮다고 판단했다’는 글을 ‘사과문’이라고 올렸다.
남양은 사과문에서도 경쟁업체를 깎아내리며 ‘치졸하다’는 감투를 쓰게 됐다. 포식자를 만난 꿩이 몸을 숨기겠다고 머리만 풀숲에 집어넣는 것과 남양의 행보가 대체 무엇이 다른가.
이순을 바라보는 기업이라면 응당 소비자가 하는 말에 귀가 순해야 한다. 반 세기 넘는 시간 동안 익힌 거라곤 편법과 치졸함 뿐인 기업 편을 들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