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

by 남은불

일을 하다 보면 말을 쉽게 굽히지 않는 사람을 만난다. 그는 늘 같은 자리에 서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조금만 다르게 해 보자는 말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다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예전 같으면 그 눈빛에 한 걸음 물러섰을 것이다. 부딪히기 싫어서, 피곤해지기 싫어서. 그의 말에 맞장구를 치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작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날도 비슷했다. 작업 방법을 두고 몇 마디가 오갔고,

"내 말대로 해. 나한테 안 된다는 소리 하지 마." 그의 거친 목소리가 커져 갔다.

잠시 말을 멈춘 채 그의 시선과 몸짓을 바라보았다. 허둥대는 발걸음, 굳게 쥔 주먹, 화가 난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는 눈빛. 마치 더 이상 물러서면 안 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게 하면 다시 해야 하는데.'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을 삼켰다.

이상하게도 짜증은 내 곁에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았다. 대신 익숙한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 역시 그와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음을, 다른 방식으로 버텨온 사람임을 알아보는 순간이었다.


그의 고집이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는 결국 알 수 없었다. 다만 그 안에 오랜 시간 쌓여온,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만은 느껴졌다. 그건 내가 일을 대할 때 붙잡고 있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아도 충분했다.


그날은 누가 옳은지 따질 필요도, 누가 물러설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는 치열하게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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