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

by 남은불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가장 안전했다.


가려움을 긁어서 쉽게 없앨 수 있듯이 나는 한때 나의 고통을 너무나 쉽게 회피해 버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던 적이 있다. <중독성 성격 치유하기>


이 문장을 처음 보았을 때, 동의할 수 없었다. 진정한 고통은 회피가 불가능하다. 회피나 도망도 가능성과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짐승도 강한 상대 앞에서 굳어버린다. 내 인생은 돌이킬 수 없다. 복구되지 않는다. 도망칠 힘은 없다. 움직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벽체 타공 지시를 받았다. 도면과 실측에 오차가 발생하는 순간 공구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신중하게 검토하는 척하며 그 뒤에 숨었다. 질문하지 않았다. 손대지 않았다. 책임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작업은 다음으로 미뤄졌다.


낮에는 시공하고 수리를 한다. 밤에는 고장 난 내면을 만났다. 손을 대지 않았다. 술이라는 연료만 넣었다. 연료가 들어가면 고장 난 엔진은 돌았다. 하루를 버텼다. 끝까지 고통을 회피한 것이 아니라, 굳어 버린 채 시간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멈춰 있는데도 힘은 들었다. 멈춰 있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술을 끊었다. 행복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삶은 선명해졌다. 몸은 추웠고, 생각은 많았다. 또 다른 고통이었다. 다시 마실 수도, 견디기도 힘든 날들이 계속되었다.


손을 대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