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선배가 있었다.
때로는 모임의 장, 때로는 연애 상담사 역할까지 하며 따르는 후배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경청하는 태도와 공감력, 특유의 카리스마로
개인적으로 참 존경하던 선배였는데
그도 나이를 먹는지 듣기 보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해 갔다.
까놓고 말해서, 너 되게 모르는구나, 난독증이냐
그도 귀를 닫았고 나도 귀를 닫았다.
남의 말을 안 듣는 사람들은 질문이 없다.
질문을 하더라도 ‘혹시 이거 알아’ 라고 묻는 정도다. 비슷한 답변을 해도 자신의 지식과 뉘앙스만 다르면 ‘아니지.’ 부터 나온다. 그들에게 질문은 본인의 대답을 내뱉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그들의 또 다른 특징은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덕분에 말이 많은 것은 득 보다 실이 많다는 걸 매일같이 체감한다.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면 쉽게 재단해버리는 특징도 갖고 있다.
팀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싶어서 꺼낸 주제에도 가장 먼저 자신의 의견을 설명하고 틈을 주지 않는다. 후배를 지정해서 의견을 물어도 조금만 틈이 생기면 본인 경험담을 늘어 놓는다.
주관이 뚜렷하고 개성이 강한 사람은 멋지다.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말하고 행동한다.
그렇지만 듣기를 게을리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벽창호가 된다.
남의 행동에 옳고 그름을 먼저 말하려면 본인도 들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듣지 않으면 자신의 모습, 태도, 업무도 객관적으로 어떤지 알 기회를 잃는다.
묻는다고 해서 자신 없어 보일까?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틀린 것도 인정할 줄 안다.
한 번 틀렸다고 해서 자신이 무능해 보이지 않을 것임을 자신하기 떄문이다.
남들로부터 생각을 들으려면 자신부터 편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그 기회도 많이 얻는다.
만만하게 보이라는 말이 아니다. 편한 사람이란 너무 세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상대방이 말문을 닫아 버릴 정도만 아니라면 충분하다.
모니터와 장시간 눈싸움하며 만든 디자인 작업물은 너무 심취한 나머지 감정과 애환까지 담게 된다.
혼자 난 천재인가하고 뽕에 취해 있을 때가 있다.
이때 동료들로부터 객관적인 의견을 듣지 않거나 아예 묻지도 않는 다면
나와 당신의 작업물은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아트’로 남을 지도 모른다.
들어라.
무례한 말은 거르는 훈련이 되고 영양가 있는 말은 자양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