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금은 예약 중
“내일 안주는 뭐 먹을까?”
금요일이 다가오면 우리가 나누는 의식 같은 질문이다.
“순대? 거기에 막걸리 한 잔?”
“흐음... 요새 막걸리 좀 많이 마시지 않았나?”
아내가 턱을 괴며 진지하게 고민한다. 마치 국가 기밀을 논의하는 것처럼.
“그럼 시금치 프리타타? 맥주 한 잔으로 입가심한 다음에, 지난번에 선물 받은 와인 어때?”
“오 홀, 그게 있었구나. ㅇㅋ.”
결혼 15년 차.
우리의 금요일 밤은, 신혼 때부터 지금까지 늘 이런 식이다.
회사에서 회식 날짜를 정할 때, 나는 금요일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사내 동호회 활동을 가장 좋아하는 식당에서 진행했을 때도 금요일이라 패스했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웬만하면 금요일은 피한다.
그날은 아내와 함께 보내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밖에서 친구들과 술 마시는 횟수는 1년에 한두 번 정도다.
20대엔 툭하면 외박하고, 동아리·군대·동창 모임으로 가득했던 내게 믿기 어려운 변화다.
친구들은 묻는다.
불쌍하지 않냐고, 참는 거 아니냐고.
그럴 때마다 나는 대답한다.
“진짜로 집에서 아내랑 마시는 술이 제일 맛있어.”
“그렇게 오래 같이 지냈는데. 무슨 얘기를 해?”
그 질문도 자주 듣는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는 그대들과 비슷하다.
부모님 이야기, 아이 이야기, 그리고 우리의 미래.
다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나는 아내에게 못할 이야기가 없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늘 아내가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행동한다.
무의식 중에 아내와 그 가족들의 단점을 얘기할 수 있지만 그건 당사자 앞에서 웃으며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에서 멈춘다.
친구들과의 대화는 반갑고 힘이 되지만,
매번 업데이트하듯 일부터 열까지 다시 설명해야 하는 게 가끔은 피곤하다.
그들은 내 이야기를 반쯤만 기억하고, 나도 마찬가지다.
그건 당연하다.
사람의 뇌는 필요한 만큼만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아내는 다르다.
내가 무심코 흘린 말을 기억하고,
그날의 표정까지 떠올린다.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게 잡아준다.
친구가 아무리 좋아도 아내처럼 나를 깊이 들여다보긴 어렵다.
가능하지도 않고, 기대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어머니 병환 이야기를 친구에게 하면
“힘들겠다.”
“네가 더 잘해야지.”
“우리 아버지도 요새 병원 다니셔.”
공감은 하지만 그뿐이다.
아내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면 다르다.
“너무 다 해결해드리려고 하지 마. 그 정도는 혼자 해보시게 해. 문자로 정리해서 알려드리고, 동사무소 다녀오시라고 알려 드려.”
구체적인 조언이 따라온다.
최근 병원에서 어머니 추가 검사를 권했다.
받아서 나쁠 건 없지만 꼭 받아야 할까? 부작용은 없을까?
결국 최종 선택은 아들인 내 몫이지만 누군가의 조언이 간절할 때가 있다.
“뇌혈관 조영술? 지금 막 이사한 곳에 적응하시고 편안해 보이시는데. 굳이?”
한참을 알아보더니 결론을 내준다.
“하지 말자. 풍이 올 수도 있대. 정기적으로 MRI 촬영을 하고 경과를 봐서 해보면 좋겠어.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친구는
중간에 판단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랬구나" 해주는 사람.
좋은 일은 나보다 먼저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은 함께 무거워하는 사람.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조금은 알아채는 사람.
그리고 그 기억으로,
내가 나인 것을 지켜주는 사람이다.
결혼은 타협의 연속이라고들 하지만,
내게는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관계다.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
가식 없이 웃을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살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언젠가 우리가 지금보다 더 늙어서.
말수가 줄어들고, 기억이 흐릿해져도.
여전히 금요일 저녁을 함께 고민하며.
"막걸리야, 와인이야?"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이 시간이.
우리 둘 사이 가장 소중한 풍경으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