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벽

치매 가족을 위한 포토월

by 공감수집가

잃어버린 기억을 위한 '포토월'

얼마 전 TV 다큐멘터리에서 한 60대 건축가의 이야기를 보았다.

그는 90대 어머니를 위해 집 한쪽 벽면을 어머니의 일생이 담긴 사진들로 가득 채웠다. 그 '포토월' 앞에서 어머니는 때로 멈춰 서서 한참 동안 사진 속 자신의 젊은 날을 응시하곤 했다.

그 장면이 내 마음속에 깊은 잔상을 남겼다.

'엄마에게도 저런 벽이 필요하지 않을까.'

엄마의 안심존 이탈을 걱정하며 휴대폰 앱만 들여다보던 나는, 비로소 엄마의 '내면'을 채워줄 방법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주말에 엄마의 집 장롱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앨범들을 꺼냈다.

먼지를 털어내고 펼친 사진첩 속에는 내가 미처 몰랐던 한 여자의 일생이 펼쳐져 있었다. 사진 속 엄마는 누군가의 아내나 할머니이기 이전에, 수줍은 미소를 띤 여성이었고, 멋진 옷차림으로 거리를 걷던 당당한 청춘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참 찬란했다.

빛바랜 인화지 너머에서도 엄마의 눈동자는 생기로 반짝였다. 내 어린 시절을 품에 안고 환하게 웃던 모습부터, 이제는 훌쩍 커버린 손자의 재롱을 보며 기뻐하던 최근의 모습까지.

시간의 흐름은 무심했지만, 그 안에는 엄마가 지켜온 소중한 삶의 궤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사진첩에 갇혀 있던 엄마의 찬란했던 순간들을 다시 밖으로 꺼냈다. 매일 마주하는 벽 위에 걸린 사진이 더 빛나리라 믿는다.


엄마의 서사

치매는 엄마의 머릿속 지우개처럼 기억을 지워가지만, 눈앞에 펼쳐진 사진들은 그 지워진 자리를 메워주는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이런 '회상 작업'은 치매 환자의 우울감을 줄이고 존재감을 확인시켜 주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내게 더 중요했던 건, 이 작업이 엄마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치유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진을 고르며 나는 깨달았다.

엄마가 이토록 아름다운 생의 정점들을 지나온 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엄마의 벽을 채우는 일은, 엄마에게 기억을 되돌려주는 작업인 동시에 엄마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이제 거실 한쪽 벽면에 엄마의 연대기를 펼쳐 놓으려 한다.

엄마의 기억이 길을 잃고 희미해지는 순간에 이 사진들이 말해주길 바란다.

"엄마는 이렇게 빛나던 사람이었고, 지금도 우리에게 이 사진 속 모습처럼 소중한 존재예요."

엄마의 벽이 완성되는 날, 엄마와 나란히 앉아 사진 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우리의 시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 면의 풍경으로 남겨지는 것이라 믿는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