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치매와 착한 거짓말
엄마는 원래부터 긍정적인 분이었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았고, 늘 좋은 게 좋은 거라며 허허 웃으시던 분. 그 성정은 치매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무조건 다 좋다"는 말씀을 입에 달고 사신다.
날이 화창해서 좋고, 아들이 잘 사는 모습이 보기 좋고,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며느리와 살가운 손자가 가까이에 있어 마냥 행복하다고 하신다.
병원 인지 검사나 진료 상담 때도 마찬가지다. 마치 모범 답안을 달달 외운 학생처럼, 엄마는 모든 질문에 "아무 문제 없이 다 좋다"라고 대답한다.
보호자 입장에서는 참 감사한 일이다.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치매에 비하면, 이른바 '예쁜 치매'를 앓고 계신 엄마의 긍정은 우리 가족에게 큰 위안이자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그 안도감의 이면에는 늘 찜찜한 구석이 남는다. 엄마의 "다 좋다"는 말에는 사실 왜곡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저는 몸에 해로운 건 절대 안 먹어요. 규칙적으로 딱딱 맞춰서 생활하지."
상담실에서 의사 선생님께 단호하게 말씀하시는 엄마를 보면 놀라곤 한다.
사실 엄마는 종종 짜파게티를 끓여 드시고, 초코파이나 오예스 같은 단 간식을 자주 챙겨 드신다.
할머니 집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 아들의 말을 빌리면, 엄마는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인 날에도 아침이 되면 "푹 잤다"며 웃으신단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바르게 생활하는 나'라는 이상적인 모습만 남고, 실제의 생활 습관은 기억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듯하다.
이럴 때면 나는 고민에 빠진다.
"엄마, 사실은 라면도 자주 드시잖아요. 잠도 잘 못 주무셨으면서 왜 거짓말하세요?"라고 따끔하게 잔소리를 해야 할까? 그렇게 경각심을 주어 엄마의 생활 습관을 바로잡는 것이 아들로서의 도리일까?
하지만 나는 오늘도 입을 닫는다.
엄마의 그 무조건적인 긍정은 어쩌면 무너져가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방어 기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본인의 병세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마지막 자존심이 "다 좋다"는 세 글자에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짜파게티 한 그릇 더 드시는 것보다, 본인이 잘 해내고 있다는 성취감을 앗아가는 것이 엄마에게는 더 치명적일지도 모른다.
물론 보호자로서 건강 관리를 포기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놓고 잔소리를 하는 대신, 몰래 찬장의 라면 개수를 줄이고 간식 보관함을 조금 더 건강한 것들로 채워 넣는 식의 '조용한 개입'을 택하기로 했다.
엄마의 세상은 지금 분홍빛 안개로 가득 차 있다.
그 안개가 엄마를 조금 덜 아프게 하고, 우리를 조금 더 웃게 한다면 굳이 찬바람을 일으켜 안개를 걷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는 조금 부족하고 어긋나더라도, 엄마가 "다 좋다"라고 말하며 행복해하신다면 그 세계를 지켜드리는 것 또한 가족의 역할이 아닐까.
"그래, 엄마. 건강하게 잘 지내주시니 좋아요."
오늘도 엄마의 "다 좋아"라는 말에 기꺼이 속아 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