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엄마의 공짜 거부권
엄마에게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한 건, 동네 행정복지센터에서 요가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선생님이 얼마나 잘 가르치는지 몰라. 몸이 한결 가벼워."
수업이 있는 날이면 엄마는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 하셨다. 서서히 굳어가는 몸과 가끔씩 안개처럼 흐려지는 정신 사이에서, 요가는 엄마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하고도 소중한 비상구였다.
그런데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순전히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수강 갱신 등록 기간을 깜빡 놓쳐버린 것이다. 뒤늦게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동네 인기 강좌에 빈자리가 날 리 만무했다. 낙담하실 엄마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강사님께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했다. 혹시나 추가 등록이 가능한지 여쭤봤다. 돌아온 답변은 뜻밖의 호의였다.
"어머님이 수업 끝나면 항상 매트 정리도 도와주시고, 청소도 도맡아 해주셔서 제가 늘 감사했어요. 정식 등록은 어렵지만, 주 1회 정도는 뒤에서 같이 운동하실 수 있게 배려해 드릴게요. 그냥 오세요."
강사님의 따뜻한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천만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들뜬 마음으로 엄마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엄마, 강사님이 엄마가 너무 모범생이라고 그냥 와서 들어도 된대요! 진짜 다행이죠? 내일 가시면 돼요."
나는 엄마가 "아이고 고맙다, 역시 우리 아들이다" 하며 좋아하실 줄 알았다. 이제 엄마도 연세가 있으니, 깐깐하게 따지기보다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유야무야 넘어가실 줄 알았다. 남의 호의를 넙죽 받는 모습이 조금 낯설지라도, 그저 엄마가 즐거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반응은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돈도 안 내고 어떻게 수업을 듣니? 난 안 간다."
엄마는 단호했다. 강사님이 엄마의 성실함을 높이 사서 베푸는 특별한 배려라고, 이건 그냥 공짜가 아니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엄마는 도리질을 치셨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어. 남들은 다 돈 내고 다니는데 나만 특혜를 받을 순 없다. 내가 청소 좀 했다고 그걸로 퉁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순간, 잊고 있었던 젊은 시절의 엄마가 내 눈앞에 겹쳐 보였다.
엄마는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어른의 표본 같은 분이었다. 노력 없이 얻은 요행은 불편해했고, 남에게 신세 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셨다. 10원 하나라도 공짜로 얻는 법이 없었고, 당신의 정직한 땀방울이 섞이지 않은 결과물은 거들떠보지도 않으셨던 그 대쪽 같은 성정.
나는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 비록 손자에게 밥을 먹었는지 5분마다 되묻고, 때로는 요소수 통에 식혜를 담아 우리를 놀라게 할지라도.
그 무서운 치매조차 엄마가 70여 년간 지켜온 '삶의 원칙'만큼은 앗아가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정신이 흐려질수록 엄마의 영혼에 새겨진 정직함은 더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기억은 사라져도 품격은 남는다는 말이 이런 것일까. 수강 신청을 놓친 못난 아들을 탓하기는커녕, 엄마는 쿨하게 상황을 정리하셨다.
"다음에 정정당당하게 신청하면 되지. 그때 가면 된다."
비록 요가 수업은 못 듣게 되었지만, 나는 그날 엄마에게서 요가 동작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자세를 배웠다. 엄마는 여전히, 그 꼿꼿한 허리처럼 바르게 서 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