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아이 범이를 차로 칠 분 남짓 거리에 있는 미술학원에 데려다주는 길이었습니다. 그날 따라 구름이 신기한 모양인거에요. 흰 구름이 솜뭉치처럼 뭉쳐져 있는 부분도 있고 솜사탕을 뜯었을 때처럼 얇게 퍼진 부분도 있었죠. 다양한 구름이 어우러져 어떤 모양을 만들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이도 제 시선을 따라 구름을 보고 있었나봅니다. "엄마, 구름이 악어 같아." 그 말을 듣고 보니 구름이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네요. 살짝 떨어져 있는 콩알만한 작은 구름은 악어의 눈 같았고요. 그렇게 악어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데 바람이 구름을 서서히 밀어주네요. 각자의 속도로 흘러가는 구름은 조금씩 형체를 바꾸어 또 다른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구름은 이번에 어떤 그림을 그려줄까요? 그렇게 미술학원으로 향하는 짧은 몇 분 동안 범이와 저는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도착하기 전 마지막 신호가 빨간불이었어요. 초록불이 되길 기다리는 중이었죠.
그때 범이가 불쑥 말을 꺼냈어요.
"엄마 그거 알아? 안경에 빛이 들어오면 색깔이 다르게 보여. 빛에는 모든 색이 다 있어서 그렇지?"
범이는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데요, 안경으로 빛이 들어올 때 무지개가 보인다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신기해서 저에게 마구 질문을 했었던 적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빛은 흰색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 모든 색이 다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해준 참이었죠.
"그렇지."
"근데 그렇게 다른 색이 보일때마다 난 우주라고 생각하고 놀아."
조금은 뜬금없는 말에 놀랐지만 아이의 생각이 더 듣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그 우주는 어떤 우주인지 물어보았죠.
"그건 다 다른 색깔별이야. 불도 별도 온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잖아. 공부하다 천장을 보면 여섯 개 동그란 빛이 있지? 그게 안경 각도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인단말이야."라고 하며 안경을 벗어 요리조리 각도를 바꾸어보는 범이입니다. 프리즘처럼 해보고 싶은가봐요.
"그걸 난 다 다른 별이 있는거라고 생각해."
"그럼 매일 노란색 별, 초록색 별, 빨간색 별 다르게 보이겠네."
"응, 맞아. 재미있지?"
"응~ 너무 예쁜 이야기다."
초등학교 3학년인 범이의 말에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어요. 다 컸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이런 순수하고 예쁜 생각을 한다는 것에 감동을 느끼기도 했고요. 역시 도치맘인가봐요.
평소에는 무뚝뚝하고 엄마 마음 몰라주는 범이에요. 그런데 가끔 이렇게 툭 튀어나오는 감성적인 상상을 들을 때면 이를 오래토록 지켜주고 싶어요. 문제집 풀며 정답을 찾아가는 공부에서 잠시만 물러나있게 해주고 싶어요. 나만의 이야기를 맘껏 써내려갈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고 싶어요.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었네요.
앞에서 우회전을 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꽤 차가 밀려 있어요.
"엄마, 몇 분 남았어? 나 밀리는거 싫은데. 제발 늦으면 안 돼~~~"
덕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어요.
이렇게 우리의 대화는 흘러가듯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이는 상가 입구에서 내려 "다녀올게~~" 하며 힘차게 손을 흔들어준 뒤 전력질주하여 들어가버렸지만, 범이의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 하나를 듣게 된 저는 여운이 꽤나 오랫동안 남아있었습니다.
문제집 풀다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집중하지 못하는 것 같아 보여 엄마 속을 답답하게 만들었던 그 순간, 네 내면에서는 그런 우주가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었구나. 아름다운 별들이 가득한 우주. 말을 안해주었으면 엄마는 너를 오해할뻔 했네. 이렇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그 별에서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지고 있니?
이 날 이후로 저는 범이와 단둘이 차를 타고 가는 순간이 즐거워요.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발견하곤 하거든요. 집에서는 제 말을 흘려 듣는 아이도 차 안에서는 이야기하는 것밖에 할 일이 없으니 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서로의 대화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저에게 보물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