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하옵니다!
평소 유시민 아저씨의 논리적 사고와 조리 있는 메시지 전달 방식을 좋아한다. 글도 말도 참 쉽게 말하는 재주가 있다. 거기다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한몫 거들어 유시민 작가(이하 유시민 작가)를 좋아하는 편이다.
유시민 작가가 얼마 전에 책을 새롭게 출간하였다.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라는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매불쇼'라는 방송에서 처음 신간이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길로 당장 구매를 했다. 구매를 한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완독 하진 못했다. 내용이 어려워서인지 지하철 출퇴근 길에서 읽기보단 한적한 카페에서 천천히 읽고 싶어 미뤄두고 있다.
'과학'이라는 단어는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수학'이라는 단어는 그 호기심에 찬물을 끼얹는다. 돌아보면 난 지구 과학이나 생물학 등은 재밌어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수학이 없어서였겠지만 무엇보다 인간 대 자연이라는 구도를 넘어서는 사고의 확장이 좋았던 것 같다(이건 또 뭔 말인가...). 요즘에도 유튜브 과학 채널을 즐겨 보고 과학 교양서 같은 걸 읽으려고 노력한다(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반 정도 읽은 적이 있다). 딱 이 정도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유시민 작가의 신간 '문과 남자의 과학 공부'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박문호 박사님은 최근에 유튜브 채널에 자주 떠 영상 몇 개를 보았다. 뇌과학 분야에 대해 설명하시는데 먼저 구수한 사투리가 친근해서 좋았다. 알고 보니 이 분은 뇌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과학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너르고 깊은 듯하다(그분의 책 '박문호 박사의 빅히스토리 공부 - 우주의 탄생부터 인간의 의식 출현까지'를 얼마 전 주문했는데 아주 기대가 된다).
박문호 박사님과 유시민 작가의 대담 영상이 유튜브에 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클릭하였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평소 하던 즐거운 상상의 일부였다. 두 분의 영상을 보고 몇 가지 알게 된 바가 있어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1.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문송합니다'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정말 문송하였다. 양자 물리학의 대가인 리처드 파인만이 인문학자를 보고 '거만한 바보들'이라고 칭한(이 일화는 책에 있다) 이유가 크게 와닿았다. 자연에 대한 이해도 없이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바보나 하는 짓이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매우 겸손 아니 겸허해졌다(겸허와 겸손의 차이는 위 영상에서 언급되니 참고)
2. 배운 사람들(?)이라 그런 지 두 분은 서로를 배려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두 분은 대화를 나누는 시종일관 서로의 전문 영역은 물론이고 존재 자체를 존중하려고 노력하신다. 유시민 작가가 영상 초반에 본인의 책을 어떻게 총평하는지를 묻는데(묻는 방식 또한 매우 사려 깊다), 그에 대한 박문호 박사님의 답변은 지식수준에 걸맞게 매우 신중하고 사려 깊으며 구체적이다. 두 분의 1시간 넘게 이러한 일관된 태도로 서로를 대하는 모습에 반했다.
3.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사람은 과학 좀 하는 사람이다. 영상에 보면 유시민 작가가 여태 인문학도로서 얼마나 무지했는지를 고백하는 장면이 제법 나온다. 문과 사람들은 자신들이 무언가를 안다고 말할 때 그 증거나 근거가 빈약한데도(심지어 없어도) 매우 확신에 찬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독재자(과학적 사고에 대한 이해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추정되는)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에 수 천 명의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데(전대갈과 같은), 그 사람의 확신에는 어떤 증거나 근거도 없다. 그에 반해 자연 과학자들은 크게 '맞다, 틀리다,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겠다'로 어떤 현상을 설명한다. 그들은 증거가 나온다면 언제든 본인의 의견이 틀릴 수 있다는 전제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무한 광대한 자연의 세계에서 본인들이 안다고 할 수 있는 게 극히 일부라는 것을 몸소 느끼는 사람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과식 사고를 하는 사람은... 함구하겠다(일반화하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시길).
4. 과학도와 비과학도의 사고 구조는 완전히(!) 다르다. 영상에서 유시민 작가가 박문호 박사에게 '공부라는 것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 그때 박문호 박사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이라는 현상을 규명하는 것
이라고 정의한다. 인간을 '현상'으로 정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인간 이 전에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인 지구라는 행성을 언급한 점에 사실 매우 놀랐다. 반면 유시민 작가는 공부를 이렇게 정의한다.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인간과 생명과 자연과 우주를 이해하는 작업이다
두 분 정의는 유시민 작가의 '내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문장으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내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라는 인간의 욕구나 목적이 박문호 박사의 정의에는 빠져있다. 즉,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문과식 사고의 공부의 목적이라면, 자연 과학도는 자연을 이해하는 것 자체가 공부의 목적이다. 즉, 인간은 자연 현상의 일부이니 자연을 공부하다 보면 인간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이 처럼 둘 간의 경계는 매우 확연하다.
5. '인간은 기억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가 가진 인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한 문장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경험한 것들이 기억으로 남고, 이러한 기억은 계속해서 쌓이며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즉, 그것을 필터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박문호 박사는 이것은 단순 개인이 아닌 인류 전체의 프레임으로 보았다. 인류가 어떤 새로운 사실의 발견 앞에 엄청난 충격을 받는 것처럼 인류의 집단 기억이라는 감옥 밖에서 인류의 지성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설파한다. 나의 한정된 기억이라는 감옥에 갇혀 산다는 사실은 사실 많이 슬프다.
6. 과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일, 인문학은 답과 상관없이 질문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학이 과학보다 열등하다고는 당연히 할 수 없다. 둘은 단지 역할이 다를 뿐이다. 인문학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고 질문할 줄 알아야 하고, 과학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눈으로 보게끔 해야 한다. 둘 사이는 사실 나눌 수 없는 영역이고 하나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눈에 무조건 보이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우리가 가까운 거리를 찾아갈 땐 과학자에게 의지하지만, 멀리 있는 미래로 갈 땐 시인에게 의지한다.
- 루이스 토머스 Lewis Thomas (1913-1993) -
7. 인간을 자연계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놓으려는 인간은 참으로 무지하다. 이 영상의 가장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결국 자연 과학을 공부한 사람은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고 자연계의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란 것을 명확히 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할 수가 없다. 인간을 자연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인간은 단순히 자연 현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최상위 포식자는 커녕 만년 두려워하는 피식자에 가깝다. 인간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처럼 위대하지 않다. 그럼 인간은 뭐지?
8. 자연을 알면 알수록 겸손함을 넘어 겸허해진다. 아래 사진은 제임스웹이라는 망원경을 통해 찍힌 134억 년 전 은하이다. 137억 살인 우주와 비슷하다고 하여 난리가 난 적이 있는 사진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또 있다. 저기 보이는 빛나는 것들이 모두 '은하'라는 것이다. 지구 같은 별들이 수백만 개가 모이면 성단이라고 하고 성단이 적게는 수 천억, 많게는 100조 개 이상 모여 있는 집단을 '은하 Galaxy'하고 한다. 우리 지구와 태양계가 있는 '우리 은하'의 항성 개수는 약 5000억 ~ 6000억 개 정도로 추산된다고 한다. 우리 은하는 비교적 큰 편이라고 하나, 저 작은 빛 들이 모두 은하라는 것은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주에서는 얼마나 미약한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존재가 우리 인간이라는 것을 알면 우리는 겸손을 넘어 겸허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결국 두 분은 겸허(텅 빈 상태)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하며 대담(1부)이 끝난다.
난 이 영상을 두 번을 봤는데, 두 번다 1시간 13분이라는 순식간에 지나간다. 2부가 나올 때가 되었는데... 2부가 나오면 또 리뷰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