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욕망에 귀 기울이기
내 턱수염은 제법 멋지다.
예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기른 턱수염이 내 인생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턱수염이었다. 그 뒤론 한 번도 내 턱수염에서 나오는 아우라를 보지 못했다. 가끔 휴가 기간에 기른 어중간한 턱수염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현재 일주일째 턱수염을 기르고 있다. 일주일 길러가지고 턱수염이라고 할 수 있겠냐고?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봐야 안다.
내 턱수염에 가장 불만이 많은 사람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1번 모친, 2번 아내, 3번 장모님, 4번 아버지, 5번 딸 순이다. 먼저 우리 모친은 내가 턱수염을 기르면 백수건달로 살다가 아내한테 쫓겨날까 봐 걱정이 되는지 수염만 기르고 있으면 당장 자르라고 난리시다. 2번 아내는 뽀뽀를 하는데 따갑다며 당장 깎으라고 하지만 솔직한 속내는 저렇게 턱수염까지 길러 놓으면 집토끼가 울타리를 탈출하여 야생으로 달아날까 봐 걱정하는 눈치다. 써놓고 보니 3번 장모님과 4번 아버님도 이유가 비슷할 것이다. 우리 딸만 순수한 눈으로 내 턱수염을 보는 듯하다. 지저분하니, 산적 같다느니 하는 어른들의 말이 아니었다면 딸은 아마 내 턱수염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턱수염을 기르고 나서 나는 매우 자유로움을 느낀다.
누구한테 잘 보이기 위해 깔끔 떨 필요도 없고, 깔끔해야 남들이 날 예쁘게 봐줄 거라는 생각에서 자유로우니 더욱 자유롭다.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등의 말을 여태 너무 많이 듣고 살았다. 하마터면 평생 그게 진실인양 살 뻔했다. 내가 내 마음대로 턱수염도 기르지 못하는 삶이 그게 나의 삶인지 남의 삶인지. 오히려 통쾌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내가 좋으면 된 것이지.
오늘 아침에도 웃통을 벗고 뛰었다. 춥다. 그런데 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상의를 탈의해서 자유롭기 때문일까? 아니면 뛰는 내내 뇌에서 엔도르핀이 나와서 그런 것일까? 아님 둘이 합쳐져서 그런 것일까? 이유는 중요치 않다. 그냥 행복하다.
누군가의 눈에는 완벽한 돌아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것이 자크 라캉이 이야기한 진짜 나의 욕망에 가장 가까운 행위라는 것을 말이다.
사람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내가 웃통을 벗고 뛰는 행위는 타자의 욕망을 넘어선 나만의 쾌락이다. 라캉에 따르면 타자의 욕망을 넘어선 진짜 욕망을 채울 때 느끼는 즐거움을 주이상스(Jouissance)라고 하는데 나는 웃통을 벗고 뛸 때, 그리고 내 턱수염을 바라볼 때 주이상스를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행복할 수밖에.
조금 더 늦기 전에 조금이라도 가볍고 편안하게 자유롭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진짜 욕망에 귀 기울여야 한다.
오늘은 턱수염도 길렀으니 멋진 선글라스를 끼고, 성수동에 내가 좋아하는 짜이티를 마시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