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가 시급하다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을까? 딸을 낳고 나서부터일까? 아니면 그전부터인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느 순간부터 흔히 말하는 젠더 감수성이 높아졌다. 그리곤 평소에 흔히 듣던 단어들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특히 거슬리는 단어 두 개가 있다.
경단녀
워킹맘
경단녀는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된 여자의 줄임말이다. 워킹맘은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를 일컫는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이 단어를 쓰지만, 이 단어에 숨은 뜻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단어는 없어졌으면 하는 게 내 바람이다.
먼저 경단녀를 보자. 육아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었다는 말의 의미에는, 엄마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전제가 깔려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자의든 타의든), 엄마는 아이로 인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어야 한다.
여기서 이런 질문이 자연스레 생긴다.
엄마만이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가?
엄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반드시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세상에 모든 엄마들은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이런 질문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질문이 생겼다.
아빠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가?
아빠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직장을 그만 둘 수는 없는가?
그렇다면, 세상에 모든 부모는 아이를 키우려면 둘 중 하나는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다시 질문이 생긴다.
아빠도 엄마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면, 아이를 보는 것이 가능한 사회인가?
그들 부모의 부모가 아이를 봐줄 수 있는 상황이 과연 '다행'인 사회인가?
그들 부모의 부모의 삶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런 것이 유일하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선택지인가?
다른 대안은 없기에 이런 선택을 내리고 있는가?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는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는 육아라는 사회적 이슈를 '엄마'라는 이름 하에, 모든 '엄마'에게 그 책임을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큰 책임을 던져놓고, 아무런 손도 쓸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덜컥 놓인 엄마들에게, '경단녀,' '워킹맘'이라는 단어를 막 가져다 붙여도 되는 건가?
오직 두 개의 선택지만 던져주고, 세상의 모든 아이를 가진 여자들에게 기계적으로, 어떤 고민도 책임감도 없이, '경단녀' '워킹맘'이라고 이름 붙이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인가?
아래 표를 보자.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나라는 형편없다. OECD 평균 보다 한창 못 미친다. 위 기사 링크를 가보시면 아시겠지만, 아직까지 남성과 여성의 수당 격차는 35%, 여성은 남성에 비해 직업 참여율이 약 20% 이상 떨어진다(기타 교육, 관리자 여성 비율 등의 데이터는 출처 기사에서 참고하세요).
그럼 이 비정상의 사회에서 여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청소 등 가정일을 분담해라. 육아를 분담해라. 그냥 하나 마나 한 소리들 밖에 없다. 이러니 출산율이 낮을 수밖에 없고, 이러니 비혼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단녀
워킹맘
앞으로 이런 말들이 사라졌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버젓이 살아있는데 단어만 없앤다고 되겠나. 세월호 터졌다고 학교에 수학여행 없앤 거랑 뭐가 다른가.
'육아'라는 성스러운 행위를 성스럽게 만들지 못하면,
'여성'은 당연히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없애지 못하면,
'경단녀' '워킹맘'이라는 단어가 당연시 받아들이는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해결될 수 있을까?
저 명제를 질문으로 돌려본다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나오지 않을까 한다.
'육아'를 사회에서 가장 성스러운 활동으로 볼 수 있는 방법은 없나?
'육아'를 여성성에서 해방시키기 위한 방법은 없는가?
'육아' 앞에 놓인 여성들에게 경단녀와 워킹맘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는가? 없다면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