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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Aug 07. 2024

내 인생을 바꾸는 가장 파워풀한 질문 하나

제 인생에는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고 내가 원하는 변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항상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보통은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뭐야? 무얼 하고 싶은 거야? 무얼 갖고 싶은 거야?라고 묻는 걸 많이 보았는데요. 그러한 질문은 내가 아닌 외부로 향하는 질문이기에 바뀌기가 아주 쉽습니다. 어느 날은 포르셰를 타보고 싶다가 어느 날은 스위스 여행을 가고 싶고 어느 날은 좋은 집을 갖고 싶고, 어느 날은 작가가 되고 싶다가 어느 날은 SNS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기도 한 것이 우리 마음입니다.


질문이 내가 아닌 밖으로 향하고 있기에 당연한데요. 잘못된 질문인 것 같습니다.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외부가 아닌 나로 곧장 향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Who do I want to become


사진: Unsplash의 ���� ������


내가 누구인지를 스스로 내린 정의에 따라 우리는 행동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먼저 정의해야 합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몸도 마음도 건강한 사람이라는 정의를 먼저 내려야 거기에 맞는 행동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로 '건강'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묻게 되면 가지지도 못하고 하지도 못하고 되지도 못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가지고 싶다면 돈을 가지기 위한 행동을 하겠지만 돈을 가지기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니 어떤 행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정의 내려야 그에 맞는 행동을 하고 싶고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결과로 '얻게 되는 것'이지요. BE  - DO - HAVE의 순서이죠. 그러나 보통은 거꾸로 생각합니다. 가지게 되면(HAVE) 무엇을 할 것(DO)이라 말하고 그렇게 하면 내가 원하는 누군가가 된다(BE)고 생각하죠. 가령 "내가 돈이 얼마가 있으면 원 없이 여행을 다닐 거고 그러면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될 텐데" 식입니다. 그러나 접근 자체가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신기루를 쫓고 있는 것이죠. 


어쩌면 "네가 돈을 많이 벌면, 부자가 되면 너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가질 것이다."는 식의 주입된 믿음은 있지도 않은 것을 마냥 쫓는 오아시스와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냐면 무엇을 가지게 된 이후가 없기 때문인데요. 무엇을 가지는 것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벤츠를 가지는 것이 우리 인생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 없지 않을까요? 최소한 벤츠를 가지고 OO을 할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 OO을 하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 느껴질 것이다(BE) 정도까지는 나아가야 할 텐데 '무엇을 가질 것이다'에서 멈춰 버리면 도대체 무엇을 위해 가지는 걸까요?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답을 낳습니다. 그 답과 질문에 질문하지 않고 산다면 우리는 어쩌면 평생 잘못된 질문을 던지며 잘못된 답을 위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끔찍한 생각이 듭니다.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Who do I want to bec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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