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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성이 Dec 02. 2022

곱창은 우정을 파괴하는 위험한 요리입니다.

대학시절 두 개로 나누기 전의 나무젓가락처럼 거의 붙어 다녔던 친구가 있다. 

녀석의 집이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수업이 끝나면 내 자취방으로 달려와 내 소중한 쌀을 축내며

밥을 먹었고(단백질 성분의 반찬이 없다며 반찬 투정을 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좁은 싱글 침대에 같이 나란히 누워 잘 때면 안정된 숙면을 위해 한 놈을 침대 밖으로 밀어내기 위한 치열한 몸싸움을 하곤 했다.

 

녀석이 나의 자취방에서 생활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로 추측되지만, "단지 집에 들어가기 귀찮아서"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렇게 항상 붙어 다니던 녀석과 졸업 이후 서로 다른 지역의 회사에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한 뒤 서로의 가정에 충실하다 보니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그런다고 둘이 은밀하게 수화기 너머로 속삭이는 행위는 닭살 돋아서 하지 못하고 주로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를 이용 서면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평소 웃긴 사진과 함께 농담이나 던지던 녀석이 며칠 전 오후 내게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뭐야? 왜 전화를 했지? 내 목소리가 하루의 피로를 날려주는 상쾌한 목소리도 아닌데.'

의아한 마음으로 녀석의 전화를 받았다. 녀석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성성아.. 그냥 아무 이유 없어.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술 한잔 사줄 수 있겠냐?"


단세포 동물의 지능과 유사한 수준의 녀석이 심각해 보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런 전화를 했다는 것은 무슨 큰 사건이 생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이 왜? 무슨 일 있어?"


"이유는 묻지 말고 그냥 너랑 술 마시고 싶어서 그래.'


녀석은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녀석을 알고 지낸 지 이십여 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진지하고 심각한 녀석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혹시 와이프가 이혼하자고 했나?', '요즘 전세 사기가 많은데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나?' '아니면 나처럼 탈모가 시작됐나?' 내 나이대의 남성이라면 할 수 있는 수많은 고민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일단 만나서 녀석의 고민을 들어보고,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주고, 힘든 일이면 용기라도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오늘 만나자. 내가 회사에 이야기하고 너희 집 근처로 갈게. 그게 편하지?"


"그럼 내가 고맙지."


회사에는 갑자기 집안에 급한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한 뒤 나는 서울에서 인천 검단까지 먼 여정을 출발했다. 녀석이 퇴근하고 집 근처에 도착할 시간이면 나의 도착시간도 얼추 맞을 거라는 계산이 들었다. 녀석을 만나러 가는 내내 '도대체 녀석에게 무슨 일이 생겼길래.' 하는 마음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녀석의 집 근처에 도착해 녀석에게 연락을 했을 때 녀석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내가 있는 곳으로 왔다. 나는 녀석을 보자마자 물었다. 


"야! 너 무슨 일 있는 거야?"


"아니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너랑 술 마시고 싶어서."


분명 녀석에게 심각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술을 좀 마시면 녀석이 말을 하겠지 싶어 저녁 겸 술을 한 잔 마실 수 있는 곳으로 향하자고 했다. 


"삼겹살 어때?"


"맨날 만나면 삼겹살 지겹지 않냐?"


"그럼 방어는 어때? 요즘 제철이잖아."


"디펜스는 싫어 난 공격이 좋아."


이 상황에서도 아재 개그를 하는 녀석에게 "그냥 사주는 대로 쳐 먹어"라고 싶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은 녀석의 의견을 존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저기나 가자."


주변을 두리번두리번거리던 녀석이 가리킨 곳은 우곱집이라는 곱창집이었다. 그동안 봤던 곱창집들과 다르게 멀리서 봐도 화려한 조명이 손님을 감싸는 SNS 인증샷 올리기 딱 좋은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우리같이 누추한 아저씨들이 저렇게 화려한 식당이 과연 어울린다고 생각하냐?"


"우리도 한때는 화려했다. 화려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냥 가자."


화려하긴 뭐가 화려해. 그냥 곱창이 먹고 싶다고 말하면 되는 거지..


그렇게 귀한 곳에 누추한 분들이 방문하게 되었다. 새로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식당 내부는 깔끔했고 직원들은 '이 사람들이 손님 구경 처음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친절했다.

직원 분이 추천해주는 메뉴에 소주를 시킨 나는 빨리 마시고 취하면 녀석이 내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을 거라는 생각에 녀석에게 계속 술을 권했다. 

우곱집의 자랑이라는 돌판인데 사람 때리기 딱 좋은 사이즈입니다.

녀석은 잠시 후 소주가 아닌 곱창의 기름기에 취할 정도로 직원 분이 구워주는 곱창과 대창을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만 쳐 먹어. 이 돼지 새 X야!"라고 화를 낼 법도 했지만, 내가 진지한 표정으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라고 물을 때마다 "오늘은 그냥 아무 말 없이 먹고 싶다."라고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녀석에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무슨 고민이나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되는 녀석보다 오히려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것은 나였다. 곱창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도 모른 채 정말 아무 말 없이 녀석과 술을 마셨다.


"야 모듬구이 1인분 더 시켜도 되냐?"


녀석이 침묵을 깨고 내게 말을 걸었다. '그래 이제 녀석의 기분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선뜻 "그럼 당연하지 더 시켜. 술도 한 병 더 시키고."라고 말하며 추가 주문을 했다. 

맛있게 곱창과 대창을 "촵촵촵" 씹는 소리를 내며 먹는 녀석의 기분이 풀려 내게 빨리 고민을 털어놨으면 했다. 하지만 녀석은 나의 그런 기분도 모른 체 묵묵히 젓가락질만 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당이 떨어져서 요즘 힘이 없는데 탄수화물의 결정체로 평가받는 볶음밥을 시켜도 되냐고 물었다. 


녀석의 단백질과 당이 충전될 때마다 나의 지갑은 점점 고갈되고 있음을 느꼈다. 하지만 나의 부족한 재력이 녀석의 의기소침과 활력을 높여 줄 수 있다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제발 그만 좀 쳐 먹어"라는 말이 나오려 하고 있었다. 


곱창에 이어 볶음밥까지 마시고 있는 녀석에게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그만 좀 먹고, 너 오늘 무슨 일 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집안에 무슨 일 있어? 아니면 회사에서 잘렸냐?"


녀석은 볶음밥을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2남 1녀 중 막내의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무슨 일이 있긴. 없는데? 아무 이유 없이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너한테 술 얻어먹고 싶어서 그런 건데."


"그런데 왜 떨면서 말한 거야?"


"그때 화장실에서 똥 쌀 때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는데, 그때 화장실 창문이 열려 있어 추워서 목소리가 떨렸나 보다. 설마 내가 네 목소리 듣고 설레서 떨렸겠냐?"


아니 똥 쌀 때 왜 내 생각을 하는 건데...


순간 내가 이 녀석에게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는 없으니 웃는 낯을 가격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테이블을 유심히 살펴봤다. 돌판으로 때리면 돌판이 박살날 것이고, 소주병은 보증금 환불이 가능한 재활용품이 안되고..


뜨거운 돌판에 오랫동안 남아 검은색으로 단단해진 염통구이처럼 내 심장도 나를 기만한 녀석에 대한 분노로 굳어지고 있었다. 


결국 오늘은 내가 녀석과 곱창의 합동 공격에 당했지만, 훗날 복수하고야 말 것이다.


그나저나 곱창은 참 맛있었다. 다음에 또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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