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즈 러너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젊은 세대들

by 공대생의 책방

고요한 어둠속에서 진동이 울려온다. 아주 먼곳에서도, 바로 가까이에서도. 돌과 돌이 갈리는 굉음이 나며 미로의 벽이 이동한다. 한줄기 빛마저 사라진 어둠속에서, 기괴한 기계음이 들려온다. 이윽고 칼날을 가는듯한 소리와 시뻘건 눈이 앞을 가로막는다. 괴수다.


*스포일러 주의*


책을 읽는것은 좋아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현실과 세계관이 다른 판타지나, 현실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가상의 장소와 사건을 다루는 책들은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책을 읽고 나름의 공상을 하며 그 세계관 안에서 좀더 머무는것이 취미인데, 그런류의 책들은 그 후유증이 너무 오래갔거든요. 하루하루의 현생이 바쁘다보니 아무래도 가급적 빨리 벗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책 위주로 많이 읽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제가 오랜만에 아주 긴 후유증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메이즈 러너. 기억을 잃고 괴수들이 있는 거대한 미로에 갇힌 소년들과 그들이 미로를 빠져나갔을 때 마주할 진실에 대한 이야기.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재밌어 보이는 주제였습니다.


책의 첫장을 넘겨 차갑고 기계음이 나는 상자를 통해 토마스가 미로로 들어가던 순간부터,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저 또한 미로 속으로 빠져든 것 같습니다. 기억을 잃은 소년들이 차례로 들어가게 된 미로는 수 km가 넘는 거대한 규모에 밤마다 벽의 구조가 바뀌고 기계생물같은 괴수들이 돌아다니는 공간이었습니다. 상자의 문이 열리고 미로로 들어가게 된 순간부터, 너무나도 궁금한것이 많았습니다. 괴수는 무엇인지. 미로의 구조는 어떻게 바뀌는지. 딱정벌레 날개깃으로 우리를 감시하는 건 누구인지. 왜 우리는 여기에 갇힌것인지. 궁금해서라도 책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토마스와 테리사, 뉴트와 민호를 비롯한 소년들은 미로를 뛰어다니며 정보를 모으고, 정체모를 괴물들과 싸우고, 많은 동료들의 희생을 겪으며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미로의 탈출구를 찾아 탈출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들이 겪을 모험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탈출해서 나온 세상은, 기억의 파편속의 세상과는 달랐습니다. 뜨겁게 달궈진 대지와 하늘, 죽음의 병으로 광인이 되어가고있는 사람들. 세상은 마치 지옥과도 같았습니다.




소설의 세계관은 태양 플레어 현상에서 시작합니다. 강력한 플레어 발생 후 지구의 상당 부분이 황폐화되고 인간을 광인으로 만드는 정체불명의 플레어 바이러스까지 나타나 인류는 존속을 위협받게 됩니다. 세계 각국은 연합기구인 위키드(사악)를 결성해 치료제 개발과 재건에 힘쓰고, 플레어 바이러스에 면역이 있는 아이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극한 환경에서 아이들의 뇌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통해 치료제를 만들고자 그들은 실험을 계획합니다. 소설의 주인공들, 토마스 테리사 민호 뉴트는 그들에 의해 기억을 지운 채 미로로 투입됩니다.

1부 메이즈러너에서는 위키드의 실험공간에서 기억을 잃은 채 탈출 한 소년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2부 스코치 트라이얼에서 치료제를 찾기 위해 초열지옥이 된 도시를 거치면서 위키드의 함정, 광인의 위협과 싸우게되고 3부 데스큐어에서 치료제의 진실과 자신들이 나아갈 길을 스스로 선택하게 됩니다.


이 시리즈에 대한 한줄평으로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젊은 세대들' 이란 평이 있었는데, 책을 거의 다 읽어갈때 까지도 저 말이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소설의 주제가 그저 전염병이 창궐한 세상에서 치료제를 찾기 위한 소년들의 여정 정도로 생각되었거든요. 하지만 프리퀄인 킬 오더와 피버코드까지 읽고보니, 그보다 더 이 시리즈를 잘 표현한 문장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 치료제를 찾는일에 계속 비협조적을 굴려고 하는 소년들이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영문도 모른채 몇년간 실험에 이용당한 억울함은 이해하지만, 바깥세상을 두 눈으로 보았음에도 치료제 개발보다 자신들의 자유만을 추구하며 탈출하려는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위키드는 분명 어린 소년들을 대상으로 너무나 끔찍한 짓들을 해 왔고 그들의 대다수를 실험이라는 명목하에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희생을 치뤘기에 결국은 위키드에 협력해 치료제를 개발하는, 희생의 가치가 있는 모두의 해피엔딩이 되길 기원했습니다. 그런데 위키드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입니다.


데스큐어의 막바지, 소년들은 탈출에 성공했으나 토마스는 치료제 개발을 위해 탈출했던 위키드의 본 연구실로 돌아갑니다. 그가 이 실험의 최종 선별자였고 그를 통해 치료제가 완성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죠. 자유를 포기하고 그들에게 돌아간 토마스에게 위키드가 요구한것은 죽음이었습니다. 치료제의 마지막 청사진을 위해 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숨기고 있던 진실은,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뤘음에도 치료제의 청사진은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동안 소년들이 겪어왔던 모든것이 무의미한 일이었던 것이죠. 그리고 더욱 충격적인 비밀은, 플레어 바이러스는 애초에 위키드가 인류의 수를 제어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살포한 인공 바이러스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위키드는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세상에 풀어놓은 끔찍한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고자, 아무런 죄 없는 소년 소녀를 대상으로 인류를 구한다는 명목하에 잔혹한 실험을 진행한 것입니다. 그리고 치료제를 개발할 가망이 없음을 알면서도 마지막 발악을 하듯 토마스의 뇌를 꺼내려고 한거죠. 인류를 구원한다는 그럴듯한 슬로건을 걸고 활동했으나 결국 그들은 그들이 과거에 자초한 잘못을 은폐하고 마치 자신들은 선인양 가장하여 죄없는 이들의 희생을 강요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와 '젊은 세대가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젊은 세대의 기준이 명확하진 않지만, 보통 젊은 세대라 불리는 집단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바로 기성세대들과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일겁니다. 새로운 세대들은 이전의 세대들과는 생각이 달라서 그들만의 생각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죠. 사회의 분위기와 문화, 역사는 그렇게 변화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늘, 갈등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시대에 따라 같은 문제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달라지고 그 해결책 또한 달라집니다. 이전 세대에서 해결책이라 제시한 것을 이후 세대에서 틀렸다 말하기도 하고, 젊은 세대가 제시한 해결책을 이전 세대가 거부하기도 하는 식으로 말이죠.


단편적으로 보았을 때 치료제 개발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위키드와, 아무리 치료제의 개발이 목적이라 해도 사람의 인권을 밟고, 목숨까지 잃게 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 라는 소년들의 입장은 어느 한쪽이 옳다 라고 쉽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윤리적인 딜레마를 일으키는 소수의 희생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죠. 오히려 인류를 구할 수 있다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이 된 바이러스가 애초에 위키드가 만든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자신들이 바이러스를 살포했다는 사실을 숨기고, 자신들은 인류를 구원할 고귀한 사명자들로 위장하며 소년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위키드의 모습은, 자신들의 잘못된 가치관과 욕심, 탐욕으로 사회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그 책임은 이후 세대들에게 넘기며 자신들은 세계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것 마냥 위장하는 일부 정치인들이나 기업인, 사회 지도층들을 풍자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드러나는 문제의 원인은 자신들에게 있으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우리 모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희생을 동참해야 한다는 식의 희생정신을 가장하는 사람들 말이죠.


그러나 소년들은 희생을 강요받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문제의 원인이 자신들에게 있는 것이 아닌데 왜 희생을 당해야하나요. 더구나 위키드의 모습을 보면, 모두의 희생으로 바이러스를 퇴치하자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전세계의 자금을 대부분 소유해 다른 사람들을 지원할 자금을 부족하게 하고, 실험을 소년들을 통해 진행하며 자신들은 그저 바이러스에 걸리기를 무서워하며 치료제 개발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뿐인 이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현실에서도, 사회에 문제와 혼란을 야기시키는건 권력과 재력을 가진 극 소수의 인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나중이 되면 문제를 해결하자며 등장하지만 결국 자신들이 희생하는것을 원하진 않고 타인들의 희생을 종용하죠.


그러나 메이즈러너에서의 소년들이 그러했듯이, 새로운 세대들은 이전 세대들의 정답과 방식과는 다른 방법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소설의 결말이 치료제의 개발이 아닌, 면역인들로 구성된 새로운 인류의 집단을 만들어 처음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 처럼요. 어쩌면 새로운 세대들이 내리는 결정이 처음부터 시작한다 라는, 다소 막막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제가 소설을 놓을 때 까지 사회가 유지되고 치료제가 개발되길 바랐던 것 처럼, 대부분은 그동안의 체제와 사회가 유지되길 바랄테니까요. 그렇지만 소년들의 선택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소년들이 아닌 위키드에 있었고, 소년들의 인생과 운명을 결정할 권리는 스스로에게 있었으니까요.


결국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미로속에 같혀있던 소년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통해 세상을 바꿔나갔습니다. 위키드는 치료제 개발을 포기하고 남은 자금을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거나 남은 인류의 복지를 위해 사용하게 될 것이고, 면역인 소년들은 또 그들만의 사회를 발전시켜 언젠가 전 지구를 면역인들로 채워지게 만들것입니다. 현실에서도 젊은 세대들은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틀을 깨고 새로운 해결책을 추구하게 될 겁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세대는 또 다른 해결책을 만들어가게 되겠죠. 그것이 언제나 옳은 방향이라곤 말할 수 없겠지만,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려는 인간의 특성 상 우리의 역사는 계속해서 그렇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로에서 탈출하여 세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해 나간 소년들. 결국 세상을 바꿀 힘이 있었던 그들. 어차피 세상은 백과 흑의 싸움이 아닌 흑과 흑의 싸움이어서 새로운 것도 결국 낡은 것이 되고, 혁명가도 언젠가는 독재자가 되어 새로운 세대와 싸움이 계속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면, 젊은 세대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할 가치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겨우 미로에서 빠져나와 이 세상이 어떠한지 눈으로 확인해보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나와, 나와 같은 세대들이 더 나은 결정으로 세상을 바꿔나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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