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겨울
아이들은 눈이 내리면 이불을 꽁꽁 싸매고 마루에 앉아 혀를 내밀고 차가운 눈송이를 받아먹었다. 난 지붕이 묵직해지는 걸 느끼며 멀리 산자락에 내려앉는 눈송이들을 바라봤다.
저녁을 먹고 모두가 조용해지는 시간이었다.
방문 열리는 소리가 적막과 나를 깨웠다. 첫째 손녀와 둘째 손자가 까치발로 조용하게 마루로 나오더니 높다랗게 걸린 빨랫줄에 양말을 살그머니 걸어 놓았다. 그리고 까만 눈을 깜박이며 저희들끼리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난 밤 고양이 같은 아이들의 행동의 의미를 몰랐다. 날이 밝자마자 눈곱도 떼지 않은 눈으로 달려 나와 양말을 뒤집어 보던 둘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렸다. 막둥이는 고개를 갸우뚱거렸고 이번에도 난 무슨 일인가 싶었다.
어른들이 일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오후에나 이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산타를 기다리며 양말을 걸어 놓은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산타가 가지고 오는 선물을 기다린 것이다. 한데 알록달록 하지도 않거니와 늘 빨래를 널어두는 곳에 자신들이 신던 양말을 걸어 놓았으니 어른들이 그 깊은 뜻을 알턱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녀석들이 이런 행동을 하기 전에 미리 부모 산타가 선물을 준비해 놓았으면 어떨까 싶었다. 한편으론 먹고 살기 무척이나 바빠 세심함을 잃은 장남과 복숭아씨가 안타깝기도 했다.
아이들은 오후가 되어서 직접 만든 썰매를 들고 눈이 쌓인 논으로 놀러 갔다. 으앙! 하고 세상이 끝난 거처럼 울다가도 금세 웃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니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