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동지가 되면 위채인 나와 늘 붙어 있는 커다란 가마솥에 벌건 팥죽을 한 가득 끓였다. 일순 씨는 오동나무 주걱으로 휘휘 몇 시간이고 저어주고, 복숭아씨는 찹쌀로 반죽한 덩어리들을 하나씩 떼어서 동그란 새알로 뭉쳐 퐁당퐁당 죽 속으로 떨어트렸다.
일 년 중 밤이 제일 긴 이 날은 나를 등지고 있는 대나무 숲에서 도깨비들이 모여 춤을 췄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이면 오솔길을 따라 동네로 내려왔다. 도깨비들을 쫒으려 대문에 발라 놓은 팥죽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가마솥에 남은 죽까지 핥아먹었다. 그리고는 숲 도깨비들과 집 도깨비들이 오랜만에 만나서 반갑다며 저네들끼리 얼마나 우스갯소리를 하는지 일순 씨 식구들을 깨워서 들려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