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책임의 이차함수
Chapter 3. 처음이자 완벽한 독립
첫 번째 홀로서기
내 첫 번째 변곡점은 취업이었다.
그 길만이, 그 시간 속에서
부모와 가장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취업했어요. 서울로 올라가려고요.”
부모님은 그때도, 지금도 같은 질문을 한다.
“넌 왜 늘 통보만 하니? 왜 다 정해놓고 말하니?”
그 질문 속에 담긴 감정들을 알면서도
나는 끝내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은 나인데,
왜 모든 선택을 ‘상의’ 해야 하는지,
왜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될 수 없는지.
조언은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통보는, 그 시절의 어쩌면
나로서는 가장 덜 다치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 사소해 보이는 간극이
우리의 일상을 조금씩 삐걱이게 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빠는 결국 익숙한 말로 돌아왔다.
“시집이나 가라.”
묻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끝내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무엇을 위해 치열했는지,
무엇을 위해 애썼는지…
무엇을 위해 버텼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왔는지…
나는 그들의 불안과
내 안의 희망을 한 곳에 눌러 담은 채
조용히 서울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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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생활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할 만큼 가벼웠다.
슬리퍼 하나 끌고 명동 거리를 걸어도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
아무도 나를 모르는 도시에서
내 호흡으로 살아간다는 감각.
그 해방감은
지금까지도 내 삶의 기준이 되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 것.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것.
그 모든 선택의 결과는
온전히 내 몫이기 때문이다.
⸻
그 믿음이 있었기에
나는 더욱 치열했고, 더욱 뜨거웠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처음이자 완벽한 독립이었다.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진짜 독립은
집을 떠나는 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군가의 딸이라는 역할을 벗어나는 순간
끝나는 여정이 아니라는 것을.
그 길 끝에는
또 다른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게 아직 이른 결정들이었다.
⸻
두 번째 홀로서기 — 자유와 책임 사이에서
자유는 늘 같은 속도로 커지지 않았고
책임은 늘 예상을 앞질렀다.
자유와 책임은
항상 같이 다니는 그림자 같았다.
하지만 자유능 늘 같은 속도로 커지지 않았고
책임은 늘 예상을 앞질렀다
의상 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자연스레 ‘여성복 디자이너’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한 취업 조건들은
내가 학창 시절 상상했던 것과 달랐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기준들이 있었다.
신장, 비율, 외형.
누구도 미리 말해주지 않았던 기준들,
장벽 같은 조건들.
면접장에 앉아 있는 동안
내 몸은 이미 탈락해 있었다.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았다.
좌절은 머무를 자리가 없었다.
생업은 냉정했고,
나는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빠르게 구분해야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비로소 인정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걸 위해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왔지만,
‘현실 안에서 선택 가능한 최선을 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현실적 선택지 앞에서
디자이너기보다
MD라는 파트에 지원했다.
당장 들어갈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수습 기간은
내가 상상했던 세계와 전혀 달랐다.
백화점 매장, 일선.
고객의 표정 하나에도
마음이 쉽게 흔들리던 날들.
경험이 부족했던 나는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해
끝내 7cm 힐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자존심이었는지,
허세였는지,
지금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루 근무를 마쳤을 때
가장 먼저 비명을 지른 것은
내 발이었다.
발목 아래가
내 것이 아닌 것처럼 감각이 흐려졌고,
몸은 겨우 서 있었지만
마음은 이미 주저앉아 있었다.
명동 롯데백화점 출입구,
지하철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서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 옆을 스쳐 지나갔고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목 놓아 울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흑백 사진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색은 바래졌지만
그날의 감정만큼은
여전히 선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끝내
힐을 벗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독립은 집을 떠나는 일이 아니라,
아무도 내 삶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자유는 달콤했지만
그만큼의 무게를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 무게를
처음으로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처음이자 완벽한 독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