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단어가 처음인 나에게 가르쳐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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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짐의 시작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육아를 할 준비가 되지 않은 엄마였던 걸까.
아니면 애초에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현실을 끝까지 견뎌낼 힘이 없었던 걸까.
대학 시절,
막연히 사회생활을 그려본 적이 있다.
사무직이나 공무원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떠올릴 때면
숨이 탁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상상만으로도
‘그렇게 살면 나는 금방 말라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첫째를 낳기 전까지
나는 ‘힘든 일’에 비교적 단단한 사람이었다.
버티는 법을 알고 있었고,
못해도 끝까지 가는 게
당연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출산도
조금 힘들 뿐,
지나가면 다시 나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의 육아는
그 어떤 상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현실이었다.
삶을 준비할 틈도 없이
나를 전혀 다른 세계로
밀어 넣었다.
집 안에서
오롯이 아이와 마주하는 하루는
생각보다 길고,
생각보다 조용했다.
누군가를 돌보고 있다는 사실보다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이
더 먼저 다가왔다.
아무도 나에게
“지금 괜찮으냐”라고 묻지 않았고,
나 역시
그 질문에 답할 언어를
갖고 있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힘든 게 힘든 건 줄 몰랐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
버텨야 하는 일로 치부하며
나를 방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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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나’를 붙잡고 싶었던 이유
나는 다시
일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하는 나’로
존재하고 싶었다.
아이가 태어난 뒤
내 하루는
잘게 쪼개졌다.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내가 들어갈 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엄마’로 불릴 때마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밀려왔다.
그 호칭 하나가
내가 쌓아온 모든 이름을
한 번에 덮어버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에게
일은
하나의 증거처럼 느껴졌다.
내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는 증거,
여전히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
그래서 나는
일을 선택했다기보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일을 붙잡았다.
그 선택이
용기였는지
도망이었는지는
지금도 명확히 말할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건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로
버틸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나 혼자만의 세계가 아니었고,
책임은
언제나 관계의 모양으로
나에게 돌아왔다.
이 시절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20대라는 나이가
너무도 성숙하지 못했고
여물지 않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렇게 조금씩
여물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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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
나는 늘
잘 해내는 사람이고 싶었다.
못해도 끝까지 가야 한다는 태도,
버티는 것이 미덕이라는 감각은
어린 시절부터
몸으로 배운 것이었다.
엄마가 되었어도,
일을 붙잡고 있는 동안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기대기보다
내 몫을 스스로
감당해 내는 쪽을 선택했다.
문제는
그 ‘잘 해내야 한다’는 기준이
언제부터인가
나를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
나를 조이는 방식이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동시에
두 개의 세계를
붙잡고 있었다.
아이의 하루와
일의 흐름.
하나는 생명이었고
하나는 나의 정체성이었다.
어느 쪽도
소홀히 하고 싶지 않았고,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기준을 낮추지 못했다.
육아도 제대로,
일도 제대로.
하지만 현실은
내 의지보다
훨씬 거칠었다.
몸은 하나였고
시간은 늘 부족했으며,
회복은
언제나 마지막 순서로
밀려났다.
나는
‘잘 해내는 나’라는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 있는 나’를
조금씩 소모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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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온도를 처음으로 재는 법
그 무렵 나는
사람 사이에도
‘온도’가 있다는 사실과 함께,
내가 가진 사랑의 영토가
나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의식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엄마의 모성애가
본능적으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둘 중 누구의 온도가 더 높았는지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시절 우리들 중
‘돌봄’의 온도가 더 높았던 쪽은
내가 아니라
남편이었다.
그는 나보다 더 다정하게
아이를 품었고,
나보다 더 능숙하게
아이의 언어를 읽어냈다.
그 능숙한 손길을 볼 때마다
나는 안도하기보다
나의 무능을
먼저 확인했다.
기르는 일에 소질이 없는 나에게
육아는
그저 무거운 책임감이었을 뿐인데,
남편은 그 안에서
기쁨을 찾아내고 있었다.
그 극명한 대비 속에서
나는 점차
소외됐다.
전적으로 나를 향해 흐르던
사랑의 물줄기가
아이에게로 갈라져 나가는 것을 보며,
내가 발붙일 곳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은
아이를 향한 질투가 아니었다.
연애 시절부터
결혼 초기까지
늘 나를 중심으로 돌던
세상의 축이,
이제는 내가 아닌
아이에게로 옮겨갔음을
확인하는 순간들이
주는 서글픈 당혹감이었다.
나에게만 맞춰져 있던
안식처마저
나뉘고 있다는 상실감,
그리고 그 사랑의 온실 속에
정작 돌봄에 서툰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다는
이질감이
나를 무너뜨렸다.
기대가 어긋날 때마다
실망 대신
침묵을 선택했고,
침묵은 어느새
관계의 기본 언어가
되어갔다.
나는 그동안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변해가는 관계의 모양을
받아들이고 돌보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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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남긴 질문
그 시기를 지나가며
내 안에는
하나의 질문이 남았다.
“나는 지금,
어떤 관계 안에서
어떤 나로
존재하고 있는가.”
첫째를 낳고 맞이한 이 시간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무너짐’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 시기였다.
그리고 나는
그 무너진 자리에서
아주 천천히
배우기 시작했다.
무너짐에도
순서가 있고,
의미가 있으며,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한
신호가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어떤 관계 안에서
어떤 나로
존재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아직 답을 찾는 중이지만,
언젠가 스스로에게
정직하게 답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