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이라 믿었던 것들에 대하여
그때는 몰랐다.
내가 버티고 있던 시간들이
이미 오래 전의 선택들에서
시작되고 있었다는 걸.
직장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작은 회사들 안에서 맴돌던 한계 때문이었을까.
나는 사업을 시작했다.
스무 살 언저리,
남자친구이자 지금의 남편과 함께
연인보다 파트너로 더 오래 머문 시절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부모님은 그 흐름을 오래 지켜보지 않았다.
딸이 남자와 함께 사업을 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걸까.
적극적인 개입 속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너무 이른 시기에
‘결혼’이라는 단어 앞에 서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결혼을 꿈꾼 것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 위에서
정해진 결말을 향해
조용히 밀려가던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말이 적고,
감정 표현이 서툴다.
연애 시절도, 지금도 변함없는 모습이다.
연애의 시작도, 많은 순간도
대부분 내가 먼저 말했다.
내가 먼저 움직였다.
기질의 차이였을까,
첫째와 막내의 자리 차이였을까.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관계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결혼 앞에서만큼은
내 안에 작은 기대가 있었다.
한 번뿐인 결혼이니,
그가 한 번쯤은
주도해주지 않을까.
작고 소박한 기대였다.
그러나 그 기대는
한겨울 스키장에서
단숨에 사라졌다.
아빠와 남자친구,
원탁 위의 소주 한 병,
가벼워지지 않는 공기.
아빠는 물었다.
“우리 딸을 왜 만나나.”
남자친구는
마치 적군 앞에 선 사람처럼 말했다.
“결… 결혼을 전제로 만납니다.”
그 순간
우리의 결혼은
이미 결론 난 일이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빠의 확인과 남편의 선언 사이에서,
나는 주인공이 아니라
잘 짜인 각본의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프러포즈는 없었고,
“너는 어떠니?”라는 질문도 없었다.
그저 내 인생의 다음 챕터가
조용히 인쇄되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설득했다.
부족해도 괜찮다고.
우리가 함께 채워가면 된다고.
이십 년쯤 흐른 어느 날,
문득 던진 질문 하나가
오랫동안 잠겨 있던
마음의 서랍을 열었다.
“다음 생에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 거야?”
나는 망설임 없이
“난 할 거야.”라고 말했지만
남편은 잠시
머뭇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대답이 서운했다기보다,
그가 저은 고개 끝에 매달려 있던 것이
나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통과해 온
그 고단한 시간에 대한
지독한 피로라는 걸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고,
마음의 서랍을 조용히 닫아 버렸다.
우리는 무엇을 기반으로
결혼했던 걸까.
사랑이었을까, 흐름이었을까,
아니면 타인의 의지였을까.
그 답은 지금도
완전히 찾지 못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떠밀린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
그때의 우리가
그만큼밖에
선택할 수 없었던 방식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나에게 또 다른 가족이 되었고,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삶의 방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