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나에게 묻지 않던 밤
내 삶의 방향은
내가 막연히 그려왔던 ‘엄마’라는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밤,
집은 낮과 다를 바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공간이 낯설게 느껴졌다.
정리된 거실,
불이 꺼진 방,
익숙한 냄새와 익숙한 공기.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었는데
나만 없어진 것 같았다.
그날따라 아이는 미열이 있었다.
아이의 몸은 열로 뜨거웠고,
나는 아이를 내려놓을 수 없었다.
그저 품에 안고 달래는 것밖에는.
아이는 자주 깼고
그때마다 나는 일어나 안았다.
작은 몸을 품에 안고
방 안을 천천히 걸었다.
거실로 나갔다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발소리가 커질까 봐
바닥을 더 조심히 디뎠다.
울음이 잦아들면
아이를 안은 채 벽에 몸을 기대고 서 있었다.
내려놓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게 가장 쉬운 자세였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이제 내가 할게, 좀 쉬어.”
하지만
침묵은 깨지지 않았고,
기대했던 다정한 음성 대신
아이의 울음소리만
적막을 깼다.
아기가 울면
나는 다시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이 과정이 너무도 당연해서,
서운함을 느낄 여력조차
나에게는 사치였다.
시간은 시계처럼 흘렀고
나는 그 시간을
통째로 안고 있었다.
젖병을 씻고
기저귀를 갈고
아기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숨이 잘 쉬어지는지 확인했다.
잠든 듯하면
조금 안심했고
앉을자리를 찾았다.
그럴 때마다
아기는 다시 울었다.
그 밤에 가장 이상했던 건
피곤함이 아니었다.
몸의 고단함은
견딜 수 있는 종류의 일이었다.
이상했던 건
내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조용히 뒤로 밀려나는 느낌이었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내 팔이
내 팔이 아닌 것 같았고
거울 속의 나는
어딘가 낯설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 일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이 상태가 언제 끝나는지.
그 질문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은 채
가슴 안에서만 맴돌았다.
나는 전화를 한 번 집어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너무 힘들어”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부엌 불도 켜지 않은 채
싱크대 앞에 서서
잠깐 멈춰 있던 기억이
지금도 또렷하다.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었지만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날 밤,
나는 이 삶이
더 이상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처음으로 받았다.
결혼을 앞두고도
“너는 어떠니?”라는 질문은 없었지만,
그때는 설마
육아의 밤마저
이토록 무거울 줄은 몰랐다.
그저 당연함만 있었다.
그때도 나는
내 인생의 다음 장이
조용히 인쇄되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의 밤은
그것과 다른 종류의 침묵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침묵이 아니었다.
내 인생이
나라는 존재를
생략한 채 흘러가기 시작한 것 같은
거대한 ‘삶의 침묵’이었다.
아기는 잠들었고
집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나는 쉽게 눕지 못했다.
눈을 감아도
이 시간이 어디로 흘러갈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다.
이 시간이
얼마나 오래
나를 붙잡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