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봉인된 자리에서
나는 오랫동안
내가 선택했다고 믿었다.
적어도 그렇게 믿는 편이
속이 편했기 때문이다.
선택이었다고 말하면
후회는 책임이 되고,
책임은 나를 여전히
삶의 주도권을 쥔
능동적인 사람처럼
보이게 해 주니까.
결혼도, 출산도
시기만 타인의 의사가
조금 반영되었을 뿐
결국은
내 의지로 내린 결정이라
믿어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 고단한 밤조차
나는 흐름에 떠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결정한 일이야”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그 말이
나를 지켜줄
유일한 방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묻게 된다.
그 선택 앞에,
정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기는 했을까.
⸻
아이를 낳고
집으로 돌아온 밤,
나는
내가 선택한 삶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믿었다.
엄마가 되는 일은
준비되지 않았을지언정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다음 단계처럼
느껴졌다.
그날 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질문을 하지 않았다.
질문을 시작하는 순간
내가 지탱해 온
삶 전체가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마니까.”
그 말은
찬사처럼 들리지만
실은
질문을 시작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간단한 방식이었다.
모유 수유는
나만 할 수 있는
구조적인 기본값이었고,
자영업자에게
육아휴직이란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나는
조리원에서 나오자마자
유축기를 들고
회사로 나갔다.
선택이라기보다는
주어진 궤도를
이탈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에
가까웠다.
딸아이가
돌이 되어가던
어느 가을,
나는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빡빡한 일정 속에서
가슴에 통증이
차오를 즈음,
나는 잠시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았다.
쉼을 위해서가 아니라,
유축이라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였다.
커피숍
화장실 칸의
차가운 조명 아래서
유축기를 꺼내 들었다.
화려한 도심의 소음과
격리된
좁은 칸 안에서,
나는 기계음과 함께
나의 사적인 시간들을
조용히
비워내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지만,
거울 속에는
‘기능’으로만 존재하는
낯선 여자가
서 있었다.
세상은
나를 유능한
파트너로 보았겠지만,
그 순간의 나는
어디에도
가 닿지 못하는
고립된
섬에 가까웠다.
⸻
지금 돌아보면
목적에는
충실한 삶이었지만,
그 과정에는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타인들의 선택이
촘촘히
섞여 있었다.
나의 결혼도
그중 하나였다.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가족에게
남자친구라는 존재를
소개하는 자리였다.
매년 겨울,
우리 가족은
스키장에서
겨울을 보냈다.
그해 겨울도
가족이 머물고 있던
콘도로
나는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들어섰다.
어색한 인사가
오갔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아빠는
방 안에 있었다.
소주 한 병이
올라간 테이블 앞에
이미
앉아 있었다.
그 자리는
처음부터
이야기를 하기 위한
자리처럼
보였다.
아빠는
남자친구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물었다.
“우리 딸을 왜 만나나.”
질문은 짧았고,
방 안은
더 조용해졌다.
남자친구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말로
대화는
길어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결혼은
논의가 아니라
진행 중인
일정이 되었다.
우리는
반대하지도,
적극적으로
묻지도 않았다.
이미 타인에 의해
얹어진 의견 위에서
그것이 우리의 선택인 양
분주하게
움직였을 뿐이다.
선택은 늘
개인의 용기로
설명되지만,
어떤 선택은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한
유일한 비상구일 뿐이다.
그것은
용기라기보다
순응이었고,
의지라기보다
생존에 가까웠다.
⸻
사람들은 말한다.
요즘은
여자가
엄마도, 직업도, 꿈도
다 가질 수 있는
시대라고.
하지만 그 말에는
가혹한 전제가
붙어 있다.
그래도
네 역할은
네가 알아서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것.
엄마라는 이름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선택지는
급격히 줄어든다.
포기는
결정이 아니라
기대에 대한
응답이 되고,
“엄마니까”라는 말은
모든 고통을
당연함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다.
나는 왜
그 많은 결정 앞에서
“정말 이것이
나의 선택인가”를
끝까지
묻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는
묻지 않도록
훈련받은 사람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잘 해내는 사람’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나의 질문을
미루는 법이었다.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하지만,
열심히 할 수 있는
조건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시간,
체력,
침묵의 허용 여부,
그리고
누군가 대신
떠안아 줄
역할의 존재.
이 중
하나라도 없다면
그 선택은
이미
제한된 선택이다.
⸻
나는
선택했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없었다면
이 고단한 삶을
견디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믿음 자체를
조심스럽게
의심해보려 한다.
이건
후회의 이야기도,
비난의 이야기도 아니다.
다만
어디까지가
나의 의지였고,
어디부터가
주어진 역할이었는지
그 경계를
다시 그려보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지금
이전의 가족관도,
다음의 가족관도 아닌
어딘가의
다리 위에 서 있다.
그래서 흔들리고,
그래서
스스로를 탓한다.
하지만 이 흔들림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전환기의
증상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제
선택했다고
믿었던 것들에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이
이 삶의 평온을
무너뜨릴지라도,
내가 사라진 채
유지되는 평온보다는
정직할 것 같아서.
그리고 나는
이 질문을
여기서
멈추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