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질문이 남긴 하루
영국에 오면서 우리 가족은
여섯 달에 한 번씩 흩어진다.
큰아이는 기숙사에,
한 사람은 둘째와 영국 집에 남고,
한 사람은 한국으로 떠난다.
어느 가을날,
남편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한국 라디오가 흘러나왔다.
이문세, 그리고 도원경
가을에 꼭 맞는
때로는 서늘하고 때로는 뜨거운 노래들이었다.
창밖에서는
영국의 낙엽비가 내리고 있었고,
햇살이 단풍 사이로 쏟아졌다.
그때 아들이 물었다.
“엄마, 쓸쓸해?”
나는 그 한마디에 웃음이 터졌다.
아이의 어휘력 때문이었는지,
나의 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였는지는 모르겠다.
웃음을 참느라
선글라스를 더 깊이 눌러썼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기 위해서였는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다만 웃고 있는 입술과는 달리
눈가엔 자꾸만 뜨거운 것이 고였다.
그날은
남편이 나를 두고
처음으로 한국에 간 날이었다.
아이의 한 문장 덕분에
나는 순간의 감정을
잠깐 웃음 뒤에 숨길 수 있었다.
하지만 숨겼다고 믿은 건
나 혼자였는지도 모른다.
선글라스를 아무리 깊게 눌러써도
마음이라는 건
저마다 다른 속도로 숨을 쉬고 있었다.
내가 잠시 놓쳤던 감정의 숨결을
이 아이는 끝내 알아차렸다.
위로는 때로
거창한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살아 있음을
알아봐 주는 한 사람의 시선에서 온다.
선글라스 뒤에 숨긴 감정을
가장 먼저 알아봐 준
이 보석 같은 존재 앞에서,
내 안의 쓸쓸함을 조용히 들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