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이유 만으로
요즘
‘언제부터 알았는지’라는 질문 앞에서
자주 멈춘다.
오래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관계는 정말 안전해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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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온라인으로 듣던 수업에서
오프라인 모임 이야기가 나왔다.
장소는 유럽이었다.
나는
갈 수도 있겠다는 말을
아주 조심스럽게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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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곧바로 걱정이 되었고,
이해할 수 없음이 되었고,
나중에는
‘정신이 없는 선택’으로 치부되었다.
상대의 눈빛에서 그렇게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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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낯선 해외에서,
혼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가겠다고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능성을 말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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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이상한 감정이 남았다.
우리는
인간관계를
언제부터 시작해야
‘인정’ 받을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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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창 시절 친구가 없다.
그건 사교성이 부족해서도,
사람을 싫어해서도 아니었다.
외로움으로 보일지 몰라도,
의미 없는 관계에 소모되지 않기로 한 선택이었다.
엄마는 종종 말씀하신다.
“나이 들어서 친구 하나 없으면 어쩌려고 그러니.”
하지만 엄마는 동창 모임에 다녀올 때마다
피로한 감정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조용히 나의 길을 선택했다.
나아갈 방향이 보이지 않는 관계는
그냥 놓아두는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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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그는
오래된 관계를 유지한다.
그 안에서는 아이 이야기나
일 이야기조차 조심스럽다고 한다.
분란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대화는 늘 안전한 과거로 돌아간다.
그 관계는
불안을 철저히 차단한 구조처럼 보였다.
나는 그 풍경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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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혼자서도 잘 해내는 사람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며
각자의 정답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목적지는
정말 같은 곳일까?
함께 일을 하지 않게 된 이후,
나는 방향을 잃은 채
엔진을 켜지 못하고 서 있었다.
삶의 방식은 이미 달라졌다.
온라인에서의 배움도
이제는 학교와 다르지 않다.
학교에도 입학 첫날이 있고
서로 모르는 얼굴들이 있듯,
모든 관계는 그렇게 ‘처음’에서 시작된다.
지역이나 과거에 기반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라인의 관계는 여전히 불확실한 것일까?
나라는 사람의 필터로 이미 검증을 거친 것들조차,
그의 눈에는 여전히 위태로워 보이나 보다.
어쩌면 그에게 신뢰를 주기에
내가 아직은 부족한 사람이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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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결과도 내지 못한 내가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도
무언가를 한다.
배우고,
기록하고,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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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인정받기 위해
새로운 관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느끼기 위해
계속해서 ‘처음’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