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아이를 통해 마주 본마음

by 리버티


아이를 키운다는 건

어쩌면 나를 다시 키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개지 않았다.

얇은 구름막이 햇빛을 가린 것처럼

하루가 온통 흐렸다.


나는 좀처럼 웃지 않았고,

먹고 싶은 것도 없었으며

기쁨과 슬픔 사이 어딘가,

회색의 하루에 머물렀다.



그렇게 무채색의 날들이 이어지던

일요일 오후,

나는 오랜만에 드라마 두 편을 연달아 보고 있었다.

오래 잊고 있던 몰입이었다.


그때 아들이

게임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공부나 하라며

무심하게 말을 잘랐다.


개학 이후

주말에는 게임을 허락하기로 했다는 약속이

있었지만,

그날의 나는

그 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었던 탓이다.


아이는 바로 기분이 나빠졌다.


십 분쯤 지나

내가 먼저 게임을 해도 된다고 말했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그때 문득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아이의 기분이 이미 돌아선 것처럼,

우리는 종종

말해야 할 순간을

‘나중에’라는 이름으로 덮어두고

지나쳐 버리는 건 아닐까.



아이는

자신의 기분이 왜 상했는지,

어디서부터 마음이 틀어졌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며칠 전

남편과 나 사이에 오갔던

대화가 떠올랐다.


유럽에 가고 싶다는

나의 조심스러운 제안이

‘정신없는 선택’으로 돌아와

벽에 부딪혔던 순간.


처음이라는 이유로

내 질문이 멈춰 섰던 때였다.

그때 나는

더 말하지 않았다.


예전의 나였다면

아이처럼

끝까지 이야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서로 다른 의견이 부딪히는 일이

버거웠는지도 모르겠다.


더 이상의 감정 소모가

의미 없다고 판단했을지도.



나는

내 기분에 대해

충분히 말하지 않았다.


그 앞에서

멈춘 채로

아직도 서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았다.



누구보다

감정 표현이 풍부했던 사람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나를 드러내지 않게 되는 일일까.


아니면

조금씩 참는 데에

익숙해지는 걸까.


나는 지금

내 마음을

모른 척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전혀 괜찮지 않지만

아직 답은 보이지 않는다.


나를 꼭 닮은

데칼코마니 같은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이 질문을 조금 더

붙잡아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