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학교에 입학했다.
나는 나를 키우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이 세계를 살아가는
힘이라는 것을,
얼마간의 방황 끝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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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기대는 삶은
안락한 소파에 몸을 맡긴 채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일과 닮아 있다.
일을 멈추고
육아에 집중하던 몇 해 동안,
나는 내 삶의 운전대를
남편에게 맡긴 채
뒷좌석의 안온함을 누렸다.
그 안락함은
때로는 온실이 되었고,
때로는 나를 시들게 하는
그늘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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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갈등들은
그 온실의 유리가
깨지는 소리였다.
유럽에 가고 싶다는
나의 작은 몸짓이
‘정신없는 선택’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누군가의 ‘허락’을 기다리는
아이로 머물러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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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삼각 경기처럼
서로의 발을 묶고 달리는 삶은
안전해 보이지만,
한 사람이 멈추면
나도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종목을 바꿔보기로 했다.
함께이지만 각자의 역할도 중요한
‘계주’로.
유럽행 비행기 표를
포기했다고 해서
내 항해까지
멈춘 것은 아니었다.
나는
거창한 탈출 대신,
내 삶의 주도권을
아주 조금씩 되찾아오는
작은 실천들을 하고 있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오는 길,
차를 돌려 근처 커피숍으로 향한다.
모니터 너머로 들려오는 강의 소리와
머릿속에 머물던 문장들을
노트 위에 쏟아내고 나면,
유럽의 광장에서 마주칠 풍경보다
훨씬 더 능동적인 해방감이
조용히 찾아온다.
언젠가는
나만의 호흡으로 완주하는
‘마라톤’으로
종목을 바꿔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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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나를 키워보겠다는
하나의 결심을 했을 뿐이다.
남편이
나를 믿어주지 않는다면,
내가 나를
가장 먼저 믿어주는
관객이 되기로 했다.
타인에게 외주 주었던
‘기대’라는 권리를
나에게로
조용히 회수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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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를 키우듯
나만의 학교를 세웠다.
잘하는 것과
잘하지 못하는 것을
분류하고,
나만의 일과를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엄마’나 ‘아내’의 이름표를
잠시 내려놓고,
나라는 학생을 마주한다.
어떤 날은
선생님 면담을 하듯
나 자신에게 묻는다.
“오늘 너의 마음은 어떤 색이니?”
“무엇이 너를 움직이게 하니?”
이 시간들은
생각보다
고요하고 단단하다.
누군가의 날카로운 평가나
아이의 투정에도
내 하루가
속절없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작은 방파제가 되어준다.
누군가는 묻는다.
“이렇게까지 해서
뭐가 남는데?”
이제는
대답할 수 있다.
“나라는 사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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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다는 건
더 독해지는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에게 더 솔직해지는 일이었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스스로의 등을 토닥여주는
연습이었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던 일들을
이제는 내가 맡는다.
무리하지 말라고 말해주기.
지금은 쉬어도 된다고
판단해 주기.
사랑이 오지 않는 날에도
나를 굶기지 않기.
누군가가 떠나도,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도
나의 세계는
계속되어야 한다.
나는
나를 키우기로 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유일한 보호자가 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