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유독 그늘이었던 그 자리에 오후의 햇살이 다가왔다.
나는 꽤 시니컬하고,
꽤 실존주의적인 삶을 살아왔다.
다만 마음만큼은
빗장을 걸어두듯
닫아둔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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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종종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는 왜 위만 보고 사니.
옆도 보고, 아래도 보고…
그러고 살아야지.”
그 말 안에는
두 개의 전혀 다른 의미가
함께 들어 있었다.
하나는
위만 보고 사는 내가 안쓰러워
건네는,
비교적 순한 위로였고
다른 하나는
네가 얼마나 자기중심적인지
아느냐는
꽤 날 선 경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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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두 문장 사이에서
답을 찾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동안 닫아두었던
감정이라는 창고의 빗장을
조심스럽게
열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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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면
나는 꽤 오랫동안
여러 방향에 날을 세우며
살아왔다.
일에 대한 기준도,
나를 향한 검열에 가까운 일상도
모두 예외 없이
엄격했다.
지난 이십 년 동안
운동도, 쾌락도
나에게는
사치였다.
나는 스스로를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여겼고,
일하고 돈을 버는 것조차
기본값으로 맞추지 못하면
인생의 낙오자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오로지 ‘일’과 ‘성공’이라는 기준에
나를 맞추고
달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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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를 멈춰 세우는 일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안식년에 들어온 지금,
나는 비로소
운동을 시작했고
사람들의 삶을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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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를
알게 됐다.
생각보다
자기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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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들여다보니
또 하나의 사실이
보였다.
그들은
기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보다
자애로운 마음을,
나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나보다
조금은 느슨한 여유를
허락하며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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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이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내 감정을
지나치게 통제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것들을
이제는
조심스럽게
허락해 보려 한다.
내가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사랑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인지,
내가 얼마나
자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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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은
유독 차가웠던
나의 감정들을
조금씩
녹여보려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내가 너무도 잘 아는
나를 위해.
그동안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고,
정말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제는
나만의 안식을
찾아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