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딸이 되는 연습

사랑을 지키기 위한 거리

by 리버티


엄마의 말을 들은 날,

나는 예전처럼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꼴도 보기 싫다. 애들은 외국 데려간 지가 언젠데 아주 코빼기도 안 보여주는구나….”


수저를 놓으며 툭 내뱉는 그 한마디에 식탁은 금세 차갑게 식어버렸다.

그 말이 서운함이라는 걸 안다.

그 안에 보고 싶다는 마음이 섞여 있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더 아팠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격식 없이 친구처럼 지냈던 시간들이 가끔은 나를 더 약하게 만든다.


엄마의 기대를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나는 자동으로 미안해진다.

사랑이 많은 관계일수록 죄책감도 함께 자란다.


요즘 나는 엄마에게서 한 발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 순간, 또 다른 내가 속삭인다.


“너, 나쁜 딸 되는 거야.”


그래서 나쁜 딸이 되기로 마음먹어 본다.

그런데 그 결심을 할수록 마음은 더 아파온다.

한 발을 빼면 다른 발이 더 깊이 잠기는 늪처럼.


거리를 두면 편해질 줄 알았는데,

편안함 대신 죄책감이 따라온다.



나는 엄마를 이해한다.

보고 싶다는 말이 섭섭함으로 나오고,

외롭다는 감정이 타박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나는 잘 안다.


하지만 이해한다고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다.


엄마의 말이 끝났을 때, 나는 억지로 웃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빈 그릇을 싱크대에 옮겼다.


넓은 식탁 위, 차가운 공기만이 엄마와 나 사이에 남았다.


나는 더 이상 상처받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엄마를 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이 모순이 나를 힘들게 한다.



어쩌면 나쁜 딸이 된다는 건

엄마를 버리는 일이 아니라

엄마의 감정까지 모두 떠안지 않겠다는 선택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외로움은 엄마의 몫이고,

내 삶은 내 몫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해 보는 일.


그 인정이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나는 아직 완전히 멀어지지 못했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웃으며 넘기지도 못한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나쁜 딸이 되려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지 않는 딸이 되기 위해.


사랑을 끊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지키는 다른 방식을 배우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