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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Jul 19. 2023

피할 수 없는 싸움

여름을 관통하는 태풍과 같은 시간


남편이 회사를 그만둔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남편은 아프거나 우울해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당연한 것이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면

 많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가 컸었나 보다.





 회사 다니던 동안은 전혀 손도 못 대게 했던

 집안일을 부탁했다.

집안일을 내가 못해서가 아니라,

 몸을 움직이는 것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성취감도 느껴지는 일은 아니지만

생각의 시선을 돌리는 데는 몸을 움직일 만한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남편은 자신을 그냥 좀 내버려 두라고 짜증을 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부딪혔다.

내가 일방적으로 참아주기도 했고, 피해 보기도 했지만

우리는 계속 다툴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내가 참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예상은 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크게 한 번은 싸울 것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한 번은, 피해 갈 수 없는 싸움.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예상도 했었다.

헌데, 이번에는 달랐다.

 알고 있다고 덜 아플 것이 아닐진대.


남편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해준 것이 뭐가 있냐는 식의 말을 했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그 말에서 나는.. 나의 노력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느꼈다.


내가 했던 모든 희생, 노력들이 부질없는 것처럼 느껴지자

그 포인트에서 나는 무너졌다.


지금까지 견디고 인내해 오던

슬픔, 괴로움, 불안등이 한꺼번에 임계점을 넘어버렸다.


일 년에 한두 번도 화를 내지 않는 내가

크게 화를 내면서 싸움을 했다.

임계점을 넘어버린 내가 다스리며

참을 수 있는 힘을 없었다.



그 싸움 다음날부터, 나는 빠르게 추락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무엇을 버틸 의지가 없어졌다.

깊은 우울이 밀려왔다.

그리고 에너지가 빠르게 소진되기 시작해 마침에 에너지가 바닥났음이 느껴졌다.


서서히 집안일을 할 의지도, 힘도 잃어갔고

아이를 챙기는 것도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 더 싸움이 있었고,

나는 나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홀로 호텔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엉엉 울었다.


내가 기대했던, 아니 바라왔던

그래도 희망만은 있기를 바랐는데

그 희망이 꺼졌음을 느껴졌다.



마치,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조차도

 가지고 있었던  그 희망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집에 왔을 때.

한숨 돌렸으니 괜찮을 것이라는 나의 생각은

기분을 쏟아내고 나오면 조금은 괜찮아져서

일상을 지탱할 힘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판이었다.


호텔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것이 가시방석처럼 느껴졌다.

숨이 막혔다.


남편은. 병원에 가서 우울증 검사를 하고

 우울의 정도가 높다는 점수와 함께 2주 치의 약을 받아왔다. 이제까지는 공황장애만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우울이 온 거였다.

하루이틀 먹고 나니 남편은 훨씬 나아졌다고 했다.

마치 에너지가 조금씩 생겨나는 기분이라고 했다.

우울증 약 탓이겠지.


남편은 약 효과가 나아가는지 점점 나아지는 게 보이는데

나는 바닥으로 점점 매몰되어 갔다.

내가 힘든 감정을 타인에게 붙잡고 도움을 청하는 것을

나는 살면서 해본 적이 없다.

남들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아온 내가

남에게 나의 힘듦을 하소연하는 것은

내 기억 속엔 없었다.


나는, 신부님에게 전화를 했고

 신부님에게 상황 이야기를 했더니

동생의 죽음과 엄마의 자살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남편의 단순 힘듦이 죽음으로 이어질까 봐

몸에서 일어나는 무의식적 반응이고

그것이 에너지를 전부 방전시킨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해결방법은  남편이 쉽게 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덧붙인.. 웃긴 말.

이걸 안다고 해서 힘듦. 슬픔이 한 번에 없어지진 않는다고.


상담을 받고도, 개운하지도 속이 시원하지도 않았다.

그냥, 수학의 개념연산법을 배운 그런,

지식적인 것만 알았을 뿐.

그것이 가슴으로 연결되진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 무너져 버린 나에 대한 자기혐오만이 남아 있을 뿐.

힘이 없는 나에게 연민은커녕 분노만 생겼다.

남편을 나아지게 성공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무능력감이 내 발목을 잡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걸어온 가시밭길이

 언젠가는 끝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앞으로도 계속 가시밭길만 있을 것 같은.. 절망감.


이 느낌들 속에서,

이런 생각들 속에서 나는 과연 어떠한 해결책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이 상황 속에서 나를 바로 세우고

나 스스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남편의 힘듦에 도움이 될까?


고민들만이 깊어졌다.

더불어, 매몰되어 가는 자신이 안쓰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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