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긍정 Jun 24. 2020

일은 문서가 하는 겁니다. 그런데 문서는 사람이 보고요

입사 10번 해 본 여자의 근로자로 살아남는 법

다사다난했던 직장생활에서 얻은 제 확고한 신념은 일은 문서가 한다는 겁니다. 물론 그 문서는 사람이 만들지만요. 내 의견을 주장할 때도, 내가 얼마나 일했는지를 자랑할 때도, 나의 억울함을 주장할 때도, 언제나 해결은 문서가 해주었습니다. 


간단하게는 작은 기록부터, 중요한 프로젝트의 기획안과 보고서까지 결국 모든 것은 문서로 남아 존재합니다. 때로는 헤어진 회사로부터 아직도 네가 만들었던 문서 활용한다는 얘기를 종종 듣습니다. 비록 저는 회사에서 사라졌지만, 문서는 남아 아직까지 일하고 있더군요.


제가 문서를 만들 때 신경 쓰는 원칙은 4가지가 있습니다. 

문서를 읽을 사람을 먼저 분석하고, 문서를 만들기 
아무리 짧은 문서에도 꼭 있어야만 하는 육하원칙(5W1H)
진짜 완성은 여러 번 검토하고 다듬어 짧게 줄였을 때 완성되는 것
글자의 시각화. 의미를 함축해서 이미지나 컬러로 표현하기

짧은 문서가 좋은 문서라고 생각하지만, 이번 기회에 문서에 대한 제 생각을 구구절절 풀어보겠습니다. 



좋은 문서를 만드는 법에 대한 책은 많습니다.

한 때 제가 심취했던 One page 보고서 작성법도 있고, 이공계 글 쓰는 법, 논문 작성법도 있고 온라인 서점에 보고서 작성을 검색했더니 책이 90권이 검색되더라고요. 이렇게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것은 결국 정답은 없다는 것이겠지요.


저는 문서작성에 답이 없는 이유는 보는 사람이 다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때 1장짜리 보고서에 심취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내용을 1장으로 요약하는 것은 중요한 내용을 30장 쓰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뽑아내고 함축하고 잘 보이게 하려면 그 내용을 완벽에 가깝게 이해해야 가능하거든요. 평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론적으로는 실패한 문서였습니다. 문서의 최종 수신자인 연구소장님은 호기심이 많으신 분이셨거든요. 많은 정보가 담긴 문서를 원했고, 꼼꼼하게 읽어보는 것을 선호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복잡하게 써가도 기꺼이 즐겁게 확인해주실 분에게 짧고 간결하고 결론은 명확한데 과정은 일부 생략된 문서는 짜증을 유발하기 딱 좋았습니다. 무슨 근거로 이런 결론을 냈지? 하고 말입니다.


10번의 입사를 통해 모두 다른 스타일의 직장 상사와 일을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면서, 보고서는 정해진 틀이 있다기보다는 최종적으로 보실 분의 스타일에 맞게 정리하면 되는 일이라고 판단하게 되었어요.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그래서 결론이 뭔지 궁금해하시고 저를 믿어주시는 분에게는 과정은 생략되었지만 결론이 한눈에 잘 보이게 정리된 문서가 필요했습니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결론을 가장 궁금해하시지만 저를 믿지 못하시는 분에게는 제일 앞 장에는 명확한 결론, 뒷장에는 구구절절한 과정과 이런 결론을 낼 수밖에 없던 사유를 적어서 드리는 것이 큰 소리를 줄이는 지름길이었지요.


문서는 육하원칙, 5W 1H라고 하는 것을 기반으로 작성됩니다. 무엇을, 왜, 누가, 어디서, 언제, 어떻게 하는지를 기록해서 남기는 과정이지요. 그리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문서는 늘 마무리가 "얼마" 이것이 중요합니다.


보통 육하원칙을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이런 순서로 구분하던데요, 저는 업무용 문서는 무엇을, 왜, 누가, 어디서, 언제, 어떻게, 얼마를 써서 얼마를 회수해 올 것인가. 이런 순서로 적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What (무엇을)

문서를 검토하시는 분이 앉아서 문서를 슬슬 보실 때, 그래 이 문서는 뭐에 대해 쓴 거냐. 이걸 제일 먼저 궁금해하실 테니 "무엇을" 먼저 씁니다. 이것을 제목이라고 보면 되겠지요. 어떤 경우에는 제목 그게 뭐라고 그거 적는 게 그렇게 어렵게 느껴집니다. 특히 저는 이메일의 제목이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너무 주절주절 길지 않은 딱 한 줄의 문장으로 간결하게 내가 뭘 하고자 합니다! 하고 선전포고 할 수 있는 기술! 제가 가장 탐내는 업무 능력입니다. 눈에 딱 들어오게 핵심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 그것이 바로 문서의 제목입니다.

한 때 "계란을 입혀 부쳐 먹으면 정말 맛있는 소시지"라는 소시지가 있었어요.

그냥 "소시지"라고 할 때는 음 소시지구나. 그래 우리 집 냉장고에 하나 있으면 언젠가는 요긴하게 먹을 수도 있겠지 이 정도의 생각이 들었는데요, "계란을 입혀 부쳐 먹으면 정말 맛있는 소시지"라고 쓰여있으니 음 이거 맛있겠네, 이걸 구입하려면 집에 계란이 있나 생각해봐야겠군. 이거 계란까지 입혀서 구우면 귀찮지 않을까? 근데 정말 맛있긴 하겠다. 이거 사고 계란도 사서 다음에 한 번 제대로 해 먹어봐야지. 하고 보다 구체적인 행동을 계획하게 되더라고요.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가급적 한 줄로 압축한 문장. 그것이 바로 제목이고 모든 문서의 시작이며,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으므로 문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제목입니다.  


Why(왜)

무엇을 하겠다고 주제를 던졌으면 그걸 왜 하겠다는 것인지를 기록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회사에서 그 일을 하는 이유는 시켰으니까 하는 것이죠. 그래서 실무자는 문서에 "왜"를 종종 빼먹습니다. 왜냐면, 문서를 보실 분이 시켰기 때문에 하는 것인데 왜 하는지를 굳이 써야 할 필요를 느끼진 못하니까요.

그런데, 그 일을 시킨 검토자의 입장에서는 작성자가 이 일을 왜 하는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은 크게 다르게 느껴집니다. 이 일을 왜 하는지 알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목적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이 일을 통해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을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뜻이 되니까요. "왜" 하는지가 정확하게 표현된 경우에는 뒤에서 설명할 어떻게 하겠다는 방법과 그래더 얻어진 결론이 조금 이상하더라도 "이거 왜 하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보고 작성해보게나" 하고 어떤 방향으로 수정하면 좋을지 쉽게 알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나오는 "왜"가 업무를 지시한 상급자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뒤는 읽어볼 필요도 없으니 바로 크게 화를 내면서 다시 써오라고 하겠죠. 자 그렇다면, 문서를 작성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업무를 지시받으면 이 업무가 이걸 하라는 것이 맞나요? 근데 이런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 맞나요? 하고 What과 Why를 명확하게 확인한 후 자료를 조사하고 문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Who (누가)

누가 제출한 보고서인지를 기록해 두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잘 만들어진 문서는 작성자가 누구인지 천년만년 남아 대대손손 영광을 누릴 테니까요. 그리고 이 업무의 기획자는 누군데, 누구랑 같이 할 것이고, 누구에게 결재를 받아서 진행하겠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중에 잘못되더라도 최종 승인한 책임자가 누구였는지를 명확하게 해야 그 사람에서 책임을 몰아드릴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보고서, 기안서 등 대부분의 문서는 윗부분에 결재라인이 있지요.

아주 중요한 일에 쓰이는 공문의 경우는 대부분 문서 위에는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 대해 쓰여있고, 문서 하단에는 작성 부서, 작성 날짜, 담당자, 관리자, 책임자가 구구절절 쓰여있는데요, 그 이유는 공문은 대부분 공식적으로 요청을 하거나 책임을 묻는 중요한 문서이기 때문에 이 문서가 어떤 과정을 거쳐 최종 수신자에게 전달이 되고, 어떻게 관리되는 문서인지를 기록해두기 때문입니다.

회의록 윗부분에 참석자가 써지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이 회의에 누구누구가 모여서 이런 얘기들을 했고, 이 회의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참석해서 동조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먼저 언급해두고 회의의 내용을 풀어가는 것이지요.


Where (어디서)

어디서는 문서에서 자주 잊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어디서 이 행위를 하겠다 또는 어디에서 이런 회의가 이루어졌다는 매우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제품 기획안이라면 이 제품을 어디에서 파는 것이 목표인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마켓을 설정해야 마켓을 공략하기 위한 정확한 전략이 나오기 때문이죠.

그리고 회의록에서도 어디서 라는 부분은 중요합니다. 우리에게 불리한 회의였다면 우리 쪽에서 진행한 회의인지 아니면 적진에서 이루어진 회의 인지도 중요할 때가 있더라고요. 우리 회사에서 진행된 회의라면 분위기에 따라 시간을 끌며 다른 사람들에게 지원 요청해서 긴급하게 자료를 보완했었을 수도 있는데, 상대방 회사에서 진행된 회의라면 뭔가 잘 준비된 상대 회사의 전략에 호로록 휘말려 회의의 주도권이 상대방에게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거의 매일 같은 장소에서 반복되는 실험 보고서도 장소를 기록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아주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실험 오류가 생겼을 때, 연구노트를 다 꺼내서 비교해보면 물질을 조제할 때 평소와 다른 장소에서 가져온 시약을 썼다거나 평소와 다른 위치에 있는 기기장치를 사용해서 오류가 발생된 것이 확인되는 사례가 종종 있었거든요.


When (언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은 기획서에서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언제까지 기획해서 언제부터 시행하겠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니까요. 대체로 보고서에서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요, 보고서에서도 이 업무를 언제까지 마무리하겠다. 아니면 이 업무는 이 시간을 기준으로 종료하고, 넣어두겠다. 이런 의미에서 보고서에서도 "언제"라는 개념을 기록하는 것이 좋습니다.

문서를 작성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언제"라는 개념은 소홀해지기 쉽습니다. 작성자에게는 매일 반복되는 현재이고, 머릿속에 이 일을 대충 요렇게 저렇게 해서 이렇게 끝내겠다는 계획이 세워짐에 따라 일정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에 굳이 글로 표현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보는 분의 입장에서는 그래서 이걸 언제까지 하고 있겠다는 것인지, 이런 사건이 언제 일어난 것인지, 이 일을 언제부터 해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것인지는 매우 궁금할 요소 중에 하나더라고요.

대부분의 일은 언제 끝날 지 확신하기 어렵죠. 그래서 대부분의 실무자들은 지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곧 끝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을 진행합니다. 그런데, 이런 개념은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만 문서로 남기기는 몹시 껄끄럽습니다. 그래서 작성자는 시간에 대한 개념을 생략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게 검토자의 입장에서는 끝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은 천년만년 대충대충 그것만 붙잡고 있겠다는 의지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문서에 시작 시점과 예상되는 종료 시점을 정해두고, 일정을 준수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들을 적어 미리 협의하고 조절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놀고 있지는 않고 다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으니 시간이 흐르면 좋은 결과물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하고 검토자의 마음을 안심시킬 수도 있고요,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이런 것들이 필요했는데 지원이 부족하여 또는 돌발상황이 자꾸 생겨서 지연되었습니다.라고 나중에 말할 때에도 시간을 정해준 계획서와 그것을 지키기 위한 필요사항을 미리 적어두었다면 훨씬 신뢰감이 생기게 되죠.


How (어떻게)

앞에서 많은 얘기를 구구절절했는데, 문서의 핵심은 사실 "어떻게"입니다.

계획서라면, 이 계획을 어떻게 실현시키겠다는 방법이 가장 중요하지요.

보고서라면, 이 업무들이 어떤 과정들을 거쳐서 어떤 결과를 이끌어냈는지가 핵심입니다.

그런데, 실무자에게는 어떻게라는 부분이 가장 중요하고 이게 업무의 모든 것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길고 구체적으로 작성할 수 있어요. 문제는 검토하시는 분은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내용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본인이 하실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는 대부분 큰 제목만 적어두고 이런 방법을 가지고 우리가 원래 하던 대로 잘해서 이렇게 결과를 내겠습니다.라고 작성하곤 하죠. 제가 선호하는 방법은 앞에는 요약해서 간단하게만 쓰고 구체적인 제 방법은 첨부문서로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왜냐면, 나중에 혹시 잘못되더라도 저 그때 이거 이렇게 하겠다고 다 보고 드렸는데요? 하고 최종 책임을 상급자에게 넘겨드리기 위해서요. 하핫.

그리고 검토자가 실무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에서는 "어떻게"는 구체적으로 쓸 필요가 있더라고요. 사실 보고서 같은 거 작성하다 보면, 아니 내가 다 어련히 알아서 할 건데 이렇게 구구절절 보고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런데 상급자와 신뢰관계가 형성되기 전이라면, 구체적인 내용은 업무를 지시한 상급자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뭔가를 표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핵심만 간략하게 쓰면, 네가 뭐 어떻게 이걸 할 거야? 할 수 있겠어?라고 화를 내시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쓰면 그래도 얘가 많이는 알아봤네, 이렇게까지 하려고 하니 내가 조금 도와줘야겠어.라는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도 했어요. 단, 내용이 잘 작성되었다는 전제조건에서요. 구체적으로 써갔는데 내용이 다 틀려버렸다며 얘는 안될 애네. 이걸 모르나? 이걸 이렇게 해서 되겠어?? 하고 오히려 일을 더 크게 키울 수 있으니 이 부분은 내가 처한 상황을 잘 파악해서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고 나발이고 사실 직장인의 핵심은 분위기 파악, 주제 파악, 상급자 파악! 이 3가지 파악 아니겠습니까? 하하.


How much (투입 비용, 예상 매출, 기대 가치)

이건 연구원 출신인 제가 가장 취약한 부분인데요, 그래서 이 일을 진행하는데 총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 그리고 이 예산을 주신다면 얼마를 벌어올 수 있는지 이런 금전적인 부분도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회사에 모인 이유는 결국 돈을 벌기 위해서니까요. 때로는 당장 수익을 낼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이럴 때에는 이것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그것이 우리 회사에 얼마나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으며, 지금 당장은 금전 가치가 없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이것이 우리의 매출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담은 짧은 언급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뭐 이런 글들이요.

기대 가치: 브랜드 가치 향상, 소비자 신뢰 구축, 신뢰 기반의 소비자 소통 실현


이걸 다 쓰면 너무 많잖아?

모든 문서는 초안은 길고 복잡합니다. 그러나 몇 번 검토하고 다듬고 다듬으면서 점점 짧아지고 정리가 되지요. 그리고 모든 일이 핵심은 몇 개 없고 나머지는 부연설명일 뿐이며, 길고 긴 보고서의 대부분은 핵심 내용이 많다기보다는 나의 정성, 나의 노력, 나의 고생을 표현하기 위한 미사여구들과 근거자료일 뿐이죠. 그래서 일단 쓰고 다듬고 다듬어야 합니다. 빼고, 순서를 바꾸고, 문장을 나누고 줄이고. 이런 과정이 중요합니다.

1장 핵심 요약본 + 진짜 문서

제가 선호하는 보고 방법은 내용은 구체적으로 쓴 후 검토하고 이걸 바탕으로 1장 요약본을 만들어서 가장 위에 붙입니다. 검토하시는 분이 요약본을 먼저 보시고, 궁금한 내용은 뒤에서 구체적인 방 안으로 찾아서 보실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죠. 문서가 너무 길면 아무리 잘 쓴 문서라고 해도 검토하시는 분이 벌써 두께에서 질립니다. 그분도 바쁜 세상 피곤하게 사시는데 벌써 화가 나시겠죠. 그래서 처음 볼 때는 1장짜리 요약본으로 만들고 최대한 시선을 끌 수 있도록 만듭니다. 뒤에 나오는 구체적인 내용들이 궁금하도록 말이죠.

이거 생각하시면 됩니다. 3줄 요약. 커뮤니티에 글도 길면 다들 댓글로 3줄 요약을 요청하죠. 직장도 이건 똑같더라고요. 구체적인 정보를 원하면서도 자세하게 알려주면 3줄 요약해달라고 하는데 대체로 정중하게 3줄 요약을 요청하지 않고 오늘의 신경질과 피로를 잔뜩 담아 요청하시니 3줄 요약해달라고 하기 전에 잽싸게 짧게 요약해서 앞 장에 하나 붙여주면 많은 화를 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글자의 시각화입니다.

글로 줄줄 쓰는 것보다는 표로 정리하고, 표로 정리하기보다는 도식으로 만들고, 컬러로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는 시각화 과정을 통해 조금 더 내용이 궁금하게, 그리고 쉽게 이해하실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이면 일을 깔끔하게 하는 사람, 잘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거죠.


쓰다 보니 얘기가 길어졌는데요, 결론은 이겁니다.

회사에서 하는 모든 일은 문서로 남는 것이니까, 문서가 제대로 남지 않으면 나는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잘해도 일 제대로 안 한 사람이 된다.

일 잘하는 법 = 문서 잘 남기는 법 = 보는 사람을 위한 문서를 남기는 법 = 보는 사람을 이해하는 노하우

문서는 쓰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을 위해 작성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 분야에 노하우가 있지만, 업무를 시킨 상급자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경우에는 그분이 자존심 상하지 않고 이해하실 수 있는 수준으로 작성해서 보고해야 하고, 성격이 급한 상급자에게는 내용은 짧게,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얻어지는 결론은 확실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진중하고 과정을 중요시 여기는 상급자에게는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도 세세하게 공개해드리는 것이 좋고요.

일을 잘한다. 업무를 잘하는 것을 일을 잘한다고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일을 잘하는 것은 이걸 볼 사람을 위해서 잘 기록한 문서를 남기는 일입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한 이해와 관련 지식이 당연히 중요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만든 문서에 최종 결재를 해서 이 일이 끝났음을 알려줄 사람에 대한 이해입니다.

이 업무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 사람이 잘 볼 수  있도록 만든 문서.

그걸 만들기 위해 일 할 때에는 일에 집중해야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 전 잠시 주변 사람에 대해 집중해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아, 일도 잘하고 눈치도 있어야 하는 직장인. 어렵다.


매거진의 이전글 미움받을 용기를 키워 호감을 쌓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