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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y Jun 09. 2021

갤러리를 엿보다

박수근미술관을 엿보다

6월 첫날, 후배와 톡으로 안부를 묻다가 갑자기 양구의 박수근 미술관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나도 아직 가 보지 못한 곳이었고, 지난겨울부터 동해 바다도 살짝 엿보고 싶던 차였다.


일정을 맞추어보다가 그만

"언니 그냥 이번 주로 휙 가자!"

 그 한마디에 ( 올 초 얼굴에 화상을 입고 치료하며 여름 이사 전까진 휴식기 중인지라 )

단출히 둘이 떠났다.


Park Soo Keun

1914~1965

그는 말했다.



"나는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려야 한다는 예술에 대한 대단히 평범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내가 그리는 인간상은 단순할 뿐 다채롭지 않다.

나는 그들의 가정에 있는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물론 어린아이의 이미지를 가장 즐겨 그린다."


"나는 강원도 양구 궁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지 않게 살며 보통학교엘 입학했는데 미술시간이 어찌도 좋았는지 몰라요. 제일 처음 선생님께서 크레용 그림을 보여주실 때 즐거웠던 마음은 지금까지 잊히지 않아요. 그러나 아버님 사업이 실패하고 어머님은 신병으로 돌아가시니 공부는커녕 어머님 대신해서 아버님과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우물에 가서 물동이로 물을 들여와야 했고 망( 맷돌)을 밀을 갈아 수제비를 끓여야 했지요. 그러나 나는 낙심하지 않고 틈틈이 그렸습니다. 혼자서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그림 그리는데 게을리하지 않았어요. 빚 값으로 한 채 남은 집마저 팔아 버리고 온 식구가 뿔뿔이 흩어져 살 수밖에 없게 되어 이후로 나는 춘천에서 평양으로 봉급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해 왔어요. 한때는 초상화를 그려 경제적 뒷받침을 하기도 했지요."

2021 박수근미술관 아카 브이 특별전

한가한 봄날 , 고향으로 돌아온 아기 업은 소녀


2004년 10월, 당시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었던 홍라희 여산가 박수근미술관 개관 2주년 기념식에 참석했을 때 박수근 동상 옆 빨래터 주변 사유지를 매입 해자작 나무 숲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고, 그 기증한 자작나무 숲은 현재 박수근미술관을 찾는 방문객들의 힣링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번에 기증한 유화작품들은 '아기 없는 소녀 ' '농약', '한 일 (한가한 날)'', 마을 풍경'으로 박수근미술관에서 추후 확보해야 할 주요 소재별 유형의 유화 작품들이라 더더욱 기증의 의미가 크다. 이로써 소장하고 있는 유화는 총 17점이 되었다.

유난히 눈에 들던 드로잉 작품들

말만 박수근미술관이지 유화작품이 없던 시절 첫 기증한 유화작품.'굴비' 앞에선 왠지 가슴이 시리던.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밭 속의 고목,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소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 닮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들이  빈틈없이 완전하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목,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 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박왼서 소설 나목에서 발췌)

정작 양구에 들어서던 입구 건물에 그려져 있던 그의 그림은 찍질 못했었지만 , 비로소 이제야 박수근미술관의 규모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 않은가 싶었다.

아쉽게 돌아서며 바람 부는 가을에, 눈 내리는 겨울에 고목과 나목과 소녀와 여인들을 보러 다시 발걸음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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