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을 담다

잠시 지구 반대편으로.. 같이 가실래요?

by emily

사택엘 한 달 ,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내려와 청소, 빨래, 옆지기 식단 조절을 한 지도 벌써 만 7년을 지나고 있다.


사택이라는 표현보다는 용원 ( 어촌마을이었단다. 지금도 어촌이지만)의 한 귀퉁이의 한 아파트의 25평 남짓한 공간이다.

아마도 회사에서 장거리 출장을 오시는 외국 손님 , 혹은 관련 업체 분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장소를 옆지기가 연구소 설립으로 내려오던 시점에서 우리에게 내어 준 상황이지 싶다.


아무튼지 화장실도 두 개 , 방도 세 개에 앞 베란다가 다 딸려 있는 꽤 넓게 느껴지는 오래된 아파트의 일층이다.


신혼시절을 저 남녘 광양 제철소 단지 내 18평 빌라 아파트에서 보내 본 나로서는 지방의 평형수가 도시의 그곳보다 넓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다.


그렇게 오가던 사택으로 새해 2월 가장 추운 시기에 서울의 짐을 빼기로 결정한지도 육 개월이 돼가나 보다.


슬슬 방 하나를 정리해야 는 시점인 것이다.


광양, 서울, 센다이, 미시간, 서울, 수지, 서울, 용원...

센다이의 작은 공간부터 베이스 룸까지 갖춰졌던 규모의 미국 공간까지 넘나들었던 내게 서울의 34평의 짐을 용원으로 옮기는 일이 모 그리 어려울 일이냐 싶다.


사실 사택 생활 칠 년 동안 우린 그 흔한 소파도 , 식탁도 없이 잘 지내고 있다.

접이식 상에 식사 차리고 좌식 의자로 충분한 것을...


오히려 공간의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일치감치 터득했다고 해야 할까?


해외 이사를 두 번이나 하는 동안 가구와 심지어 나의 소중한 피아노까지 처분했었으니.

그래도 소소히 짐은 꽤 된다.

지난 7월의 수지에서 서울로의 복귀 전에 내년 이사까지 염두에 두고 짐을 정리하긴 했지만..


서두가 어쩌다 너무 길어져서 이 글을 여기에 올려야나 망설여지지만 사택에서의 가을 생활을 끄적이려니 그냥 지우지 않기로 지금 정해 본다.


진해에서 한 20-30분 정도 부산 쪽으로 오다 보면 용원이 있다. 여기에는 바다도 있지만 오랜 역사 속에 안골왜성과 웅천읍성 등 역사적 자취도 꽤 존재해있다.


며칠 전 저녁식사 후에 웅성으로 향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맑은 공기 속에 해가 저무는 풍경을 바라보면 그 자체로 모든 것을 잊곤 한다.


가을이 깊어지려니 일몰 또한 색이 고왔다.


웅성 성벽 앞 한 그루의 나무가 유난히 내 눈에 담겼던 그날을 추억한다.


유난히 내 눈에 담기던 시월 어느 날의 나무 한그루

잠시 세렝게티쯤으로 날아갔다고 해도 괜찮을 풍경이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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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창원 진해 웅천읍성

설명

창원 진해 웅천읍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에 있는 읍성이다.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15호로 지정되었다. 위키백과

웅천읍성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성내동에 있는 평지성이다.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웅천현의 행정중심지에 축성된 성으로 창원을 지키는 곳이었으며 바다 조운을 돕는 곳이기도 하였다. 이 성은 1434년인 세종 때 처음 축성되었고, 1453년 증축된 성으로 현재도 사면의 성벽 상당 부분이 잘 남아 있다. 1510년 삼포왜란 당시 현장이기도 하다.

웅천읍성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성내동에 있는 읍성으로 평지성이다. 웅천은 부산에서 진해로 가는 중간지점으로 조선 초기 왜인들에 개항했던 삼포 중의 하나인 제포가 있던 곳이다. 조선 초기 제포에는 우도 수군 첨절제사 영이 있어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으며 남해의 해로를 지키는 요충지였다. 웅천읍성은 조선시대 웅천현의 행정중심지에 축성된 성으로 창원을 지키는 곳이었으며 바다 조운을 돕는 곳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