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만이 한눈에 굽어 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의 호로 써 왔다. 조선 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 생활하시는 동안『목민심서』『경세유표』등 6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공리공론적이며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오늘 내가 기록하려는 자취를 따라가려면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그의 어머니는 해남海南 윤 씨尹氏(1728~1770)이다. 이름은 ‘윤소 온尹小溫’으로 알려져 있다. 윤선도尹善道의 6 세손이며, 윤두서尹斗緖의 손녀였다. 윤두서는 호가 공재恭齋이며, 초상화로 유명한 화가이자 실학적 경향을 보인 학자였다.
정약용이 강진 유배시절 후반 10년 동안 기거했던 곳은 주위에 차가 많이 자라고 있어 ‘다산茶山’이라고 불렀다. 그의 학문적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기에 후학들이 그를 ‘다산’이라 불렀다.
(참고 구글)
원래 이번 여행 일정의 일기 예보는 눈이나 비라는 예보였었다.
늘어나는 코로나에 기상악화까지 설레며 기다리면서 더 몇 번을 망설였던.. 그녀와의 첫 여행.
다행히도 심술궂은 눈 예보는 바람이 불어 준 탓에 이틀 먼저 내려 버렸고 , 우리는 맑아지는 일기 속에 여행을 떠날 수 있었다. 그 덕에 강진의 백련사 앞에 도착했을 때는 세상에 봄 날씨 같이 화창했던 기억이다.
백련사로 향하기 전에 잠시 둘러본 강진의 갯벌 역시 규모는 순천보다 작았지만 아주 아름다웠다.
그렇게 일출을 습지에서 즐기고 한걸음에 다산의 발자취를 따라갔던 늦가을의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렀다
올 첫 동백도 만나고
황금색이던
저 멀리 남녘 바다가 한눈에
많이도 외로우셧으리라 짐작해보던..
산길을 따라 그분의 발자취를 짐작해보며 걷던 내내 언젠가 보았던 영화 자산어보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