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mily Aug 31. 2015

아오리의 추억

큰아이와 아오리

아침디져트로 아오리를 티아라 샘 마네중에~
아오리에 얽힌 희미한  추억이  

1990년 만25세 반년에 결혼이란걸 하고 저 끝없는 남쪽 광양이란 곳으로 내려가서 신혼생활이란것을 시작했다

귀한 아들이신 낭군은  방위산업체로 5년간을...
결혼전엔 느껴지지못한 새삼 큰며느리의 부담감은 내겐 첫아들이란 품목으로 다가왔고
식이요법이다.  그당시  유행하던 독일산 배란일 맞추는 시계던가 뭐던가를 여성잡지를보다 비싼가격도 망설임없이 구입해버렸던 나 
참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기도..

막내며느리셨던 엄마를 난 감지못하고 형제 많은 집으로 시집가야지의 어릴적 꿈은 비록 이상형은 아니었던 남편의 대가족에.  
유학포기의 물거품을 대신해서로
아마 그렇게 나만의 생각 속에 빠져든 결과가 
딱 많지도 적지도 않던 한국 나이27세에 내가 저지른 과오?였다

아무튼지 그렇게 먼 시골까지 신혼생활을 시작한 내게 결혼 반년 만에 찾아온 시조부의 입원소식
갑작스런 남편의 장손의 모습이 엉뚱하게 '아이갖자!'로 

그렇게 해서 식이요법과 믿기어려운 비싼 수입산 배란일시계로 어쩌다 들어선 아가

그 아가가 뱃 속 만 5개월에 건강하시던 우리 아빠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먼저 가버리셨다 
거짓말 처럼 말이다
큰아이의 태몽도 아빠가 꾸어주셨건만. 
큰 충격 속에도
그 담달엔 다시 시조부의 장례가 이어졌고.  멀리서 오신 시댁 어른들은 내 배를 보시곤 하나같이 '아들배구만'을 연발하셨다

그 아이의 예정 달이 10월 이었고 
난 그 해 늦여름부터 엄청나게 아오리를 먹어댔던 기억 . . . 

아 글을 쓰다보니 잊었던 기억 하나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첫 아이를 가져야지 하고 맘먹었던초기 
1991년 1월엔 광양 남도에 몇 년만에 눈이 덮였었고 겁이 없던.  아니 세상 물정모르던 나는 (왠지 한 살 아래인 세대주랑 살다보니 거꾸로 보호본능인지 오지랍인지가 발동한탓에)
싸르르 아픈 배감각에 하필 그 눈 쌓인 날 나홀로 광양읍의 산부인과를 찾아갔었다

의사샘의 진찰결과는 임신5주였고, 혹시라도 배가 많이 아프면 밤이라도 다시 오라는 친절이 넘친 설명과 더불어 그 당시 초음파사진을 들고 설명아닌 설명을 덧붙이셨었다
자궁외 임신일지도 모른다.라는
(나중에보니 수정란 착상시 출혈을 오진하신것)
택시를 잡아타고 포스코 단지 안으로 들어오던 10분동안 얼마나 울어댔던지...
기사아저씨의 심상찮은 눈길은 백밀러 속으로 보이던 기억

첫아이의  임신을 난 웃음보다 울음으로 앞섰던 어줍짢은 기억 ^^:

예비엄마로서의 느낌이랄까?  
절대 아파도 그 병원은 다시 가지 말아야지하던 예감

아무튼지 5.6개월때 줄 초상을 치르고도 난 씩씩하고 건강한 임산부였고
갑자기 아빠를 보내신 정신없는 친정엄마께는 첫손주에 대한 기대와 딸의 건강을 염려하시느라 어쩌면 오히려 엄마껜 없던 용기도 샘솟던 시간이었던듯 
지금 돌이켜보니

너무 길어졌다
아오리의 추억을 논한다던것이

희한한것은 큰 아이는 과일은 사과밖에 모른다
참 신기하지만  

오늘 아침 그 아오리로 잠시 놀이를 하다가 
엄청나게 먹어댔던 1991년 늦여름이 그리워졌다

작가의 이전글 7월의 크리스마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