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hang Enli (장언리)
표지 작품: The Water, Zhang Enli, 2015 Oil on canvas 300 x 250 cm
Zhang Enli의 작업은 일렁이는 자연물의 형상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금세 그 형상을 흐트러뜨린다. 즉 구상과 추상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뜻이다. 그는 나무, 물결, 새 등의 구체적인 대상에서부터 시작해 자신의 감정과 기억을 중첩시켜가며 불규칙하고 상상을 자극하는 패턴을 만들어낸다.
Zhang Enli는 중국 길림성에서 태어나 상하이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21세기 가장 주목 받는 중국 현대 미술가 중 한 명이다. 중국 역사의 격변기를 지나왔던 다른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Zhang Enli의 초기 작업은 중국인들의 저항과 상처, 그리고 그들의 소소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작업의 방향을 바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전깃줄과 박스 등 일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사물들이다. ‘사람이 사용하는 물건에 사람의 모습이 들어있다’고 말하는 그는 엉켜있는 전깃줄로부터 사람 사이의 관계를 연상하고, 흔하디 흔한 종이박스 위에 채색을 하며 그것에서 관람자가 각기 다른 기억을 떠올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중국성’을 드러낸 비슷한 시기 활동한 다른 중국 예술가에 비해 뒤늦게 주목 받았지만 국제적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작업이 가진 이러한 ‘보편성’이 있다.
그 단적인 예로 Zhang Enli는 최근 영국의 유서 깊은 차 브랜드 ‘포트넘 앤 메이슨’과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한 최초의 해외 아티스트가 되었다. 영국의 헤리티지를 강조하며 영국작가와의 협업만을 해온 이 브랜드가 Zhang Enli를 선택한 것은 일상적 사물과 자연물을 그만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작업이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최근 몇 년 간의 공간 페인팅(space painting) 작업이다. 그는 전시장이나 호텔방과 같은 공간의 벽과 천장을 풍부한 색채와 패턴으로 채색하기도 하고, 아예 합판으로 작은 방을 제작해 그 안에 그가 실제로 지냈던 아티스트 스튜디오를 재현해내기도 했다. 이러한 공간 작업들은 Zhang Enli가 인간과 인간의 흔적이 담긴 사물, 자연물 등에 대해 꾸준히 이어왔던 고민들의 총체적인 표현으로 보인다. 천장과 벽을 가득 채운 수채화 벽화는 그가 주로 사용하는 전통 중국식 붓터치 기법으로 그려져 유기적이면서도 포근한 감성을 자아낸다. 그가 재현한 자신의 아티스트 스튜디오에서는 작가가 남긴 생활의 흔적 위에 관객의 흔적을 덧대게 되고, 결국 일상적 사물과 공간에 기억과 감정을 더하여 새로운 형상과 영감을 표현해내는 작가의 방식을 관객도 함께 경험하게 된다.
Zhang Enli의 작업은 한눈에 보기에 미적으로 충만함을 줄 뿐 아니라 그림 속 어렴풋이 비치는 형상과 그 재료를 들여다보았을 때 또 다른 생각의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매력을 가진다. 또한 평면의 캔버스에서 입체 지구본, 박스로 쌓은 탑, 그리고 하나의 공간으로까지 확장되는 그의 회화적 무대는 앞으로의 작품 행보를 계속해서 궁금해하게 한다.
글/ Emily Chae
갤러리 Hauser & Wirth에 소개된 CV, 기사, 인터뷰 영상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작품 이미지 또한 Hauser & Wirth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ww.hauserwirth.com/artists/2807-zhang-en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