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展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작지만 재미있는 전시를 한다. 폴란드 출신의 디자이너, 미디어 아티스트, 연구자… 등등의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있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크지슈토프 보디츠코의 작품들을 회고전 형식으로 대중에게 공개한 것이다. 생소한 이름이었고,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방향 또한 내게는 새로운 것들이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만큼 머릿속에서 생각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전시였다.
전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보디츠코가 발명하고 디자인한 기구들의 설계도와 실제 모형,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시범 영상을 나열한 것이고, 또 하나는 공공장소에서 프로젝션을 통해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담은 영상을 상영한 것이다. 이 둘을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는 ‘소외된 이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보디츠코의 기구들은 그 용도나 의미를 한눈에 파악하기 힘들다. 어떤 실용적인 목적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제작된 것들이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외국인 지팡이(Alien Staff, 1992)>인데, 이민지들을 위한 ‘스토리텔링 기기’라고 한다. 스토리텔링 기기라는 것이 도대체 뭔가, 할 수 있겠지만 이 지팡이는 형태부터 제작 목적, 사용 방식까지 말 그대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도시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어쩌면 영원히 그 사회 안으로 편입되기 힘든 사람들인 이민자들은 그 지팡이 윗부분에 있는 화면에서 나오는 방송과, 지팡이 중간 부분에 전시된 이민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물건들을 통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또 재미있는 기구는 <노숙자 수레(Homeless Vehicle, 1988-89)>와 <자율 방범차(Poliscar, 1991)>이다. 둘 다 항상 사회의 변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노숙자를 위한 것으로, 수레는 노숙자들의 이동수단과 쉼터를 제공하고 자율 방범차는 노숙자들의 네트워크를 활용해 지역의 방범차 역할을 하도록 한다. 언제나 연민의 대상이 되기만 했지 사회 구성원의 일부라고는 잘 여겨지지 않는 노숙자들이 자연스럽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아이디어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같이 전시를 관람한 친구는 의견이 조금 달랐다. 노숙자의 삶의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오히려 노숙자를 다시 사회로 끌어들이는 것을 방해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노숙자를 사회에서 잠시 떨어진, 일시적인 상태로 보느냐 아니면 그 역시 그 자체로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하는 관점에서 보디츠코와 의견이 다른 것 같다. 나는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그래도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회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니, 최소한의 삶의 질과 사회 참여는 보장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보디츠코의 주요 프로젝트 중 하나는, 공공장소에서 한 도시의 기념비가 될 만한 건물이나 동상을 정하고, 거기에 사람의 모습을 프로젝트로 투영하면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물론 그 사람들은 트라우마를 가진 소외된 약자들이다. 인상적인 것은 독일의 바이마르에서 진행된 <수사관(2016)>. 시리아 난민들의 얼굴을 독일의 상징적 인물인 괴테의 동상에 투영시키는데, 특이했던 점은 난민들과의 인터뷰가 실시간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마치 커다란 동상이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괴이하면서도 이목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준다. 사회적으로 난민 문제가 문제시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약자로 벼랑에 내몰린 위치에 있는 난민들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보다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작가가 지금까지 ‘외국인 지팡이’나 ‘대변인(마우스피스)’ 등의 기구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가장 대중적이고 강력한 형태로 실현된 것이 바로 이 공공 프로젝션이라고 생각한다.
보디츠코가 이번 한국 개인전을 위해 한국에서 공공 프로젝션을 진행한 <나의 소원(2017)>도 전시실 7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는 한국 사람들에게 이상적이고 친숙한 인물로 대표되는 백범 김구를 기념비적 인물로 선정하고, 그의 동상에 해고 노동자, 세월호 참사 희생자 어머니, 동성애자 등 한국 사회의 변두리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투영한다.
사실은 전시를 보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다. 현대 미술을 접할 때면 항상 빼놓지 않고 괴롭히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보디츠코는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보디츠코의 프로젝트들은 미술인가? 그렇지 않다면 왜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가?
나름의 답을 내리자면, 보디츠코의 프로젝트를 미술, 예술로 만드는 것은 그것이 지향하는 목적, 담고 있는 의도 때문이다. 물론 어떤 기구들은 실용적인 목적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산업 공학과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지만, 그의 기구들, 그리고 공공 프로젝션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문제 제기’라는 추상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울림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달의 주체는 보디츠코 자신이다. 미술이 시각적인 매개를 통해 작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라면, 보디츠코의 이런 이상한 기구들과 프로젝션도 결국 미술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전시기간 2017년 7월 5일 ~ 2017년 10월 9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관람시간 월, 화, 목, 금, 일 오전 10시 ~ 오후 6시/수, 토 오전 10시 ~ 오후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