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세상은 얼마나 리얼한가요?

포스트모던 리얼 展

by Emily Chae
미술관 앞 야외에 설치된 이용덕 작가의 작품. 깜짝 놀랐다. 왜 깜짝 놀랐을까?

떤 미술 작품이 ‘사실적’, ‘현실적’이라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누군가는 색연필로 세밀하게 그린 극사실주의 작품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을 똑같이 옮겨놓았다고 해서 그것이 ‘리얼’한 것일까? 그렇다면 모든 사진 작품들은 다 리얼한가? 모두가 똑같은 현실을 보고 있고, 그것을 그대로 캔버스나 사진이나 영상으로 옮기는 것이 가능할까? 지금 서울대학교 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포스트모던 리얼> 전시는 한국 현대 미술에서 이러한 고민이 어떻게 이어져왔는지 보여준다. 전시 제목에서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묵직하지만 어렵지 않은, 재미있는 전시였다!



1부 리얼, 재현, 물질


전시는 크게 두 가지 파트로 나뉘어 있다. 1부는 ‘리얼, 재현, 물질’로 현대 이전의 작품을, 2부에서는 ‘포스트모던 리얼’이라는 제목으로 현대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1부의 작품은 ‘현실의 것을 가상의 세계로 옮기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으며 벽에 걸려 있는 황재형 작가의 <고(故) 성완희 열사 추모도>는 민주화 운동, 노동 운동이라는 사회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미술의 세계에 끌어들인 작품이다.

KakaoTalk_20171116_231006058.jpg 황재형, <고(故) 성완희 열사 추모도>

이에 한 발 더 나아간, 김홍주 작가의 재미있는 작품이 있다. 1970~1980년대에 제작된 <무제> 작품들은 현실 속의 소재를 떼어다 그것을 캔버스로 활용한 것이다. 문짝, 액자, 모자 등 일상의 물건들을 미술 작품의 오브제로 바꾼 것은 현실, 리얼리티라는 것을 작품의 내용적 측면뿐만 아니라 ‘물질’의 측면에서 구현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이러한 모더니즘의 다양한 접근이 여전히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가상과 현실, 사실적인 것과 비사실적인 것의 경계선을 넘어설 때 비로소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KakaoTalk_20171116_231005429.jpg 김홍주, <무제>, 1970~1980년대

2부 포스트모던 리얼


리얼하다는 것이 뭘까? 몇 년 전부터 ‘ㄹㅇ(레알, 리얼, real)’이라는 유행어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습관적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사실 그렇게 간단한 단어는 아니다. 예를 들어 흔한 예능 프로그램 장르 중 하나가 ‘리얼리티’라는 것인데, 이 리얼리티 프로그램들은 엔터테이너들이 최대한 현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아무리 실제 상황인 척 가정해도 대본이 있는 연출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너무나 현실 세계와 비슷하도록 연출되었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들은 리얼한가? 현실의 모습을 최대한 비슷하게 담는다면 그것은 리얼한 것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의 모습은 실제 현실의 모습과 동일한가? 이런 생각으로 지끈지끈한 머리를 싸매고 전시의 2부를 관람하면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KakaoTalk_20171116_231006723.jpg 정연두, <Location #1>, 2005.

정연두 작가의 <Location #1 (2005)>이라는 작품을 살펴보자. 평범한 옷을 입은 한 아주머니가 경치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평상에 앉아있는 것 같은데, 다시 보니 평상이 아니라 연극 무대 같다. 시선을 사로잡는 벚꽃나무는 화면과 묘하게 어울리면서도 이질적이다. 이 작품은 현실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지만 비현실적으로 구성되었다. 우리가 대상을 바라볼 때 어느 지점에서 리얼하다고 느끼는지, 혹은 어느 지점에서 그렇지 않다고 느끼는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것 같다.


정흥섭, <포테이토스>, 2009.
진짜 감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과 가상의 경계를 위트 있게 비트는 작품들도 많다. 그중 하나가 정흥섭 작가의 <포테이토스 (2009)>라는 작품이다. 미술관 통로를 지나가다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웬 감자가 쏟아져 있다. 자세히 보니 진짜 감자는 아니다. 입체로 만들어진 감자도 있지만, 감자 사진 속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감자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에 비현실적으로 놓인 현실적인 모습의 가짜 감자들… 복잡하다. 이미 머릿속에서 현실, 가상, 사실, 리얼과 같은 개념들이 뒤죽박죽 섞이기 시작했다.


KakaoTalk_20171116_231008557.jpg 고승욱, <철인삼종경기>, 2005.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고승욱 작가의 영상작품 시리즈인데 참 우스꽝스럽다. <철인삼종경기 (2005)>라는 작품 속의 한 남자는 기둥에 매여 있는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페달을 밟는가 하면, 흙구덩이 속에 들어가 열심히 헤엄치는 시늉을 낸다. 너무 열심히 해서 보는 사람이 다 안타깝고 우습다. 왜 우습게 느껴질까? 그 남자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에 너무 열심히 매달려서이다. 그 남자의 행동은 비현실적이다. 그의 행위가 실제 생활에서 일어났다면 아마 그는 정신병원에 끌려갔거나 경찰의 조사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일어나는 곳은 영상 속이다. 그 가상의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 현실의 우리는 그 남자의 비현실적인 행위를 용납하고 웃어넘길 수 있다.



KakaoTalk_20171116_231005228.jpg 서울대학교 미술관

모더니즘의 화두가 ‘구분 짓기’였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구분을 허물어가는 시대다. 우리는 이미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이도 저도 아닌 상태에서 살고 있다. 앞서 말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비롯해, SNS 공간과 영화 속의 세상, 정치판, 과학기술의 세계는 얼마나 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인가?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 세계는 또 얼마나 현실적인가? 매일 이런 질문을 달고 산다면 골치 아프겠지만, 이런 질문을 업으로 삼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며 한 번쯤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KakaoTalk_20171116_231009548.jpg 공성훈, <버드나무 1, 2, 3>, 2015. 이 그림은 일산 호수공원에서 그려졌다. 이 그림은 얼마나 사실적인지?


전시기간 2017년 10월 11일~ 2017년 11월 28일

장소 서울대학교 미술관

관람시간 매일 10:00 – 18:00 (월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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