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3 눈이오는날에는
엄마가 나에게 말을 건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쉽게 그리고 자주 오는 듯 하다. 출근길 큰 폭설도, 흐릴만 하면 내리는 진눈깨비도, 흩어진 눈들을 그러쥐어 동그란 눈사람을 만드는 날들도. 까만 콘크리트 바닥보다 흰 눈이 내린 길에 발자국을 찍는 뽀드득 소리가 좋았다.
.
엄마와 함께 하는 마지막 이틀째에, 나는 꿈을 꿨다. 아주 높은 전나무인지 메타세콰이어인지 모를 나무들이 꽤나 빽빽하게 들어선 숲에, 아무도 밟은 적이 없는 흰 눈이 소복하고 평평하게 쌓여있었다. 나는 어느새 엄마와 함께 그 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엄마는 내 결혼식에 입었던 보라색 한복을 입고,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천천히 나와 함께 걸었다.
.
엄마에게 나는 무언가 계속 말을 했고, 엄마는 아무 이야기도 내게 해 주지는 않았지만, 계속 내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걸었다. 그때 내가 엄마에게 했던 이야기는 꿈에서 깨자말자 잊어버렸지만, 엄마와 함께 걷던 그 숲과, 엄마의 보라색 한복과, 미소인지 슬픔인지 모를 엄마의 표정은 현실보다 더 생생하게 언제든지 떠올릴때마다 모든것이 느껴진다.
.
그 꿈 이후로, 나는 올 겨울의 눈은 모두 엄마일 거라고 확신한다.
.
삼우제날, 엄마를 모신 추모관에 도착하자말자 멀쩡하던 11월의 하늘에 이른 눈발이 날렸다. 비보다는 눈같고, 눈이라기엔 비같던 진눈깨비는, 30년 넘게 함께하던 아내를 잃은 아빠와, 인생에 9할을 기대던 엄마를 잃은 막내딸과, 엄마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던 큰사위에게 미안했던 엄마가 내리던 눈이었다.
.
나는 엄마의 사진에게, 내걱정은 말고 동생과 아빠와 이모를 걱정해달라고 했다. 나는 이제 엄마가 잘 키워서 잘 보냈고, 엄마 떠나기 바로 전에 소중한 생일상까지 받았으므로 다 가졌다고. 그러니 나에게 할 걱정은 나 이외의 식구에게 더 해달라고 했다.
.
그러나 그 뒤로 눈은, 너무 신기하게도 나에게 엄마가 하고픈 말이 있을 때마다 내렸다. 연말에 동생과 만나 쌀국수집에서 엄마도 왔으면 얼마나 행복했을지를 이야기할때도 창밖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고, 잘 풀리지 않는 회삿일에 숨이 턱턱 막히던 시기에는 세찬 눈발을 날려 내 고민보다 출퇴근을 더 걱정하게 했다.
.
처음 홀로 생일을 맞은 아빠에게 갈 때에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발목까지 푹푹 빠졌고, 회삿일에 계속 힘이 들어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힘도 없을 때에도 어디선가 눈이 시작됐다.
.
그리고 지난주에, 심하게 앓고 난 동생을 만나러 가는 길에도 하늘에서는 눈이 꽃잎처럼 내렸다. 마치 나를 젖게 하거나 가는길을 힘들게 하지는 않겠다는 듯이. 그저 함께 있다고 말해주는 것과 같은 눈이 내렸다.
.
엄마는 계속 눈을 내려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 너의 이야기를 이젠 언제나 보고있다고. 엄마에게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주겠다고. 하얗게 내렸다가 투명하게 녹아버리는 눈처럼, 너의 지금도 그렇게 흘러갈거라고 .엄마의 그 목소리가 눈으로 내려서, 눈이 오면 마치 저 위에 있는 엄마와 연결되는 시간으로 느껴진다.
.
오늘도 여전히 어려웠고 여전히 상처받는 하루였다. 그렇게 느끼자 거짓말같이 지금 퇴근길에 눈이 내린다. 이젠 엄마에게 괜찮은척을 할 수 없구나 생각하니 괜히 부끄러워진다. 나 원래 엄마에게 되게 자랑스럽고 혼자서도 잘 하는 딸이었는데. 이젠 엄마가 다 보고 있으니 거짓말을 할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봄이 되면 무엇으로, 여름이면 무엇으로, 가을엔 또 어떤 모습으로 엄마가 내 곁에 있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올 겨울에 엄마에게 딸내미 걱정하는 눈을 내리게 해서 미안하다. 엄마 더 잘 버티고 잘 이겨내볼게.이왕 내리는 눈 더 예쁘게 내려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