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년전엔 울어도, 4년후엔 울지 않은곳

4년전 엄마를 보냈던 수원 연화장에 장례식이 있어 다녀왔다

by 에밀리뉴

사년 전엔 이곳에 다시 오면 눈물이 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원 연화장은 기피시설 치고는 생각보다 굉장히 목 좋은 곳에 있다.산을 깎아 만든 신도시의 끝자락에 그리 깊지 않게 감춰져 있다.

광교 호수공원이 개발되기 전 그 동네는 원천유원지라는 지명으로 불렸고, 야유회라던가 가든에 딸린 족구장으로 워크샵을 가곤 하던 지역이었다. 상전벽해가 이루어 진 뒤에도 도심에선 눈에 띄지 않는 곳이라 사람들이 처음 올 때에는 그 유명한 광교호수 바로 뒤에 이런곳이 있다는 것을 신기해한다.


엄마는 한달에 한두번 연화장에 갔다. 성당에서 장례의식을 치를때, 화장을 하는 곳에서 함께 기도를 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 했다. 나는 그당시 차를 가지고 다녀야했던 직무에 있던 시기였는데, 엄마는 가끔 '오늘은 차를 두고 갈 수 있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업관리사원이 차 없이 어떻게 다니냐며 볼멘 소리를 하면 엄마는 할머님들을 모시고 가야해서 차가 필요하다고 조심스레 한번 더 물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엄마는 성당에서 장례치르는 것을 도와주는 모임에서 가장 막내였던 것 같다.


연화장,연화장 말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었던 곳에, 사년 전 나는 엄마를 보내기 위해 갔었다. 지금으로선 모든 절차를 어떻게 그 정신에 예약하고 돈을 지불했는지 기억이 희미하지만, 그곳은 이제 사람들이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인사드릴 수 있게 한 뒤 정말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갔던 곳이다.

어제 뜻밖의 연락으로, 전 직장의 상무님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장을 아침에 받았다. 카톡에 그분의 메시지가 뜨자 눈을 의심했다. 개인적으로 연락이 올 분이 아니었다. 끝이 안좋지는 않았으나 과정 중에선 서로 껄끄러운 점이 없지 않던 상사였다. 그래도 경사는 아니라도 조사에 가는것이 당연하게는 느껴지는 사람정도는 내 인생에 됐다.


택시를 타고 내렸을때는 이미 천지분간이 힘든 어두운 밤이었다. 공간의 기억을 되살릴만한 것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갔다고 해도 그러려니할만큼 모든 장례식장의 구조는 비슷했다. 어색하지 않은 적당히 잘 알아왔고 안부를 물을 만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 무리에 끼어 그들에게 나는 잘 살고 있다, 좋은 회사에 다닌다 라는 티를 내려 애썼다. 잘난척으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과거의 추억만을 갖고 있는 현재의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만났다.적당한 근황에 대한 이야기, 적당한 과거의 함께할 때의 노스탤지어같은 회삿이야기. 적당한 서로에 대한 칭찬과 적당한 관심. 한시간짜리론 충분한 컨텐츠였다. 남의 장례식에서, 그리고 내가 그렇게 슬퍼했던 장소에서 이렇게 웃고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생각보다 늦은 도착으로 생각보다 늦은 귀갓길이었다. 슥 돌아나갈때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그곳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보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내가 차를 내놓지 않은 날의 엄마는 저곳에서 얼마나 더워했고,추워했고,기다렸을까. 차로는 너무 쉽고 간단한 길이 버스를 기다리고 타고 가는 길로는 참 어려웠다. 산 속의 습하고 냉한 공기와 희미하게 낀 안개는 화장터의 대기실의 느낌과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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