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23 스스로 벼랑끝에 선 것에 대하여.

내가 나 아니면 누가 나를 이토록 끈질기게 이해하려 할까.

by 에밀리뉴


아무도 나를 몰아세우지 않는데 마음이 혼자 벼랑 끝에 몰린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이 들 때에, 귀를 이어폰으로 막아버리고 나와 전혀 다른 세상으로 흘러가는 드라마를 튼다.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세계를 만들고, 그곳으로 안내하고, 알아서 사건 사고를 벌이고 해결한다. 틀어진 드라마는 그렇게 화면 밖의 내가 크게 힘들이지 않고 세상을 원하던대로,혹은 상상하던대로 살게 한다.

버스에서 내려 충동적으로 들어간 마라샹궈집에서, 오늘도 역시나 양조절에 실패한 볶아진 나의 마음이 내 앞에 그릇 가득 놓인다. 건두부는 뭉쳐있고, 푸주는 미처 완벽히 볶아지지 않아 생것의 냄새가 난다. 그러나 마와 라의 강한 향은 뭉치고 덜 익혀진 것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서 먹으라고 강요할 뿐이다. 모든 재료는 내가 직접 선택하고 바구니에 원하는 만큼 집어넣었다. 내 업보같이 느껴지는 마라샹궈를 그래도 최선을 다해 우겨넣는다.

가게의 BGM과 드라마의 소리가 섞여 들린다. 밖에서는 요즘의 노래가, 귓구멍 속으로는 드라마의 대사들이 오고간다. 결국엔 내 귓가에 더 가까이 있는 쪽이 내 모든 정신을 빼앗아간다. 드라마는 마라샹궈라는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내일은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온다. 그닥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들에게 주목받고,칭찬받고,재미있는 사람으로 여겨질 날이 온다. 그게 싫어서 꾀병을 부려 잠시 병원에 다녀오는 척을 할까 했다. 내 눈앞에서만 안 보이면 될 것 같다. 그것을 마주한 순간 썩어버릴 내 표정, 그 이후 주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곤두세워질 내 마음, 그 이후 내가 상대방에게 더 짙게 찍찍 그어버릴 '맘에 들지 않음'의 깊이. 벌써부터 내일 나는 표정과 마음과 깊이를 들키지 않기 위해 도망칠 궁리를 한다.

그래서 아무도 나를 몰아세운 적 없다. 오롯이 내 마음의 문제이고, 나만 별 일 없으면 그 누구도 별 일이 아닐 것이다. 내가 끼치지 못할 영향력을 부리려 하지 말자고 되뇌인다. 내 마음이 지옥인건 내가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가서라고 계속 스스로를 교화시키려 애쓴다.

그런 마음에서의 싸움이 나를 복잡미묘한 사람으로 만든다. 명랑하지도 그렇다고 차분하지도 않은 애매한 성향에, 특출나 보이지만 사실은 속으론 별 거 없는 모습이 들킬까 두려워 애써 페인트를 두텁게 덧칠하는 반복적인 행위들을 한다.

이런 내가 바보같다고 스스로 꾸중하기엔 나는 내가 많이 애틋하다. 마라샹궈를 먹다 글감이 생각나서 어떻게든 이 마음을 남기려고 집에 쉽게 돌아가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몇 걸음 못가 다른 앉은 자리를 찾은 내가. 내가 어떤 감정인지 솔직하게 파악하는게 마치 스스로를 바늘로 계속 찌르고, 아픈것을 확인하는 자해행위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것마저 안 하면 내가 정말 뻔뻔하고 못된 인간이 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내일이 오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런 감정으로 내일마저 안 오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오히려 빨리감기를 해 버리고 싶은 내 마음이.

내가 나니까 나를 이해하고,분석하고,자책하지. 나 아니면 누가 나를 이렇게 계속 지켜봐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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